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왕할머니인 이 할머니가 얽힌 실타래를 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어머님, 너무 얽혀서 이젠 더 못풀겄그만이라우. 그만 끊읍시다" 하고 며느리가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왕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듭은 풀어야제 끊어내는 것이 아니여. 끊었다 다시 이은 실로는 바느질을 할 수가 없는 법인께"
얽힌 매듭을 단칼에 끊어낸 알렉산더 대왕의 용단을 기릴 때마다, 저는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얽힌 매듭 풀기에 아낌없이 시간을 쏟던 왕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저에게는 왕할머니가 알렉산더 대왕보다 더 커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끊어진 실을 이어서는 옷을 지을 수도 이불 홑청을 꿰맬 수도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에도 이런 왕할머니 한 분 모시는 것이 제 가장 큰 소망입니다.
윤구병, 알렉산더 대왕보다 위대한 왕할머니 중에서/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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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소포상자를 풀때 가위가 아니라 송곳만을 사용하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묶었던 끈을 풀어 재활용하겠다, 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매듭은 풀어지게 마련이라며 시간과 공을 조금 들이더라도 매듭을 꼭 풀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인스턴트처럼 일회성 관계가 늘어만 가는 세상에 깊은 생각하나를 건네줍니다. 편하게 싹둑싹둑 끊어버리면 귀찮고 힘들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쉽게 끊어버리는 가위질이 내 삶에 침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묶인 매듭은 반드시 풀어지게 마련이고, 내가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이면 못쓰게 되는 끈이 아니라 끊이지 않는 하나의 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