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갑자기 여행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거의 1년이 지나서 이젠 잘 생각도 안 난다. 그러니 사진 위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정리는 해둬야 마음이 편해지지... 

1월 30일 토요일. 친구가 시험 때문에 학교에 출근하는 날이다. 때마침 피라미드에 같이 갔던 김 선생님도 오프였기 때문에 둘이서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원래 나가야 하는 출구가 공사 중이다. 그래서 방향을 물어야 하는데 지하철 안에 있는 경찰이 'museum'이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출구 안내 표시에서 박물관을 가리키며 어느 출구냐고 물어서 밖으로 나갔다.   

(사진 펑!) 

저기 보이는 주황빛 건물이다.  

상이집트의 상징은 연꽃이고 하이집트의 상징은 파피루스다.   그 둘을 함께 재현해 놓은 정문 앞 연못 가에서 한 장.

(사진 펑!) 

카메라는 갖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외부 사진만 찍은 뒤 맡기고 입장. 입장료는 국제 학생증과 교사증을 동원해서 30 기니.   

고고학 박물관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안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도 엄청나다. 하지만 그 대단한 유물들을 그렇게 엉성하게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책장처럼 층층이 포개놓은 관도 여러 차례 눈에 띠었다. 그 정도 유물을 다 소화시키기엔 건물이 너무 작았다. 기자 지구로 옮길 예정이라는데 옮긴 뒤에는 정리가 체계적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내부 사진을 전혀 찍을 수가 없었으니 그 안의 풍경을 설명하기가 힘이 든다.(무엇보다도 일년이 지났더니 기억이...;;;)  

직접 찍은 사진은 없지만 책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본다. '문명의 안식처, 이집트로 가는 길'이란 제목의 책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 기억에는 채색된 관을 상형문자로 장식한 5천년 된 유물이 제일 멋있었다. 아, 5천년이라는 숫자가 여기선 얼마나 가볍던지... 우리에게 반만 년 역사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느낌인데, 이곳의 5천년 역사는 눈으로 선명하게 잡힌다. 건조한 기후가 훌륭한 방부제 역할을 해줘서 보존 상태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아크나톤 왕의 조각상은 수염을 달고 있는데 가슴이 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서 남장을 하고 있던 하쳇수트 여왕인가 착각했다. 그래서 안내 표시가 잘못 됐나 골똘히 생각할 즈음 외국 관광객 몇 십명이 갑자기 몰려드는 바람에 김샘과 어긋나고 말았다. 내가 김선생님 전화번호를 몰라서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번호를 확인해서 다시 걸려던 찰나 2층에서 선생님을 찾았다. 너무 넓고 사람도 많고 유물은 더 많은 공간에서 연락처마저 엉켜있던 우리는 헤어지기 딱 좋은 사람들이었다. 걱정이 컸던 나와 달리 선생님은 안에서 못 만나면 밖에서 마주치겠거니...하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이제 이집트 일주일 차인 나와는 비교되는 여유!  

2층의 투탕카멘 미이라실은 따로 요금을 내고 들어가야 해서 패쓰! 무덤에서 같이 발견된 여러 보석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1층의 투박한 전시물보다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내 취향이 그렇다기보다 1층에서 다리품을 너무 팔아 2층에선 지쳐 있었던 거다. ^^ 

(사진 펑!)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세우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역대 인물들의 흉상이다. 그 앞에서도 한 장 찍었다. 선인장 나무 앞에서도 찍었는데 전신 사진은 부담스러워서 차마 못 올리겠다.

박물관을 나온 다음에는 이곳에서 유명한 서민 음식을 먹기로 했다. 바로 코샤리. 면 종류인데 마카로니 비슷하고 밥이랑도 조금 닮은... 토마토 소스를 섞어 버무려 먹는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양이 많아서 배가 불렀다. 김샘이 중간에 소스를 추가해 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비용을 따로 받아서 서로 후회했다. 다 못 먹고 남겼으니...ㅜ.ㅜ 코샤리 5기니, 코카 콜라 3기니, 소스 추가해서 1기니. 그렇게 한끼 식사를 9기니에 마쳤다. 우리 돈으로 약 1,910원.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마르기르기스 역에서 하차해서 성 조지 교회, 예수 피난 교회, 산타 바바라 교회 등을 다녀왔다.   

 

콥틱 교회의 상징인 삼각뿔(?) 십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뜻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오래 되어서 지금은 자신이 없다.

