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기쁨 - 그날 이후 열 달, 몸-책-영화의 기록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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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짐작은 되지만 물어보지 않았던 무심한 나를 발견했다. 한사람의 세계는 사라지는게 아니라 남은 사람의 세계로 이어지고, 새로이 태어난다.˝.......물어보지 못한
일인추가, 회한의 눈물 추가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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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기쁨 - 그날 이후 열 달, 몸-책-영화의 기록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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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랄까. 책 전체가 다채로운 무늬로 꿰매어진 '아름다운' 퀼트같았다.~


2. 현실(골절의 아픔)과 환상(정신적 자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액자영화 같기도.


3. 고통(오 나의 뼈)의 깊이와 환희(책과 영화가 주는)의 크기는 뫼비우스띠처럼 

얽혀있어 결국은 '쓴맛'이 사는맛이고 고통과 고독은 또 기쁨이 되는 '찰나'일지니.


4. 헉! 그런데....... 소개된 책과 영화중에 내가 보고 읽은 것은 열손가락 이하.

이럴수가.....ㅠㅠ 허허~~

덕분에 유툽과 블로그 검색으로 영화의 장면과 책의 상황을

바로바로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5. 확인을 거듭하며 영화에 대한 작가의 꼼꼼, 적확한 문장과 담담하고 차분한 호흡에

감탄 엔드 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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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스침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이 여행지라면 더욱 그렇다. 어쩌다 슈퍼에서 레몬이 수북 쌓인 것을 볼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분은 5년여 전 관광객인 나에게 자신의 텃밭 정원에서 레몬을 따 건네준 이탈리아 할아버지이다. 카페에서 지인들을 만날 때 커피 아닌 다른 것을 마시고 싶을 때면 나는 종종 레몬에이드나 레몬차를 선택하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지난 여행에서 보았던 레몬나무와 레몬할아버지가 떠올라 폰의 사진함을 뒤적이곤 했다. 사진 속 레몬나무와 할아버지를 뵈면 그곳 친쾌테레(Cinqueterre) 앞바다의 파도가 눈앞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그 바다는 파도가 유독 거칠다고 당시 가이드는 말했다. 그 옛날 포에니 전쟁에서 구사일생 이기고 돌아오던 병사들이 정작 친쾌테레 앞바다의 파도 앞에서 무너졌다고. 파도가 너무 거세어서 고향땅을 눈앞에 뻔히 보며 죽어갔다고.
 
우리들이 바라보았던 그날도 바다는 흐렸고 파도가 거세었다. 슬픈 얘기에 그 옛날 병사들을 생각하다가도 이내 현실로 돌아와 우리들은 저마다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에 나는 보다 위쪽의 언덕마을로 올라갔다.
 
 


   


 

풀들이 싱그럽게 뻗어 나온 돌담 벽 길을 지나 어느 집 담장에서 슈퍼나 사진에서가 아닌 실제 레몬나무에 달린 레몬을 처음 보았다. 사르르 한기가 돌던 1월 중순의 겨울이었는데 레몬은 춥지도 않은지 그 바닷가 언덕에서 노랗게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하여 레몬 가까이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다 사진을 한 컷 찍었다. 그때 인기척이 났고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미소를 띠며 낮은 담장 너머로 인사를 하였다.
 
"본 조르노~."
"본 조르노~."
"소노 꼬레아나."(한국 사람입니다.)
"수드?"(남쪽?)
"씨!"(네!)
 
할아버지는 '아~'하시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레몬나무를 가리키며 리모네(limone,레몬)가 예쁘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하나 줄까?'하는 느낌의 말씀을 하며 따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얼른 '그라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당시 90은 족히 넘어 보이던 할아버지는 아주 천천히 걸어서 레몬나무에 가더니 레몬을 하나 땄다. 다시 몇 걸음 더 천천히 걸어 철문 사이로 손을 내밀어 나에게 레몬을 주셨다. 나무에서 금방 따서 그런지 레몬은 아주 단단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힘겨운 걸음이 죄송해서 몇 번 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섰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 귀한 레몬을 한국에 가져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농산물은 검역에 걸린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가지고 온다는 생각은 이내 접었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와 '어디, 눈 딱 감고 비타민C를 다량으로 한번 섭취해볼까.'하며 레몬을 입에 물었다. 그런데 레몬이 너무 딱딱하여 도무지 이로 깨물어지지 않았다. 뭔가 뾰쪽한 것이 있어 뚫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런 것도 없었고 사과처럼 두 쪽을 내려고 힘을 써 봐도 까딱도 안했다.
 
