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우리와 함께할 의향이 있다면...

며칠전에 배달된 이 열정적인 초대장은 특정 수신자에게 보낸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그저 애정을 듬뿍 담아 부른 것일 뿐이다.



0104


끝없는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타인의 정체성을 분석하고 현실과 사물들의 본성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28


0105


글쓰기는 풀 사이를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어야 할지 모른다. 신선한 물이 수줍어하면서도 마르지 아니한 채 솟아나오든 말이다. 그 나지막하고 수줍은 삶의 노래는 상념에 젖은 막달레나의 그윽한 눈과 닮았지, 물이 종종 나오지 않는 수도관과 같은 모호하고 건조한 글쓰기를 닮지는 않았다. 33

풀 사이를 흐르는 물, 이라니요.

피곤해서 정신이 없으니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어봐도 뭔말인가, 하고 있는데. 신선한 물이 수줍어하면서도 마르지 아니한 채 솟아나오진 않고 있어서 오늘의 읽기와 쓰기는 이만.


0106


역사 없는 그 순간들의 연속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역사 기술에 의해 그 상관관계까 만들어지고 덧붙여져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삶은 뒤돌아봐야만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앞을 보며 살면서,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향하여 살아가야 할지라도 말이다. 55



"그는 과거도 늘 현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의 이미지들, 빛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들은 우주 어디에든 떠돌며 계속 생존하기 때문이다. 83

다뉴브는 사라지지 않는다. 헛된 약속도 안 한다. 끄떡없이 견디고 있다. 변함없이 우리 눈앞에서 흘러간다. 신학의 위험도, 이념의 도착到錯도, 사랑의 실망도 모른 채로, 만질 수 있고 실재하는 강이 저기 있다. 강에 삶을 바친 사람은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 강과 조화롭게 하나되어 흘러간다고 느낀다. 이 끊임없는 조화는 강의 신과 신자 모두로 하여금 계곡을 거쳐 하구로 흘러가고 있음을 잊게 한다. 네베클로프스키가 콰인과 마찬가지로 손가락으로 계속 강을 가리키면서 '다뉴브 강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끊임없는 정열로 변함없이 강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86



오늘 새삼스럽게 다뉴브의 출판이 언제인지 봤습니다. 초판 발행이 1986년.

흐르는 강물에 손을 넣었을 때,의 강은 이미 그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강이지만 여전히 같은 강이라 한다...는 식의 촘촘한 개념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던 - 음..지금도 여전히 못하지만;;; - 것이 떠오릅니다.

빛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들이 우주어디에든 떠돌며 계속 생존한다는 글을 읽으며 흠칫,했고요. 소멸되지 않는 과거의 숨결 - 산소,라 하는 것보다는 숨결이라 하는게 좀 더 나으려나 싶은데 - 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머나먼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누군가와 한 호흡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얘기가 떠오르면서 (아, 이건 과학적인 이야기인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런 시점이 안타깝...으응? ;;;;)

글을 쓰다보니 다뉴브를 읽으며 글쓰기도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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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렌 허프 지음, 정해영 옮김 / ㅁ(미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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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도 가족도 경력도 경제적 안정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비록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행복과 평화, 소속감과 사랑이 모두 다음 길모퉁이, 다음 도시, 다음 나라에 있다고 속삭인다. 그저 계속 움직이며 다음 장소는 더 나은 곳이기를 희망하라고 말이다. 반드시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다음번 굽이만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450)


마지막 문장은 없는 것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것은 그저 소망일 뿐 현실은 저 마지막 문장이 진실임을 느끼게 하며 절대 빼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공감을 형성해보려 하지만 내 상상의 범위를 너무나 넘어선 로렌 허프의 글은 솔직히 좀 쉽지 않았다. 소설이나 아니, 소설보다는 오히려 뉴스에서 더 많이 봤던 것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로렌 허프가 실제로 살아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인 것이라는 사실이 책을 읽다가도 순간순간 흠칫하게 된다. 


처음 글을 읽으며 별일 아닌 것처럼 툭툭 던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의 부족한 상상력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창밖의 거리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일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종교관에 따라 종교집단에서 공동육아처럼 키워졌고 그 안에서 성교육도 없이 성추행을 당하면서 자랐고 공군에 입대한 후에는 동성애자라는 것으로 인해 협박을 당하다가 결국 타의로 제대를 하게 되고 노숙자가 될뻔했던 그 비참하고 막막한 순간의 이야기까지 다시 떠올려 볼 때 어떻게 그리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지...

그에 더하여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은 본인이 가난을 겪어 본 사람뿐"(136)이라는 등의 삶의 모습에 대한 통찰도 담겨있는 에세이를 읽다보면, 이야기에만 빠져있다가 잠시 삶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저 마지막 문장이 더 마음에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로렌 허프는 스스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저 자신 스스로 지금 현재가 최선이며 항상 최선이고 좋을 것임을, 다음 굽이를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로렌 허프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강인하고 굳센 마음을 갖고 올곧게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로렌 허프가 살아왔었고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나의 세상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다름이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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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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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이라는 제목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박영규 역사소설,이라는 것만으로 한번 더 기대를 걸어보며 책을 펼쳤다. 좀 쌩뚱맞을지 모르지만 나는 미스테리 소설을 기대했고 나의 기대와 상관없이 박영규 작가님은 역사소설을 쓰는 분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음은 오로지 나의 잘못이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활인'을 역사소설로 읽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역병이 창궐한 마을에서 시작한다. 활인원에 속한 승려 탄선과 그의 제자 소비는 역병이 도는 마을로 들어가 환자들을 살피는데 역병으로 죽어가는 시신을 처리하는 오작인 중 한명이 시신 하나를 붙들고 역병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 오작인은 노중례라는 자이며 천인이지만 글도 읽을 수 있다. 사실 노중례는 본래 천인이 아니라 글을 배우고 급제까지 하였지만 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결을 하며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관노가 된 것이었다. 

