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도킹 스테이션 교유서가 시집 8
윤다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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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있게 살았습니다.아슬아슬 살았습니다. 산뜻하게 살았습니다.˝ 60의 문앞에서 읽은 서른의 시.
젊음의 고뇌가 암호처럼 느껴져 해독불가 독해불가 상태였다가 위의 문장을 보자 실실~ 웃음이 났다. 위로와 유머와 그리고 희망을 느낀 세문장!!! 삶은 결국 해피엔딩이니 청춘, 걱정말고 흥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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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선생, 지한구 - 그리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가는 학생들 셜록 3
지한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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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빨리 흘러 나의 아이들은 둘 다 이십대 중반을 넘고 서른을 향해가고 있다. 한때 <오마이뉴스>에 자주 글을 올리곤 하던 시절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때론 방목과 방임 사이에서 나 몰라라 하는 나의 교육관을 두고 당시 현직 교육 관계자인 분의 댓글은 복선 같은 느낌이 들어 흠칫했는데 결론은 그분의 말씀을 사실로 확인하는 결말을 맞았다.

정확한 말씀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습에 있어서 초기에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공부에 손을 놓는다고 하였다. 즉 공부는 초기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을 읽으며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 반, 그래도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는데 결론은 두 아이 모두 공부와는 담 쌓는 삶을 선택했다.

보통 한 집에 형제가 있으면 하나가 공부에 손을 놓으면 다른 하나는 공부를 곱빼기로 하기도 하던데, 우리 집은 형은 공부를 안 하였고 동생은 더 안 하였다. 그렇게 큰아이가 중3이 되었을 때 우리아이가 인문계고교에 갈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래서 그러면 공고를 가야하나? 생각하자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사회가 씌워준 공고에 대한 이미지를 내재화한 결과였다.

공고도 불안했지만 인문계고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공부 시간을 내 아이가 겪는다는 게 싫었다.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순리대로 아이가 원하고 성적이 지목하는 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태평모드로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에겐 제 3의 길이 있었다. 큰애는 공부는 하지 않는 대신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그래서 예고 시험을 보았고 예고에 붙는 바람에 두 종류의 학교를 다 피하게 되었다.

둘째의 경우도 피아노를 그만 두었었는데 중2 겨울방학 때 뜬금없이 예고를 가겠다고 선언해 번갯불에 콩을 볶듯 연습을 하였고 예고로 낙점이 되었다. 그렇게 두 형제는 '어머, 나 이러다 예술가 되는 것 아니야' 꿈을 꾸다 지금은 돈벌이에 쓸 만한 자격증 하나 없는 취업준비생이 되어 현실의 벽이 높고도 높음을 실감하고 있다.

내가 몰랐던 공고의 모습


<공고선생, 지한구>(도서출판 후마니타스)를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공고에 대한 두려움은 학생들이 시시껄렁하게 담배도 피고 막말도 하며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없는 자유도 다소 누리며 부모들 애간장 타게 하는 정도의 것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공고에 간 경우가 많다고 여겼지, 형편이 어려워 공고에 간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부모의 이혼이나 사업 부도,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 등이 그렇게 많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책에 등장하는 예로, 부모님이 부부싸움 후 두 분 다 가출한 아이는 중학생 동생을 굶기지 않으려고 새벽 5시까지 일하고 학교에 와서 늘 눈을 비비며 졸음을 쫒으려 애썼다.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참다가도 화를 낼 수밖에 없는데 녀석의 대답은 선생님마저 눈을 비비게 하였다.

"공부요? 제가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학교에서 안 자면, 저는 언제 어디서 잠을 잡니까? 꿈이요? 학교에서 깨어있으면 일하다 죽거나 굶어죽을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꿈을 꿉니까?"(본문 18쪽)


그뿐인가. 등교시간을 한참 넘겨 학교에 온 학생의 사정 또한 딱하였다.

"부모님이 집에 안 들어오신지 며칠 됐는데, 저한테 남은 돈은 1000원이 전부였습니다. 그거 중학교 다니는 동생 차비로 주고 저는 걸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본문 19쪽)


한편으론 취업률과 학교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이 맞물리면서 내 자식이라면 이런 곳에 맡길 수 있을까 싶은 곳에 학생들을 맡기고 오기도 하고,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것이 뉴스화면이 아닌 자신의 제자의 일이기도 한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공고 교사의 일이었다.