그래서 며칠을 가지고 다니며 감상을 하고 향기를 맡다가 최종적으로는 호텔방 전화기 옆에 티슈하나 깔고 고이 올려두고 나왔다. 나름 그것은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그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레몬하나는 그 후 내 마음 속에서 별것이 되었고 이따금씩 추억으로 되살아났다.
 
그럴 때면 레몬나무와 바다는 지금도 변함이 없겠지만 할아버지는 그 후로 안녕하신지 그 안부가 궁금해지곤 한다. 부디 레몬나무와 함께 보다 오래사시기를 비는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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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토지>,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몇 질을 읽으며 책읽기의 기쁨에 빠진 언니는 독서하다 보니 독서와 관련한 한 가지 답답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토지>를 읽고도 눈물이 나고 <아리랑>을 읽고도 눈물이 났는데 그 심정을 말로는 잘 표현할 수가 없어. 말로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렵다. 이렇게 저렇게 내 느낌을 줄줄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답답하다, 체한 것처럼."

"아 그래, 그렇지? 그런데 책을 자꾸 읽다 보면 저절로 그 감상을 표현하는 것도 늘지 싶다. 보고, 듣고, 읽고, 느낀 것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막막함이야. 일단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것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데이~ㅎㅎ"

언니에게 천자문을 추천

나는 언니의 '표현이 어렵다'는 말에 꽂혀 어떻게 하면 표현을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천자문이 번쩍 떠올랐다.


"언니 어휘력도 어휘력이지만 겸사겸사 일단 천자문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에는 대부분 한자가 있고 그 한자가 이렇게 저렇게 생겼다는 걸 알면 재미있지 않을까. 중·고등 검정고시 같은 걸 도전해 볼 수도 있지만 이미 독서의 감을 알았으니 차라리 언니의 경우는 한자 공부를 겸하는 게 더 좋을 듯해."

"그래?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끈기 하나는 있거든. 회사 다닐 때도 늘 지각 한 번 안 했다. 그래도 한자라니.... 한자 써본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다."

"사실 나도 천자문 다 몰라. 천자, 아니 500자도 모르지 싶다. 나는 천자문 배워보려고 시도하다가 늘 중도에 그만 두었는데 언니는 되지 싶다. 혹시 아나? 언니가 하는 걸 보면 나도 후끈 달아오를지?ㅎㅎ 한번 도전해볼래? 요샌 뭐든 유튜브에 다 있어. 꼭 천자문이 아니더라도 한자라고 생긴 것을 공책에 쓰다 보면 뭔가 배움의 기쁨이란 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생각난 김에 스마트폰을 열고 천자문을 검색했다. 유튜브 세상에는 천자문쯤이야 매일 꾸준히 한다면 몇 달 만에 뚝딱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듯한, 상세한 안내들이 즐비했다. 언니에게 천자문 독송과 풀이 및 획순을 가르쳐주는 채널 하나를 알려주었다.

언니에게 권하면서 나도 견물생심 호기심이 당겼다. 이번에야말로 나도 천자문을 뗄 수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30~40대엔 한자보다 다른 외국어들이 당겼다. 늘 작심 며칠 혹은 몇 달로 이 나라 말, 저 나라 말을 홀로 배웠는데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결혼 초기 30대를 지날 때는 유교문화가 주는 압박이 싫어 공자님도 싫어했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성년을 넘기고 여러모로 해방되니 다시 고전적인 유산들이 좋아졌다. 나도 죽기 전에 사서삼경 원문으로 한번 읽어보자. 읽지 못하면 쓰기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갈망이 일었다. <열하일기>며 <북학의> 혹은 퇴계며 다산의 책들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점점 생겨났다(그러나 아직 어디까지나 마음만이다).

