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안에는 다 쓰고 싶었지만 어김 없이 또 한 달이 지나갔다. 1년도 더 전의 여행 일지. 그래도 이제 막바지다. 

... 

아침 7시에 기상. 40분 경에 아침을 먹고 9시에 하선했다.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룩소르 시내로 들어가 숙소를 잡았다. 퀸스 밸리 호텔. 물론 이름만 호텔이다.ㅎㅎ 



짐을 풀고 로컬 페리를 타고 다시 서안으로 넘어갔다. 강의 동쪽은 인간의 거주지, 서쪽은 죽은 자의 땅이다. 그러니 우리가 구경할 무덤과 신전 등은 모두 서쪽에 있는 셈.

점심에 먹으려고 맥도널드에서 맥모닝 세트 4개를 테이크 아웃했다. 낮동안 여러 곳을 돌아야 하기 때문에 택시를 대여하기로 했다. 가격 흥정의 달인이신 시니어 샘이 5시까지 80기니에 합의를 보셨다.    

왕들의 계곡은 발굴된 모든 곳을 한꺼번에 개방하지 않는다. 그때 그때 개방하고 쉬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좋은 곳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복불복. 입장권 한 장으로는 세 곳까지 들어가 볼 수가 있다. 입장할 때마다 펀치로 구멍을 뚫어주는데 거기 구멍이 세 개 뚫려 있으면 새 입장권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 고른 곳은 투트모시스3세와 세티2세, 람세스1세 

맨 처음 들어간 투트모시스 3세의 무덤은 일단 시작부터 엄청 높고, 입구부터는 엄청 깊고, 안으로 들어가면 90도로 꺾이고, 하여간에 움직임이 큰 곳이었다. 땀을 비오듯이 흘렸는데 이곳은 어케 된 것이 깊이 들어갈수록 더 후끈했다. 깊어질수록 시원해질 줄 알았더니만... 신왕국 초기 시대로 기원전 1450년대에 조성되었다. 조각은 없었고 그림은 윤곽선만 보였는데 마치 졸라맨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두번째로 들어간 세티2세의 무덤은 입구 양 옆의 벽의 부조가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무척 입체적이어서 만지면서 살결처럼 느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질 수는 없었지만... 기원전 1200년 경에 조성되었는데 부조에 손톱 발톱까지 보이고 정교함 그 자체였다. 내 기억에는 세티2세 무덤이 가장 아름다웠다.  

세번째 람세스 1세의 무덤은 보다 깊었다. 입구 경사만 50도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특이한 관이 인상적이었는데 관 아래에 아내가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쪽도 볼 수 있게 바닥에 거울이 깔려 있고 관은 그 위로 띄워 놓았다. 천장에는 누트 여신이 내려다 본다.  

그밖에 람세스 4/5세의 무덤은 입구에 펀치 관리인이 없어서 기회는 이때다 하며 관이 놓여있는 곳 직전까지 들어가봤다. 하지만 통로 끄뜨머리에서 들켜버림.ㅎㅎ 슬쩍 올랐던 척하고 돌아나왔다. 전경이 끝내줘서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불가능했다. 옆벽과 천장의 그림이 입구에서부터 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첫번째 무덤 대신 이 무덤을 선택했을 것을... 

 

 

 

 

 

 



 

무덤 세 개 다녀오고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워낙 크고 넓고 깊고, 게다가 덥고!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는 그늘에서 맥모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당연히 돈 내고..;;;) 티켓을 다시 끊어서 세 곳을 더 보았다.  

19대 Tausert 와 20대 Setnakht

아주 깊고 컸는데 중간 통로에는 볼 게 없었다. 카노푸스 4단지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훼손된 것인지 원래 무덤에 별 게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섯 번째는 Siptah 

아누비스가 미이라 만드는 과정이 벽에 남아 있었다. 석관이 너무 높아서 뚜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입장할 때 표를 안 찍을 뻔 해서 우린 좋다 말았다. 사실 딱 거기까지만 좋았던 곳인지라..ㅎㅎㅎ 

마지막으로 람세스 3세. 