10년의 우회로를 거쳐 서른둘의 나이에 국어교사가 된 저자는 '공고의 현실' 앞에서 절망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된 교사인가. 저자는 교사의 꿈을 품고 10년을 노력했던 저력을 동력으로 현재 10여 년 째 교사생활에 헌신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시대에 교사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만큼 놀라웠다. 내 자식도 그렇게 못 키운 나로서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진로를 모색하고 고민하는 저자의 정성에 울컥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 정성과 끝없는 모색은, 교육청이 '자기성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체험 중심 과목'에서덥석 맡게 된 헬스부에서 빛을 발하였다. 저자는 제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몸에 뱃살대신 근육을 입혔다. 보디 빌딩대회에도 출전을 하였고 제자 동연군과 함께 입상도 하였다. 헬스부의 선전은 학생들에게도 저자 자신에게도 신선한 체험이었다. 보이지 않던 희망의 무지개는 그렇게 공고의 아이들을 비추었고 장안의 화제가 되어 세상 밖에도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 인생에 반전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나. 인생에는 분명 반전이 있다. 젊은이들이 지나는 길섶에는 그러한 반전과 보물이 더 많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 보물들을 발견 하고 캘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저자와 같은 어른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와 기반도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진정 어려울까

연로하신 시어머님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데 그렇게 재미있고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들 며느리가 할 일을 주간 보호센터가 다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못해주나 싶었다. 입시에 바쁜 인문계 학교가 그렇게 못한다면 실업계 고교만이라도 먼저 그렇게 할 수는 없는가. 취업률로만 재정 지원 점수를 매기지 말고 학생들의 행복도도 그 기준의 한 부분으로 할 수 없을까.

그런 의미에서 '꼴찌를 위한 장학금'은 기발했다. 공부는 꼴찌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격려하는 것은 무척 필요한 일이었다. 저자의 공고에 장학금으로 희망의 문을 연 '키다리 할머니'는 학교와 꼴찌학생의 동의를 받아 그 학생에게 매주 5만 원씩 학생이 고3이 되어 취업할 때까지 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1등 혹은 명문 학교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공고에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탄생하다니. 나와 여러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학교에는 공부 자체를 힘들어하거나 공부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도 꼴찌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본문 163쪽)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키다리 할머니와 같은 사람 들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고의 민낯과 그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와 학생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렸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삶이었고 그의 진심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제자들의 삶속에 서서히 녹아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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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 호택 - 한국판 돈키호테 임택, 당나귀하고 산티아고
임택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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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임택이 주연이고
호택이 조연인줄 알았는데
점점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호택이 주연자리를 뙇!
가는 곳마다 환영받는 호택이가 진심 부러웠다.
질투도 살짝~ㅎㅎ 그런가하면 어쩌면 호택이의 전생일지도 모르는 부분에서는
또르륵 눈물이...ㅜㅜㅜ 그리고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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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때론 필연으로 귀결된다면,

우연이 필연이고 필연이 우연 아닌가.

지나고보니

인생은 다 우연이고 또 필연인것 같다.


 두 번째 책이 나왔다.

 

1. 책 제목의 우연과 필연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서쪽나무,2026)

 

출판사 대표는 책 제목이 대 여섯 개 적힌 종이를 내보이며

하나를 고르라고 하였다.

내심 본인은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심중에 두고 물은 것이었다.

 

~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가 제일 좋네요.”

그렇죠? 좀 심심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랬다.

처음에는 슴슴하고 심심한 평양냉면 같은

맛이었지만 자꾸 입으로 발음할수록

이번책의 제목으로 필연이다 싶었다.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삶의 의무를 다했으니 즐겁게 다녀오세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가는 김에 나도 데려가줘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 나도 언젠가는 가고 싶어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묻지 말고 갔다 오세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가거든 푸른 하늘, 넓은 들에 안부 전해줘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지금 산티아고에 가도 될까요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제목이 자꾸 마음에 들었다.

마치 필연처럼.


 

2. 책 표지 색 우연과 필연

 

출판사 대표는 탁상달력의 세모 지지대의 하늘색 색감을 보이며

뜬금없이 책표지로 이 색깔이 너무 당긴다며 최대한 비슷한 색을

살려보겠다고 하였다. 색에 문외한인지라 선뜻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표지 그림을 잘 살려주는 색이면 뭐든 좋다고 하였다.


