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7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년, 사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쓴 짤막한 엽서글.
날마다 조금씩 읽어나갔다.
손글씨로 된 엽서를 읽다보니 나도 그렇게 하루를 묵상하고 성찰하며 살아가야지, 날마다 하루 일기를 쓰며 살아가야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판화엽서에 띄운 짧은 안부를 듣다보면 나를 되돌아보는 것조차 버겁게 된다.

이건 리뷰도 아닌것이 되겠지만, 책을 다 읽고 쓴 편지 한 장.



아, 쓰고나서 보니 벌써 11월이네. 조금 더 북쪽인 곳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겠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몸살이가 추워지기 시작하겠다.. ....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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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0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가장한 엽서
따뜻하고 기분 좋네요 ^^

알고싶다 2005-11-0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2005-11-05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 한국 대표 사진작가 29인과 여행하는 시인이 전하는 바다와 사람 이야기
최민식.김중만 외 사진, 조병준 글, 김남진 엮음 / 예담 / 2005년 7월
품절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하지만 사실, 나의 바다는 위안과 꿈의 바다.
내 마음이 허할때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나를 쓰다듬어 위로해 주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흐르는 바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는 바다.



삶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된 삶은,
바다가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듯이 수없이 많은 의미를 담고 퍼져나간다.

바다가 나를 불렀다. 시도 때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툭하면 바다가 나를 불렀다. 바다가 부른다고 언제든 바다로 달려갈 수 있는 삶이 몇이나 될까. 바다가 부르면 두 손바닥으로 귀를 막아야 했다. 귀를 막으면 바다는 내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고, 내 망막을 시퍼런 물로 뒤덮었다. 총체적 유혹. 모든 감각을 다 아우르는 바다의 유혹. ... 밥벌이를 위해 흘리는 땀이 모두 땀구멍을 통해 증발하지는 않는다. 2퍼센트쯤의 땀은 피부를 뚫지 못하고 몸속 어딘가로 흘러간다. 어디로? 내 안의 바다로. ...... 눈을 감으면 느낄 수 있다. 내 안의 작은 바다 속으로 저 큰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것을. 내 안이 온통 바다로 채워지면 아주 오래된 꿈 하나가 그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살아 있는 것이 되고 싶었던 어떤 물질의 꿈. 그래, 그것이었다. 바다가 나를 부른 이유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바다앞에 서면 언제나 혼자 서 있는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지만 고립된 삶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바다.

(이 사진은 본문의 사진이 아닙니다)

삶은 또 그렇게 바다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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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0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더 일찍 리뷰를 올리시지.
엊그제 도착했잖아요.
그런데 글은 어떤가 모르겠는데 사진만으로는 조금 실망이었어요.
하긴 바다의 실물과 사진이 잽이 되겠어요?^^

chika 2005-11-0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엥~ 빨리 올릴 걸 그랬나봐요...
(근데 저도 사진은 생각보다 좀 .. 그랬어요. 글이야 머.. 조병준다운 글이고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구판절판


내가 산투리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되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조르바?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21쪽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그래요. 내가 성상 그리는 화가였다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성모를 그리겠소. 너무 불쌍해서 말이오.-312쪽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도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349쪽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게 무엇이오?"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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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야 처음으로 한 번 읽었다. 나는  앞으로 또 몇번을 읽게 될까. 그러게 조르바를 만날 수 있게 될까?
난 아직도 조르바, 당신을 잘 모르는데.
알게 되면 알수록 점점 더 그 깊이에 감탄하고 더욱더 모를 심연에 빠지게 될까?
나도 깨달음을 얻고, 자유를 얻게 될까?
무릎을 탁 치며,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1년후, 또 1년후..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면서 나는 자유를 얻어 내 삶으로, 나의 영혼과 온몸으로 '그렇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까?

