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Ending Note, 2011)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했던가. 단지 차이가 있다면 42.195Km라는 한정적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과 달리 인생의 종착점은 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한발자욱을 채 내딛기도 전에 경기가 끝날 수도 있고 어느 누구는 42.195라는 체감적 거리를 넘어서 여전히 달리는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은 마라톤 같다는 표현은 틀릴지도 모르겠다. 결승점이 제각각이고 그 결승점은 어느 누가 지정할 수도 없는 숙명 혹은 운명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경우에 따라 틀린가 보다. 평생을 열심히 달란 남자 하나가 다른 누군가와는 다르게 결승점의 위치를 먼저 통고 받게 된다. 좋은 상황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암울하고 어두운 불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위암 4기의 말기 암. 수술은 이젠 불가능할 정도. 회복을 위해선 확률이 지극히 떨어지는 항암치료뿐이란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이 남자는 의외로 담담하다. 타인과 다르게 자신의 한정된 결승점을 항해 여태까지 그래왔듯 묵묵하게 페이스를 유지한다. 단지 틀린 점이 있다면 남아 있는 거리에서 뛰어왔던 거리를 정리하는 순서를 밟는다.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천천히 정리해가는 순서를 그려가고 있다. 막내딸이 아버지의 남은 인생을 차근차근 기록한다. 냉정한 촬영자의 입장에서 살짝 벗어나 살갑게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도 나누며 그간 느끼지 못했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첨가해가는 건 모든 이러한 류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미덕중에 하나다.
기적이나 엄청난 반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결승점의 위치 역시 변하지 않는다. 이런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포함되지 않아도 이 다큐는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주는 클라이맥스는 분명 존재한다. 무덤덤하게 보고 있던 나 역시. 병원 침대 위에서 쇠약해진 목소리를 끌어올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부인에게 힘겹게 건네는 “아이시테루(사랑해)” 한 마다만큼은 뱃속 깊숙이 뭔가를 욱하게 만들어줄 만큼 강력했었다.
태어나 세상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논리에 우린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운명이나 숙명 따윈 개척하기 나름이라지만 이런 자연논리 앞에선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아왔다와 잘 살아왔다가 엄연히 틀리듯. 얼마인지 모를 남아있는 삶을 개척해나가는 만큼이나 정리해 보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잘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모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유행성 버킷리스트라 평가 절하할 필요성까진 못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