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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인의 열두 달 - 한 해를 되짚어 보는 월간 뜨개 기록
엘리자베스 짐머만 지음, 서라미 옮김, 한미란 감수 / 윌스타일 / 2024년 6월
평점 :
뜨개인의 열두 달,이라니.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 미스 마플도 뜨개질을 하며 추리에 몰두하기도 하며 미세스 댈러웨이 역시 뜨개바늘을 방어기제 삼아 뜨개질을 했다고 하니 뜨개질을 배우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이면 집에는 털실뭉치가 굴러다니고 뜨거운 물을 담은 주전자에 한번 사용했다가 뜯은 뜨개실을 통과시키면 꾸불거리는 실이 새것처럼 펴지는 기적같은 과학적 원리를 실생활에서 배우며 뜨개질의 경이로움을 보기는 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뜨개질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했다. 전문가 같은 솜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만이라도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은 뜨개 인생(!)을 사는 엘리자베스 짐머만의 두번째 책이며 사랑해마지않는 뜨개에 대한 이야기를 월간 뜨개처럼 열두 달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부록처럼 뜨개를 하는 간결한 지침이 적혀있지만 뜨개코를 잡지도 못하는 내게는 무용지물일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 간결한 지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첫 시작은 아란무늬에 대한것으로 뜨개 무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각 가정마다 자신만의 특별한 무늬를 갖고 있는 이유가 바다생활을 하는 가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구별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좀 슬프다. 최근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 때 목걸이를 보면 딸을 찾을 수 있다고 울부짖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오래 전 아일랜드에서 신부님 한 분이 오셨고 전쟁 이후 소득도 없이 고되게 이중 삼중의 삶을 살아가던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 고민을 하다가 양을 키우고 각종 도구를 구입해 여성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양모카디건을 제작 판매를 시작했다. 그 유명한 제주 성이시돌 목장의 양모로 만든 한림수직의 기원이다. 척박하고 고된 삶 속에서도 풍요로운 생활을 꿈꿀 수 있게 해 준 한림 수직의 업적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로 짜는 것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림수직 실을 구입해 손뜨개로 옷을 뜨기도 했었으니 내게 있어 뜨개질은 단순히 취미,라고만 할수는 없다.
이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뜨개가 궁금하고 뜨개인의 열두 달이 궁금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뜨개를 전혀 모르는 내게는 솔직히 쉽지 않은 글읽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겨울장갑을 겨울이 아니라 5월이 되면 준비를 해 두고 겨울에 완성된 뜨개장갑을 사용한다거나 실이 너무 많이 남거나 모자라는 경우 단골집을 이용하여 반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스웨터인 경우 소매를 마지막에 뜨면서 색을 맞춰 다른 실을 사용하면 되는데 반드시 소매끝은 메인과 같은 색으로 사용해야한다거나 하는 팁 같은 내용들은 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양말을 뜨면서 발에 칼이 달린 듯 늘 뒤꿈치가 닳아버리는 것을 방법을 강구하는 글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으로 합성실이 아닌 울에 알러지가 있는 아이에게 뜨개옷을 입히기 위한 노력으로 색실 하나만을 섞어서 입혀보고 다시 하나를 더 늘려보는 식으로 조금씩 울에 대한 알러지 없이 손주들에게 옷을 입혀보기 위해 스무개 이상의 뜨개옷을 만들어보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는 찐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좋았다.
이건 단지 뜨개옷만이 아니라 더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역시 그 이상의 정성이 들어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위해 뜨개옷을 뜨는 것은 시작부터 완성까지, 아니 당사자가 그 옷을 입기까지 엄청난 마음이 들어가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뜨개인의 열두 달은 아직- 뜨개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지금은 아직,이라 말하고 싶다. 언제가 뜨개인이 될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뜨개인이 아닌 내게 뜨개에 대한 지침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열두 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