언니에게 천자문을 권하고 한 일주일쯤 후였나. 언니는 한자를 쓴 공책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나 한자 공부 시작했다!"
"와아~ 벌써?"


사진 속에는 언니가 꾹꾹 눌러쓴 한자들이 빼곡했다. 언니의 독서 입문 뚝심을 보았기에 한자 공부 또한 꾸준할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힘들었던 삶도 이제는 추억

언니는 나이 오십 초반에 이불 누비는 일을 배웠다. '오십'을 확실히 기억하는 이유는 어느 명절엔가 친정에서 만났을 때 언니가 신세 한탄을 하면서 읊조렸기 때문이었다.

"내 나이 오십에 이불 기술이 무슨 말이고? 나이 오십에 먹고 살려고 기술을 배워야 되는 신세라니..."
"언니 배운다고 다 되나? 미용사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미싱도 그 분야에 소질이 있어야 되는 거 아이가?"
"일단 해봐야지 뭐. 내가 엄마 바느질 솜씨 닮았으면 될 것도 같다."


그렇게 언니는 이불 누비는 기술을 계속 배워 나갔다. 어느 명절에 만나면 '어려워 죽겠다.' 또 어느 날 만나면 '내 인제 기술 많이 늘었데이~' 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한 3년 지났을 때는 자신 있게 말하였다.

"나 이제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다. 무슨 이불이든 갖다주면 입맛대로 박아낼 수 있다."
"무엇이 제일 어렵노?"
"침대 커버 한 번에 매끈하게 좌르르 박아 내는 게 어려웠다. 침대 커버는 이불처럼 평면이 아니고 입체적이잖아? 그 네 모서리 깔끔하게 박아 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이제는 그것도 문제없어."     
"언니 대단하다. 확실히 엄마 손끝이 언니에게 유전되었네~"


언니는 그렇게 배운 기술을 65세 무렵까지 잘 써먹었다. 이불 누비는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언니의 아이들이 직장을 잡기 전이었고 형부마저 별 도움을 주지 못할 시기였다. 혼자 벌어서 세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려서인지 지금은 자식들도 안정을 찾았고 무엇보다 형부와는 뒤늦게 잉꼬부부가 되었다. 일이 힘들어도 산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언니는 주말마다 등산 가는 것을 즐겼다. 등산은 언니가 65세쯤 어깨에 무리가 와서 일을 놓을 때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게 해준 인생의 취미였다.

부지런하고 평생 일을 하던 사람들은 쉬고 싶네 하다가도 막상 일을 놓으면 심심해서라도 다시 일을 찾게 되는데 언니는 백수생활을 일인 듯 열심히 하였다. 무엇보다 산을 좋아했기에 혼자서도 가고 여럿이도 가며 즐겁게 지냈다. 언젠가 '이산 저산 다 가 봐도 팔공산이 제일이다'고 해서 물어보았다.

"언니 팔공산 일 년에 몇 번 가노?"
"글쎄, 일 년에 한 40번은 넘지 싶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가도 일 년이면 52번이잖아? 못 갈 때도 있지만 처음 놀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자주 갔거든."


그랬던 언니가 코로나 시국을 보내면서 예전처럼 등산을 많이 못 가고 자중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 미처 소비하지 못했던 응축된 열정이 곱게 풀려 독서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자 공부마저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배움에 빠져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 싶다. 갈수록 좁아지는 인간관계와 육체적 쇠락 속에서 소외된 마음으로 말년을 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공부하기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낮아진 체력으로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인생에 대한 회고와 사색, 독서 그리고 공부가 제일인 거 같다. 공부하며 늙어간다면 노년은 다시금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자문은 사자성어가 250구, 합이 천자이다. 250구의 사자성어들이 다 각각 저마다 하나의 문장을 이루기에 글씨 공부이면서 동시에 독서의 느낌도 있다. 나도 언니 덕에 이참에 천자문을 떼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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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새해가 시작되었다. 참 더딘 임인년 인가했더니 지나고 보니 또 눈 깜짝 할 사이에 스쳐지나간 것처럼 휑하다. 늘 가는 해는 아쉽고 오는 해는 반갑다. 아쉬움과 반가움의 유한 반복 속에 우리 삶이 스쳐 지나간다. 월급만이 통장을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게 아니라 세월마저 잠시 스쳤다하면 

