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다른 일을 할 때, 그 회사의 오너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좋게 말해 대단한 것이지 “꼼수대마왕”이라는 명칭이 전혀 부럽지 않은 존재였다. 각종 공과금은 끊임없이 연체 중이었고 오죽하면 한전에서 직접 방문하여 지정 일자까지 미납금을 내지 않을 경우 부득이하게 전기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통보가 내려져도 1시간여를 남기고 입금을 하곤 했었다. 이러한 사항은 끊임없이 반복되곤 했다. 어쩌다 밥이라도 같이 먹는 시간에선 이러한 공과금을 비롯한 남에게 빌린 자본에 대해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신념으로 들어찬 속내를 내비치곤 했다. 종국엔 법적으로 문제가 들이닥치고 나서 그때 줘도 된다는 마인드도 겸비하고 있었다. 물론 직원들 월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경기의 여파로 자본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라는 원인도 있을까 싶었지만 과거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이러한 일이 일상다반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애당초 사람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는 판단이 서버렸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씹던 껌 뱉듯 인간관계를 청산하곤 하는 사람. 완벽한 소시오 패스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특징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어 보인다. 흔히들 욕하면서 본다는 TV속 드라마의 막장 시추에이션 역시 이러한 인물은 필수다. 상욕을 처먹는 극악의 캐릭터가 있기에 평범한 주인공이 반동적 성격으로 돋보이곤 하니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사족이 겁나 길어졌다. 단지 나는 1987년 옵니버스 애니메이션 “미궁물어”중 두 번째 에피소드인 “달리는 남자”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부턴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이 만화영화에 대해 몇 가지 말해보려고 한다.

 

미궁 이야기 (迷宮物語 ラビリンス: Neo-Tokyo, 1987)

 

  1987년이라면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떡칠을 한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이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한 픽셀씩 그려나가며 하나하나 완성을 하는 수동화된 시대였다. 예술이라 치부하기엔 지나친 노가다 성향이 지배적이 었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 “거장”의 명칭을 붙여도 이견이 없는 감독들의 범상치 않은 단편 작품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 이 "미궁물어"라 보고 싶다.

 

  3편으로 구성된 작품이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린타로, 가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란 3명의 감독들이 상업적인 목적을 다소 배제시키고 감독중심적인 생각을 가득 찬 내용을 담고 있다. (린타로 : 은하철도 999 시리즈, 캡틴하록, 메트로폴리스 가와지리 요시아키 : 요수도시, 마계도시, 수병위인풍첩(무사 쥬베이) 오토모 가츠히로 : 아키라)

 

  그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2번째 에피소드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달리는 남자 (走 の男)”는 앞서 말했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취했던 회사 오너를 떠오르게 해준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은 근 미래 배경의 카레이싱에서 우승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레이서 “잭 휴”라는 인물의 몰락을 짧은 시간에 보여 준다.

 

 

지정된 룰을 지키며 우승을 위해 제일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는 인물에게 관객은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만, 어느 누구도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공작과 꼼수를 부리는 인물에게 어떤 영광과 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만족만 있을 뿐.

 

 자아가 붕괴되며 결국 몰락해버리는 레이서 “잭 휴”와 얼마 전 들은 소식에 의하면 결국 채무 독촉과 각종 불법, 편법의 들통으로 인해 동남아 도주를 계획 중이라는 그 오너의 결말이 묘하게 오버랩이 돼버린다.

 

암튼 15분이 채 되지 않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지나치리만큼 사족이 길었다. 이제 시청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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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1-2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에니메이션을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KBS에선가 방영했던것 같더군요.
메피님이 말씀하신 그 회사의 오너는 아마 부자아빠 책을 본 모양입니다.제 기억에 그 책속에 나오는 부자아빠가 말씀하신것처럼 세금같은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낸다고 하다군요ㅡ.ㅡ

Mephistopheles 2013-01-28 12:25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 자체가..우리나라 도서인구의 현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지요. 그 양반 파산했다는데..(계획적 파산이란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마녀고양이 2013-01-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건 좋은데, 잘 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멈춰서서 주위도 살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

메피님, 가끔 뵐 수 있어 참 좋네요, 다른 일 잠시 하실 때 힘드신거 같았는데
요즘 글은 훨 편안하네요, 다행이예요. 평온한 한주되셔요.

Mephistopheles 2013-01-28 12:27   좋아요 0 | URL
빠르게 달려나가는만큼 흘리는게 분명 있겠죠. 그걸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전력질주해야 하는 거고요.^^

몸이 힘들기 이전에 마음이 힘들더군요. 그 기간동안 좋은 공부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