마감일정이 다 되었을 때 대표는 달력 지지대색과

똑같은 색을 찾았다며 최종 표지파일을 보내왔는데

갑자기 그 환한 하늘색이 이거다! 하는 느낌으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 색은 표지 그림과 조화로웠다.

 

최종적으로 책을 받아본 순간에는 이 익숙함은 뭐지?’ 싶었다.


그것은 한국에서 가져간 일기장이 다 되어서

순례길 도시인 폰페라다 소품 점에서 산 두 번째

일기장의 색과 거의 일치했다.

대표는 나의 일기장을 본적이 없다.

나도 노트북에 산티아고 기록을 옮겨 담은 후

책꽂이 한켠에 꽂아두고 잊었다.


그런데 책표지를 자꾸 보다보니 폰페라다 일기장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곳 소품 점에는 노트가 별 존재감 없이 그저 구색으로 갖추어져

회색과 하늘색 달랑 두 권 있었는데 회색은 침침하고 하늘색은 너무 튀었다.

그러나 산티아고이니 한번 튀어보자며 하늘색을 선택했었다.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그곳에 두서없이 갈겨쓴 기록들은

진짜 멋진 하늘색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인생은 알 수 없어도 두 번째 책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 사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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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빠르다.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바쁜 일도 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몇번의 산행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2박3일 부산 여행, 

그리고 교정... 완벽한 쌀을 

주어야하는데 돌이 잔뜩 든 쌀을 주어 

책 만드신 분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티끌하나 없는 쌀을 준비하리라 맹세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2025. 331

파리 샤를 드골공항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머나먼 길

 

드디어 2025331일 아침 630, 파리 드골 공항에 내렸다. 장장 13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공항은 좀 낡은 듯했다. 뭔가 분위기가 삼엄한 느낌이 들었다. 검색대에 짐을 올려놓았다. 공항 직원은 나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비아리츠(Biarritz,BIQ) 공항 간다니 비아리츠 행 항공권티켓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부킹닷컴(Booking.com)으로 끊었는데 어떻게 항공권티켓을 줄 수 있는가. 예약사이트인 부킹닷컴은 예약을 하면 (PIN) 코드라는 번호를 부여해 주었다. 즉 그 번호만 보여주면 쉽게 예약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핀 코드 말고 항공권티켓을 직접 다운로드 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비행기티켓을 끊었다는 증빙이 되는 핀 코드번호가 있는 복사본을 보여주었다. 아직 휴대폰 유심을 갈지 않아서 폰이 먹통이었기에 복사본 종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런데 공항직원은 카피본은 안되고 원본 항공권티켓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조금 뜸을 들이더니 이번에는 봐주는데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좀 전 과는 달리 그는 한국어로

안녕히 가세요!”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 말이 어찌나 친근하게 들리던지 나도 긴장을 풀고 당당한 여행객으로 웃으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검색대를 벗어났다. 검색대를 벗어나서는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대로 갔다. 그래도 미심쩍어 알고 보니 중국 갔다 오는 수다쟁이 스페인 아줌마들에게 비아리츠 행 티켓 발권장소를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들도 프랑스는 잘 모르겠다며 보안요원을 불러주었다.

 

보안요원을 따라가니 항공권티켓 발권해주는 곳이 나왔다. 비아리츠 행 예약 카피 본을 보여주니 티켓은 금방 복사되어 나왔다. 시간을 보니 아침 720분이었다. 파리공항 아침 630분쯤 도착했는데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 1시간도 안되어 티켓까지 발부받은 것이었다.

 

즉 이럴 줄 알았지만 만에 하나 비행기가 연착하거나 혹시 내가 공항에서 헤맬 것을 대비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오전 935분표를 끊지 않고 그 다음 비행기인 오전 1240분 것을 끊은 것이었다. 그래서 대략 5시간정도의 시간이 비었다. 5시간은 기다리기에 좀 길기는 하지만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허리 펴고 잠도 좀 자고 유심 칩도 갈고 쇼핑가도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공항이 좀 까다롭게 되어있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참에 1터미널부터 4터미널까지 구석구석 완전 정복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터미널에 내려 비아리츠 공항 간다고 하니 바로 4터미널 연결로를 알려주어 길이 이끄는 대로 도착하고 보니 4터미널 대기실이었다. 밖으로 나가려해도 나갈 수 없는 닫힌 공간이었다. 대합실과 나가면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트랙뿐이었다.