노중례가 살해된 시신이라 말한 것을 조사하고 실제 범인이 잡히면서 탄선은 그를 눈여겨보게 되고 그에게 의술을 배울 것을 권한다. 고려왕조가 무너지며 유교를 버리고 승려가 된 탄선은 그저 활인원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뿐, 제자를 키울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노중례를 만나고 그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탄선의 곁에서 의술을 펼치는 소비는 갓난아이일 때 국무 가이의 집 앞에 버려져 가이가 양녀로 키웠으며 그녀의 총명함을 아는 가이가 탄선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소아와 부인병은 오히려 탄선을 능가하는 의술을 펼치게 되었다. 


활인은 활인원에서 의술을 배우고 약자를 보살피는 탄선과 소비, 노중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노중례는 아버지의 살인죄와 죽음에 의문을 갖고 그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여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를 찾게 된다. 활인원의 의술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인데 그에게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 온 자가 만약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라면 그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리고 소비에게도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조선초 활인원의 활동과 그를 통해 마난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들의 이야기에서 진정 의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세 인물 중 특히 노중례를 중심으로 '활인'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의 진행이다. 

소설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스토리텔링의 흥미로움은 그리 크지 않지만 확실히 역사적 내용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는 믿고 읽을 수 있어서 그것은 맘에 드는 소설이다. 

이제 하권에서는 노중례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드디어 밝히게 되는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어떻게 이루게 되는지, 소비의 숨겨진 비밀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 무엇보다 활인원의 활인을 위한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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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다시 정신이 들자 가난에 찌든 처참한 현실이 별안간 눈앞에 밀어닥쳤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현실 속의 가난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밀림이 곧 가난이라는 것을, 즉 가난과 하나가 되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산크리스토발의 시장이 한 말에 따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늘 더럽고 불결한 현실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녜에 인디오 아이들은 모두 꾀죄죄하고 땟국이 질질 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 덕분인지 기가 막힐 정도로 사진을 잘 받았다. 아열대 기후라는 특성을고려할 때, 저들의 비참한 삶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울 수있어도 거대한 폭포나 폭풍우에 맞설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 P15

인간의 정신을 파멸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비극적인 운명을 이해하려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눈여겨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른은 어떤 것이든 자신과 상관없이 계속 존재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자기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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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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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림 보는 것이 좋고 그림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는 것을 좋아해 왠만한 그림 이야기책은 재미있다며 읽는 편이다. 그래서 꽤 많은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림에 담겨있는 의미이거나 그림을 그린 화가의 생애와 그 자신의 삶이 작품에 미친 영향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많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 역시 그리 큰 기대 없이 -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천주교 사제가 썼다는 글에 대해, 더구나 종교화가 아닌 세속화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해 그저 두루두루 흔한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의 접합점을 찾아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썼으려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 좀 다른 느낌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까지는 그리 낯설지 않지만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체험을 그린다"는 호퍼의 주장(29)이라는 말은 처음인듯 새롭다. 가벼운 그림읽기에 점점 익숙해져있었는데 인문학적인 그림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글의 내용에 빠져들게 된다. 그림을 보며 감동을 느끼고 즐거워할 수도 있고 교훈을 얻고 역사를 느끼기도 하며 그저 뚜렷한 이유없이 마냥 좋기만 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예술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며 모든 것이 사람에게로 향해있음을 깨닫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좋다. 


무심코 그저 좋다며 읽다가 문득, 호퍼의 그림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는 계속 인간중심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종교화가 아닌 세속화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신부님의 그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톨릭교회 역시 2차바티칸 공의회를 지나며 인간중심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 곳곳에 그 내용이 담겨있어 내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그리고 오노레 도미에의 삶과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그림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님의 이야기와 맞물려 더 각인되듯 다가온다. 아마도 전체적으로 낯설지 않은 그림들이지만 처음 보는 그림인 듯, 또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야기인 듯 많은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역사적 증언으로서, 천개의 언어를 뛰어넘는 한 점 그림의 힘"이라는 문구가 그저 그런 화려한 광고문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글에 담겨있는 의미가 딱 그렇다는 느낌이라는 말은 또 좀 지나친 말이 되려나, 싶지만 인문학적인 통찰과 예술적인 해설과 신앙의 삼위일체처럼 어우러지는 글이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와 좋았다. 시간을 두고 조금 더 많은 그림을 찾아보고 다시 이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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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8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장바구니로 쏙! 안그래도 관심가던 책인데 치카님 리뷰보니 더 보고싶네요. ^^

chika 2022-01-08 13:58   좋아요 0 | URL
소장하면서 나중에 다시 새겨보고싶은 책이 되었어요! 다음 글을 더 기대하게 되는 책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