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요?



스쿠터가 부서지면 내가 아빠한테 맞을까봐 걱정을 했던 거 같아. 분명 그랬을 거야.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깟 스쿠터는 다시 사면 되는 건데. 나는 도영이가 스쿠터보다 더 소중했는데.
수찬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귀에쏟아져 내리는 수찬이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목소리보다도 컸다. ‘도영이가 스쿠터보다 더 소중했는데‘ 누구에게도 이런 고백을 들어본 적 없었다. 아니 그런 말을 듣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수찬이의 고백은 거대한 공룡 앞다리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가슴에서는 심장이 떨어지는지 쿵! 소리도 들렸다.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낯설기도 했지만 삽시간에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흑"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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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

 

 

그가 오면 아침이 새뜻해진다

막연하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능숙한 의사같이

쭈그러진 어깨를 펴주고

무릎을 칼날로 세워준다

굴종의 자세로 늘어지는 삼겹살

화멸의 증거로 널브러진 토사물

타협의 지분으로 뒤섞인 찌개 냄새들을

벤젠이라는 항생제로 치료한다

새물내 나는 옷을 곧바로 입는 것보다

어제 입었던 셔츠가 편한 까닭은

나만 편들어주는 체온이 남아서겠지

눈치가 태도로 남아서겠지

 

환절기에는 병원마다 감기 환자로 줄을 선다

 

세탁소가 벗어놓은 옷으로 그득한 것은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프다는 뜻이다

품은 맞는데 기장이 짧은 미흡처럼

일상은 무언가의 트집을 무릅쓰는 일이다

 

물러서는 파도를 따라 잔걸음질치다가

되돌아서는 일이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보낼 때 확인했는데 배달되면 주머니마다 손 넣어본다

누구에게나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악동이 있는 것처럼

실망에 실망하지 말아야지

 

세탁물 들고 회진중인 그가 돌아서는 순간

풍기는 벤젠 냄새에서

휘발(揮發) 이라는 망각을 생각했다.

 

- 전영관, 슬픔도 태도가 된다, 회진 전문

 

 

 

 

새벽에, 분명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있는데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 잠을 잘수가 없었다. 막혀있는 방을 나와 마루에 대자로 누워봤더니 서늘한 기운에 감기걸릴 듯 하여 다시 방으로 들어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뭘 잘못먹었는지 어제 밤 늦게, 오늘 아침까지 설사. 퇴원 후 이주가 지났고 병원 검진을 갔다가 약을 조절해도 된다고 해서 끊어봤는데 새벽에 약을 먹어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남아있던 실밥 하나를 빼고 이제 샤워는 방수밴드없이 그냥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의사선생님이 여자분이어서 그런지 샤워해도 되냐는 물음에 당일은 비누칠하지 말고 물로만 간단히 하고 다음날부터는 때를 밀어도 된다느니, 사우나 같은 곳에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수술 후 두달이 지나서부터는 가능하다느니 같은 이야기도 먼저 해 줘서 좋았다. 어쩌면 일본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욕조에 몸 담그거나 온천욕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그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는건가? (라고 생각해보니 여기 온지도 십년이 넘은 듯 한데 그건 아닌가?)

 

검진 받으러 갔는데 이런 저런 상세한 설명을 해 주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뭐든지 다 물어보라는 태도로 기다려주고 퇴원하고 지낼만한지 꼼꼼하게 다 챙겨 확인해준다.

그런데 모니터를 보여주더니 ㅇ으응? 하게 되는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흉강경으로 수술을 하면서 내시경으로 촬영한 내 폐의 모습이란다. 베이비핑크...랑 비슷한 색인가? 거기에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보이고 그걸 잘라낸 조각 사진까지 보여준다. 검사를 하기 위해 잘라낸 폐의 일부 사진도 보여주고. 흡연을 하지 않아서 폐의 상태는 깨끗하다고 하는데, 그 말에 '그런데 왜 폐암인걸까요?'라는 물음을 던질뻔했다. 그걸 알면 뭐...

 

유전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내 체질은 원래 폐가 제일 약하다는 이야기를 겹쳐 생각하면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병에 걸린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3년전 수술을 하고 그 여파로 작년에도 수술을 했고 올해까지 해마다 수술을 받고 보니 이제는 슬슬 재발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폐쪽은 그래도 4개월에 한번 검사를 한다고 하니... 오래비의 경우도 담당 의사가 검사만이 살길이라고 했으니 그걸 믿어야지.

이번의 경우도 흉부 엑스레이와 시티를 찍고 변화가 없으니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6개월 있다가 찍기로 한 시티를 조금 앞당겨 3개월만에 찍었고 내과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소견이었지만 영상의학과에서는 크기가 커졌다는 소견이었고 흉부외과 선생님은 혹의 위치나 상태로 봤을 때는 수술을 해서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 솔직히 다시 수술을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의사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조직검사전까지는 분명하지 않으니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데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에서 조직검사전이지만 모두 악성종양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 어쨌든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불분명한 엑스레이 사진과 시티사진으로 바로 판단을 해 주셨으니 정말 초기에 수술이 가능했다는 것. 폐의 경우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이러 걸 불행중 다행? 이라고 해야하려나...