 

바로 전에 경유하며 대기했던 상하이 공항 대기실은 달리기를 해도 될 만큼 넓고 길었는데 드골공항 4터미널의 대기실은 상하이 공항 대기실의 한쪽 모서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소파들이 놓인 조금 넓은 공간과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선물가게와 화장실이 각각 한 개씩 있는 게 다였다. ‘뭐야, 드골 공항 제 4터미널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

 

나의 상상과는 다른 공항 모습이었지만 뭐 어때? 비아리츠행은 비행시간이 1시간 30분이라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스텝이 꼬였지만 이왕 기다리는 거 즐겁게 기다리자 생각했다. 먼저 누울 수 있는 소파에 배낭을 베고 누우며 허리를 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하였다. 공간이동을 한 것은 확실했다. 세상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설렘과 안도사이에서 공항천정을 바라보며 잠시 망중한을 하다가 살짝 졸았다. 그리고 깨어서 유심 갈아 끼우려고 설명서를 세 번 읽었다. 유심 갈아 끼우기를 알려주던 유튜브 영상도 상기했다. 폰 산지는 5년이 지났지만 유심부분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폰의 바늘구멍 부분을 찌르니 반동으로 유심 칩이 나왔고 스페인 유심 모비스타(Movistar)’를 끼웠다. 그리고 설명서대로 등록을 하니 짜잔 개통이 되었다. 손톱만한 알루미늄 조각하나에 사이버 세상이 열리고 닫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먹을 차례. 공항이라 그런지 음식이 너무 비쌌다.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이 우리 돈으로 만원 돈이었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와서 이글을 쓰며 폰 충전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시 먹으러 가야겠다. 내가 이 공항에 다시 오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 만 원짜리 치즈 케이크 조각 한번 먹어보자.’ 진열장을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오믈렛이 눈에 들어왔다. 종업원이 금방 만든 오믈렛을 진열장에 진열하는 것을 보니 상품 회전율이 높아보였다. 맛있으니 그렇겠지? 마음은 어느새 오믈렛에 기울어 오믈렛을 선택하고 카페 라떼와 바게트 본고장의 맛이 궁금하여 바게트도 추가하였다. 13.5유로. 환율로 환산하니 2만원 돈이었다. 시절인연인 은희샘과 미라샘이 40여일 모닝커피 값이라며 노자 돈을 준 것이 생각나 첫 커피를 시키고 사진을 찍어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모비스타 유심은 그 먼 거리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잘도 전달하였다. 카페라떼는 설탕을 안타도 쓴맛 없이 고소했다. 오믈렛에다 바게트까지 다 먹고 나니 포만감이 느껴졌다.

 

그럭저럭 1130. 긴 시간이 지나고 이제 30분 있으면 나도 비아리츠행 비행기를 타러간다. 4시간이 넘는 시간이 그래도 별 지루함 없이 잘 갔다. 빨리 마무리하고 비야(빌라) 에스폰다(La Villa Esponda) 호텔에 들어가 발을 뻗고 싶다. 330일 오전 1130분에 집을 나와 3311130(실지론 더하기 7시간 더)인데 아직 밖에서 대기 중이다. 그러나 큰물이 지나갔기에 앞으로의 두 건은 가볍게 넘으려나 싶었는데...

 

비아리츠 공항에서 비아리츠 역 가기

 

 

