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임산부들이 친구의 초상집에서 밤을 새며 무슨 생각을할지 궁금했다. 내 고향 친구들이라면 일종의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라면 자식 잃은 부모 앞에서 커다랗게 농익은 과일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차마 내밀고 앉아 있지 못하겠지. 건강한아이를 갓 출산한 친구는 경미한 신체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둔친구 앞에서 몸둘바를 몰랐다. 새로 임신한 또 다른 친구는 불임인 친구와 얘기할 때면 임신에 대한 말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행운에 죄의식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아마존에서 죽음은 이상 현상이 아니다. 죽음은 날마다 함께하는 길동무다. 두려움 없이 슬픔을 잊고 함께하는 게 아니라 평정심과 기품을 지니고 날마다 함께 걷는 동반자 말이다.
집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 잃은 가족과 함께 밤을지새울 것이다. 더러는 잠들겠지만, 나머지는 담배를 피우며 카드를 치거나 마사토를 마시며 긴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선물하듯 초상집에 나타났다. 상을 치르는 가족이 혼자가아님을 증명해주기 위해 이들 곁에 머물렀다. 이것은 일종의 선물이었다. 그들은 죽음에 맞서 싸우기보다 외로움에 맞서 싸운다.
도처에 널린 죽음과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답게 모두가 먹을거리를 가져왔다. 먹을거리는 곧 생명이다. 어떤 사람은 수탉한 마리를 가져왔다. 떠나기 직전에 우리는 마리오가 한 손으로수탉의 다리를 움켜쥔 채 다른 손에 양철 냄비를 들고 부엌으로가는 모습을 보았다. 곧이어 수탉의 비명이 들려왔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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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많은 것이 변화했다. 홍수와 화재의 빈도가 늘고 기후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식물의 과학도 바뀌었다. 식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방법, 식물을 식별하는 방법, 그리고 농학자가 더욱 튼튼한 농작물과 질병에 강한 느릅나무를 개발하기 위해 실행하는 방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내가 과학자로서 배운 2가지 소중한 교훈은 어린 시절 뉴욕주 북부 시골에서 수집한 식물에서 얻었다. 첫째는 ‘한 사람의 힘‘이라는 교훈으로, 나는 대개 혼자서 자연을 관찰해 지역 야생화는 물론 새알에 관해서도 아마추어 전문가가 되었으며, 그 시절 내디딘 걸음마가 현장 생물학 전문가가 되는 길로 이어졌다. 둘째는 ‘지역에서 출발해 세계로 나가라‘라는 교훈으로,
처음에 뒤뜰에서 자연을 배우고 나중에 지구 생태계로 시야를 넓힌 덕택에 나는 한층 더 유능한 현장 생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나무에 지었던 요새는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뒤 몇몇 대륙에 설치된 열대 우듬지 통로로 진화했다. 호숫가 오두막에 우뚝 서 있는 키 큰 느릅나무 한그루에 쏟았던 애정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삼림 보전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유년 시절 자연에서 식물을 발견하고, 만지고, 냄새 맡고, 식별하는 등 오감을 발달시키며 만끽했던 즐거움은 내가 대학교에 다니고,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하고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소수의 여성에게 조언하는 과정에 영감을 주었다. 어릴 적 나의 마음에 담겨 있던 그 모든 열정은 헝겊 조각을 이어 붙인 조각보처럼 한데 뒤엉켜 궁극적으로 나를 세계 최초의 나무탐험가로 성장시켰다. 자연을 탐험하면서 평온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현장 생물학자를 직업으로 삼지 않았을것이다. 대부분 나무였다. 대부분 고독이었다. 대부분 야생화였고,
나뭇잎이었고, 자연의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는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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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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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야생 붉은여우예요"(399)

이 책의 저자 캐서린 레이븐은 야생 붉은여우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유일한' 친구가 여우라는 말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모비딕을 읽었지만 - 그래픽노블까지 읽었지만 완역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 보며, 저자의 글을 다시 인용해보자면 소설 모비딕에서의 화자 이슈메일(이름의 번역이 조금 다르지만)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나누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하는데 이 말을 되새기며 세상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단순히 야생 여우와 생태학자가 우연히 만남과 교류(?)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티비에서 닫힌 문을 열고 집안에까지 들어와 냉장고까지 뒤지고 나가는 곰의 모습을 봤는데 그냥 야생곰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인 환경보호자와 오랜 시간 친분을 쌓은 곰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야생 여우와의 흥미로운 일상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만남은 그렇게 우연이었겠지만 어린왕자가 만난 여우처럼 늘 같은 시간에 찾아와주는 의미있는 친구는 아니지만 저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여우가 된 것은 확실하다. 


레인저로 활동하며 사냥도 하는 모습이 낯설어보이기도 하고 야생동물의 사냥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유없는 학살과 게임처럼 놀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굳이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글을 읽다보면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이 이야기는 야생의 숲에서 지내는 야생 동물의 모습과 그에 연장선상에 있는 인간의 삶의 공존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를 고민해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에 읽기 시작한 '어쩌다 숲'이라는 책의 내용은 조금 더 인간의 세상을 중심으로 도시화된 공간에서의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후자에 가깝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산 속 깊은 숲에 사는 야생동물의 생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연한 야생동물과의 만남, 혹은 야생동물과 가까워지기 위한 장난의 기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깊은 숲속,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새까만 새끼 여우 한 마리가 해먹 모양 가지에 등을 긁고 다리를 꼬고 웃음을 터뜨려 숲의 모든 새끼들을 웃게 한다. 과학자가 소리를 듣는다. 바람소리겠지. 그는 공책에 중요한 숫자를 몇 개 적는다. 그는 마음의 장난에 휘말리지 않는다.
애석한 일이다. 인간의 정신이 습득한 모든 기술 중에서 장난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니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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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스는 『바람과 모래와 별들』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백화되고 헐벗고 돌투성이인 산을 위해 죽을 것이며 (・・・) 거대한 모래더미를 마치 사금처럼 죽기 살기로 지킬 것이다.˝ 모든 짐승에게 공간과 고독과 야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짐승은 최적의 서식처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여우와 나는 인디언밥풀 사이에서 발가락을 벌린 채 다윈의 냉이처럼 굴광성‘을 발휘하여 해를 바라보았다. 주변 식물들 못지않게 우리도 에너지를 얻기 위해 태양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나, 그리고 이제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여우는 해바라기를 하며 빙글빙글 맴돌았다.
여우와 나,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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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소유하는데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

나는 밭쥐숲을 없애버릴까 생각했다. 그토록 오래 내 곁에 있어준 밭쥐들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숲이 사라지면 매, 족제비, 고무보아뱀에게 대부분 학살당할 것이다. 밭쥐가 초지 위를 나는 붉은꼬리말똥가리의 발톱에 꿰인 채 핏방울을 뚝뚝떨어뜨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족제비가 밭쥐굴에 살금살금 들어가 털 난 궁둥이에 뾰족뾰족한 송곳니를 박는다고 상상해보라.
고무보아뱀이 통통한 밭쥐를 삼켜 팽팽한 한쪽 끝이 불룩하게 부푼 모습을 상상해보라. 상상할수록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땅을 소유하는 데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길 하나를 낼 때마다, 잡초한 포기를 뽑을 때마다, 나무 한그루를 심을 때마다 수억 가지 결과가 생겨난다. 대자연에게 봉토를 하사받은 대봉건지주는 자신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홧김에 숲을 밀어버릴 수는 없다. 밭쥐숲도 예외가 아니다. 밭쥐들이 끼친 피해는 엎지른 물이었다. 숲을 없앤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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