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생은 편도가 아니겠는가. 떠난다는 것은 깊게 들이쉬다 내뱉은 한숨과 같아서, 다시 집어삼킬 수는 없다. 다시 숨은 쉬겠지만, 한번 떠난 마음은 돌이킬 수 없다. 여행은, 그러므로 내뱉은 한숨과도 같은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73, 이탈리아:돌로미티. 박후기

사진1. 71
사진2. 백영옥, 겨울의 교토에서 여름의 달랏을 생각하다. 일본:교토/베트남:호치민, 달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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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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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처럼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참여하지 않은 채 그냥 관찰만 할 수 있는 이방인처럼 말이죠. 아마 내가 너무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글을 읽는 순간 어쩌면 이렇게 나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말을 하고 있을까,싶었다. 무엇이 되었든 아무튼 나 역시 너무 지쳐있다 라는 느낌에 마음이 저 밑바닥을 헤매며 어느 곳에도 가닿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실 처음 책을 펼쳐들었을 때 내 마음은 그저 그랬다. 바쁜 연말에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책 읽을 시간도 별로 없는데 저자의 이름만 보고 그저 사진으로 눈요기하면서 내가 떠나지 못하는 여행을 대리만족이라도 하면서 보내볼까,하는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런 마음이었지만 잠깐이라도 눈요기를 할만큼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고 책은 펼쳐지지 못한채 책상 한구석에 쌓여있기만 했다. 그런데 그날은 도저히 일을 할수가 없을만큼 마음이 가라앉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이다못해 억울함으로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다가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안정제'라는 제목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모르겠다. 이 세상 일은 우연처럼 필연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기적같은 일들로 인해 위안을 받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을 뿐이다.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에 대해 온전히 동감하며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해 본 아픔에 견주어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오로지 그들만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나의 이야기도 되는 것처럼 느끼며 글을 읽었다. 한때 나 역시 우울증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은 감정을 넘어서 무섭기도 했었고, 혼자 어두운 밤에 깨어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심장이 뛰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의 하루를 망가뜨리고 있을 때에도 그 모든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것조차 쉽게 이야기 꺼내지 못하는데 생선 작가 김동영은 자신의 정신병력까지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는 느낌은, 자비와 연민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힘들기도 했었고, 이렇게 극복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었고, 모든것이 엉망진창 뒤엉켜있기도 했었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말속에서 그냥 그렇게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 투영되는 미래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 달라질 것이 없을지라도 '나는 나'로서 스스로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라는 그 담담한 마음이 느껴지고 있어서 그렇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의 이야기에도 충분히 공감해주리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알고 있는 말들이 아니라 공감하며 건네주는 위로 같은 느낌에 아픈 마음이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있었던, 내 마음을 바닥치게 만들었던 관계의 상처는 조금 전 서로의 오해를 풀고 상대방이 내게 사과를 받아달라는 화해의 마음으로 조금은 치유가 되었다. 온전히 되살아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찾은 상태에서 화해의 손짓을 받으니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졌다. 이것 역시 이 책을 읽은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연결선이 된 것일까?

아무튼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지금 평소보다 조금 더 아파하는 그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내가 받은 위로만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도 분명 안정제로써 위안을 줄 것이라 믿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단정하게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징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어도 여유 있게 서 있을 수 있다면 자기조절력이 강하다는 신호다. 스트레스 받아도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은 괴로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자존심을 건드려도 쉽게 화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 지치고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고통이 찾아와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구나!`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며 산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은 닥쳐오기 마련이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살다보면 누구나 겪게 된다. 이것이 누구나 안고 가야 하는 삶의 숙명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을 다 드러내지 않고 괜찮은 척하며 그럴듯하게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기술을 배워가는 것이 우리 삶일지도 모르고."(29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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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8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 / 사회평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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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꼭 필요한 도발적인 주장이 담긴 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이 홍보문구가 더 도발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에 대해 할말은 없지만 내게는 좀 가볍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저자와 저자의 가족이 경험한 이야기, 대학을 가기위한 공부와 노력, 그리고 이 시대의 명문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버드와 유럽의 우수 대학의 교양과목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데 지금의 시대, 그러니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21세기에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특히 교양을 쌓기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그렇기는한데..