비아리츠 공항 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는 좋았다. 비행기는 작았고 그 안에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옆자리 사람과 인사도 하고 여행 잘하라는 덕담도 듣고 무사히 비아리츠 공항에 내렸는데 뭔가 썰렁했다. 공항 대합실도 엄청 작았다. 안내 요원 같은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을 갔다 나오니 따라 가려해도 이미 사람들이 흩어져 버려 따라갈 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선 비아리츠역으로 가서 바욘(Bayonne)가는 기차를 타고, 바욘역 가서 최종 목적지인 생장행기차를 갈아타면 탈것과는 당분간 작별이었다. 비아리츠 역에서 바욘역 그리고 바욘역에서 생장역 표는 한국에서 오미오(Omio)앱으로 예매를 했었다. 문제는 비아리츠 공항에서 비아리츠 역까지였는데 그것은 택시를 타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공항인데 택시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역 앞이나 시장 등 시내 곳곳에 택시 승강장이 있고 콜을 부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탈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가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프랑스에도 그런 택시를 부르는 시스템이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택시가 없으니 버스를 타야 되나 보았다. 버스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버스를 타야 되는지. 버스 승강장으로 나와서 하필 길 묻기를 비아리츠 방문이 처음인 프랑스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장황한 프랑스 말과 20년 만에 처음 써본다는 힘겨운 영어로 길게 설명하는 바람에 오히려 길이 엄청 더 어렵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순례예정자로 보이는 두 명의 미국 아줌마가 큰 배낭과 큰 캐리어와 함께 버스 승강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그들에게 안내했다. 할머니는 잘 안 되는 영어로 또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미국 아줌마들은 대충 이해가 가면서도 확신을 얻고 싶어 연속적으로 질문을 하니 할머니는 유창한 영어에 더 당황하였다. 그러다 한 아줌마가 짧고 굵게 핵심만 말하니 오케이하며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였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돋보기를 쓰고 버스노선표를 자세히 보니 8번 버스 노선표에 비아리츠역이름에 적힌 것이 보였다. 8번 버스를 타고 가서 비아리츠역에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목적지도 같고 덩치도 큰 미국아줌마 둘이 여러모로 든든하여 당신들을 따라 가겠다하니 오케이! 이름을 물으니 미시간에서 온 다나와 로라. 죽마고우라고 하였다. 조금 있으니 8번 버스가 와서 타고 비아리츠역에 내렸다.

 

이제 비아리츠 역에서 바욘행 기차에 탑승하였으니 바욘역에서 내려 최종적으로 생장행 기차를 갈아타면 되었다. 비아리츠역에서 기차 역무원에게 바욘행 표를 보여주니 우리가 끊은 표보다 먼저가도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욘역에 예상보다 1시간 30분쯤 일찍 도착하여 바욘역 주변을 구경하였다.

 

바욘강의 물결은 회오리를 많이 치며 흘렀다. 수량도 풍부했다. 미국 미시간의 로라와 다나는 먹으로 간다 해서 가라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들은 등에 지는 배낭도 10킬로가 넘어 보였는데 커다란 캐리어가 별도로 하나씩 더 있었다. 순례시작은 언제부터 하냐고 하니 생장에서 맛있는 것 실컷 먹으며 이틀 더 머무른 다음 한다고 하였다.

 

비행기가 주로 운반을 해주긴 했겠지만 그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을 손수 올리고 내리고 끈 시간도 많았으리라. ‘~~롱 타임, ~~롱 타임하며 연거푸 발음하며 고개를 흔드는 몸짓에서 고생이 느껴졌고 생장에서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출발할 자격이 되어보였다. (출발일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순례길 중간 중간 맛있는 곳을 너무 많이 발견 했는지 그 후 그녀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씩씩한 미국 아줌마의 기상이 팍팍 느껴져서 친근했는데 생장 행 기차 이후론 못 보았다.)


바욘역 주변 상가와 강변을 서성이다 기차 출발 시간보다 좀 이르게 역에 오니 불과 1시간 전에는 역내가 텅 비었었는데 그사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역내 슈퍼에 가서 콜라와 환타를 샀다. 물 값이나 콜라 값이나 비슷하여 이왕이면 때론 당분도 영양이 될까싶어 음료수를 샀다. 과자라도 하나 사오는 건데 바게트를 들었다 놓았다. 차후에 후회할 줄 모르고.

 

드디어 17시,  두 칸짜리 생장 행 기차

 

갑자기 사람들이 더 불어나서 늦게 탄 나는 자리가 없어 문 앞 사이드의자에 앉았다. 그것도 어디인가 싶었다. 맞은편에는 싱가폴에서 왔다는 테미와 크리스가 앉았다. 다른 서양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면 일단 웃고 보는데 동양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무표정이 민망하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한다. 나는 결국 또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먼저 몇 마디 말을 걸면 전기 불에 전기가 들어온 것처럼 상대방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렇게 전기 불을 켰으나 그 후로 한 번도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들도 걷기는 하루 쉬었다 한다고 하였다. 그들 역시 큰 캐리어가 두 개나 있었다. 결혼한 사이라고 하였는데 참 둘 다 순수하고 착한 인상이었다. 다나와 로라, 태미와 크리스. 생장행 기차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다.

