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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비다 윈터>
처음 책을 받아들고 저자 약력을 보면서 5년에 걸쳐 창작에 몰두한 끝에 발표한 데뷔 소설이라는 글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싶은 마음이었다. 두툼한 책의 무게감을 느끼기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고, 책머리에 적혀 있는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 비다 윈터, 라는 글을 보면서 비다 윈터라는 작가가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열세번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더 뒤적여보고 처음 읽었던 저 글을 읽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가 직장을 관두고 5년에 걸쳐 작품에 몰두했다는 이야기가 새삼 강하게 와 닿는다. 제인에어 만큼이나,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강렬하게 쓰여진 작품이라는 느낌에 묘한 감동을 받는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이야기인것이다!
이야기는 아빠의 헌책방일을 도우며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를 쓰는 작가인 마가렛 리가 받은 한통의 편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조금은 냉소적인 듯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언제나 이야기를 지어내기만 하는 비다 윈터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책을 읽어갈수록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을 헝클어버리고 만다. 이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때까지 그녀가 이야기하는 '진실'의 깊이와 의미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버리게 된다.
처음 책을 읽을때 글에서 느낀 의미를 이야기의 진실을 느끼고 난 후 다시 되새겨보게 되면 또 다른 깊이에 빠져들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열세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읽고 있는 중이다.
매혹적이고 독특하고 문학적인, 날카롭고 강렬하고 신비로운... 정말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책이지만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제인 에어'때문인지 나는 자꾸만 이 책을 읽으면서 '광기어린 폭풍같은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떠올랐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광기어린 폭풍같은 삶의 슬픔은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읽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푹 젖어들어가기를 바라며 열세번째 이야기에 대한 나의 말은 아껴두려고 한다 .
비다 윈터가 마가렛 리에게 보낸 편지 글은 열세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는 이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의 첫머리를 펴들어보게 되었을 때 더 강렬해졌고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누군가의 느낌은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그 모양이나 무게, 깊이는 다를지라도 슬픔의 빛깔만큼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535)
나는 그걸 알고 있을까?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을, 그들의 슬픔을....?
나의 불만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지요. 지어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던가요? 굴뚝 위에서 포효하는 곰처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진실이 도움이 되던가요? 침실 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빗줄기가 그 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릴 때는 또 어떤가요? 전혀 쓸모가 없지요.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거짓말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말이에요.(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