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
정명섭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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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다크 판타지이 소개가 무엇보다 끌리기도 했지만, 등장 캐릭터들 소개도 나름 매혹적이었다. 송현우, 이명천 등 주요 인물과 소진주, 진운, 정원석 같은 주변 인물의 소개부터도 설정과 서사가 몰입하게 하는 듯했다.

 

책을 펼치면 내지의 제목이 나오고 바로 뒷장부터 바로 [등장인물 소개]가 등장하는데 독자가 몰입하도록 만드는 요소는 여기부터가 아닌가 싶다. [조선판 다크 판타지]라는 사뭇 신선한 장르이기도 한데 등장인물들의 설정부터가 끌리는 데다가 읽어나가며 낙죽장도와 마패 등 아이템들의 특색도 잘 살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극 판타지이면서 호러, 오컬트 장르와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편소설이다.

 

과거시험에서 문과 장원급제를 한 주인공 송현우는 무과 급제를 한 이명천과 막역한 사이였다. 장원급제한 그는 암행어사로 낙점되어 암행을 떠날 날을 앞두게 되지만 이명천의 여동생과 급제 이후 바로 혼인을 한다. 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별채에서 밤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내는 죽어 목이 잘려있다. 놀란 그는 안채에 가보지만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태고 사랑채의 아버지에게 가자 아버지 역시 사망하고 머리는 잘려 머리가 어디 있는지조차 찾을 수도 없는 상태이다.

 

이 모든 상황에 놀라고 분노한 그에게 안개와 함께 외눈 귀신, 외다리 귀신, 외팔이 귀신이 나타나자 그는 아버지 시신 곁에 놓인 피에 물든 사인검을 들고 무작정 공격한다. 포도청에 포교로 자리하게 된 이명천은 살인 사건이 났다는 그것도 자신의 친구 송현우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 달려간다. 그리고 이명천은 송현우의 아버지인 병조판서와 그 아내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을 보게 되고 송현우 주변인들의 고변을 듣고 송현우를 포박한다. 포도청 옥사에 갇힌 송현우는 절망하고 자결하려 하지만 목에 그은 상처가 나으며 까마귀를 따라가 천격당의 소진주를 만나 여정이 시작된다.

 

가족의 죽음, 갓 혼인한 아내 죽음에 되려 살인범으로 몰리는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이 모든 상황을 가져온 존재에 대한 분노의 힘을 동력으로 여정을 떠난다. 애초에 암행어사로 낙점되어있던 그는 암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숨겨둔 곳에서 마패 등 장비를 챙기고 소진주가 배려한 진운이란 인물과 어둠이란 개와 함께 암행을 시작한다. 신비한 힘을 지니며 시작된 그의 암행을 그를 쫓으라는 밀명과 함께 암행어사가 된 이명천과 이 모든 사건의 실체를 밝히라는 명을 받은 부마 정원석이 각각 그를 뒤쫓으며 여정이 이어진다.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 곁 병풍에도 쓰여있던 무원’, 그리고 천격당주 소진주가 언급한 무원을 밝혀내고자 무원이 있다는 남쪽으로 향하는 송현우는 마주치는 고을에 이어지는 변고에서 자신의 가족과 아내를 죽인 귀신들의 흔적을 찾게 되고 그들을 무찌르게 된다. 그런 그를 뒤쫓는 이명천의 오해는 깊기만 하고 가짜 암행어사 송현우와 진짜 암행어사 이명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송현우는 무원의 비밀이 담긴 섬에 이르고 자신의 부친과 전대 임금부터 이어지던 은밀하고 음침한 진실에 다가서게 되는데...

 

