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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유 충남도보여행 -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걷기여행 48곳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엮음 / 상상출판 / 2014년 3월
평점 :
맑고 푸른 바다를 보면서 자란 나는 '바다'가 주는 매력을 그리 특별하게 느껴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 하루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바다를 보러 그 유명하다는 인천 월미도로 향했다. 친구 둘은 배를 타면서 바다를 보고 좋아했지만 나는 누렇게 뜬 바닷물이 처음이라 경악을 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 기억때문에 육지에서의 바다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기억을 단숨에 뒤집어 버린 곳이 있다.
이번에도 우연찮게 친구 두어명과 함께 친분이 있는 신부님을 찾아 갔는데 그분이 마침 당진에 계셨고 아는 분의 집으로 초대를 해 주셨는데 그 집 주인아저씨가 바다로 뜨고 지는 해를 보려고 바다쪽 창을 전면 통유리로 설계하셨다. 그래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멋진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저녁식사를 끝내고 당진의 바닷가로 잠시 데려다 주었는데, 나는 아무런 불빛도 없이 그저 파도 소리만 들리는 바닷가는 처음이었다. 그 어둠이 짙게 깔린 침묵의 바닷가에 대한 기억은 당진을 무조건 좋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충남도보여행은 당진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주말마다 조금씩 조금씩 길을 걸으며 충남의 길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게 구성된 충남도보여행은 여행작가 9명이 한꼭지씩을 맡아 쓰고 있다. 그냥 도보여행길이 아니라 나름대로 바다와 함께 걷는 길,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걷는 길, 경관이 아름다운 길, 물길 따라 걷는 길, 생태체험 길로 각 테마에 맞춰 길을 걷는 의미를 갖게 하고 있는데 사실 굳이 그런 테마로 나누지 않더라도 도보여행은 느리게 걸으며 자연과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행정보서라고 하면 흔히 말그대로 '정보'에 치중하는 책이 많았는데 충남도보여행은 교통편에서부터 주변 볼거리, 숙소, 맛집, 스토리텔링에 그 길을 걷기 좋은 계절 정보와 아주 유용한 걷기 팁도 친절히 적혀있고 구간구간의 길에 대한 상세 설명이 그 길을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제주의 올레길로 시작해서 걷기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게 된 후 솔직히 도보여행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는데 이처럼 오밀조밀하게 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면 시간을 내어 조곤조곤 걸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백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역사길을 걷고 싶기도 하고 람사르 습지를 보고 싶기도 하고 솔바람 솔숲길을 걷고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어느 한 곳도 빼놓기 싫어지는구나.
"길 위에 섰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한 사람 살아서 숨 쉬는 인간이 된다. 길과 함께했을 때 우리의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행이 되리라"
정말 아쉬운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제주여서 시간이 나는 주말마다 짬짬이 그 길들을 걸어볼 수 없다는 것.
그 모든 길을 다 걸어보지는 못하겠지만 내 삶의 아름다운 여행을 위해 언젠가 어느 한 길은 걸어가게 되리라 믿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