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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평점 :
사랑, 그것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시절이 나에겐 있었다. 내 마음은 늘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었지만 끝내 그 마음은 모래사장에 가닿지 못하는 파도처럼 부서지고 흩어질 뿐이었다. 그럴 때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길에 나와 내 감정을 쏟아부으면 그 길들은 얼마간 나의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난 더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더 멀리로 걸음을 내디뎠다. (192)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랑을 향한 마음이 부서지고 흩어질 때마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더 멀리 걸음을 내딛으며 느끼게 되는 감정과 깨달음을 잔잔하게 그려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행을 떠난 것이고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는 '소설'이지만 왠지 자꾸 에세이같은 느낌을 벗어날수가 없다.
파리 빌라,는 내가 자꾸만 굳이 '소설 빌라'라고 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소설이었다. 이 책이 소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오래 전에 친구가 동생이 쓴 글이라며 읽어보라고 했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을만큼 글을 잘 쓴다는 동생의 글을 읽으며 내가 자꾸만 이런저널 토를 달고 있어서 중간에 빼앗아가버린 기억이 더 강한 그 글은 하루의 일상을 담담하게, 아니 지극히 평범하게 그려내고 있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허무주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도대체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져야 하는 감정은 뭐지? 라거나 나는 뭘 생각해봐야하는거지? 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었는데 굳이 뭔가를 주려고 강조하지 않는 글이라는 것을 되새겨보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파리 빌라는 그 느낌과는 또 다르지만 기승전결을 기대하고 하나의 하일라이트같은 에피소드가 터져나와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무너뜨린다. 너무 잔잔히 흘러가고 있는데다 친구와의 만남, 여행지에서의 만남들이 너무도 우연히 이루어지고 단편적으로 끝나버리고 있어서 소설이라기 보다는 정말 한편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글 전체를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책을 다 읽고난 후 굳이 떠올려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시 아직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덜하다. 오히려 굳이 애쓰며 연결을 짓지 말고 '사랑'의 의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것일까?
그래도 이 소설은 꽤 멋진 글을 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 자꾸 사진이 끼어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있는동안 이야기속의 사진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과도 같이, 나의 마음도 현재의 역사가 이뤄지고 있고, 매일매일이 조금 다른 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좋다.
"모두가 현재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모든 과거는 미래를 낳는다. 오늘의 나는 사라지고 내일은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 매일매일이 조금 다른 '나'일 것이다. 내일이 온다"(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