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찾아, 대충 짐들을 여기저기 꾸겨 넣고, 조금 한가로와 질때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들리기 보다는 느껴졌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비행기전체를 울리며 지나가는 낮으나 매우 강력한 진동, 즉 엔진진동의 좌우 언밸런스가 몸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소음의 불균형, 흐트러진 배분, 일상적이지 않은 시끄러움, 주기적으로 목이 매는듯한 컥컥댐, 양쪽 진동의 현저한 주파수 차이.
옆에 있는 아랍인도, 백인도, 바삐 왔다갔다하는 스튜어디스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보였다.
며칠간 계속된 강행군으로 인한 컨디션의 난조인가.
점점 불쾌도가 올라가는 가운데 비행기는 늘 하듯이 급상승하고 잠시후 제 고도를 찾아 올라갔고 강한 에어컨소리에 덮힌 엔진소리와 야간비행 특유의 피곤함, 찌뿌뚱한 분위기 속에 묻혀갔다.
30분 정도 비행.
이 정도 시간이면 아무리 불편한 자세에서도 숙면단계에 들어 가 있어야 되는데 더욱 더 신경이 예민해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언밸런스는 점점 심해갔다. 이젠 소리만이 아니라 몸이 우측으로 쏠리는 감마저 왔다.
여기 저기 간혹 몇개 켜져있는 독서등을 제외하고는 기내는 거의 소등되어 으스름한 어둠속에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같은 걸 느끼는 사람은 없을까? 왜 아무도 불편함을 말하지 않을까?
담요를 덮어쓰고 눈 감은 이 인간들이 정말 여기에 있기는 하는가?
조금씩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한게 아니다. 우측 엔진소리가 확연히 틀리다.
이제야 눈치챘다. 스튜어디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비행기 우측이 매우 큰 경사로 들어 올려진다.
창밖은 완전히 빛이 없는 태초의 어둠일뿐이나 내 귓속에 있는 평행기관은 비행기가 심하게 기울져 있음을 알린다.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급좌선회.
아직 둘둘말린 미이라들은 아무도 깨어나질 않는다.
엔진소리가 매우 힘차졌다. 최대 파워다. 가능한 빨리 회항하고 있는 것이다.
10분쯤 후.
아주 간단 짧막한 기장멘트가 지나갔다.
기관이상으로 인접공항에 잠시 내렸다 가겠단다.
출발했던 공항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기내등이 모두 켜지고 스튜어디스들이 부산히 움직인다.
갑자기 밝아진 환경을 식사시간으로 오인한 몇몇이 두리번거린다.
좌우진동의 언밸런스는 이제 극에 달한듯하다.
우측이 점점 내려앉는다.
저 엔진이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까? 5분? 4분?
먼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멀 할수 있지? 어느 자리가 좋지? 어떤 자세?
갑자기 귀가 아파온다. 급강하 한 탓이다.
우선회. 기울어진 우측창 밖으로 불빛이 지나간다. 도시다
조금만 더 더...다 와 간다.
엔진은 이제 굉음을 내고 있다.
기를 쓰고 수평을 유지할려는 듯 창밖의 불빛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고층 빌딩하나가 날개끝을 스친다. 창을 통해 안쪽이 뚜렸이 보인다. 사무실이다.
순간 스치는 생각,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살아날수 있을까?
다시 급한 기장 멘트소리가 난다.
이제 착륙합니다....
멘트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펑하는 소리, 랜딩기어 뚜껑이 열렸다.
순식간에 활주로로 날아 들어간다.
비행기가 이렇게 빨리 착륙을 할 수도 있구나.
하나,둘,셋,,쿵...플랩이 전부 곤두서 바람을 꽉 붙잡아 기체를 세운다.
이제는 땅이다...
경관등을 번쩍이는 몇대의 차량들이 따라온다.
여태 승객 반은 아직 자고 있다. 반은 어리둥절, 벌써 목적지에 도착한것으로 아는지 짐 챙기느라 부산하다.
비행기는 다시 이륙하지 못했다.
엔진하나가 완전히 못쓰게 되어 새엔진을 실어 와야만 한다고 하였다.
12시간 정도 후 다른 비행기가 와서 태우고 갔다.
출발전에 정비사나 특히 조종사가 그 비정상적인 소음을 못 들었을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륙하였고 수십분동안 정상 항로 비행을 하였다.
왜? 알았지만 빼도 박을수도 없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요행을 바라고 무시했을까?
승객들은 왜 아무도 불안을 못 느꼈을까? 어렴풋이 느꼈지만 소동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을까?
아니....혹
비행중간에 엔진이 말썽난건가?
그럼 그 전에 내가 느낀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