지금은 그저 카잔차키스가 남긴 묘비명을 되새기며 자유를 바랄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 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p25)

조르바는 자유, 이며 결국 그는 인간이라는 얘기가 내 마음을 치고 간다. 나는 인간, 일까? 그리고 또 인간은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는 얘기도 한다. "혹자는 먹는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디다"(p106). 조르바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다고 한다. 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벅찬데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말할수조차없다. 숨이 막힌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수없는, 아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때문에 선뜻 느낌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자유의 인간을 꿈꾸며 언젠가 그리스로 향하는 나를 꿈꾼다. 행운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며.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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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0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이 이제 자유를 꿈꾸시게 될껍니다 ^^

chika 2005-11-0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를 꿈꾸고 싶어요.
책 다 읽고 몽님 리뷰를 읽다가 또 뭉클해져서... ㅠ.ㅠ
 



클리오님은 어쩌면 잘 모르시겠지만 오늘은 천주교에서 '위령의 날'이라고 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날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천주교 순교자 묘역에 가서 미사참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사실 삶 안에서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아니, 두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라'라는 메시지를 깊이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원령공주의 '살아라!'라는 말을 무척 좋아합니다. 조금 생뚱맞은가요? ^^;;

원령공주말고도.... 자세히 보면 칼싸움에 피가 난무한 그림이지만 - 전 사실 흑백이어서 처절함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 그 안에 담긴 뜻 때문에 좋아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보면서 '살아라!'라는 의미를 새겨봤었는데, 바람의 검심 역시 어떠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중심 주제를 갖고 있다. 불합리한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에 수긍하다보면 어느새 '승리'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맞받아치는 작가의 문제제기에 신나게 만화책을 넘기다가 순간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 제가 이런 리뷰를 썼었군요. 흠, 흠흠,,,,)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복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행복이야. 네가 이 작은 손을 더럽혀도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이 작은 손도 커져서... 넌 어른이 되겠지. 그때 시시오 일파처럼 힘으로 남을 억누르는 남자는 되지 마라. 마을 사람들처럼 폭력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남자도 되지 말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널 걱정했던 네 형 같은 남자가 돼서... 행복해져야 하는 거야! [만화 본문에서 따옴]

 

다시 오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는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느끼게 되는 오늘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되새겨봅니다.

실은, 잊고 있다가 오늘 순교자 묘역에 가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혹시 '제주역사기행'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이 책에 보면 순교자묘역의 순교자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축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 이재수의 난에 대해 아신다면 그 당시 정황을 떠올리면 쉽겠네요.
그 신축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천주교는 '박해'라 이야기를 하고, 관에서는 '亂'이라 이야기를 하지요. 저자는 순교자비에 적힌 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묘비에 적힌 한자가 박해를 당했다는 難이 아니라 亂을 일으킨 것으로 적혀있다고요.
사실 그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당황했었지요. 그렇다고 모른척 넘길수도 없고... 작년에 신부님께 책을 보여드리며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야기를 해서 아셨던것은 아닐지 모르지요. 그 이후 아무런 얘기도 못들었는데 오늘은 그 순교자비를 꼭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왔지요.


 다행히 그 한자는 수정이 되어있었습니다. 보이시죠?(직접보면 긁어낸 자국도 보여요. ㅡ.ㅡ)
한자표기를 '案'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천주교신자인 사학과 교수님이었지요. 그 내용은 4.3에 대해 반란과 항쟁의 논란이 컸던것과 비슷한겁니다.

저는 이런 중도적인 생각들이 나쁘다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내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지만 4.3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랍니다. 4.3민중항쟁 기념일이라고 시위도 하고 그랬지만 집에서는 빨갱이들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죽을뻔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지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세계관에 따른 가치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분명 맞다고 생각되는 것 하나는 그런거예요.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복'이라는거요.

과거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성찰을 한다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순교자묘역,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묘지 - 언젠가 우리 부모님도 또 어쩌면 저 역시 이 곳에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요 - 에 있는 나무입니다. 기나긴 세월을 지나보낸 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페이퍼를 쓰다가 문득, 클리오님의 이벤트를 생각했습니다. 그리 긴 인생도 아닌데 어찌 인생의 추천이 있겠습니까. ㅠ.ㅠ
오늘 천주교 신자인 저에게는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날인지라 클리오님께도 이런 묵상을 함께 해보자는 권유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나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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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11-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복'이라... 거대한 묵상, 생각거리를 안겨주시는군요. 진지하고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하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제주역사기행', 저자를 알아서 늘 사봐야 겠다고 다짐만 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꼭 봐야겠습니다. 제주도 분들은 역시 역사에 대한 감성이 좀 특별하신 듯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