이때 갑자기 몰려든 떼관광객으로 깔리는 줄 알았다. 영국 학교에서 온 어린이 한 무리의 행렬도 어마어마. 관까지는 가지 못하게 막아놨다. 이것도 훼손인지 미발굴인지 모르겠다. 벽화가 예뻤고 누비아인 손톱과 발톱에 색깔이 달랐고, 샌들 끈이 흰색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시니어 선생님 한 분이 관리자의 실수로 펀치 하나 덜 뚫려서 우리가 그늘에서 쉬는 동안 한 군데를 더 보고 오셨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으니 그곳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별로 설명 못하심...ㅎㅎㅎ 

다음으로 다시 택시를 타고 하쳇숩트 장제전으로 이동했다. 먼 전경에서 보았을 때는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풍경과 함께 무척 웅장했는데 내부가 많이 파괴되어서 오히려 덜 멋있었던 경우였다. 

 

저 버스를 우리가 탔던가? 안 타고 걸어갔던 것 같다. 대단히 멀어보였지만 모퉁이 도니 장제전이 보여서 생각보다 가까워 안 타길 잘했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작렬하는 태양... 그냥 탈 걸 그랬다.  

하쳇숩트는 투트모시스2세의 첫째 왕비였다. 왕이 죽고 후궁이 낳은 열 살 나이의 아들 투트모시스 3세의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어 15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 여왕의 등장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여왕이 죽고 투트모시스 3세가 뒤를 이었는데 그는 의붓 어미의 흔적을 파괴하는 데에 무척 애를 썼다. 그래서 저 웅장한 규모에 반해서 다가가 보면 내부 디테일의 망가진 모습에 무척 속이 상하게 된다.

 

비교적 모습이 온전한 부분만 옮겨봤다. 관광객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되도록 사람 안 찍힌 사진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건지 우리 일행 말고도 심심찮게 한국어가 들린다.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싶었다.^^ 

 

친구는 하토르 여신을 좋아해서 그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잘 나온 사진이 없어서 책 속 사진을 하나 옮겨본다. 

 

그렇지만 사진을 잘 못 찍었네....;;;; 암소 귀가 달린 게 특징인데 귀 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다.  

하쳇숩트 장제전에 이어 도착한 곳은 람세움. 람세스 2세의 장제전이다. 이 무렵에 알라딘에서 전화가 왔다가 끊어졌다. 고객센터 답변이 2주 만에 올라왔나보다..ㅎㅎ 국제전화라는 걸 알고는 메일로 답변을 돌렸을 테지. 

 

람세움은 거의 폐허에 가까웠지만 이상하게 난 이런 황폐한 곳에서 더 감동을 느낀다. 

 

목 잘린 조각들과 쓰러져 누운 람세스 어깨의 카루투시가 눈길을 끈다.  

 

천장 기둥의 아랫면까지 모두 채색되어 있고, 유독 그 부분의 색들이 참 곱다.  

 

가장 전율했던 부분이다. 정복 군주답게 그의 말발굽 아래 깔린 적군과 노예 등을 짐더미처럼 쌓아놓았다. 잔인한 장면이건만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를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전차를 끄는 모습은 자주 발견했는데 저렇게 사람을 쌓아놓은 모습은 흔치 않아서 더 놀라웠다. 

 

죽어서까지 오래오래 남겨놓은 권력의 상징들... 

 

사람이 다소 보여야 크기가 짐작이 된다. 어마어마한 높이. 천장 기둥의 파피루스가 보인다.  

 

예뻐서 줌으로 한 컷 더 찍었다.  

람세움을 더 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머니 돌아설 수밖에. 택시 기사 오마르는 자꾸만 알라비스타 공장을 데려가고 싶어 했다. 친구가 하거나 어떤 커미션 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린 룩소르 신전이 목표.  

로컬 페리를 타고 동안으로 다시 건너갔다.  

(사진 펑!) 

낮의 뜨거움과 대조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자 무척 쌀쌀해졌다. 더 늦어지면 우리 카메라로는 사진이 안 찍히므로 힘들어도 빡세게 돌기로 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다. 위의 사진은 앞에서 찍은 것과 뒤에서 찍은 것을 붙인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룩소르 신전의 원형을 제대로 복원하고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이 공간 안에서 가장 멀쩡한 건물이다. 