이 소설은 역사 소재이면서도 장르부터도 판타지와 호러, 오컬트,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담고 있고 전대부터의 비밀과 얽힌 복수 그리고 어둠의 길을 가는 암행어사의 암행이라는 서사가 어우러져 있다. 또 등장하는 귀신들과 주인공 송현우가 지니게 된 귀기어린 힘과 그의 아이템 낙죽장도와 마패가 보이는 십이지신과 귀령들이 보이는 진기한 장면들과 독특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몰입감있게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역사 오컬트 판타지라는 독특한 장르를 매끄럽게 묘사해낸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책 분량으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실제가 되어 다음 권을 기다리는 설렘을 지니게 되기도 한다. 던져진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부담스럽지 않게 무사히 해소되지만 마지막에 주어지는 주박신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다음 미스터리를 기대하게 한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자주 접하지 않는 분들도 무겁지 않게 다가설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고 앞으로 여러 콘텐츠로 재생산될 이야기일 것 같아 더더욱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무겁기만 한 주변 때문에 색다른 휴식처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다가서 볼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 텍스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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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보고서 -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천재들의 비밀코드
스콧 배리 카우프만.캐롤린 그레고어 지음, 안종희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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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의 서재를 통해 출판사 필름으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엔 대부분 자신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기를 기대하고 부모 역시 자신의 자녀가 평범하기보다는 영재이고 천재이기를 바라고는 한다. 그런 기대는 세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천재나 위인들을 보며 이르는 동경에서 기인한다. 어떤 부모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자녀를 영재로 만들기 위해서 영재 교육 등 갖은 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천재를 동경하고 천재가 되고자 만들고자 하는 시대라면 천재에 대한 이해와 그 구성 요소에 대한 파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재에 관한 연구나 천재성의 요인이나 요소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충분히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연구와 추구는 어느 시대에나 그랬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더 열성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천재보고서]라는 한국어 제목 마따나 천재의 구성 요소 중 창의성에 대한 깊은 천착이 담긴 저작이다.

 

저자는 남다른 창조성을 보이는 천재들의 비밀은 무언지 전문적인 연구들을 종합해 차분히 풀어나가고 있다. 창의적인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을 심리학과 뇌과학을 들어 분석하고 그를 개인이 실천함으로써 개인의 내면에서 천재적인 창의성을 이끌어내도록 안배한 책이다.

 

본서의 [들어가며]에서는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 중 다양한 요소를 색다른 방식으로 뒤섞어 드러내는, 이들의 특성을 주지시키며 천재적 창의성은 그저 하나의 요소만이 아니라 성격(인격, 개인이 갖는 속성)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서문만이 아니라 이 정의가 결국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에 대해 결론짓는 정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는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양상인 미친 것 같기도 할 정도의 남다른 이들의 인간적 특성이 사실 반쯤 미치기도 해서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정신 질환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친 것과는 다른 게 자아 강도 척도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자아 강도 척도란 심리적 안정성과 건강, 뛰어난 현실 감각, 개인적 적절성(삶의 도전과 책임을 충분히 감당할 정도로 유능하다고 느끼며 자신을 신뢰하는 감각이며 자존감과 자신감 형성에 기여)과 활력, 도덕적 관용, 인종적 편견의 부재, 정서적인 외향성과 자발성, 그리고 지성등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천재적 창의성을 가진 이들은 양가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간의 모든 관련 연구들을 종합해 내린 저자의 결론이기도 한데 대개의 천재는 외향성과 내향성, 개방성과 폐쇄성, 통합 수렴과 다각도의 독자성, 고립과 친화성 등등등 여러 방면에서 대립되는 성향을 모두 보인다는 것이다. 우울하면서 쾌활하고 이타적이면서 개인주의적이고 과묵하다가도 사교적이기도 한 양상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여러 요소들의 대립쌍을 한 사람이 동시에 보이는 부분들을 많이 드러내는 것이 천재적 창의성을 보이는 이들의 특징이다.

 

정의하기 쉽지 않은 이런 천재들의 특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저자는 상상 놀이에서 열정, 공상, 고독, 직관, 경험에 대한 개방성, 마음 챙김, 민감성, 역경을 유익한 기회로 바꾸기, 다르게 생각하기에 이르기까지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모두 각 분야의 전문 연구를 근거로 한 제시이다.

 

이 모든 장들은 각각의 심리학 연구들과 뇌과학 연구의 결과들을 총합해서 옮기며 창의적 천재성을 보이는 이들의 특성과 결부 지은 저자의 해설을 곁들인 것이다. 각 분야 천재들의 예시나 인터뷰가 담기기도 해 독서가 재미나고 쉽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천재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성찰하게 만들기도 한다. 천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나 자신과 나의 삶 그리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여정을 새삼 돌아보게도 만드는 책이다.

 

자녀를 위해 읽던가 자신을 위해 읽다가 보면 자신은 이미 천재였고 천재의 여정을 걷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착각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저작이다. (자신)의 삶이 그려내어지는 책이라면 자연히 우리 모두가 창의성의 특성을 보일 삶을 살아왔고 그러므로 모두가 창조력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겠다는 감상이 든다.

