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진

 

 

그가 오면 아침이 새뜻해진다

막연하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능숙한 의사같이

쭈그러진 어깨를 펴주고

무릎을 칼날로 세워준다

굴종의 자세로 늘어지는 삼겹살

화멸의 증거로 널브러진 토사물

타협의 지분으로 뒤섞인 찌개 냄새들을

벤젠이라는 항생제로 치료한다

새물내 나는 옷을 곧바로 입는 것보다

어제 입었던 셔츠가 편한 까닭은

나만 편들어주는 체온이 남아서겠지

눈치가 태도로 남아서겠지

 

환절기에는 병원마다 감기 환자로 줄을 선다

 

세탁소가 벗어놓은 옷으로 그득한 것은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프다는 뜻이다

품은 맞는데 기장이 짧은 미흡처럼

일상은 무언가의 트집을 무릅쓰는 일이다

 

물러서는 파도를 따라 잔걸음질치다가

되돌아서는 일이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보낼 때 확인했는데 배달되면 주머니마다 손 넣어본다

누구에게나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악동이 있는 것처럼

실망에 실망하지 말아야지

 

세탁물 들고 회진중인 그가 돌아서는 순간

풍기는 벤젠 냄새에서

휘발(揮發) 이라는 망각을 생각했다.

 

- 전영관, 슬픔도 태도가 된다, 회진 전문

 

 

 

 

새벽에, 분명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있는데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 잠을 잘수가 없었다. 막혀있는 방을 나와 마루에 대자로 누워봤더니 서늘한 기운에 감기걸릴 듯 하여 다시 방으로 들어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뭘 잘못먹었는지 어제 밤 늦게, 오늘 아침까지 설사. 퇴원 후 이주가 지났고 병원 검진을 갔다가 약을 조절해도 된다고 해서 끊어봤는데 새벽에 약을 먹어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남아있던 실밥 하나를 빼고 이제 샤워는 방수밴드없이 그냥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의사선생님이 여자분이어서 그런지 샤워해도 되냐는 물음에 당일은 비누칠하지 말고 물로만 간단히 하고 다음날부터는 때를 밀어도 된다느니, 사우나 같은 곳에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수술 후 두달이 지나서부터는 가능하다느니 같은 이야기도 먼저 해 줘서 좋았다. 어쩌면 일본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욕조에 몸 담그거나 온천욕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그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는건가? (라고 생각해보니 여기 온지도 십년이 넘은 듯 한데 그건 아닌가?)

 

검진 받으러 갔는데 이런 저런 상세한 설명을 해 주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뭐든지 다 물어보라는 태도로 기다려주고 퇴원하고 지낼만한지 꼼꼼하게 다 챙겨 확인해준다.

그런데 모니터를 보여주더니 ㅇ으응? 하게 되는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흉강경으로 수술을 하면서 내시경으로 촬영한 내 폐의 모습이란다. 베이비핑크...랑 비슷한 색인가? 거기에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보이고 그걸 잘라낸 조각 사진까지 보여준다. 검사를 하기 위해 잘라낸 폐의 일부 사진도 보여주고. 흡연을 하지 않아서 폐의 상태는 깨끗하다고 하는데, 그 말에 '그런데 왜 폐암인걸까요?'라는 물음을 던질뻔했다. 그걸 알면 뭐...

 

유전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내 체질은 원래 폐가 제일 약하다는 이야기를 겹쳐 생각하면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병에 걸린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3년전 수술을 하고 그 여파로 작년에도 수술을 했고 올해까지 해마다 수술을 받고 보니 이제는 슬슬 재발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폐쪽은 그래도 4개월에 한번 검사를 한다고 하니... 오래비의 경우도 담당 의사가 검사만이 살길이라고 했으니 그걸 믿어야지.

이번의 경우도 흉부 엑스레이와 시티를 찍고 변화가 없으니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6개월 있다가 찍기로 한 시티를 조금 앞당겨 3개월만에 찍었고 내과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소견이었지만 영상의학과에서는 크기가 커졌다는 소견이었고 흉부외과 선생님은 혹의 위치나 상태로 봤을 때는 수술을 해서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 솔직히 다시 수술을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의사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조직검사전까지는 분명하지 않으니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데 수술을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에서 조직검사전이지만 모두 악성종양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 어쨌든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불분명한 엑스레이 사진과 시티사진으로 바로 판단을 해 주셨으니 정말 초기에 수술이 가능했다는 것. 폐의 경우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이러 걸 불행중 다행? 이라고 해야하려나...

 

하아.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덥고. 아침부터 천둥 소리가 울리며 비가 살짝 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덥다. 하루하루가 그냥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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