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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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사피엔스]를 잇는 책이라기에 관심이 깊이 간 저작이다. [총 균 쇠]의 운명론적 결론이나 [사피엔스]의 맥락 있는 설명에도 그보다 자세한 인류 발전의 원인과 이유가 궁금했던 게 사실이기에 [총 균 쇠]보다 재미있고 [사피엔스]보다 구체적이라는 이 저작의 소개 글에 흥미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인류 발전의 원인을 무기와 제도와 기술과 병원균과 정치조직의 우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그건 다시 인구가 전제 조건이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축화와 작물화가 필요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환경적 요인이 절대적 결정요인이었다고 보았다. 결국 서구가 세계의 주류가 된 것은 운명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 논리이다. 또 유발 노아 하라리는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계기를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세 개의 혁명으로 보았다. 무엇보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정하고 믿고 따르는 인간의 상상력도 인류가 결속하고 발전하게 만든 지대한 동인으로 바라봤다. 두 학자의 관점이나 주장이 다 일리가 있고 수긍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는 살짝 빈정이 상하고 유발 노아 하라리의 주장에는 좀 더 상세하지 못하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불만족들이 본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본서 [위어드 WEIRD]는 인류 발전의 원인을 왜나 어떻게라는 면에서 상당히 상세하면서도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저자 자신이 진화생물학자이다 보니 생물지리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보다 좀 더 진화 심리학적인 부분에서 접근한 경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환경을 인류 발전의 요인으로 보는 재러드 다이아몬드나 인류 발전에서 변혁을 가져온 부분을 분석적으로 접근한 유발 하라리의 접근도 수긍이 가는 접근법이지만 인간이 변화해 온 요인과 변화를 추구하고 주류가 된 원인을 심리학적 차원에서 풀어낸 조지프 헨릭의 접근은 그 누구의 접근방식보다 공감과 호응을 불러올 만한 논리의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WEIRD라는 말의 의미는 이미 본서에 관심을 가지고 검색해 보신 분들은 다 알 수 있겠으나 백인의, 교육수준이 높은,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적인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근대 이후 지금까지의 주류 계층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주류의 특징이자 근대까지 주류로 변모해가는 계층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변화를 겪어온 과정을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상고대에는 혈족, 친족, 부족 중심의 사회였고 일부다처제 사회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일반화된 가치체계와 근대 이후 주류가 된 계층의 가치체계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가치체계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지역과 민중일수록 주류 계층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계의 주역이 되었다는 전제에서 논리가 전개된다. 현대의 개인주의, 능력주의, 분석적 사고, 죄의식의 높음, 도덕성의 요구, 위험 추구 성향, 독립거주(이동의 자유도 높음), 개인소유(사유재산) 등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형성되고 또 형성된 이후 다시 시대의 변화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성향들의 형성이 인류 발전의 동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사회가 거대화되며 집단중심 사고나 전체론적 사고에서 또 부족 소유제에서 분석적 사고와 개인소유가 탄생하고, 거대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 도덕과 법률을 따를 도덕성이 요구 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요구되는 사안들이 다시 종교가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친족간 결혼을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강제하며 강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부족 중심 사회에서는 자기 부족이나 혈족을 위해 위증을 하거나 비리를 돕거나 덮을 가능성이 높지만 독립거주가 되며 개인적인 소신이나 도덕율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졌고, 일부다처제 하에서는 아내가 없는 다수는 결혼의 가능성을 위해 비도덕적이고 위법적으로라도 부를 쌓아야만 결혼과 종족보존의 가능성이 생기기에 위법하거나 도덕율을 어길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일처제 하에서의 개인은 이미 결혼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기존의 준법정신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안정적인 일상을 유지하는데 이롭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들은 산업화 시대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되었고 이런 사안들이 현대의 주류가 갖는 특징을 지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와 능력주의가 사회발전의 동인이 되면서 리스크를 감당하는 성향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혁신들(문명화, 종교, 산업화 등등)이 인류의 심리적 특성을 결정하였고 이런 특성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혁신들을 다시 강화했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학자답게 현대 주류가 갖는 이러한 특징들이 도의적으로 옳다거나 하는 주장은 하지 않고 그러한 특징이 인류 발전의 요인이 되었다는 주장을 담백하게 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의 특징들에 익숙하다 보면 자연 지금의 것이 옳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군 문제로 예를 들 때 사회에 가족이 있는 사람이 군대의 부조리나 폭력이나 인격적 모욕을 가족을 생각해서 참을 가능성은 높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은 그걸 굳이 참을 가능성보다는 반발하고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계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범죄자를 만든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지금까지의 사회를 만드는데 요구된 요소들이 모두 옳은 부분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부족사회에서 혈족과 친족의 비리를 덮거나 비리에 협조할 가능성이 높았고 독립거주하며 개인주의화 되며 준법정신을 가진 개인으로 변모했다고 보고 있지만, 오히려 가문의 명예에 개인이 손상이나 타격을 주어선 안 되므로 개인이었다면 어길 법률이나 기만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저자의 대부분에 주장이나 서술에 공감이 더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자가 이제까지 사회가 이루어진 과정을 되짚어보는 해석이 긍정적인 요인들에만 주목한 경향도 깊다는 것이 본서의 최고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본서는 인류 발전의 과정을 심리적 측면에 주목하며 해석했다는 것에 남다름이 있다. [총 균 쇠][사피엔스]를 읽으며 갖게 된 상식을 상세한 부분에서 보완해 주는 장점도 크다. 다만 심리적 측면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수긍하는 면과 다른 견해가 떠오르는 면도 동시에 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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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케미스트리 -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는 뇌화학 이야기
지니 스미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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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어렵지 않은 책이지만