 

람세스 2세가 증축한 룩소르 신전의 정문 앞에는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석상들이 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2개였는데 다른 하나는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다.  높이 25미터에 무게가 무려 250톤이나 된다. 아래 사진은 길 양옆으로 쭈욱 늘어선 스핑크스들이다. 사람을 피하다 보니 한쪽만 보인다. 양쪽 다 나온 사진엔 내가 있어서 패쓰! 

 

대형 동상이 나란히 두 개 있는데 그나마 얼굴이 좀 남아있는 왼쪽의 동상을 찍었다. 람세스 2세의 발이 측면에는 왕비 네페르타리가 새겨져 있다.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받침돌에는 전쟁에서 패한 적들의 결박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역시나 목이 뎅강뎅강...;;;; 

 

룩소르 신전까지 모두 보고서 숙소에 돌아오니 방에서 걸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카운터에 얘기해서 옆방으로 옮겼다. 숙소 정산을 먼저 하고 나와서 룩소르에서 한국말 참 잘하는 만도를 만나 슬리핑 트레인 값을 먼저 지불했다. 60달러. 만도의 얼굴은 TV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말라 있었다. 일을 너무 많이 했나??? 만도가 해주는 닭도리탕을 일년 전에 먹어본 친구의 말이 무척 매웠다 한다. 맵다니, 패쓰! 

친구의 직장 동기(코이카)를 만나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김가네 한식당으로 갔다. 모처럼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나 보다. 하지만 경비가 너무 빠듯했기 때문에 제일 저렴한 계란 볶음밥(26기니)을 시켰다. 한국 음식에 갈급했던 내 친구는 김치 찌개(55기니)를 시켰다. 

 

후식으로 오렌지와 커피가 나왔고, 한국인 사장님이 서비스로 불고기를 더 주셨다. 여기서도 코이카 얘기만 계속 하니 나는 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그 사이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일정을 정리했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주려고 그랬는지 좋아하는 쾌도 홍길동 노래가 나온다. 지금도 태연이 부른 '만약에'는 내 mp3 안에 있는데...^^  

기니가 얼마 남지 않아서 내일 입장권을 끊고 나면 기념품 살 돈이 전혀 없었다. 남은 달러를 모두 환전해야 되겠다. 러시아 경유 15시간 동안 쓸 돈은 거의 남지 않을 예정으로 보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고...;;;; 

다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선 문을 닫지 않고 버스가 달리는 터라 추워서 혼이 났다. 숙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환전소에서 70불을 바꿨다. 381.5기니가 내 손에 들어왔다. 밥값으로 50기니를 내고(여기선 방문자가 정착자를 대접한다.ㅎㅎㅎ) 샤워를 하고 나니 딱 떡실신 수준. 그래도 삘 받아서 쾌도 홍길동을 조금 더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발맛사지를 받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아니 오고, 변비약 먹어서 배는 또 살살 아파 오고, 그럼에도 소식은 없고... 그 와중에 20분 간격으로 문자가 오고, 새벽 4시부터는 계속 설사를 하고 말았다. 평소보다 30분 이르게 아잔이 시작되어서 그야말로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몹시 아리송송 피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꿈만 무성하게 꾼 채 6시 20분에 기상했다. 자칭 호텔의 아침은 지나치게 형편 없었다. 그래도 다음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지. 이제 이곳에서의 일정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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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2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마노아님. 잊을만하면 올리시는겁니까! 서재브리핑 제목보고 으응? 만화책 페이펀가? 이러면서 들어왔다가 이집트 나와서 놀랐어요. 하하하하하

마노아 2011-03-25 15:01   좋아요 0 | URL
그게... 다시 올리면 민망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좀 찝찝하고... 그런 중복된 감정의 결과물이지요.
잊을만 하면 올리는 게 컨셉이 되어버렸어요.(>_<)

순오기 2011-03-28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혀두었다 이집트 여행기를 올리는 마노아님은 나보다 나아요.^^ 덕분에 잘 보고 있으니 고맙지요.
나는 일본여행기 올리다 중단하고 올 여름이면 만 3년이 된다는...ㅠㅠ

마노아 2011-03-28 01:37   좋아요 0 | URL
그 기분을 잘 알아요. 저는 연재하던 소설이 중단된지 6년이 되었답니다.
그것도 완결을 코앞에 두고요. 어떻게 완결할지 이젠 막막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