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해볼까.. 했지만 결국 질렀다. 오늘만 책박스 두 개 주문. 이럴꺼였으면 오전에 그냥 확 다 사버릴껄. 추석전에 배송받으려면 이번주에는 주문을 해야만해, 라는 조급함으로 인해 다른 걸 하다가도 자꾸만 책에 눈길이 간다.

아니, 정말 나 미쳤나봐. 지지난주 책 정리하면서 우체국 택배박스 가장 큰 거로 두 개를 채우고도 남는 책이 모두 읽지 않은 책인데 또 추석연휴를 핑계로 책을 사다니. 이러다가 평생 다 못읽을 책을 집에 쌓아두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후회도 잠시. 신간을 보니 또 책 주문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은... 어쩐다냐. 서점에 들어와보지 않아도 신간 소식을 알게 되는.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면 안된다네. 어제 한밤중에 괜히 페북에 들어갔다가 알지도 못했던 북스피어 신간도 봐버렸고. 어쩌란말인가!

 

 

 

 

 

 

 

 

 북숍스토리는 좀 전에 받았는데 예상외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세계 서점의 단면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래도 사진이 없다는 건 그만큼 글에 더 많은 걸 담았다는 뜻일지도 모르니 실망하지는 말아야지. 기대하고 있는 책이니.

[서점은 죽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도 있다. "서점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고 있는데도 아, 하게 된다는. ㅎ

문학으로의 모험은 조금 비싸다는 느낌에 어떤 책인지 더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냥 질러버렸다. 사실 이 책 저 책 집어넣다가 오만원 채우고 무민 텀블러를 받고 싶어서 그냥 이 책 하나 훅 집어넣어서 텀블러 구매 완료. 하아.. 이제 더 이상 굿즈에는!!

 

 

 

 

 

 

 

 

콜럼바인은 도입부분을 읽다가 잠시 멈춰있는 상태다. 아무래도 시작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인 것인데 논픽션이라는 느낌보다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철저한 검증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라는 것 때문에 왠지 글 읽기가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예상외로 쓱쓱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주말에 진도를 확 나가려고 했는데 예상치못한 구토증세로 화요일까지 기운없이 드러누워있느라 소설 책 한 권도 채 다 읽지 못했다. 끄응.

스키엔티아,는 책소개를 통해 처음 봤다. 스키엔티아는 지식, 과학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과학의 어원이랜다. 단단하고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이야기가 의외로 따뜻하다니. 지금 현재로서는 이 책이 제일 관심사.

 

 

 

 

 

 

 

 

욜로욜로 시리즈를 통해 재출간되었다는 박지리 작가의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출판되고 얼마 되지 않아 작가의 부고 소식이 떠 이게 사실일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그런 소식이 없어서 더 슬펐던 기억. 박지리 작가의 작품은 합체도 읽었고.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갖고 있으려다가 청소년을 위한 도서 기증을 원해서 한참을 망설이고 책을 집어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책의 생명을 위해 기증해버렸는데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증발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가 이미 지난달에 나온 신간이었다니. "저자는 와다 하루키에게 보내는 편지로 재일한국인이라는 소수자로서 본 일본 사회의 민낯과 지식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에 선명한 입장표명을 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보편적 가치와 연대에서 희망을 찾는다. 안보투쟁, 평화헌법,후쿠시마 원전 등을 사례로 연대의 가능성을 찾는다. 일본의 지식인에게 위안부 연대를 표명하는 만큼 한국의 지식인들이 알아야할 사안이다." 뭐..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기사를 훑어보다가 건강보험 체납이율에 대한 글을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직장인이라 터무니없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보험료가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 전국민의 의료복지를 위해 감수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째 그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이라니. 정말 오죽하면 건강보험료를 연체하겠냐, 싶은데 그 연체 이율이 건강보험공단은 고리대금업자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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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2017-09-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책 진짜 많이 사셨네요!! 부럽습니다 :) 다 잘 고르신듯!!

chika 2017-09-25 14:03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 책정리를 좀 하고나면 또 새 책을 마구 사들이고 있어서... 책정리하는 목표량을 더 높여야할까봐요;;;


북깨비 2017-10-24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진짜 많이 사셨네요 부럽습니다!! ㅎㅎ 지금 한창 알라딘에서 아이쇼핑 하다가 치카님 지르신 책중에 제 장바구니에 담은 책도 몇 권 보이길래 아. 내가 잘 골랐네. 안심하면서 아이쇼핑은 계속 됩니다. 저는 과연 몇 권이나 주문하게 될는지.. ㅎㅎㅎ

chika 2017-10-29 21:02   좋아요 1 | URL
책은 사도사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
읽지 않은 책이 많이 쌓여있어도 여전히 신간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무 일 없이 잠들기 전에 폰을 충전시키느라 전원을 연결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아침에 다시 폰을 열었는데 SD 카드 손상, 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건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폰의 전원을 껐다가 켰다. 컴으로도 연결을 해 봤다. 결국 마지막 희망을 안고 대리점으로 가봤더니 데이터 복구는 안된다고 한다.

