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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똑같은 질문에 대한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라며 히로에는 기리하라의 대답에 웃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둘째권 141쪽)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세째권 251쪽)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이 책까지 세권밖에 읽지 않았쟎아, 라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머리를 쥐어짜며 도대체 누가 범일일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예상외의 전혀 엉뚱한 결말이 기대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특히 백야행의 경우 초반이 지나면서부터 인물에 대한 형태가 뚜렷이 잡혀 더이상 추리소설의 공식인 '범인은 누구인가'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정말 재미없는 책이 되는건가?
설마 그럴리가 있겠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책을 읽어나갈수록 점점 더 이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는 왜 그랬는지 '무조건 해피엔딩'의 선입견에 빠져있었기에 도대체 어떠한 결말을 듣게 될지 궁금해 미칠지경이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읽어버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더이상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백야행'이라는 제목에 담긴 슬픔이 너무 짙어져 마음이 아팠다. 덩달아 암울해져버린 내 마음은 꼬박 하루를 넘기고, 이 책을 뒤적거려 보는 지금도 마음밑에 깔려있던 암울함이 올라오는 듯 해 씁쓸해진다.
료지와 유키호는 똑같이 태양이 없는 백야를 걷는 기분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태양을 대신하는 태양같은 존재였다, 라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는 것일까. 왜 그들의 삶이 그래야 했는지가 밝혀졌을 때 짐승만도 못한 것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밝고 즐거운 것만 보며 살아도 짧은 어린시절을 암흑으로 만들어버리고, 줄곧 하얀 어둠속을 걸어가게 만들어버린 그자들에게 저주라도 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이.
암울하다고 가라앉아 있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것이 시작일것이다. 인식을 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 그래서 하얀 어둠속을 걸어가야만 하는 누군가가 생겨나지 않기를...
덧붙여. 나는 형사 사사가키의 등장은 그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정도로만 생각했다.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지만 토막토막 끊어지는 사건들을 이어줄 매개가 필요하며, 그와 연관된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기에.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형사 사사가키의 19년이라는 독백은 단지 사건의 해결을 위한 '그때 실마리를 풀었다면'이 아니라, 료지와 유키호의 삶을 바꿔버린 19년이라는.
유괴와 유아성추행으로 상처입은 모든 영혼이 평화를 찾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