 

오후 6시 무렵 드디어 기차는 생장역에 도착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일단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생장기차역에 내린 사람들은 현지인이 아닌 이상 거의가 목적지가 같았다. 다름 아닌 생장순례자 사무실이었다. 지도를 살펴볼 것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을 따라갔다. 약간 오르막 지대의 사무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생각보다 작은 사무실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열정적으로 환영을 하고 설명을 하였다.

 

하루 종일 같은 말의 반복이었을 텐데도 시종일관 성실히 임하는 게 보였다. 나는 영어와 프랑스어 중 선택하라 해서 영어를 선택했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들어도 이해는 되었다. 위험구간인 피레네 산맥에 대한 안내여서 지도를 겸하여 이야기하니 말은 잘 몰라도 의미는 파악되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3번 정도 정신 바짝 차리고 길을 잘 들어야 되었다.

 

2유로에 크레덴시알(Credencial,순례자여권)을 사고 영문으로 주소를 적었다. 생장사무실 첫 세요(Sello)를 찍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와 구글 지도를 켜고 생장 사무실 지근거리에 있던 예약한 호텔 빌라 에스폰다를 찾았다. 호텔은 예상대로 찾기 쉬운데 있었고 상상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았다. 침대시트도 엠보싱에다 희고 깨끗했고 창밖으로 흰색의 예쁜 나무가 절정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난방도 되었다. 진짜 뻬르펙또(완벽,Perfecto)였다.

 

짐을 부려놓고 일단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웃호텔 레스토랑 야외 의자엔 머리가 허연 나이든 서양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같은 동양의 중년 아지매, 아직 그들과 썩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속을 선뜻 뚫고 들어가기가 저어되었다. 그런데 다른 곳을 가 봐도 역시 똑같았다. 문 연 곳도 별로 안 되었다.

 

이쪽 사람들은 오후 4시까지 점심장사를 하고 쉬다가 저녁 8시에 다시 저녁장사를 한다고 하였다. 혹은 순례자가 많은 곳은 오후 5~7시 사이에만 쉬기도 하였다. 그러니 순례자들과는 시간이 안 맞았다. 그러나 기후에 맞게 이어져온 전통이니 뜨내기인 우리가 따르는 수밖에. 다시 다른 곳으로 한 바퀴 도는데 날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로등 불빛이 느껴졌다.

 

이러다 저녁 못 먹겠다 싶어 두리번거린 곳에 마침 주방장이 밖으로 나와 잠시 바람을 쐬는 레스토랑이 보였다. 다가가 들어가도 되냐고 하니 된다고 하였다. 입구는 조용해 보였는데 세상에 들어가니 또 서양 아줌마아저씨들이 한가득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빈자리가 하나 있었고 이것도 앞으로 적응해야 될 것이라면 적응하자 싶었다. 시간 걸릴듯하고 알 수 없는 메뉴를 빼니 쉐프의 샐러드가 먹을 만했다. 설명을 보니 치즈와 햄이 어우러진 샐러드였다. 거기다 바스크 케이크를 시켰다. 레드 와인도 시켰다

 

샐러드가 나온걸 보니 바게트가 곁들여져 나와서 바스크 케이크를 괜히 시켰나 싶었으나 그냥 먹기로 했다. 샐러드는 무척 짰다. 딱딱한 치즈는 채소들의 양념보다 더 짰다. 소태 그 자체. 그래도 바게트와 함께 먹으니 먹을 만했다. 짜면 나중에 물마시면 되지 뭐 하면서 짜도 다 먹고 나니 바스크 케이크가 나왔다. 조금 큰 세모 케이크 한 조각이었다. 총 음식가격이 22,5유로였다. 비쌌다.

 

뭐 어때, 내 나이 60이 다가오는데... 일단 저녁을 먹었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거리가 어두워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때는 저녁 930. 10분만 하며 대각선으로 걸 터 누었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니 새벽 세시였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잠은 꿀잠을 잤다. 개운했다. 짐정리를 하고 까미노 친구들 연합’(까친연) 오픈 채팅방에 덕분에 첫 출발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감사의 문자를 올렸다. 나의 행로 또한 누군가의 용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까친연덕분에 용기를 내고 정보를 얻어 이곳 생장까지 올수 있었다. 한없이 감사했다.

 

 ( 다음은 조만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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