1년이고 어어 하다보면 35년이다.

 

지난해봄 초등학교 동창인 산골소녀 4명이 경주에서 몇 년 만엔가 다시 뭉쳤는데 햇수를 세어보니 5년이나 지난 것이었다. 5년 전 중학생이었던 둘째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당시 고교생을 벗어난 아이들은 어느새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심지어 결혼도 하였다.

 

초로의 소녀들은 정말 세월 빠르다를 반복하다 우리이제 자주 좀 보자 말들은 무성했으나 다시 만날 쯤이면 어느새 또 5년이 지나있을 것이다. 무상하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세월이 무상하다.

 

어저깨는 또 수녀님이 된 후배 지인에게 새해 안부 차 통화를 하면서 마지막 연락이 언제였는지 확인하려 문자를 찾아보니 2018년이었다. 그 후로 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둘 다 경탄을 했다.


마음은 엊그제 같은데 얼추 30년을 향해가고 그사이 3번의 통화가 전부라면 앞으로 3번더 통화하려면 팔순을 넘겠어요.ㅎㅎ

정말 마음도 목소리도 그대로인데 30년이라니요.”

 

지키지 못할 공약이 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새해이니 일단 올해는 기필코 만남을 성사하입시더~ 서로 다짐을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계묘년 새해다. 더 이상 계획 따윈 세우지 않아야지 했다. 세워봐야 실천이 일천하니 세우는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 만났던 둘째언니의 변신을 생각하니 다시 감동이 밀려와 실천을 하든 안하든 일단 목표는 세워봐야지 다짐했다.

 

69, 일흔을 코앞에 두고 독서의 재미에 빠진언니

 

지난해(2022) 연말 둘째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 그동안 책 많이 읽었데이~”

어머나! 정말?”

반색을 하며 얼마나 누구의 책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박경리 <토지> 21, 조정래 <아리랑> 12, <한강> 10, 최명희 <혼 불>7, 그리고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 1,2권과 또 한권짜리들 여러 권 읽었다. 그리고 외손자들 집에 있는 위인전기 전집 다 읽었다. 재밌더라~”

와아~~ 언니 대단하다. 읽으니까 되더나?”

. 어째 읽다보니 되더라.”

 

실은 언니는 202167세의 가을, 겨울 독서란 걸 다시 시도하였다. 그 몇 해 전부터는 지금은 초등생이 된 외손자들을 돌봐주러 갈 때마다 유치원생 손자들과 같이 동화책을 함께 읽는다 하였다. 읽으니 외손자들이 느끼는 것처럼 똑같이 재미있어 신기하였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마중물이 된 것 같았다. 요 몇 년 코로나가 좀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좋아하던 산도 자주 못가고 방콕을 하다 보니 언니는 삶이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함께 사는 아들이 엄마 살았던 시대를 서술했으니 읽으면 재미있을거라며 자신이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여러 책 중 한권을 내밀었다.

 

언니는 자신의 아이들이 한창자랄 때 나의 권유로 책읽기를 시도해 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두어쪽 넘어가지 못하고 잠이 쏟아져 읽지 못하겠노라 고백했었다.


나는 주말마다 산에 다니며 노는 게 좋지 책은 잠이 와서 못 읽겠더라. 그냥 쑥 캐고 나물 뜯고 또 등산가는 게 제일 재미있다. 책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알았다 하면서도 잊을만하면 한번 씩 언니 독서하고 싶은 생각 아직 없나 하면서 물었다. 그럴 때 마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였고 권독하던 나조차도 나이 들어가니 마음만 있었지 독서보다는 스마트폰이며 노는 일에 빠져 살았다.