 

 

  내부 촬영이 허락된 교회였다. 금지된 곳도 많았다. 오래된 곳일수록 사진 찍기는 힘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위 사진은 천장을 찍은 것이다. 엄청 어두운 사진이어서 잘 보이지 않아서 밝음 효과와 선명 효과를 주었다.

 

(사진 펑!)  

좁은 거리에 기념품 가게가 많아서 사진 찍으면 싫어한다. 후다닥 찍고 이동했다.

 

김 선생님이 집으로 저녁 식사를 초대해서 선생님 집으로 택시 타고 이동. 내 친구 집도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큰 집이었는데 이 집은 더 컸다. 마찬가지로 화장실 문이 안 닫혔고 실내였지만 엄청나게 추웠다. 이 집이나 그 집이나 똑같다.ㅠ.ㅠ 발이 시려서 실내화는 필수!  

사진 상으로는 집이 너무 커서 다 나오질 않았다. 그나마도 흔들림..;;; 왼쪽 끝으로 주방이, 오른쪽 끝으로 방 두 개와 욕실 두개가 더 나온다. 복도 끝에서 찍었는데 어떻게 찍어도 전체 샷은 나오질 않더라. 이 집도 내 친구 집처럼 주문해 놓은 생수 병이 가득했다. 물이 귀한 나라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 한국 같았으면 식당으로 착각할 수준이었다.

한편, 오기로 되어 있던 내 친구는 채점 때문에 바쁘다고 나더러 혼자 택시 타고 돌아오란다. 오 마이 갓!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밥은 먹고 걱정하자.  

오렌지로 목 축이고 저녁 메뉴는 떡볶이와 카레! 그레이트! 정말 맛있었다. 나한텐 꽤 매운 편이었지만 아주 달콤했다. 쌀떡볶이는 배불러서 많이 못 먹은 게 아쉬웠다. 여기선 쌀이 아주 싸다고 한다. 초코바 하나에 3기니인데, 쌀 500g도 3기니.  

배불리 먹고 오랜만에 믹스 커피(ㅋㅋ)도 마시고 이젠 돌아가야 할 때. 택시 잡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는데 친구가 선생님 집으로 짠!하고 나타났다. 앗싸!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빨래 모드. 과연 새벽까지 마르려는지... 친구 옷이 오히려 더 적어서 드라이어로 한참 말렸다. 

새벽에 남부 이집트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는 잠을 자기가 애매했다. 게다가 이집트 온 이후로는 자력으로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못한 나는 또 다시 변비약에 의지했는데 아침에 먹는 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하나 더 먹었는데 3시간 뒤에 토사곽란을 또 일으켰다. 아흐... 친구는 몇 시간이나마 눈을 붙였는데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내가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름 다행이랄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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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1-0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이집트 여행을 하게 됐네요. 반가워라.. ^^
잘 부탁합니다아~~

마노아 2011-01-02 00:10   좋아요 0 | URL
헤헷,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아~ ^^

카스피 2011-01-0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노아님의 이집트 여행 넘 부럽습니당^^ 마노아님 신묘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용^^

마노아 2011-01-02 01:46   좋아요 0 | URL
작년에 제가 호강을 했어요.^^
카스피 님도 신묘년 멋지게 열어가셔요~

순오기 2011-01-0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여행기~~~~~~ 마무리를 위한 불타는 사명감에 박수~ 짝짝짝!!
언제 이집트를 가보겠어요~ 마노아님 여행기로 만족해야지요.^^
다들 넓은 집에 산다니,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럴까...

마노아 2011-01-02 01:47   좋아요 0 | URL
새해 첫날이 되니 갑자기 마무리를 위해 의지를 불태웠어요.^^
코이카의 경우 각자 독립해서 사는 게 원칙이어서 혼자사는데 집들이 대체로 큰가 봐요.
두 사람 모두 혼자 살기엔 너무 커서 청소하기 힘들어 보였어요.^^

BRINY 2011-01-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고 귀한 이집트 여행기~ 잘 보겠습니다.
(이집트는 그냥 패키지로 가야겠다는 생각...근데 언제?? ㅠ.ㅠ)

마노아 2011-01-03 17:04   좋아요 0 | URL
아하핫, 패키지든 자유 여행이든 꼭 다녀오셔요.^^ㅎㅎㅎ
저는 보름이었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분들이 추천하는 일정은 3주 코스였어요.
저도 3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비행기 표가 없어서리..ㅜ.ㅜ

같은하늘 2011-01-0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인줄 알았더니 하나 더 있네요.ㅎㅎ

마노아 2011-01-07 01:39   좋아요 0 | URL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같은하늘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