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의 새로운 이해 - 孫子에게 한국의 외교전략과 군사전략을 묻다
송진호 지음 / 보민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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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을 처세술과 인간관계에서의 심리 전술로 담아낸 책들은 더러 있지만 손자병법의 본질은 전략과 전술, 정치술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본서는 그러한 근본에 충실한 해석서이자 그 심의를 드러내 현대전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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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가정의학 전공 박은호라는 의사 선생님이 실존하는지와 실존한다면 정말 그분이 올린 정보인지 팩트체크가 필요하긴 합니다. 만약 다 사실이라면 이제까지 mRNA기반 기술의 창시자인 로버트 말론 박사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뤽 몽타니에 박사, 한국의 세계적인 면역학자 이왕재 박사님 등등등 국내외 진짜 전문가들의 경고를 일관적으로 무시해온 한국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제라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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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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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어떠한 각도에서 필요하고 절실한지 그리고 이용하는 이에 따라 얼마나 악용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읽고자 하는 틀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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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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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운영되는데 가장 기반이 되는 시스템 중 하나는 경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를 또 더 깊이는 사람 낱낱을 기저에서 욕동하게 만드는 근본도 경제학적 사고로 어느 한도까지는 이해될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된다. 어쩌면 세계와 사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노력의 하나가 경제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이런 까닭에 본서의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움이 일었다. 본서를 일독할 기회가 주어져 기뻤고 읽는 내내 다소 진지하게 임했다.

 

이 책은 연도별로 경제학자들의 저작이 수록되지 않았고 읽으면서도 뚜렷히 제시하는 항목 분류의 기준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전자와 후자의 수록 경제학자의 견해가 서로 보완하거나 상반되거나 통합되는 경우들이 인지되기도 한다. 요 몇 년 사이 경제와 정치, 전쟁, 미래 예측 분야에 깊은 관심이 가기 시작해 그런 방향의 책들을 다수 탐독해 왔다. 그러다 퍼뜩 생각이 드는 게 이 모든 호기심이 결국에는 사회학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이라는 본서를 읽으면서도 결국 경제학이라는 것도 사회학의 한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역량 혹은 기업 중심주의(Vs) ‘제도의 중요성이 대립되는 이야기로 본서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 기업 경영과 관련한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결국 애덤 스미스의 사리사욕이 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낸다는 주장과 정부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거기서 이상을 품고 창출하는 주체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관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논리 전개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앨버트 O. 허시먼은 현대의 자본주의는 슘페터의 파괴적 혁신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과 매우 불완전한 정보를 감안할 때 난국 타개의 과정에 가깝다는 주장을 했다. 개인, 기업, 국가가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든 데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다른 경제학자들과 아울러 행동경제학이 탄생하는 사고의 한 부분을 이룬 바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의 주체가 비이성적이라고 한다면 분명 이에는 대응안이 있어야 할 테고 그러한 방향 중 가장 쉬운 접근은 제도적 규제일 것이다.

 

더 나아가 헨리 조지처럼 경제 발전으로 가난이 더 심해졌다는 관점이거나 머레이 N. 라스바드처럼 국가는 사유 재산의 약탈을 위해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하며 체계적인 통로를 제공한다는 시각이라면 또 나오미 클라인처럼 국가 산업 민영화로 소수가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근로자들은 밀려났다는 관점이라면 더더군다나 제도적 규제는 절실할 것이다.

 

이렇다면 토마 피케티처럼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자본세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거나 스테파니 켈튼처럼 통화 주권국에서 복지지출 때문에 위기가 초래될 일은 없다는 주의더라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반면에 개인 역량과 개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제학자 중 토마스 소웰이라는 미국 흑인 보수주의자 경제학자는 빈곤의 원인으로 가정해체보다 정부의 지출 부족을 먼저 꼽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며 아인 랜드라는 유대인이자 러시아계 미국 경제학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아무도 미국을 산업국가로 만들기 위해 굶주림을 감내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인 랜드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내지는 망명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감상만으로 편향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기회비용을 감당하지 않는 개인은 없으며 미국의 산업화 시기 남쪽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면화를 따고 있었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걸 배제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인 미국에서의 현격한 불평등과 계층 격차를 그녀는 모른 척하고 있다.