 

우리는 이미 모두 천재다 그 천재성을 드러낼 날을 기다리는 중일 뿐이다이것이 이 천재보고서의 숨은 결론이 아닐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의 천재성을 자각하기 위해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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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2-07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이미 천재다. 그 천재성을 드러낼 날을 기다릴 뿐‘ 이라는 이하라님의 말씀에 무척 공감합니다.
저도 조건과 인연이 맞으면 언젠가는 적당한 시기에 드러남을 믿습니다.
다만 아직 때가 안 됐을 뿐... ㅎㅎ
좋은 리뷰 글 감사 합니다. _()_

이하라 2025-02-08 00:35   좋아요 1 | URL
인연이 닿는 시절에 진정한 자신과 조우하는 것이 인생인 듯합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기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끔 성장하는 것이 천재성의 진정한 가치 같습니다.
리뷰 읽어주시고 반응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힐님^^

시냇물 2025-02-09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復本을 말씀하시는 분이 天才를 지향하시면 어디로 가시는거죠?

이하라 2025-02-09 08:30   좋아요 0 | URL
천재성이라는 건 자신의 천성을 모두 발현하는 경우를 말하기에 우리 모두가 천재이고 그 천재성을 드러내는 경우와 아직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연이 닿으면 자신만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믿습니다.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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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관한 책은 대중서만 읽어보았다. 작년 2024년 상반기에 [마흔에 읽는 니체]는 읽고 나서 니체 철학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고 12월에 읽은 [예술이 묻고 니체가 답하다]는 읽고 나서 니체의 인생을 조금은 엿본 것 같은 감상이 들었다. 물론 이 두 권 모두 니체 철학에 대해 개념만을 짧게 전하는 책이라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본서 [니체 극장]이라는 제목의 책을 알게 되었다.

 

본서는 니체의 철학과 인생을 연계해 접근 한 책으로 그의 저작들이 집필된 순서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그의 일화들과 함께 그의 저작들을 돌아보는 책이다. 그의 정신세계를 조금은 엿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책의 후반에는 하이데거, 들뢰즈 등 니체의 철학을 자기 나름의 척도를 지니고 해석해 간 철학자들이 언급되기도 하며 책의 말미에는 프로이트와 융이 니체 철학에서 받은 영향이 언급되기도 한다.

 

니체의 삶에 대해서는 이 책보다 [예술이 묻고 니체가 답하다]에서 더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많기는 한데, 본서의 경우 분량이 분량이다 보니 (깊이가 크게는 느껴지지 않으나) 니체 저작들이 저술되어 나아가며 니체의 철학이 형성되어 간다고 할까 변화되어 온 과정이 그려지기는 한다. 다만 다양한 철학서에서 주제로 삼기도 하는 니체 철학이기에 본서에서는 개념 파악 정도로 만족해야 할 수준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이데거와 들뢰즈가 각기 니체 철학을 해석한 경우를 보며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무언지 이해될 지경으로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구나 싶기도 했다. 니체 철학에 대한 해설서를 따로 읽는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석이란 핑계와 함께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경우라면 원래 철학을 이해하겠다는 주제 의식으로는 원전을 읽는 게 낫지 해설서는 안 읽느니만 못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니체 철학은 낙타와 사자, 어린이로 니체가 분류한 의식 각성의 단계도 있겠고, 영원회귀 사상, 운명애(아모르 파티), 초인 사상과 권력의지(힘에의 의지) 등이 있겠으나 그의 생이 그려내는 주제로는 니힐리즘이 와닿았고 니체가 빠져있던 주제라면 영원회귀일 수도 있겠으나 본서를 통해서 가장 크게 와닿는 니체 철학의 근간은 초인 사상과 권력의지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자신을 귀족이라고 호도할 정도로 특권의식이랄까 기득권 의식이 강한 존재였다. 그는 노동자층을 노예로 보고 귀족이 노예를 부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노동자 계층이 다수라는 이유로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있기에 민주주의에 적대감을 표하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노예들의 희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 그와 같은 초인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노예 계층을 억압하고 착취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던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렇다고 이런 초인이나 귀족들의 존재 이유가 무슨 커다란 이상적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그저 지배하는 과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도 장점도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초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와닿지 않았다. 초인이 등장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희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여정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너희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성장하도록 만들어 가는 여정이니 너희는 그저 죽은 듯이 사회적으로 희생하라는 것밖에는 그의 철학에서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희생을 통해 등장한 초인이 전하는 것이라고는 우월할 존재는 따로 있고 그런 존재를 위해 다수는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전할 메시지가 없다니 너무 황폐한 철학이지 않은가 싶다.