 

그랬는데 외손자 사랑이 의외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일까. 어린이 동화로 책읽기 준비운동이 된 언니는 아들이 내민 성인용 책에 호기심을 느꼈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 잠이 오는지 어디 한번 읽어봐?’

 

그렇게 책을 펼쳐 50쪽을 읽었다고 하였다. , 내가 책을 졸지 않고 50쪽을? 언니 입장에서 그것은 인생 최초의 경험이자 너무도 많이 읽은 것이었다. 어린이 동화랑은 쪽수도 다르고 글자 수도 달랐다. 그런데 세상에나 50쪽을? 언니는 자신이 글자가 빽빽한 책을 50쪽이나 읽었다는 것에 놀라 일단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다시 50여쪽씩 추가하다 보니 어느새 한권을 다 읽었다.

 

어머 내가 책 한권을 다 읽었나????!!!!’ 그것은 언니인생 일대 전대미문의 대단한 발견의 순간이었다. 바로 자신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은 자신감에 불을 지폈다. ‘내가 책을? 하느님 맙소사!’ 희열에 들 뜬 언니는 또 다시 한권 두 권 도전하였다.

 

20221월 언니나이 68세의 시작, 포항 구룡포 바닷가에서 자매간 1박 여행을 할 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언니가 무슨 책을 읽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물었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다. 까먹었다. 내용은 좀 슬프고 그랬는데....”

언니 앞으로 책을 읽으면 제목이랑 저자를 꼭 기억해서 말해줘. 그래야 내가 궁금할 때 사볼 수도 있잖아?”

알았어

외웠다가도 잊어버릴 수 있으니 노트에다 제목과 저자를 적어놓아. 간단한 소감을 적으면 더 좋겠지. 그러나 부담스러우면 저자와 제목만이라도 적어둬.”

 

시간이 흘러, 20225월 어버이날 친정에서 만난 언니는 다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그 후로 책 많이 읽었다. 10권도 더 읽었다.~”

그래? 와아! 언니 대단하다. 무엇을 읽었는지 제목이나 지은이를 말해봐.”


그때 언니는 5~6권의 책제목과 저자 이름을 말하며 나머지는 모르겠다 하였다.

(아뿔싸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이시 점 그때 언니가 말했던 책과 저자의 이름을 정작 내가 하나도 기억 못하겠다. ㅜㅜ 현기영 이름만 간신히 기억난다. 기록은 내가 해야 될 상황이다.)

언니가 말한 책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하소설 읽어보라 권했던 것은 기억난다.

 

언니 이병주의 <지리산>은 언니도 가본 지리산이 배경이니 한번 읽어봐. 일단 긴 대하소설 여러 권짜리 읽고 나면 한권짜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 시도해봐. 박경리의 <토지>도 같은 경상도 말이니 더 귀에 쏙쏙 들어 올 거야. 일단 7권짜리 <지리산> 도전해봐. 다른 건 그 다음에 생각하고. 7권 다 못 읽더라도 일단 1,2권이라도 진도 나가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언니가 그렇게 빨리 그 많은 책을 완독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조카도 언니의 독서에 가속도가 붙는 것에 놀랐고 엄마 대단하다며 진심으로 감탄하였다고.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여자가 무슨? 해서 초등학교 입학도 간신히 했고 한동안은 할아버지 눈 피해서 다녔다고 하였다.

 

언니는 자신의 인생에 책 같은 것 없다로 일관했는데 일흔을 앞두고 인생 반려로 독서를 선택했다. 언니 자신은 아직 모르지만 나는 언니 미래에 대해 무한 상상을 하고 낙관한다. 그리고 언니를 생각하면 나도 저절로 힘이나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시도해봐야지 다짐한다. 작심삼일도 여러 번 하다보면 작심 100일이 되지 않을까. 계묘년 새해가 어느 해 보다 신비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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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0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