한달도 안된 여행사진이 그 카드에 있습니다. 지난 번 폰이 갑자기 사망해버려서 데이터를 하나도 복구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번에 여행갈 때 일부러 SD카드 삽입하고 모든 사진을 거기에 저장했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외장카드가 아무런 이유없이,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손상되어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다는 말입니까?

뭐라고 더 얘길해봐야 대리점 직원이 뭐라할 수 있겠는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설 복구업체 위치만을 알려줄뿐이다. 다만 복구비용이 꽤 비쌀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이보슈, 사설 복구업체에서 데이터를 살릴 수 있는거라면 더 큰 자본을 갖고 있는 통신업체에서는 좀 더 쉽게 데이터 복구를 할 수 있는거 아닌가? 라는 말은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는 울림이겠지. 어제는 아무 생각도 못하겠더니.. 생각할수록 화가난다.

나, 다음달에 또 여행을 가야하는데 폰 사진을 믿을 수 있어야지. 그러면 사진을 위해 백만원짜리 사진기를 사야해? 진정?

아, 아무말이나 막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저런 것을 빨리 잊을 수 있게 하는 건 역시 신간 둘러보기..일까? 아, 근데 그것도 지금 어깨에 너무 힘을 줘서 그랬는지 통증이 심해져 괜히 집중을 하려니 더 어깨뭉침으로 아픈 느낌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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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1. 보온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오리진 시리즈 1
윤태호 지음, 이정모 교양 글, 김진화 교양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흔히 '교양'이라고 말하는 단어를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라고 했는데, 이 장대한 프로젝트의 첫번째 책이 '보온'이라니. 게다가 미래에서 온 로봇이 등장한다는데 '봉투'라니. 사실 책을 처음 받고 대충 훑었을 때 이건 뭔가, 싶었다. 그러고는 만화니까 나중에 여유있으면 펼쳐봐야지 하고 그대로 책탑에 쌓아뒀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속이 안좋아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이틀을 드러누워 있으면서 이 책을 펼쳐들어봤다.

만일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대로 그렇게 책탑에 쌓여있었을지도 모를 이 책을 펼쳐들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할까? 아파 죽겠는 마음에도 아픈것이 다 나쁜결과만을 주는 건 아니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백권이나 되는 책을 보냐? 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윤태호 작가님의 '오리진'은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고 있다.

 

오리진,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의미한다. 그렇게 거창한 주제의 첫 시작이 '보온'이라니. 조금 뜬금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나갈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하다 망해버린 회사에서 시작한다. 아니, 그보다 첫 시작은 그렇게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하더라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이라고. 서로의 온정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일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 로봇 봉투의 활약이다. 현재의 시간에서 부도난 인공지능로봇 회사에 근무하는 동구리 박사의 후손이 먼 미래에서 21세기에 맞는 인공지능로봇을 보낸다. 그 회사에 투자를 했다가 미래와 희망을 잃게 된 가장 봉황씨는 우여곡절끝에 회사연구원 네명을 셋방에 들이게 되고 인공지능로봇은 봉황씨의 둘째가 되어 봉원에 이은 봉투라는 이름을 갖고 생활하게 된다.

처음 이런 스토리가 굳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글을 읽을수록 역시 스토리와 짜임새는 허투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봉투의 등장은 사람에게 중요한 '보온'의 의미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간다. "생명유지의 본능, 살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체온을 유지해야 하고 그것이 생존의 기초'인 것이다. 또 그 '보온'의 의미는 논리영역만 활성화시킨 인공지능로봇에 비활성화된 '생각'이 열리면서 그것이 연민을 드러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같은 따스함이면 같아질 수 있을까" 라는 봉투의 물음은 '보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부도난 회사의 연구원들을 연민의 정으로 집에 데리고 온 봉황씨의 이야기나, 추위에 떨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따뜻하게 품에 안아 준 봉투의 이야기 모두가 생명의 기원인 보온의 또 다른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더 확장하여 지구의 보온은 지구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확장하려 하고 있을 때 본 스토리가 끝나고 이정모, 김진화의 보온에 대한 추가설명이 이어진다. 전문적으로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을 쌓는데는 모자람이 없다. 이 두가지 형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져 생명의 기원인 '보온'의 한꾸러미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이정모 작가의 말로 대신하련다. "보온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더위에 고생하고 추위에 목숨이 위태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 모든 이를 안아주자. 우리 가슴에 봉투의 마음을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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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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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아니 많이 놀라운 소설이었다. 스릴러 소설이기에 예상외의 엄청난 반전이 있다거나 뜻밖의 전개와 결말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예상못한 반전의 재미보다 더 큰 느낌은 한 인간의 마음과 정신력에 대한 감동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뜬금없으면서도 긴박하다. 자살을 하려는 한 남자가 있고 그가 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요! 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아니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라는 쪽지가 그를 살린다.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그는 이런 쪽지를 쓰게 되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테드라는 남자는 자신의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이 있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느낌인데 왜 자살을 하려는걸까.