익히 들어본 뇌내 물질들은 그렇다 해도

작용하는 뇌의 각 부위들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주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일례와 서술을 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이 문외한에게 쉽게 인식되는 것만은 아니라

독서 이후로도 뇌과학을 공부 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기억, 중독, 우울증, 수면, 식욕, 결정, 사랑, 통증 등

인간의 생에서 근본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몰입하게 되는 책이다.

 

다만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뇌과학 공부가 따라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재독을 기약할 정도로

공부하고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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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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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긴 한글 제목보다 [Underdog]라는 영어로 된 부제가 이 책의 주제와 스토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책 같다. 평소 역사 분야의 저작들을 좋아는 하지만 학술적인 저작보다 대중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에 책들이 비슷한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다 보니 역사를 통해 할 이야기가 이것뿐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이라는 본서의 출간과 함께 서평 제의가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 응하게 되었다.

 

본서는 무엇보다 역사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들의 스토리라는 것이 너무 끌렸다. 역사의 꼭지를 맡은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마이너의 이야기이니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너무 비슷한 서사들의 연속에 답답한 분들이 계시다면 남다른 시각의 본서에서 다른 감흥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본서는 전략, 용기, 결의, 지혜, 신념이라는 5개의 주제 의식으로 각 장을 이루며 여러 나라와 여러 인물로 역사의 변곡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구려, 스페인, 핀란드 등 나라가 굴욕을 감당하다가 당당히 골리앗에게 대항하고 자신을 지켜낸 역사를 읊기도 하고 히틀러를 암살하려 한 목수 게오르크 엘저나 관동 대학살에 맞선 오카와 쓰네키치, 그리고 한 시대의 문화이자 부조리인 기업의 횡포에 맞서 매치스틱 걸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낸 영국의 성냥공장 여직공들, 또 노동조합을 만들며 회사의 횡포에 당하면서도 옳음을 지키고자 하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과 그들의 편에서 사진사 이기복, 문명의 힘 앞에서 부서져 가면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굽히지 않은 사우디의 공주 미샬 빈트 알 사우드, 식민지 개척 시대에 포르투갈을 상대로 협상과 전쟁을 하면서도 자국의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 가는 것을 막은 은징가 음반데 공주(후에 여왕이 됨), 격동하는 파리에서 자신의 옳다는 것을 위해 굳건히 저항한 여성 운동가 루이즈 미셸, 묻혀버린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은 청소년 헨리 스콧의 이야기 등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본서의 주제와 결이 맞는 이야기로 기억에 깊이 남았다. 아마도 역사적 인물이나 관료 등의 영웅보다 소시민들의 저항이 문명이란 거대한 바퀴 앞에서 버티고 선 사마귀 한 마리 같은 느낌을 주기에 더욱 그런 듯하다.