이 책의 제목은 원제(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와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인문학이 경시되고 있는 부분을 더 강조하기 위해 이런 제목을 썼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무래도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딱히 그런것도 아닌 것 같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으니 그렇다치고.

내가 너무 책의 제목에 대해 의미를 두고 있어서인지, 그리 강한 어조로 역설하지는 않아서 저자가 정말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는 시간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냥 교육이 전문화되어가고 있고 직업을 구하는 것 역시 전공을 살린 전문직이 선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현실적으로는 보다 넓게 교양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 교양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년 전 우연히 찾아 본 사이트를 통해 예일대학의 온라인 교양강좌를 보게 되었는데 강의 동영상이 그대로 올라와있고 강의록까지 내려받을 수 있었다. 로그인따위도 필요없이 말이다. 이 책에서도 "시간과 비용때문에 모두가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직접 경험할 수는 없어도 누구나 교양교육의 '장점'을 맛볼 수 있는" 시대에 다가가고 있다"(163)고 언급하고 있듯이 점점 더 교양교육은 그 기반을 넓혀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학업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데 - 그러면 왠지 인문학의 필요성이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만 강조되는 것 같아서 - 저자 역시 책의 말미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수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과거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도덕성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며 더 점진적이고 실용적일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과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자유민주주의적 프로젝트가 이루어낸 성과 중 하나가 혁명과 전쟁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각자가 의미와 성취감과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209)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다. "충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충분히 주변과 세상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역사를 들여다보지도 못한다"면서 확실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교양교육을 조금이라도 더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데 어딘지 좀 서둘러 결론짓는 듯한 느낌인데다 그것조차 조금은 당위적인 언급같아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시대가 바뀌고 교육의 질과 내용이 바뀌고 그 대상이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언제나 그렇듯 세부적이고 정밀한 전문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다방면으로 폭넓은 교양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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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아름답다
데이비드 맥캔들리스 지음, 방영호 옮김 / 생각과느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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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아름답다'라는 말은 그냥 얼핏 듣기에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맥캔들리스의 [지식은 아름답다]라는 책을 보면 나같은 무덤덤한 사람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을 하게 된다. 아니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지식'의 아름다움보다는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지식'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끼게 될 때 더욱더 감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퇴근 후 집에서 틈틈히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읽어보곤 했었는데 마침 간단상식1 부분을 읽고 있을 때였다. 그 내용에는 '아동 살해범들 - 누가 아동을 살해하는가?'가 있었고 부모/계부모가 60%이상을 차지한다는 그래픽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있었다. 지금 나 역시 그저 글로만 설명하고 있는데 백명의 사람 그림에서 반 이상이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사람들이 아동살해범이라는 것을 보면 놀라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놀란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메인뉴스에서 아동폭행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대부분 가족과 친인척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미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더 충격적이고 인상적인지 여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글로 접하는 정보에 좀 더 익숙해서인지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평소에도 흔히 접하는 원의 크기로 생각의 전염 수준을 나타내고 각 분야를 색깔로 표현해 한장 가득 이미지화시킨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한 글이었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고 - 실제로 나 역시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이 많은데다가 정말 '기본'상식처럼 퍼져있는 이야기도 많아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데이터를 시각화하면 할수록, 정보와 지식을 그림으로 그려볼수록 이들 사이의 차이가 더 잘 느껴지고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라고 맥캔들리스는 말하고 있다. 또한 "이해"가 핵심이며 정보를 이해하면 할수록 정보는 더더욱 연결되고 맥락화되어 지식이라는 형태로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식의 추구는 끝이 없으니, 하나의 그래픽이 갑자기 열개의 그래픽으로 펼쳐졌다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솔직히 어느 부분은 내게 무의미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냥 한번쯤 읽고 지나갈만한 지식이 담겨있는 그래픽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포그래픽은 그 형태만으로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더 의미가 확장되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처음 책을 펼쳐들때만해도 그저 그렇게 시각화된 아름다움과 추상적인 지식의 아름다움만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많이 다가서게 되었다. '지식은 아름답다'라는 명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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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면...


