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조카가 교환학생 신분으로 잠깐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외삼촌의 입장이다 보니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러더니 이 녀석이 고맙다고 선물을 하나 투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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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녀석이 이런 아이템을 준비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다 큰 대학생이지만, 어린 시절 장난감을 무지 좋아했던 녀석에게 외삼촌의 입장으로 주로 공급했던 아이템이 건프라였고, 그때의 기억으로 분명 삼촌도 이걸 무지 좋아하니까 나에게 선물했겠지란 심정으로 나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뭐........(아싸!)
그리하여 이미 손을 뗀지 아주 아주 한참 지난 나이에 다시 한 번 불타올랐고.......처참하게 다 태워버렸다. 겨우 완성을 한 후 나에게 찾아온 건 꼬리뼈의 극심한 통증과 후들거리는 수족과 시린 눈알만이 남아버렸다.
그런데 이게 참.....
배운 도둑질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니 슬슬 그 옛날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고 무리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기 십상이니 일단 단계별로 페이스를 끌어보자는 심산으로 또 하나를 도전해본다.
곰돌이다. (이것도 진짜 건담 건프라가 맞다..!!)
두 개의 모델을 만들다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살짝 느낀다. 한참 때 카피 본으로 신나게 만들던 건프라는 분명 덕지덕지 본드 칠은 기본에 어느 정도 도색을 해야만 뭔가 뽀대와 각이 잡혔는데 이젠 과학과 기술의 발달인지 본드는 한 방울도 안 쓰고 색 분할도 제법 정밀하게 되다보니 그냥 뜯어 다듬고 맞추기만 해도 어느 정도 폼이 난다.
그리하여 과거의 취미활동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할 때 쯤. 잠깐의 잠재기를 가지기로 결정한다. 모든 원인과 이유는 마님의 존재. 분명 마님은 나에게 마당쇠는 연세가 몇이신데 모델을 만드십니까? 라는 완곡한 잔소리부터 시작해 점점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올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건덕후들의 최고의 변명인 ‘남들 술 먹고 담배 피는 돈으로 난 모델 사서 만든다!‘ 라는 완벽한 회피동작도 술 먹고 담배 피는 나에겐 해당이 없다.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가 귀신처럼 마님의 빈틈을 노려 세 번째 모델에 스리슬쩍 도전해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