 

본서는 첫 장을 펼치고는 얼마 안 되어서는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때 갖추어야 할 점들을 이르는 거라 생각되어 병법서나 책략에 관한 책과 같다는 인상을 받았으나 마지막 장을 덮고는 그 깊이와 무거움에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 책은 낱낱의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약자인 개인이 강자를 이기기 위한 처신은 어때야 하는지 국가가 강대한 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나 문명 앞에서 한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나가야만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가벼운 제목의 책인데 깊은 인문학적 물음을 던지는 책이기도 하다. 시대 앞에 인류는 또 문명 앞의 개인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하는 그 넓고 깊은 물음에 독서 후 참 남다른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저자의 책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는데 앞으로 이 책을 쓴 저자 김형민 씨의 저서들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다른 시각의 역사 대중서를 찾거나 깊은 사유를 안겨줄 만한 저작이지만 대중적인 책을 찾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셔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세계사에균열을낸결정적사건들 #Underdog #약자가강자를이길때역사는새로쓰인다 #김형민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도서협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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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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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알아가기 위한 저작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까지 3권째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의 [능력주의는 허구다]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이후 저술된 저작으로, 집필 기간만 20년에 이른다는 책이며 도서 표지에도 있듯이 상당히 논쟁적인 저작이다.

 

저자 자신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능력주의가 문제라는 결론인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상당한 자기 성찰과 자기비판이 뒤따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사회적인 허상이라거나 가진 자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비판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역량과 기량에 따른 보상이란 게 능력주의의 미화라며, 사회적 이점을 독점하고 있고 그 독점적인 이점 역시 세습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사회적 기준 자체가 엘리트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들 자신이 자기에게 유리한 기준을 사회적으로 정립해 나갈 수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또 능력주의 사회가 격차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중위소득 계층의 존폐에 위협적인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본서가 엘리트 계층의 노력과 업무를 과소평가하거나 깎아내리는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엘리트 계층의 수입과 중산층과 하위 소득 계층의 격차가 세월을 지나며 더욱 덕 현격하게 커지는 것은 사실이고 노동자가 회사 간부로 승진한다거나 할 가능성이 원천 차단된 것도 사실이지만, 일반 노동자의 업무량과 업무 시간이 줄어들 때 엘리트층의 업무량과 업무 시간은 과도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내의 제도적인 엘리트 옹호 양상이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저서에서는 동문 자녀 특례입학(Legacy admission) 등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본서에서 사회가 능력주의 중심이 되며 엘리트 계층이 자녀의 교육에 절대적인 관심과 열정을 기울여 엘리트 계층의 교육 양상과 하위 소득 계층의 교육 양상이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상위 학업 성취를 보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들은 이미 극부층인 엘리트 계층이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엘리트 교육을 받는 이들이 진학하는 학교들에 하위 소득 계층 자녀들이 비집고 들 틈은 전혀 없다는 걸 통계로서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노동자 계층의 아들들이 서울대 입학한 사례나 학생 당사자가 막노동을 하면서 공부해 서울대에 진학한 사례 등을 들며 능력만 있으면 성취는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미국에서도 있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주의의 이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어느 정도의 확률이냐는 문제일 것이다. 헐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은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걸 이겨내고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며 능력만 있으면 성공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열등한 것이 되어버린다면 이건 엄연한 구조적 모순이다. 이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능력주의 사회와 기술 발전이 어우러져 엘리트층이 갖추어야 할 기준 역량은 증가하고 중위층의 업무는 기술로 대체 가능한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중위층의 위기가 타파하기 어려운 시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저자의 예견이기도 하고 현재도 그러한 상황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엘리트층이 주요 거주지역의 부동산가와 그들의 수입, 그들의 자녀 교육 과정에서의 비용과 자녀들의 성과 그리고 그들이 보는 사회적 이점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준 등 능력주의 사회에서 엘리트층이 보이는 노력과 그들이 이루어낸 기량으로 인한 타 계층과의 격차는 이제까지 능력주의 사회니까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이 격차는 세습되는 과정을 따르며 불평등과 재분배에 대한 필요로 중요도가 옮겨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저작에서도 보이듯이 이는 극부층과 하위 소득 계층의 정치적 충돌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박탈감을 느끼는 하위 소득 계층이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하며 갈등 양상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샌델 씨의 직언이다. 본서에서는 엘리트층이 민주당을 지지하고는 있으나 재분배 문제에 있어서는 효율을 저하시킨다는 관점이라고 한다.