이방인처럼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참여하지 않은 채 그냥 관찰만 할 수 있는 이방인처럼 말이죠. 아마 내가 너무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유를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

 

지금껏 태어나서, 누군가를 증오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데 에너지를쓰고 싶지 않았다. 정말 미운 사람이 있어도, 무시하고 피하는 쪽을 택하며 살았다. 그러니 미움이 증오로 바뀔 틈이 없었다. 그럴 새가 없었다. 그냥 미움은 미움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져갔다. 이게 내가 싫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좋고 즐거운 일로만 인생을 채우기도 아까운데, 미움과 증오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미치도록 증오해주고 싶은 사람이 내 인생에 침입해 들어왔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고, 도망가면 쫓아와 마음에 상처를 주고 갔다. 그냥 잊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미치도록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내 삶의 모퉁이 뒤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심장에 칼 하나를 꽂아 넣었다. 도망가면 어느새 나타나 심장을 도려내고, 피하려 하면 쫓아와 마음을 난도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향해 증오라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증오의 감정을 안고 지내다보니, 가만히 있어도 구멍난 항아리처럼 에너지가 줄줄 새어나갔다.

증오의 감정이 내 가슴 한켠을 차지한 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쑥불쑥 그 감정이 치밀어오를 때마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틈만 나면 말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라고. 그리고 나를 달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참고 지내기도 했다. 증오의 감정이 마음에서 요동을 치면,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여행을 했다.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서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떠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럭저럭 얼마간은 버틸만했다. 그렇게 증오의 감정을 눌러가며 살았다. 그게, 더러운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내가 바란 것은 자유가 아니라, 그저 증오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자유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던 거다. 아니, 자유를 원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진짜 자유는 아니었다. 어쩌면 진정한 자유는 원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자유를 준다고 해도,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도 없을 거다. 말로 하는 자유, 부러움에 가득찬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를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자유를 선택하지 못하고 자유 쪽으로 움직여가지 못한다. 이건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우리는 대부분 것짓 자유, 마취약 같은 자유만 바랄 뿐 진짜 자유는 무서워하게 마련이다. 발리의 쿠데타에서, 스톡홀름 슬로센의 어느 카페에서 가짜 자유로 나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참아내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나라는 나약한 존재다. (23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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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5-12-2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단정하게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징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어도 여유 있게 서 있을 수 있다면 자기조절력이 강하다는 신호다. 스트레스 받아도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은 괴로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자존심을 건드려도 쉽게 화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 지치고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고통이 찾아와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구나!`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며 산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은 닥쳐오기 마련이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살다보면 누구나 겪게 된다. 이것이 누구나 안고 가야 하는 삶의 숙명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을 다 드러내지 않고 괜찮은 척하며 그럴듯하게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기술을 배워가는 것이 우리 삶일지도 모르고. (292-293)




chika 2015-12-2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게르만어로 자유 freiheit, 평화 friede, 친구 fraund의 어원은 모두 사랑하다 fri 라고 한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친구와 사랑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다. 그래서일까? 진정한 자유는, 혼자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혼자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묶여 있지 않음으로가 아니라 묶여 있으므로 자유를 느낄 수 있고, 혼자보다 둘이 되어야 평화로워질 수 있는 존재다. 혼자보다 좋은 둘이 아니라, 반드시 둘 이상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 우리 삶이다.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