 

토마스 소웰도 출생지가 미국이라면 미국의 흑인들을 우대하는 대학 입학 제도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시대에 만약 그런 혜택이 없었다고 한다 해서 빈곤층에 태어나 보살핌의 결여와 마약과 폭력지대 등의 환경적인 배경을 초월해서 모든 흑인들이 개인 역량만으로 가난이라는 제도적 난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걸 문제 삼지 말아야 할까? 더 나아가 인종과 계층의 문제가 과연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환경을 이겨내는 것이 인간이니 이겨내라는 관점은 너무도 편협할 뿐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경제 여건과 취업 요건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청년층이 취업하기도 어려워졌으며 그들의 임금만으로 계층의 격차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본의 청년층은 사토리 세대라고 하여 취업도 소비도 모두 초탈해 버린 득도한 세대가 되었고, 중국은 탕핑족이라고 하여 젊은 세대들이 취업 등 경제활동 전반에서 파업을 선고한 세대로 불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보다 더해 청년층들이 현재도 팍팍하고 미래도 막막한 이 현실을 견디다 못해 너나 할 것 없이 자살하는 추세다. 한국 인구 10만 명 당 청년층 자살율만 26명으로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인구 10만 명 당 11명인 것에 비교하자면 두 배 이상에 이르고 있다. 현실을 이겨내는 것을 개인의 힘만으로 해내라는 건 어쩌면 간접적인 아니 완곡히 표현해도 자살을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독서는 그렇게 경제학이나 제도에 대한 관점과 태도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즉 ESG가 탄생하는 동인이었을지도 모를 견해도 알 수 있었다. E.F. 슈마허의 우리는 직접 생산한 것이 아니면 공짜로 생각한다는 시각과 그러므로 영속성을 추구하는 사회 및 경제가 지구의 자원과 인간의 욕구를 충분히 인식한 상태로 진화하기에 훨씬 더 유연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관점이 ESG의 기본 견해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본질적 의미는 기존 구조와 기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과정에 있다는 슘페터의 주장이 구현되는 과정이 ESG의 발전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ESG가 결과적으로 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규제랄지 견제랄지가 갖춰져야 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어떠한 각도에서 필요하고 절실한지 그리고 이용하는 이에 따라 얼마나 악용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읽고자 하는 틀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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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생존 경영 - 메가 리스크 시대를 돌파하는 기업의 필수 무기
이준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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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산업자들의 저항으로 저지되기는 했으나 네덜란드에서는 축산농가의 사육하는 가축의 3분의 1을 도살하고 축산업에 사용되는 농지를 대대적으로 강제 매각한다는 사회주의에서나 할 법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취지의 의도를 드러낸 이유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근거한 대처 방안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문제시되는 15분 도시의 이유와 목적도 환경주의에 따른 것이고 말입니다.

환경주의는 세계경제포럼의 전신인 유럽경영포럼에서 도넬라 H. 메도즈 씨가 1970년 주창한 논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발표가 더 정교화되어 [성장의 한계]라는 저작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업 전략의 하나로 주지되어온 원시적인 당시의 환경주의는 한땀한땀 준비와 교정을 거쳐 199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기후협약으로 1992년과 1994년 브라질 리우협약으로 발효되기에 이릅니다. 1997년 도쿄에서 개최된 유엔기후협약은 리우협약보다 책임과 의무와 구속력을 가진 교토의정서를 채택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와서는 환경주의는 상식이자 진리이자 정의로 신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 세계인구 절반의 주식인 쌀까지도 벼농사가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한다며 제재하려는 움직임까지 조성되어 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명망있는 과학자들까지 탄소는 자연계에서 순환을 거치며 더더군다나 이 순환 과정의 일부일뿐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벼는 또한 그마만큼의 산소를 배출하기도 한다고 나서고 있기도 합니다. 종말론적 환경주의로 우리는 탄소발자국 추적 등의 기술로 일상 전체가 감찰 당하고 탄소배출 감소와 억제를 위한 소유와 일상에 대한 통제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유럽인들처럼 일어나 저항하는 이들은 초극소수이고 절대다수가 순응만 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소유 없는 행복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며 개인 누구라도 공과 사 어느 상황에서도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15분 도시제는 팬데믹과 환경주의가 주창되는 이 시대에 대중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는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전체주의 사회의 면면이 상식의 틈을 비집고 들며 일상 속으로 침투하기 직전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최근 뉴스로는 미국에서 AI로 인한 실직자들이 4천 명 증가했다는 소식이 있으며 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5억 명 이상이 AI로 인해 실직하리라 전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AI로 인한 실직에는 그걸 만회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리라는 전망도 있기는 하지만 AI의 발전 속도와 발전 규모로 볼 때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에서 필요한 기능은 인간보다 AI가 선점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경주의에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거버넌스까지 더해진 ESG 곧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왜 하필 이 시기에 시행되기 시작하는 것일까 의문이 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근간의 뉴스로는 인간이 어떠한 탄소나 환경파괴적인 배출이 없더라도 한마디로 인간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2065년까지 지구 온도는 2~3도 이상 오른다고 AI와 서구 어느 대학의 공동연구 결과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환경주의자들의 데이터를 근거하자면 이런 결과가 도출됩니다. 환경주의자들이 경고와 위험 단계를 너머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간주한 경우가 지구 온도가 앞으로 2~3도 가까이 오르는 상황입니다. 그들의 주장과 그들이 제시하는 데이터를 근거하면 인간이 생존의 마지노선을 건너는 시기는 2065년입니다. 그것도 인간이 어떠한 환경유해배출도 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적인 순간은 2065년보다 훨씬 이전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AI가 특이점에 이르르고 인간을 초월할 시점이 그 이전에 와 환경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위협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가정을 배제한다면, 과연 인류와 지구 생명체는 2065년 이전에 환경에 의한 파국을 맞이할지 의문이 일고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네요.

