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 미술품 도둑과 경찰, 아트 딜러들의 리얼 스토리
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2월
평점 :
이 기나긴 글을 거의 다 읽어갈때까지는 떠올리지 못한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절도'미술품이라는 것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도둑맞은 명화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가정집에서 부모님의 부모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소소하게 전해져 온 골동품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만 떠올렸었는데 침략과 약탈로 인해 국가의 방관상태에서 빼앗긴 선조들의 유산에 대해서는 국가간 분쟁이 커져서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마침 오늘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일본 도쿄 국립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 중 우리나라의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해 34점의 유물이 도굴과 불법매매로 유출된 것을 밝히는 내용의 기사가 떠있다. 우리 문화 유산 찾기 운동이 한때 이슈가 되었던 이후로 일본의 오쿠라 컬렉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도둑놈 오구라의 장물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데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를 읽은 후 그 기사를 보니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것을 되찾아 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라는 것.
핫 아트가 원제인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뜨거운 감자라 비유하는 것 처럼 민감하고 난감한 도난 예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수년에 걸쳐 취재하고 조사하며 기록한 결과물인 이 책은 한권의 소설처럼 읽힌다.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들, 특히 예술품만을 노리고 훔쳐내는 도둑 폴과 도난당한 그림의 행방을 찾아 전세계를 다니며 예술품과 도둑을 같이 쫓아다니고 있는 경찰의 이야기는 이 책에 쓰여진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만큼 이야기의 진행이 흥미롭고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는것이겠지.
미국의 방문판매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이기도 하기에 그리 놀랍지 않지만 그러한 노커에서 시작하여 절도범이 되고 좀 더 확장하여 골동품과 예술품을 훔쳐내는 것에 이르러서는 정말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전개과정과 개연성이 딱 맞아떨어진다. 더구나 저자가 인터뷰한 폴은 어린 시절 노커로 시작해 절도범으로 가택침입을 했다가 주인 가족들에게 발각이 되면서 두번다시는 절도를 하지 않겠다고 한 후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는 것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물론 소설이라면 그를 경찰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현실에서의 폴은 자신이 직접 절도를 하지 않고 타인을 부리는 더 큰 도둑이 되었다.
익명이기는 하지만 전직 도둑이자 현재는 공개적으로 경찰의 정보원 활동을 하며 범죄조직과는 등을 돌린 폴이나 도난 예술품을 찾아내는 것을 업무로 하는 전세계의 몇 안되는 경찰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면서 예술품이 도난되는 과정과 그 행방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예술품을 인질처럼 잡아두고 혁명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혁명군에 대한 이야기, 예술품 딜러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원 주인들에게 돈을 요구하며 맞교환을 시도하는 절도범에서부터 예술품의 가치를 전혀 모르면서 무조건 돈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훔쳐내는 단순 절도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범죄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저자의 수년간의 노력끝에 탄생한 것이 이 책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이 현실에서 예술품 도난의 과정을 추적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만족할만큼의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예술품을 훔친다는 것에 대해 도둑이라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사고 선망어린 시선을 갖고 있기도 했고 도난단한 예술품들은 개인의 소유욕과 독점욕에 희생되어 공개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도난 예술품을 찾는 업무를 하는 경찰들이나 저자가 인터뷰한 폴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난당한 예술품은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더이상 예술품이 도난당하는 것을 예방할수도 있고 암시장에서 뒷거래되는 것을 막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 중간에 아주 짧게 영국의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에 괜히 나 역시 흥분했지만 결론은 없다는 것. 전시된 그림을 훔쳐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작품들을 런던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에 전시해 보이는 것으로 더 유명한 그의 이야기는 예술품을 훔쳐내는 것 역시 어쩌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적인 미술품 범죄팀이 생기기 시작하고 도난품들이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예술품 도난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 국가의 방치라고도 할 수 있는 전쟁과 약탈을 통해 빼앗긴 예술품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