 

더욱이 본서에서는 엘리트층과 그 이외 계층의 격차는 비단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자기들에게 이로운 기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느냐)만이 아니라 수명에까지 관계되고 있었다. 엘리트층의 사망률이 하강하고 기대 수명이 상승하고 있을 때 중위 소득 계층과 하위 소득 계층의 사망률은 상승하고 기대 수명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층적으로 상위 2%의 아이들이 친부모의 품에 살 때,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대부분이 재혼 가정에서 살고 그보다 아래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랄 확률이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엘리트 계층은 태어나면서부터 안정된 배경과 교육환경이 뒤따르고 아주 높은 확률의 성취와 생존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죽는 날까지 그러한 배경이 지속될 가능성 또한 높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 또한 적으며 게다가 장수까지 하다 가는 것이다.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다른 운명이 탄생부터 정해진다는 것이 능력주의의 폐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계층 간의 격돌이 예비되어 있는 것은 능력주의 사회의 운명일 것이고 말이다.

 

저자는 나름의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엘리트 교육에서의 포용성, 그리고 재분배를 들고 있다. 본서에서 저자가 지적했듯 부자의 세율이 낮아지고 누진세가 사라져버린 세상을 가져온 것은 엘리트층이 후원하는 정치가들이다. 이런 세계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한 명이 나서서 변화를 요구한다고 변화가 찾아올까 싶다. 엘리트들 모두가 저자의 관점에 동조하던가 아니라면 사회적 권리를 주도하는 게 피라미드 최하위의 다수 계층이 되던가 하는 경우의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둘 다 가능성은 거의 없고 사회의 변혁은 더욱 초극부층의 손길이 닿는 데로 그들 자신을 위한 황금으로 변해갈 일만 남아 보이지만 말이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의 부상]이란 과학소설이 가장 먼저 현실화된 사례이고 현재라면 이제 초입으로 들어선 [1984]는 근미래에 완전한 현실화가 될 것이고 [멋진 신세계]도 유전자 기술이 완비된 이제 현실화를 앞두고 있다. 과학소설은 모두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되지 않나 싶다. 이런 현실을 바꿔 놓는 미래를 담은 이야기는 없는지 모르겠다. 이런 소설 속에 살고 있다니 참 낙담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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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사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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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함께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인데 같이 대여한 책으로 [엘리트 세습]도 있다. 능력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며 이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본서는 정치철학적인 [공정하다는 착각]보다는 일상에서 겪는 몸에 와닿는 실제 사례들을 근거로 철학적인 사유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으로 다가서도록 했다면 본서는 술자리에서 쌍욕하며 세계 비판하는 느낌이 다소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과연 이 세계의 능력주의란 게 공정하게 작용하고 있느냐는 접근보다, 본서와 같은 세계는 차별적인 곳이구나라는 감상이 좀 더 피부에 와닿고 실제적이지 않나 싶다. 저자가 이 세계를 능력주의라고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태생적인 특권과 계층이라는 출신 성분에 따른 특혜들이 만연하는 곳으로 특정 계층의 자녀이기에 갖는 환경적인 특혜, 교육 기회와 수준의 차이,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인맥), 문화적 자본(어느 계층이며 어디 소속이냐 또 무슨 자격을 갖추었느냐에서 오는 이점)이 더해지며 출발선이 같을 수 없는 사회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솔찮게 들리는 대통령 사위의 취업 특혜와 모 정치인 자녀의 부정 입학, 또 다른 정치인 자녀의 취업 특혜 등의 사례 등 우리는 이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이 능력주의를 겉으로만 내세우며 대중을 속이고 있는 구조일 뿐이란 것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과 같은 동문 자녀 특례 입학 같은 제도(Legacy admission은 점수로 환산할 때 1600점이 만점인 SAT에서 무려 160점의 이점을 본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저작인 본서의 저자와 같은 이들의 문제 제기들이 있으며 현재에는 SAT 점수 반영이 적어졌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런 제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와 기부 입학제도가 국내에는 없다고는 하지만 취지가 좋은 특례 입학 제도가 한국 사회에서도 능력주의를 냉소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훈 특혜 같은 건 납득가지만 민주유공자 특혜라며 운동권 정치인들 자녀들에 대한 특혜는 과연 국민 가운데 몇 퍼센트나 공감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외국인 자녀 특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귀화 외국인들이 저소득층도 아니며 외국인 자녀 특혜에는 불법 체류자의 자녀도 포함된다. 이런 제도들은 직설적으로 말해 역차별이지 절대 공정이라고 볼 수 없는 제도들이다.