그런데 자살의 이유가 아니라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자살을 완성하기 위한 이야기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청부살인처럼 테드가 인간쓰레기같은 누군가를 죽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테드를 죽여주는 것으로 자살을 대신한다는 전개가 이루어진다. 도대체 이들 모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테드의 기억은 온전하지가 않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일까, 어느 테드가 정말 테드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듯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점점 더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어버린다.

이런 부분이 점점 더 이야기에 몰두하여 집중하게 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실체에 다가서면서 반전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결론에 이르러 진실의 조각을 보게 되었을 때 이 이야기는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아, 그런데 어쩌나. 나의 기억력은 테드 이상으로 믿을만한게 아니어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거리고 있다. 책을 읽고 달랑 석줄의 느낌을 남겨놓고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다시 정리하려고 보니 기억에 남겨진 이야기가 없다. 뭔가 테드의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것처럼 나 역시 이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읽어봐야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진실을 찾을 수 있게 될까?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었던 기억에 더하여 되돌아보는 이 이야기는 더욱 풍부한 즐거움과 깊이있는 감동을 주게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마음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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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당 마당에는 이렇게 커다란 하귤 나무와 곳곳에 꽃나무 과실나무 꽃..들이 심어져 있다. 그냥 들풀처럼 아무렇게나 자라게 두는 듯 하지만 그래도 가끔 풀도 메고 청소하고 화단을 가꾼다.

자기집 마당이 있는 것처럼 성당에도 마당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전에 이 성당 마당에 한떼의 무리가 다녀갔다. 이름표도 달고 있고 유모차도 끌고오고 아이들도 데리고 온 걸 보면 분명 뭔가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듯 한데.

이 사람들이 이 마당에 난입해서 여기저기 풀들을 뜯어가고, 내년 여름이면 저렇게 숙성되어 노오랗게 익어갈 하귤열매를, 시퍼렇게 살아있는 열매를 따고 나뭇가지를 꺾고 난리가 아니다.

아, 아까 근처에 있을 때 한마디 했어야했는데. 그때는 내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고 저 멀리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자기 집 마당처럼 헤집어놓고 간다. 분명 자기들은 뭔가 자연을 느낀답시고 그따위 짓을 했겠지만.

내가 볼 때 그들은 자연파괴자들일뿐이다.

더구나 남의 집 마당에서 무슨 행패인가.

아무리 친한 옆집이라 해도 맘대로 들어가서 나뭇가지 꺾어들고 익지도 않은 열매를 손으로 마구 비틀어 따면 그게 어디 이웃인가?

성당이 열린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건 말이 안되지. 아, 생각할수록 화가나는데? 도대체 저들의 정체가 뭘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난입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참아서는안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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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9-1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안타깝네요.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아이들은 그저 모든 게 신기한 것이죠. 그런 것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감각적 자극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로봇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성찰적 의식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니까요. 해서 아이들이 그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 부모가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놔두거나 부추기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워서 무슨 짓을 하든 걍 흡족하게 바라만 보는 때가 있다는 것이죠. 격려하고 쓰담쓰담하면서까지요. 그 순간은 부모로서의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성찰적 의식이 마비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무리 고학력자, 지식인, 교양인이라 하더라도 똑같다는 것을 거듭 느낍니다. 한 가지 감정에 몰입돼 있을 때는 반성적·성찰적·이성적 의식은 하얗게 증발해버립니다.

혹은 아이와 그 부모가 함께 있을 때는 그 아이의 의식 없는 행동을 제3자가 나서서 제지하기는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그 부모와 언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천방지축 그렇게 날뛰어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는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 일쑤죠. 이런 상황에서 나서면 오히려 오지랖 넓다고 비야냥받기 쉬운 게 한국적 현실입니다. 이런 의식 구조가 우리 한국인들에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해서 자신한테 직접적 손해와 해가 끼쳐오지 않는 한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다한 불합리한 일들, 부조리한 실태들, 비상식·몰상식적 행태들, 명백한 오류들, 의심스러운 주장들 등등에 대해서 비판은커녕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행동 방식이 전형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겠죠. 해서 모두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할 뿐입니다.

우리가 부모일 때, 아이들과 자연으로 공공 도서관 등으로 놀러갔을 때, 이런 의식의 마비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