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용돈도 없던 시절, 책 한권을 살 돈이 생기면 서점을 돌고돌고돌고도 모자라 이틀째 죽치고 있다가 책한권을 골라 사들고 오기도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 알바로 돈을 벌면서 야금야금 사 모으던 책은, 급기야 졸업하고 취업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니 식구들 몰래 엄청난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방도 작고 집도 작아서 할아버지 제사가 있던 날은 병풍 뒤로 내 책들을 다 쌓아야만 했고, 그걸 보면서 또 누구는 '야, 제사 온 친척들이 니 책들에게 절해야하는거냐?'라는 말도 농담처럼 흘리곤 했었더랬다.
어쨌거나 그렇게 책을 읽어대긴 했지만 내가 읽은 고전문학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도 거의 유일하게 '죄와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은 것으로 고전문학의 위대함을 우려먹듯 말하고 있을뿐이다. 물론 달랑 그 두권만 읽은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위대함을 충격적으로 느꼈던 책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기에 더 각인되듯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책읽기는 그저 습관처럼, 광고가 거창하게 나오는 책, 유명세를 타는 책,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등등등.. 그렇게 가벼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장길산과 임꺽정을 읽으며 키득거리고 토지에 집중해서 빠져들고 어렵다고 투덜대면서 숙제하는 심정이긴 했지만 끝까지 읽었던 혼불도...한여름밤의 책읽기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지금 나는 재미있고 재미있고 또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또 다른 한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진중한 책읽기를 시도해보려 노력하고 있음을 위안삼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 시인의 말.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겠더라. 조금씩 갉아먹듯 새겨넣는 시어는... 느낌을 표현할 길이 난감할뿐이다.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저 자신을 밝히고, 가장 높은 곳에서 저를 좌지우지하는 우리 세대의 꽤 많은 의문점을 파헤치는 관측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을 통해 저는 여러분과 경제적 자본주의, 미디어 매체의 음란성, 지식인의 실종, 인간의 잠재성, 사회결정론, 사회적 차별, 반항, 복종, 테러리즘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신데렐라는 저자의 말에서부터 엄청난 깊이를 느껴버리게 된다. 첫장부터 쉽지 않고 다른 책의 속도와는 비교가 안되게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정말로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글들이 다 엉켜버릴 것만 같지만, 그래도 한글자씩 음미하며 읽어나갈 시집과는 달리 전체적인 숲을 보면서 읽어야 할 장편소설 신데렐라는 확실히 근래에 엄청나게 읽어제끼고 있는 일본소설들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로맨틱 코메디로 분류된 살아있는 시체들의 연애는 현대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집중적인 풍자를 담고 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는 하다.
봄비 내리는 휴일 오후, 습관처럼 술렁거리며 책읽기를 해내지 못하고 있어 무기력해지는 나를 끄집어 올리기에 이 책들은 조금 무거운가?
그렇다면 분홍책을 읽어야지. 이 책, 진짜 맘에 든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