 

더 높이 더 멀리 보는 존재가 제시하는 것이 현실을 받아들여라 너보다 더 높은 존재를 위해 살다 죽어라라면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과연 초인내지는 극복인이기는 한가 싶다. 영원회귀와 운명애도 우스운 게 그냥 진리니까 받아들이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자기 운명을 사랑할만 한이라면 자연히 자기 운명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고통의 과정을 이기고 무언가 의미를 찾은 이라면 운명을 사랑하기도 하고 영원히 삶이 무한 반복되더라고 지겨운 것 말고는 거부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할만 하지 않고 고통뿐인 삶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괴로움 뿐인 삶을 순환한다 해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건 억지고 강요고 무식이고 폭력이 아닌가 싶다. 영원회귀도 운명애도 배부르던가 어느 정도 물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철학일 뿐이다. 이런 철학들이 보편성을 갖자면 모두에게 물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와 권한을 충분히 부여하는 과정이 선제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낙타, 사자, 어린이로 성숙해 간다는 니체의 의식 각성 단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수준인데 이 개념 때문에 내가 니체의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단순하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의 정신 또는 의식은 선형적으로 성숙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퇴보하기도 정체하기도 한다. 각 의식의 단계가 상징하는 바가 혼재하기도 하고 어느 시절에는 어린이였으나 다음 시절에는 오히려 사자도 아닌 낙타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직진하며 성장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삶의 무게가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성장만이 아니라 퇴행도 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이다. 성장만 하는 인생은 삶의 무게가 널널한 정도여야 가능할 것이다. 지워진 짐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감당하기 쉬운 정도여야 인간은 무리없이 저항없이 성장만 하지, 지나치게 무거운 짐일 때는 심지어 미치기까지 한다. 물론 니체처럼 병약하다는 것 말고는 별 무게 없는 이도 미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니체의 철학은 사실 유치해 보이는 면이 크고 그가 말하는 초인과 권력의지는 인간의 궁극과 본성의 일부를 이야기하는 면도 있지만, 그 초인이 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희생과 그런 희생을 통해 성장한 초인이 주장할 바를 생각해 보면 참 유치 찬란한 구조의 철학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유대 신앙과 기독교 구약 신앙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한다는 말이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라지배하라뿐이었던 것을 보면 니체는 그런 서양의 전승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그의 철학을 따라가면 초인은 대중을 위한 초인이 아니며 초인이 이야기할 것도 지배하고 피지배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정도만이 될 뿐이다. 대중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할 뿐이고 지배자에게는 군림하라고 말할 뿐인 야훼의 선언과 무엇이 다른가?

 

니체는 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신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예수의 철학과 상충할 뿐 구약이나 유대의 철학과는 하등의 다른 부분이 없었다. 결국 그는 게으른 연설가일 뿐이다. 이게 내가 느낀 니체 철학에 대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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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리옷 한복 이야기 한복 이야기
글림자 지음 / 혜지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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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을 위해 읽기 시작한 일러스트 복식 책들 가운데 세 번째 도서다. [우리옷 한복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서 같은 작가분의 [일본 복식 문화와 역사]와 비교하게 되다 보니 확실히 일본이 색감이 화려했고 조선이 색감 면에서는 제한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조선 이전편 보다는 조선시대편이 아무래도 훨씬 다채로운 감상이 일었다. 복식이 물론 다채롭기도 하지만 조선은 오방색 안에서 의복의 색을 제한을 두었다고 하니 그 내에서 색감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우선 남성의 복식 중 양반가의 도포와 같은 류의 옷들이 소창의, 중치막, 대창의, 장옷, 도포까지 이름이 다양한 것도 신기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앞트임, 옆트임과 같은 사소한 차이로도 옷을 구분 짓는다는 게 신기했고 여성 복식의 변화는 그보다는 디자인의 체감 변화가 크게 느껴졌다. 기생은 천하다고 여겨지던 신분인데도 양반가의 의상보다도 제한이 없어 놀라웠다. 그리고 일꾼들의 복식에 현대로 치면 반팔 상의와 칠부바지가 등장해 진짜 신기했다. 일꾼들 복식이 그 하나만으로도 사극에서 보던 것보다는 자유로웠구나 싶기도 했다.

