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님은 어쩌면 잘 모르시겠지만 오늘은 천주교에서 '위령의 날'이라고 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날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천주교 순교자 묘역에 가서 미사참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사실 삶 안에서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아니, 두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라'라는 메시지를 깊이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원령공주의 '살아라!'라는 말을 무척 좋아합니다. 조금 생뚱맞은가요? ^^;;

원령공주말고도.... 자세히 보면 칼싸움에 피가 난무한 그림이지만 - 전 사실 흑백이어서 처절함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 그 안에 담긴 뜻 때문에 좋아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보면서 '살아라!'라는 의미를 새겨봤었는데, 바람의 검심 역시 어떠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중심 주제를 갖고 있다. 불합리한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에 수긍하다보면 어느새 '승리'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맞받아치는 작가의 문제제기에 신나게 만화책을 넘기다가 순간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 제가 이런 리뷰를 썼었군요. 흠, 흠흠,,,,)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복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행복이야. 네가 이 작은 손을 더럽혀도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이 작은 손도 커져서... 넌 어른이 되겠지. 그때 시시오 일파처럼 힘으로 남을 억누르는 남자는 되지 마라. 마을 사람들처럼 폭력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남자도 되지 말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널 걱정했던 네 형 같은 남자가 돼서... 행복해져야 하는 거야! [만화 본문에서 따옴]

 

다시 오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는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느끼게 되는 오늘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되새겨봅니다.

실은, 잊고 있다가 오늘 순교자 묘역에 가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혹시 '제주역사기행'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이 책에 보면 순교자묘역의 순교자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축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 이재수의 난에 대해 아신다면 그 당시 정황을 떠올리면 쉽겠네요.
그 신축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천주교는 '박해'라 이야기를 하고, 관에서는 '亂'이라 이야기를 하지요. 저자는 순교자비에 적힌 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묘비에 적힌 한자가 박해를 당했다는 難이 아니라 亂을 일으킨 것으로 적혀있다고요.
사실 그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당황했었지요. 그렇다고 모른척 넘길수도 없고... 작년에 신부님께 책을 보여드리며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야기를 해서 아셨던것은 아닐지 모르지요. 그 이후 아무런 얘기도 못들었는데 오늘은 그 순교자비를 꼭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왔지요.


 다행히 그 한자는 수정이 되어있었습니다. 보이시죠?(직접보면 긁어낸 자국도 보여요. ㅡ.ㅡ)
한자표기를 '案'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천주교신자인 사학과 교수님이었지요. 그 내용은 4.3에 대해 반란과 항쟁의 논란이 컸던것과 비슷한겁니다.

저는 이런 중도적인 생각들이 나쁘다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내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지만 4.3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랍니다. 4.3민중항쟁 기념일이라고 시위도 하고 그랬지만 집에서는 빨갱이들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죽을뻔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지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세계관에 따른 가치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분명 맞다고 생각되는 것 하나는 그런거예요.
"죽은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복'이라는거요.

과거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성찰을 한다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순교자묘역,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묘지 - 언젠가 우리 부모님도 또 어쩌면 저 역시 이 곳에 묻히게 될지도 모르지요 - 에 있는 나무입니다. 기나긴 세월을 지나보낸 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페이퍼를 쓰다가 문득, 클리오님의 이벤트를 생각했습니다. 그리 긴 인생도 아닌데 어찌 인생의 추천이 있겠습니까. ㅠ.ㅠ
오늘 천주교 신자인 저에게는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날인지라 클리오님께도 이런 묵상을 함께 해보자는 권유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나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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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11-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이 바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복'이라... 거대한 묵상, 생각거리를 안겨주시는군요. 진지하고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하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제주역사기행', 저자를 알아서 늘 사봐야 겠다고 다짐만 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꼭 봐야겠습니다. 제주도 분들은 역시 역사에 대한 감성이 좀 특별하신 듯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