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서 쉽게 이 책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한참 일이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듯한 생활에 뭔가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에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야기가 토막, 토막 잘려나가는 듯 해 쉽게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아, 심난해져버렸지만, 그래도 다른 책을 집어 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는지 그냥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나는 이 책이 너무 가볍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토막토막 잘라 이야기하고 있는 짧은 글속에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것이다. 뜻밖에도.

더구나 중간을 조금 넘어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나는 릴리 프랭키가 말하는 그의 '엄니'에게 푹 빠져들어버렸다. 더구나 노친네에게 툴툴 내뱉는 말들이 어쩜 그리도 불효막심한 내가 내뱉는 말과 똑같은지. 내가 너무 못되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렇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새삼 북받쳐올라 이 밤 늦은 시간에 눈물 콧물 흘리면 얼굴이 띵띵 불어터질 것을 걱정하면서도 마구 쏟아내야만 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이런 저런 일에 찌들어 있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듯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훌륭한 엄니를 만난 릴리 프랭키가 부러워, 라는 말이 아니라 내게도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성질부리고 화내듯이 얘기도 잘 하지 않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도 위안이 된다. 아직 불효막심한 나를 돌려 세울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 책은 한 권의 소설로,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울림이 눈물과 콧물 투성이 얼굴에 그래도 미소짓게 되는 그런 진실함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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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자신이 창피를 당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창피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게 엄니의 예의범절이었다.
...
예절이란 자신을 위한 체면치레가 아니다.
식탁에서라면 요리를 해준 사람에 대해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매너일것이다. 젓가락 쓰는 법 정도의 일로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딱딱거리는 사람은 으레 요리사에게 "나는 돈을 낸 손님이야!" 라는 태도로 거만하게 구는 예의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유독 그런 사람일수록 계산은 남에게 넘겨 버리는 일이 많으니, 그 예의없음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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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1-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전혀 예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이미 경악의 수준이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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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 이라고 하니까 왠지 너무 낯설었는데
이렇게 이콘이 나오니 너무 친숙해져버렸다.
삼위일체 이콘도 있고, 예수얼굴 이콘도 있고,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도 있다. 아, 물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도 있다.
훗, 역시 러시아 미술이 낯선것만은 아냐;;;

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조형언어로 드리는 기도....;;

이주헌님의 책을 또 오랜만에 읽으려고 하니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괜히 딴지를 걸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학고재, 물론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다.
두툼한 책이 손으로 꾹꾹 눌러도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다. (책을 조심히 읽어도 갈라져버리는 책을 봐왔던 나로서는 얼마나 감동적인지!)

암튼 그보다, 이 그림은 피델리오 부르니의 '놋뱀'이라는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걸 읽기 전부터도 내 눈은 모세를 찾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모세는 어디에?) 광채가 난다는 모세를 찾아보려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바,,, 아핫~!

보이는가.
책이 접히는 부분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서 있는.
모세.

아, 책이 너무 좋아서 나는 이런것에 딴지를 걸 뿐이다. ㅡㅡ;;;

일랴 레핀의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커다란 도판이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운데가 접혀져서 싫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좋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책을 가득 메운 커다란 도판을 보면서 좀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표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결국 딴지를 걸어야지, 라고 했지만 마냥 좋다, 라는 거 아닌가! ;;;;;;;;

특히나 이주헌님의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마냥.. 뿌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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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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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가 재미있어? 아이들을 빤히 쳐다보는 게"
"몰라.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가. 난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걸 좋아해. 한 사람 한 사람 정면으로 본 사진이 아니라 무심하게 뭔가를 하고 있고 내가 그걸 보고 있다는 걸 상대가 모르는 상태가 제일 안심이 되지. 저쪽에 넓은 세상이 있고 나는 그 세상 바깥의 파인더 이쪽에 있는 상태를"
"요컨대 항상 제삼자이고 싶다 이거군. 타인의 존재가 두려워? 타인이 자기 안에 들어오는 게 싫은 거야? 아니면 자신이 수많은 군중에 속하는 게 싫은 거야? 슈의 자존심?"
"글세, 조금씩 섞인 거겠지"
대화가 끊기고 두 사람은 함께 무심히 바다를 바라보았다.-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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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3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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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읽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히 나처럼 책 읽다 재밌어지면 절대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고 만다면 제발 맘 잡고 집에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걸.
아, 설마 설마 했는데, 나도 모르게 푸핫 거리면서 웃다보니 어느새 잠깐만 책 읽고 다른 일을 하려고 했던 생각조차 까먹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책을 다 읽고 말았다. 그리고 뭔가 찡하는 느낌이 온다. 이 책은 '평양 프로젝트'이지만 실상 '통일 프로젝트'인 것 아닌가.
굳이 다른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굳이 우리가 닮은 꼴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어느 체제가 더 낫다거나 어느 한쪽의 체제가 모순을 안고 있다거나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걸 굳이 비교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얼렁뚱땅 오공식의 일상 이야기일뿐인 것이다. 이런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만화가 되는지는 직접 보지 않고는 확연하게 느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내가 우연찮게 알게 된 독일의 한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었다. 그 아저씨와 결혼한 아주머니는 동독출신이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있을 당시 그녀의 삼촌이 장벽을 넘기 위해 유일하게 물질적 재산으로 갖고 있던 비싼 시계를 뇌물로 건네주고 총을 맞지 않고 무사히 장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해 줬지만 결정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 인해 두분이 만나 결혼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평소의 왕래가 그들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해 준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잠시 책을 읽고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유왕래가 이뤄지면 처음엔 서먹서먹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청춘남녀일까, 라는.
아니 뭐, 굳이 청춘남녀가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남과북은 멋진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하나됨의 단면인 것이다. 일상생활만큼 서로에 대해 정직하게 잘 알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이 책은 그래서 멋진 책이다.
 
* 내용중에 '지역색'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어머니 고향이 황해도인데, 황해도 사람들은 성향이 둔하고 게으르다고 해서 띵해도 라고도 부른다는데.. 이 얘길 어머니에게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해진다.
** 이 책은 정군님의 리뷰를 보고 처음 알았던 책이다. 키득거리느라 주위의 시선을 느꼈다던 정군님의 리뷰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도 이제 알라딘에는 그 어디에도 정군님의 리뷰는 볼 수 없다. 순식간에 그어져버린 휴전선 만큼이나 아쉽고 황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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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2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평도서인가요. 많이 보시는거 같아요. 얼마전에 어떤 분의 서재에서 본거 같은데.

chika 2007-01-2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역시.. 티가 나죠? ;;;;; (하지만 정군님의 리뷰를 읽고 재밌겠다고 생각한 것은 서평도서가 되기 전의 일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