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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의 3천 엔
하라다 히카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돈이나 절약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338)
처음 이 책을 읽을때의 느낌은 은행의 수기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인가, 하는 것이었다. 내용이 너무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 읽어나갈수록 이건 진짜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나의 3만원은 어떻게 쓸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한때는 급여가 인상되면 한달에 소액이라도 기부할 곳을 찾아보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위한 적금을 늘리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꾸만 내 욕심이 늘어나버려 그러는 것 같다.
은행의 예금이율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찾고 소득이 없을 때를 대비해 국민연금외에 개인연금도 가입하고 있지만 사실 노후대책이 될만큼은 아니다. 연금이 아예없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어쨌든 퇴직을 한 후에 아무런 소득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맘이 그리 편치는 않다. 특별히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큰 지출이 없다하더라도 나이들면 가장 큰 걱정이 혹시모를 병원비와 간병비일 것인데 그건 어떤 예측을 할수도 없으니 일단은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마련해야한다. 그런 생각이 자꾸만 현재의 삶을 각박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후의 소득이라거나 자녀 양육에 대한 대비 등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방법과 목표가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행복'일 것이다. 물론 행복에 대한 개념 역시 개개인별로 다를 수 있겠지만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행복이라 믿는 나뿐인 나쁜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책의 내용중에 빚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내게도 대출금이 있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소득 없이 대출로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가 대출금상환도 못하고 생활비도 없는 상태로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내 예금을 허물고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가끔 기분이 바닥을 칠 때, 내가 스트레스 받아가며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힘든일은 못한다며 놀고 있는 누군가의 대출금을 갚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 깊은 곳에서 자꾸 화가 치밀어오른다. 요즘은 갑자기 울화증이 생기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뜬금없이 욕을 하며 화를 내곤 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정말 내가 미친건가 싶을때도 있다. 그런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닐텐데 왜 자꾸만 마음에 화가 쌓이고 평화롭지 않은걸까...책을 읽는 동안에도 마음이 널을 뛴다.
그런데 내가 절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많은 저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에 담겨있는 많은 뜻을 생각해보고 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근검절약하며 노후를 대비하는 이야기, 정도라 생각하고 설렁거리며 책을 읽었는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을 것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쓸 것인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이 책은 또 새롭게 다가온다. 3만원은 한끼 식사비로 쓸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한 후원금으로 쓸 수도 있고, 읽고 싶었던 책을 살 수도 있고 훗날을 위해 저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지금 현재로서는 삼만원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한 것이라 생각하겠다. 그 결정이 나만을 위한것이라거나 - 때로는 스스로를 위해 쓸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이기적인 소비가 아니라는 뜻으로 - 내 마음과는 달리 누군가를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맘 편히 기쁘고 행복하게 소비하고 절약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