 

하아.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덥고. 아침부터 천둥 소리가 울리며 비가 살짝 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덥다. 하루하루가 그냥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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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줄곧 한곳에 살다 보면 당연한 줄 알았던 일이 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가 있다. 86


오사카,라고 하면 괜히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제주 4.3 이후에 오사카에 정착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고 한때는 그곳에서 번 엔화 수입으로 제주 경제를 살렸다고도 들었었으니까.
ㅡ 실상 오사카에 갔을 때, 그곳에서 한국인,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때부터도 그랬을 것 같지만, 우리 선조들은 일본인들이 회피하는 온갖 험한 일을 해야했고 그러면서 엄청난 멸시도 받았다고 들었다. 예전 재래식 회장실은 똥을 퍼야했는데 그 일을 도맡다시피했고 그들을 지칭하는 일본어 표현을 들었는데 익숙하지않은 말이라 잊어부렀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을테고 또한 멸시의 대상이었을것 같기는 하지만.


얘기가 딴데로 흐르고 있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태어나서부터 줄곧 한곳에 살다 보면 당연한 줄 알았던 일이 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가 있다.


내 일상 용어가 당연한 말인 줄 알았었는데, 그게 모두가 알아듣지 못할 사투리라는걸 깨달은 때가 떠올랐다.

가방 멜라지난 잘 앉주.
열심히 부탁하듯이 얘기했는데 다들 신경도 쓰지 않아서 무시하나, 라는 느낌에 속상하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다시 언급하니 모두 뭔말이냐는 표정.
그러고보니 어릴때 나는 외국인 개념도 없어서 티비에 나오는 모두가 다 한국말을 해서 외국어,라는 개념도 없고 내가 쓰는 말이 우리동네에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라는것도 몰랐었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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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인 날은 혀의 감각이 엄청 이상할 뿐 아프지는 않았다. 까칠까칠 고양이의 혀랑 비슷했다. 다음날 사람들이 말한 대로 살이 하얗게 오르고 혀 아래가 회색으로 변해서 징그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게 아니라 점점 더 아팠다. 자꾸 손으로 턱을 만졌다. 혀 아래의 살이 턱이라는 것을 처음 인지했다. 뜨겁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아예 생각할 수 없고 대부분의 음식이 먹기 불편했다.

그리고 가장 아픈 다음 날 통증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졌다.

 

어떤 상처는 나을수록 점점 더 아프면서 나아지는구나.

중간에 낫는 거 맞아? 하며 덜컥덜컥 불안했는데.

 

컨디션도 안 좋고 우울감이 짙고 무거울 때

문득 "아, 나 혀 데였던 거 이제 괜찮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열심히 낫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이길.

싹 나아서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기를.

100-101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냥 가볍게, 힘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짜증나는 일들을 글로 풀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은 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 스트레스가 쌓이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의무감들이 맘편히 글수다를 털어놓을 여유도 사라지게 했구나...

이제 다시 무게감 없이, 수다를 떨듯이 가볍게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좋아하는 일과 행복함과는 동일어가 아닐 수 있지만 그것 또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의 작가 지유라 님은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라고 표현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면 그때 다시 일을 바꾸지 뭐, 라고 별 일 아는 듯 툭 내뱉는다. 예전의 나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게 그 말은 무책임이 아니라, 나의 것인 내 삶의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고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한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맞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술도 잘 끝났고 이제 내 건강을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인데, 통증이 느껴지고 불안감이 엄습할 때 이 고통의 끝이 없을것만 같은 절망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할 때.

 

어제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열심히 낫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이길.

싹 나아서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기를.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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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집이 있다
지유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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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책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이 마음에 들어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은 돌아갈 곳이고 가족이고 그리움이다' '집은 쉬어 가라 자리를 내어준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라는 표제문구만 읽어봐도 그냥 좋을 것 같았다. 단순히 건물만을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삽화처럼 보이는 그림들을 먼저 다 훑어봤다. 어떻게 이런 그림이 나올까, 싶었는데 작가는 모든 그림을 나무에 그려넣는 것 같았다. 연작처럼 보이는 작품들도 각각의 나무에 그려넣고 이어놓은 것이라는 걸 생각하며 작품을 다시 보니 더욱 놀라웠다. 가화만사성을 비롯하여 직접 보고 싶은 작품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작가의 집 그림들이 그냥 보기 이쁘게 그린 집들이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작품과 그에 더해진 작가의 글을 읽으니 그림이 또 새롭게 다가온다.

그냥 비슷비슷해 보이는 집들일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 세월이 담겨있어 그 살아 온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림의 소재를 찾아 발길을 멈췄던 '우리 시계점'의 이야기는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이 아렸다. 시간을 두고 여러번 찾아간 곳이고 주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서 자식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다 꿰고 있고 기자라는 막내아들과 연락하며 안부도 묻던 사이였다고 하는데......

 

작가가 살았던 집 이야기를 듣고 꽃이 가득하고 실내화가 걸려있는 집의 그림을 보면서 내가 살아 온 집을 떠올리기도 한다. 2,3년이면 꼭 이사를 다녔던 어린 시절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마당이 넓은 집과 옥상에서 올려다보던 밤하늘의 별빛은 그 풍경속에 담겨있는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주고 있기도 하고....

 

무겁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살아왔던 집의 모습은 잠시 추억에 더해 '삶'에 대한 생각에 잠겨들게 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 속의 집은 또 아름다운만큼 내가 봤었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처음 볼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의 느낌이 또 다를 것 같다. 작품 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인데 기회가 되면 작가님의 갤러리에 걸려있을 작품의 실물을 보고 싶은 것과는 또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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