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내력 - 제11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강가의 돌 하나에도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져 있다, 로 시작하는 시작하고 있다.
어찌보면 아주 당연하고 그래서 더 철학적인듯한 문장의 시작이 이 책을 한권의 소설책이 아닌 역사로 느껴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속에 서서히 광기가 느껴지고 전쟁의 참혹함이 드러나고 끔찍한 인간상이 떠올라버렸다.

전쟁이라는 것은 승자와 패자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임을 사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돌의 내력'은 누군가의 말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니, 너무 무겁게 다가와 한동안 마음을 가눌수가 없었다. 자꾸만 '왜?'라는 물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그들이 상처에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에 울부짖고 몸을 쥐어뜯지 않는다고 모든 상처가 아물어졌고 기억속에 과거의 역사가 흐릿하게 지워진 것은 아니다. 그런 아픔이 고스란히 이어져 과거가 현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돌의 내력'은 그렇게 무겁게 다가왔다. 정말 '강가의 돌 하나에도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지금은 전쟁중이 아니잖니.
- 전쟁중이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전쟁중이야. 아버지가 모르는 것뿐이지. (돌의 내력,117)

우주의 전 과정이 새겨지는 돌, 위에 우리는 어떤 역사를 새겨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남는다. 인간은 잊으려 하지만, 아니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돌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 이 책에는 엄밀히 말하자면 '돌의 내력'과 '세눈박이 메기'라는 소설 두편이 실려 있다. 세눈박이 메기는 아버지의 장례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잔잔하게 일본의 한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일본의 민속신앙적인 관점과 기독신앙의 관점이 맞물리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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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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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비다 윈터>

처음 책을 받아들고 저자 약력을 보면서 5년에 걸쳐 창작에 몰두한 끝에 발표한 데뷔 소설이라는 글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싶은 마음이었다. 두툼한 책의 무게감을 느끼기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고,  책머리에 적혀 있는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 비다 윈터, 라는 글을 보면서 비다 윈터라는 작가가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열세번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더 뒤적여보고 처음 읽었던 저 글을 읽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가 직장을 관두고 5년에 걸쳐 작품에 몰두했다는 이야기가 새삼 강하게 와 닿는다. 제인에어 만큼이나,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강렬하게 쓰여진 작품이라는 느낌에 묘한 감동을 받는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이야기인것이다!

이야기는 아빠의 헌책방일을 도우며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를 쓰는 작가인 마가렛 리가 받은 한통의 편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조금은 냉소적인 듯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언제나 이야기를 지어내기만 하는 비다 윈터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책을 읽어갈수록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헝클어버리고 만다.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때까지 그녀가 이야기하는 '진실'의 깊이와 의미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버리게 된다.
처음 책을 읽을때 글에서 느낀 의미를 이야기의 진실을 느끼고 난 후 다시 되새겨보게 되면 또 다른 깊이에 빠져들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열세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읽고 있는 중이다.

매혹적이고 독특하고 문학적인, 날카롭고 강렬하고 신비로운... 정말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책이지만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제인 에어'때문인지 나는 자꾸만 이 책을 읽으면서 '광기어린 폭풍같은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떠올랐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광기어린 폭풍같은 삶의 슬픔은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읽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푹 젖어들어가기를 바라며 열세번째 이야기에 대한 나의 말은 아껴두려고 한다 .

비다 윈터가 마가렛 리에게 보낸 편지 글은 열세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는 이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의 첫머리를 펴들어보게 되었을 때 더 강렬해졌고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누군가의 느낌은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그 모양이나 무게, 깊이는 다를지라도 슬픔의 빛깔만큼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535)
나는 그걸 알고 있을까?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을, 그들의 슬픔을....?
 

나의 불만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지요. 지어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던가요? 굴뚝 위에서 포효하는 곰처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진실이 도움이 되던가요? 침실 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빗줄기가 그 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릴 때는 또 어떤가요? 전혀 쓸모가 없지요.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거짓말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말이에요.(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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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 울림이 끝까지 지속되어 참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chika 2007-02-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흐흐흐흐~
정말 그리 큰 기대없이 읽은 책인데, 후다닥 읽게 된 책이예요. 좋죠?
(몽땅 언냐 서재에서 본 책이우~ ㅋ)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고 믿곤 하지.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곳에 내가 태어났노라!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인간의 삶은 그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가족이란 마치 거미줄과 같은 것이지. 어느 한 곳을 만져도 다른 곳에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어. 전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야....................
태어난 순간이 시작이 아니라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었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 뿐이지. -86-87쪽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끔찍한 고통에는 쉽게 익숙해지는 법이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종종 잊곤 하지.-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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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구판절판


