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때 직업이라고 말해요. 옷이 필요할 때는 재봉사를 부르고, 약이 필요할 때는 의사를 부르고, 식탁을 만들어야 할 때는 목수를 불러요. 하지만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작가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267)

직업에 대한 파시오나리아의 말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가 필요할 때 작가를 부르지는 않지만 과레스끼 같은 작가의 글은 불러내곤 한다. 시간이 되면 갈께요, 라는 말도 필요없이 언제나 내가 필요하면 눈으로 훑어보고 손으로 끄집어 내어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를 찾아 내어 읽으면 되는 것이니까.

'까칠한 가족'이라 이름붙인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지금의 시대에 딱 어울리는 번역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랜 옛날 (까마득할만큼 옛날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오래 전)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는 책을 통해 과레스끼라는 이름에 익숙해져있었다. 돈 까밀로와 뻬뽀네는 나의 우상이다시피 했었다. 꽉 막혀있어 숨쉬기조차 거북스러운 느낌의 장엄한 성당에서 다들 엄숙하게 기도만 하거나 혹은 종교전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하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돈 까밀로는 내 존경을 한몸에 받는 신부님이었고, 그런 신부님을 창조해 낸 과레스끼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 책을 펴들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일수밖에. 그리고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과레스끼 가족의 일상은 완벽하게 멋진 생활이었다. 물론 그 '완벽'이라는 의미가 흔히 말하는 그 뜻이 아니라 '까칠한 괴짜 가족'으로서의 완벽을 말하는 것이 다를 뿐.

옮긴이의 말처럼 과레스끼는 문학가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것이 더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문학작품으로 그의 글이 읽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의 글은 우리에게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유쾌한 웃음 뒤에 또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그는 위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 '까칠한 가족'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들 부부와 두 아이들에 얽힌 이야기지만 쌩뚱맞게 이게 뭔 글인가, 하며 읽었다가 감동으로 뭉클해진 이야기가 툭 튀어나와 마음에 남는다.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러 오시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미그렇게 가르치셨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의 예에 비추어 볼 대 나는 나의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을 했을 때에만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나 자신을 증오합니다" (167, 여자 선생님의 표창장에서)
역시 과레스끼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렇게 자랐고, 그의 아들과 딸이 또 그렇게 성장하게 되는 것 아닐까.

'까칠한 가족' 이야기의 핵심은 작가의 말에서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읽은 독후감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을 그의 이야기로 독후감을 대신하면.... 안될까?

<사실 그 모든 것에는 '특별한 것이 전혀없다. 조반니노의 가족은 '독창적인' 가족도 아니고 마르게리타는 '독특한' 여자도 아니다. 알베르티노나 파시오나리아도 '유별난'아이들이 아니다.
포도에는 수백 가지 서로 다른 품종이 있다....하지만 품종이 서로 다른 백 송이의 포도를 짜더라도 그 즙은 언제나 똑같이 포도주가 된다. 포도를 짜서 휘발유나 우유, 또는 레몬 주스를 얻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 것에 들어 있는 즙액과도 같은 핵심이다. 조반니노 가족의 핵심은 바로 수백만의 '평범한' 가족과 똑같다. .... 간단히 말해 그것은 모든 진실한 가족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무엇때문에 나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나와 내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는가?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평범하고 진실한 사람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과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사소한 일상적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함께 미소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그 사소한(비록 겉으로는 커보이더라도 사소한) 문제들을 우리 영혼 속에만 감춰 둘 경우 혹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우울한 비극의 그림자를 없애려고 노력하기 위해서이다.>(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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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12-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더군요~~~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님 메리 크리스마스~~

chika 2006-12-2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유쾌한 가족 이야기예요. 세실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파시오나리아,는 정말 멋지게 자랐을 것 같아요. 그녀의 딸이 있다면 또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으로도 입이 헤~ 벌어지거든요. ㅋㅋ

프레이야 2006-12-2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테치카님, 벌써 리뷰 쓰셨네요.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과레스키의 글은 처음인데요,, 돈 까밀로와 뻬뽀네도 읽으셨군요. 그 책도 보고 싶어져요. ^^

마태우스 2007-01-0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님도 이책 읽으셨군요 저도 막 리뷰 쓰려고 해요....근데 의외로 많이들 읽으셨더라구요.

chika 2007-01-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멋진 가족 이야기지요.... ^^

픽팍 2007-01-0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겁니다.
이 책 은근히 떙기네요 ;;평이 다들 너무 좋아요.

chika 2007-01-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재밌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