 

화살표 부분은 안 읽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

 

역차별을 이야기했으니 잠시 본서의 논지에서 벗어나 이야기하자면 외국인 의료보험 특혜 같은 것들로 한해 대부분의 의료보험비가 의국인 그 중 특히나 중국인들에게 대거 쓰이고 있다. 중국인 255만 명이 한국 건강 보험을 이용해, 지난해 지출된 외국인 건보 지출액 17206억 중에서 중국인에게 지출된 비용만 11809억이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혜택을 한국은 중국을 비롯한 타국가에서 받고 있는가 말이다. 외국인에 대한 혜택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우리 국민이 타국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만 부여하면 되지 않겠나? 외국인 투표도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상호주의에 입각해서만 한다고 해도 문제가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한국의 합계 출산률과 인구감소 문제를 외국인 유입과 이민자로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 감소분을 감안할 때 해마다 한해 30만 명씩의 외국인을 유입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그들의 대응안이다. 미친 작자들이다. 앞으로 점진적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을 상용화하며 초대량 실업자가 증가 추세일 것이고 이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답이 될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라는 것도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 텐데 새로운 업무에 특정 시한의 적응 기간이 필요한 인간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단 몇십 초에서 몇 분 만에 숙련 근로자의 업무능력을 보이며 비교 불가의 업무량을 소화할 테니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으로는 답이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에 사람이 잉여인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초극부층이 잉여인간이 된 대다수의 국민을 부담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대중은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던 것들을 과거와 같이 누리며 살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시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전쟁과 질병이 만연되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다. 인구의 절대적인 소멸을 단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특권층의 부담을 감소하는 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가진자들이 자신들 사이에서만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대다수의 대중에게는 사회주의적 상황을 강요하는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생각을 아무리 해 봐도 다른 대안적 세계 상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앞두고 외국인의 대거 유입을 국가 차원에서 장려한다? 그건 미친 짓이다. 외국인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된 프랑스의 경우 특정 지역의 교도소 수감자 중 이민자와 이민자 2세가 70%를 넘는 경우가 있고, 복지 국가이며 안정적인 치안과 환경을 자랑하던 스웨덴은 강간 천국, 범죄 온상이 되었다. 외국인 유입은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별문제 없을지 몰라도 유입된 외국인이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그들 문화 자체가 우리와 다른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라면(이를테면 여성인권이란 없고 남자라면 여자를 강간할 수도 있다는 통념을 가진 국가의 사람들, 그리고 종교적 저항을 위해 폭력과 성전이 당연한 국가의 사람들인 경우) 그들이 범죄화되는 건 시간문제란 걸 유럽의 현재가 증언해 주는 것이다. 모든 외국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유럽의 사례를 직시할 수 있으며 그 사례를 교훈 삼을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인구감소에 대한 대응은 무대책이 대응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인구가 적을수록 대중에게 유익한 국가로 인식될 것이다. 이민자 유입은 뇌가 없어야 가능할 대응안이라는 말이다. 이민자와 이민자 2세까지 내국인과 경쟁하게 만드는 정책은 살아갈 여유를 잠시 남겨둔 (리뷰어인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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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사회라고 하면서도 출생에 따른 차이와 사회적 문화적 자본(인맥, 학맥, 출신, 인종, 외모) 등이 능력보다 앞서는 것은 미국은 이미 말한 동문 자녀 특례 입학 Legacy admission 외에도 추천인 제도가 있어서 더 부각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대학 입학부터 취업이나 이직에서도 추천인이 있어야 하는 미국의 제도적 특성이 더 이런 차별을 부각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취업에서 자신이 가족(출신)이나 인맥이나 학맥을 통한 특혜를 볼 수 있는데 뿌리치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래서 더 정치인들과 특권층 자녀들의 부정 입학이나 비리 취업을 용인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의 여지를 계층과 성별과 인종에서도 그러하다며 지적하고 있는데 본서를 읽으며 우리가 능력주의 사회라고 믿던 사회는 허상이었구나 하는 감상만이 들 뿐이었다. 거의 10년 전 저작이라 10년 사이의 변화가 물론 있겠지만 아직도 남성과 여성이 선호되는 일자리는 분명 다를 것이고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각 인종인 당사자에게 득이 되거나 불이익이 되는 상황들이 즐비할 것이다. 인종 차별에서 예외적인 것 같은 한국이지만 이제 해마다 30만 명의 외국인들 유입을 앞둔 상황에서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질 내일은 자명하지 않은가 싶다. 사회가 더 나아지기 위해 변화의 계기와 과정이 필요할 텐데 딱 부러진 대응안이 나와주는 날은 아직 요원하지 않은가 싶다.