고독은 사람을 기분좋은 감상에 취하게 하고 막연한 불안은 꿈을 말하는 데 꼭 필요한 안주가 된다. 홀로 고독에 시달리며 불안을 달고 살아가는 때는 사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때이며 오히려 다부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때인 것이다. 쉼표도 없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나날, 보기도 지겨운 사계절의 방문. 그것들이 쉬는 일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겠지, 하고 짜증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그저 천천히, 영원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작되어야 할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 첫발을 떼지 못하는데 대한 초조감.-238쪽

하지만 그런 괴로움도 일단 무언가가 시작된 다음에 뒤돌아 보면 그토록 낭만적인 것도 없다.
참된 고독은 그저 흔해빠진 생활 속에 존재한다. 진짜 불안은 평범하기만한 일상의 한 귀퉁이에 존재한다. 술집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도 한낱 푸념에 불과한 답답하고 특징 없는 것.
어디를 향해 날아올라야 할지 몰라 활주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비행기보다 착륙해야 할 곳을 알지 못해 허공에서 헤매는 비행기가 훨씬 더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239쪽

이 세계와 나 자신, 그 애매한 간격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한없이 느릿느릿 이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의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광대처럼 진한 화장을 한 검은 옷의 저승사자가 무표정하게 나타나 어딘가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순간부터 시간은 발소리를 내며 마라톤 주자처럼 달려간다.
그때까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에 마음을 기울이며 천천히 지나갔던 시간은 문득 역회전을 시작한다. 지금에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다. 종말로부터 지금을 향해 시간을 새기며 저벅저벅 다가온다.-239쪽

나 자신의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 거기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올라오는 인생의 카운트 다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현실을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다.그런때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에게서 ㅌ어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가는 이상, 나 자신의 손목시계만으로는 운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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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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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낯설지만 그 그림에 담긴 러시아인의 정서가 우리의 그것과 썩 잘 어울리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이런 구성을 통해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러시아 미술은 '낯설면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미술'이라는 점이다. 미술을 통해 나타난 그들의 투쟁, 고통, 격정, 인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역사 경험이 달라도 각자의 경험에 대한 기억과 정서 반응에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들어가며, 작가의 말에서>

그래, 딱 그느낌이었다. 낯선듯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
물론 겉표지의 그림(미하일 브루벨, 백조공주, 1900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보면서는 역시 '눈의 여왕'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고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드는 이 뿌듯한 마음. 나는 역시 이주헌님의 책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편애를 하게 되고 만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 작품의 예술적인 감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시대, 작가의 가치관까지 모두 아우르면서 바라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주헌님의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장 드 봉의 초상화를 보면서 '오오~'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사실 훌륭하다는 그림을 보면서 누구나 모두 '오~' 하는 감탄을 내뱉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대책없는 자신감은 내 생활과 동떨어진듯한 '예술'작품들을 이제는 내 생활과 친숙하게 맞물리며 바라볼 수 있게 된 데서 나왔다.

아무튼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책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배경설명이 있고 우리가 - 아니, 우리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으니 '나'라고 해야겠다. 내가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민중적 관점의 종교화가 나오고, 러시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역사화에 대한 설명이 있고, 장르화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이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역시 가장 관심있게 봤던 부분은 종교화였는데 이미 내게는 익숙한 이콘에 대해서는 새삼 더 깊이있게 바라보게 되었고 참 좋았다. 물론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천사'라고 표현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살짝 유감이 섞여들기는 했지만.

언제나 항상 조목조목 차분히 설명해주는 이주헌님은 책의 끄트머리에 아니나다를까 참 친절하게도 '간추린 러시아 회화사'까지 정리해 넣어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간추린 러시아 회화사를 읽다보면 책의 정리도 될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저자의 들어가는 말에서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다보니 오히려 더 모자란 점이 많다고 했지만, 러시아 미술에 대한 첫 술로 이 책은 대만족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분명 다음에 더 풍성한 상차림을 약속했으니 설레는 맘으로 훗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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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1-2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레는 맘으로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주헌씨의 책. 한번빠지면 팬이 되어버리고 마는 마력이 있다죠? ^^

chika 2007-01-2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멋진분이라고 생각해요! ^^

2007-03-1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07-03-1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웅~ 저, 뭔가 했어요! (이제 눈치 챘다는! ㅋ)
감사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