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가락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곤 강물 속으로 흘러갔다. 고향 생각을 하는 이와 지나온 뱃길을 돌이켜 보는 이, 앞으로 어찌 될지 전혀 가늠할 길 없는 우리 인생의 여정까지…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나의 조국, 조선을 당당하게 우리의 손으로 찾아내는 것. 일본의 어거지 같은 강점에서 고향을 되찾아 자랑스레 고향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되어 버린 일, 조국에서 살기 위해서 먼 타국을 전전하면서도 우리에겐 그 소망과 과제가 있기에 고개를 들고 산다.
나라 잃은 민족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으려는 열정의 민족으로 살고 있기에 낯선 중국인의 눈짓 한번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p.52-53)
제시가 언젠가 인생의 좌절에 부딪힐 때 우리에게 제시가 지녔던 소중한 의미를 기억해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제시가 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된 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계속 전하는 사람이 되어 가기 바란다. 제시의 작은 몸짓과 표정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의미만큼 제시 자신의 행동과 표정이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p.89-90)
달음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넘어져서 다치기가 예사다. 넘어지고 울다가, 다시 뛰고 노래하고, 넘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뛰놀기를 시작한다. 지치지도 않는다. 넘어지는 걸 겁내하지도 않고, 넘어졌다고 낙심하지도 않는다. 한 번 울고 나면 그뿐이다. 그리고 다시 걷고 뛴다. 지금 우리 동포들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서 제시는 튼튼한 다리와 건강한 몸과 맘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도 잘 놀고 있다.
(p.101)
할아버지의 유언 중 일부
”과거를 회고하건대, 좋게 말해서 나의 인생은 국가와 민족이 사람다운 생을 살기 위하여 희생된 인생 중 일 인이었다고 하련다. 이 몸은 이제 세상사와 멀리 하였거니와 생전 함께한 가족은 부디 명심하여 고인의 미진한 애국애족정신, 즉 전체 동포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비겁은 취하지 말고,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말아라.”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