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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특별판) ㅣ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2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7월
평점 :
당신에게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요?
두 달 전만해도 이런 물음에 정말 내 일처럼 생각해보지는 못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짐을 정리해야한다거나 유언장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한다.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바로 내 앞에 닥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많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시티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의 시간동안, 별생각이 없다가 터져나오는 기침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어있다가 문득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상의 것을 떠올릴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삶을 정리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이 먹먹함에 대해서는 도무지 말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래서인가. "당신에게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요?" 라는 물음앞에서 이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결론은 똑같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은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미호 식당은 상상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불사의 생을 살고 싶은 여우 서호가 죽어서 저승으로 가기 전, 아직 피가 따뜻한 인간의 피를 마시는 조건으로 사십구일간의 시간을 더 남겨준다. 누군가를 꼭 만나야한다는 아저씨를 따라 사십구일간의 생을 연장하게 된 열다섯살 왕도영은 이승에 대하 미련따위는 없지만 같이 가자는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별 생각없이 남게 된 형편이라 그저 방관자처럼 지낼뿐이었다.
죽기 전의 얼굴을 갖지도 못하고 서호가 정해준 구미호 식당을 벗어날수도 없는 상태에서 둘은 아빠와 아들 사이로 위장하기로 하고 식당 운영을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저씨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어린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폭력을 일삼는 아빠에게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지낸 도영은 열한살에 아빠가 돌아가시자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이복형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도영은 구미호 식당에 알바를 하기위해 찾아 온 형과 마주치게 되고...
이야기의 흐름상 예측하게 된 결말이 있었는데 내 예상을 뒤집어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예상한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기적처럼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 것이었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현실적으로 정말 내게 남은 삶의 시간이 한정적이며 그 한정적인 시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볍게 읽게 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게 해 준다.
사랑과 집착, 기억의 왜곡,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은 생각만으로 끝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랑법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이 열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된다.
구미호 식당은 따뜻하고 얼큰함이 감도는 크림말랑의 맛을 떠올려보게 하는 한편의 맛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어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을 얻는 출발점에 섰을 때 죽음이라는 것도 함께 얻어. 더불어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도 같이 얻지. 살아가며 행복과 불행,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야. 제대로 살면 행복하지. 제대로 산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이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마음을 열고 살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어. 마음을 열면 나에게는 물론 모두에게 너그러워지고 여러 각도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거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거라고 멍청한 생각들을 하지. 그러느라 죽을 때 꼭 후회해.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에 말이야. 아아 멍청한 것들. 어때, 너희들은 멍청한 부류에 속하지 않았나?"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