환경파괴에 의한 인류와 지구 생명체 전체의 파국이라는 이런 극단적인 프로파간다를 동원해 버프를 받고 있기도 한 ESG는 과연 정체가 무엇인가 의혹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ESG에 관한 전반적인 체계와 구조를 알려줄 책을 기다리다가 만나게 된 것이 본서입니다.

본서에 대한 요약이나 ESG 경영의 실제에 대해서는 경영이나 경제와 관련 있는 분들께서 더 제대로 된 리뷰를 해주시리라 믿고, 저는 비경제인의 시각에서 ESG의 정규로 인식되는 것과는 다른 기능이랄까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ESG가 사회의 기본적인 규정과 제도로서 자리잡게 된다면 이건 경영 방식을 너머 기업의 모럴 문제나 사회적 상식의 영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업의 모럴을 너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식이자 모럴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ESG 경영이 상식이 될 때 도급업체, 협력업체에게도 적용되어 하나의 강제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이럴 경우 ESG로 인해 기업의 운영비용이 대폭 상승하게 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99%를 차지한다는 중소기업 중 탄탄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들은 도태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건 다른 나라라고 다른 상황이 아닐 겁니다. 또한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해서 기업운영비용의 급격한 상승은 투자유치 비용의 증가를 불러오기에 투자자에 대한 의지랄까 의탁이 과도해지게 되어, 대기업이나 자본가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이나 특허권 매수가 가중될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MS-DOS의 특허권을 신생 기업에게서 뺏었던(그 이후에도 가열차게 오랜 세월 동안 그런 행태를 보여 빌 게이츠에 대한 소송이 이어졌던) 그런 상황이 이제는 모든 스타트업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또한 중소기업도 스타트업도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게 될 겁니다. 경영 방식과 경영 하나하나에 대한 투자자들 즉 주주들의 권리행사가 과도해질 가능성은 너무도 클 겁니다. 그걸 ESG의 거버넌스라는 체제로 정당화하면서 말입니다.

ESG는 또한 환경문제로 인한 대응으로의 설비들과 재가공, 재생산으로 인해 또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위한 체제들을 완비하는 과정과 완비되어 운용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부의 재창출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다못해 일론머스크의 테슬라에 2020년 수익의 절반 이상이 탄소배출권 판매액이었다고 합니다.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분할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이 되는 겁니다.) 이건 당연히 중소기업보다는 거대 금융자본가들의 직간접적 투자로 인해 예비되고 운영되고 확장될 것입니다.

거대한 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ESG와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배경으로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질 거라는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거대 금융자본의 투자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은 대거 도태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기업의 부를 향한 전진은 때론 비난이나 악평을 불러오기도 했으나, 이 시대부터는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때론 추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부는 정점으로 향하게 될 거란 걸 ESG에 대한 저작을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혁되어 가는 과정이 예전에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며 대중의 풍요를 약속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 시대에는 대대적인 실업자 양산과 생존의 위협, 현격해지는 빈부의 격차, 부의 극단적인 편중을 예견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통제사회를 짐작케 하니 참 암울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알던 모르던 결국은 살아가야 하고 감당할 수 있겠든 없겠든 결국에는 감당해야 하는 게 삶이기에 암담하고 막막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정서적 충격이나마 덜 할 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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