 

저자의 시선은 능력주의라는 허구를 비판하는 데 차별과 불공정에서 시작해 불평등으로 이르는데 결국에 저자의 주장은 불평등을 타파하는 데 누진세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결한다. 출발선이 다른 데 대한 대안으로 지대한 누진세로 출발선의 차를 대폭 줄이자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상속세와 증여세 등에서만 이런 조항이 붙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세금 추징에서도 현재 부자일수록 과한 세금을 납부한다는 인식이지만, 상위 계층이 누리고 얻는 이익을 고려한다면, 세금의 퍼센티지에서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사실 부유층의 자녀들은 그들이 살아오며 남다르게 누릴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누리고 살아왔다. 미성년자 보유자산을 보아도 알 수 있고 그들에게 들어가는 생활비와 교육비, 문화생활비 등을 따져본다면 이미 서민층의 자녀들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출발선이 달랐고 어쩌면 출발선만 다르면 다행인 것이다. 이들이 사회의 출발선을 만드는 사람들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만들고 게임 자체를 운영하는 사람들로 살아가는 이들과 대부분에 사람들의 차이는 누구의 자녀인가 하는 것이 가장 우선한다. 우리 사회를 능력주의 사회로 보고자 한다면 진짜 절대적인 능력주의 사회로 만들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출발선을 그들이 만들게 두어선 안되는 것이다. 출발선을 긋고 있는 그들을 강제로라도 출발선에 세워야 한다. 부가 절대 세습되게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마도 부가 세습되어온 그 결론을 이번 세대들은 자신의 생애의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대중이 지금보다는 먼저 관심을 갖고 대안을 마련했더라면 결론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깊이 든다. 끝난 경기에 아쉬움이 남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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