 

생각시란 말이 어린 궁녀를 가르킨다는 건 알았지만 어린 궁녀들이 새앙머리라는 머리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했다는 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생각시라는 말은 어린 궁녀들이 새앙머리를 한다고 해서 새앙각시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 어린이(미취학 아동 나이대)는 쌍계 또는 쌍상투라고 머리 양쪽에 두 개의 상투를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물론 본서에 등장하는 거의 전부의 내용이 낯선 것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새앙머리와 쌍계를 했다는 건 정말 인상적이다.

 

방한의 의도였지만 방한하려는 용도가 여성 복식의 아름다움을 자아낸 것도 같고, 통일이랄까 연대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조선 문화인데 지역에 따라 버선 곡선이 다르다거나 여성의 혼례복이 다른 건 신선하면서 아무리 막아도 개성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여성의 의상이 단연 아름다움이 두드러지겠으나 남성 의상도 나름의 다채롭고 그 나름의 미학이 있다는 게 더 다가온 사실이기도 하다.

 

모든 신분에서 멋과 아름다움이 드러나지만 왕비의 의상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저자가 간간히 언급하는 바에서 전대의 국가들의 문화와 외세 문화의 영향이 유래하면서도 독자적인 조선만의 남녀 의상으로 변모하며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 느껴졌다.

 

본서는 도입부에서 소곳부터 의상을 착용하는 차례를 그림 하나하나를 통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그림체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조선 사람이 되어 한복을 소곳부터 하나하나 입어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목차를 검색해 보시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는 신분, 성별, 나이, 상황에 따른 거의 전 방면의 복식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사극과 역사 소설을 좀 더 재밌게 즐기시고 싶은 분도 창작에서 더 치밀한 묘사를 하고 싶은 분도 선택하기 좋은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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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이전 우리옷 한복 이야기 한복 이야기
글림자 지음 / 혜지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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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로 보는 일본 복식 문화와 역사]를 보며 상당한 힐링 효과를 느껴 보았어서 저자의 전작들이 무척이나 탐이 났다. 그래서 저자의 전작들 가운데 무엇부터 볼까 하다가 [조선 이전 우리옷 한복 이야기][조선시대 우리옷 한복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시대순으로 본서부터 보게 되었는데 읽고 보니 시대순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았겠구나 싶었다. 우리 전통 의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 보니 본서에 등장하는 옷의 부위별 명칭 등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을 마치며에서도 시대순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읽기를 추천하고 있고 온라인서점의 책 소개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추천하고 있던데 내가 주의를 못했던 것 같다. 다른 분들께서는 조선 이전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시길 권해드린다. 복식에 대한 이해에서 그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복식학을 전공했거나 한복에 대한 전문서에 대한 상식이 이미 있는 분들보다 처음 들어서는 초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저자분이 이미 말씀했는데. 감상으로는 우리 복식에 대한 기본을 이해하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싶었다. 나부터가 우리 복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바만으로도 상당히 흡족한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난 복식에 대한 지식보다는 힐링 효과를 노렸지만 말이다. 다만 [일복 복식 문화와 역사]를 읽을 때는 일본 문화와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전달되던 것에 비해 본서는 복식만 등장하다 보니 조금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마 우리 선조들의 복식에 대한 책이다 보니 상식 차원에서의 역사 지식은 있을 거라 믿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복식을 언급하면서도 중국의 역사 흐름에 따른 복식과 일본의 복식, 베트남의 복식, 그리고 몽골의 복식도 간간히 등장하며 우리 복식이 이민족의 복식과 주고받은 영향을 살짝 언급하는 것도 재밌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중국의 한푸에서 받은 영향과 우리 복식은 원래 중국의 한푸보다 몽골의 복식인 델 양식에 가까웠다는 것 그리고 원나라 시기 몽골에 고려의 유행이 전해져 고려양이 원나라에 유행하기도 했다는 것도 새로웠다. 몽골의 공주들이 고려에 시집오면 공주, 장공주, 대장공주 등으로 불리웠는데 그들이 머리에 쓰던 몽골어로 복타크라고 하는 고고관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며 족두리로 변해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는 것도 재밌게 다가왔다. 한푸는 허리띠를 하고 몽골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저고리 고름 같은 옷에 달린 띠나 단추로 옷을 여미는데 시대에 따라 우리 복식이 영향을 받는 바가 다를 때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옷을 왼쪽 여밈하는지 오른쪽 여밈하는지가 시대마다 외래 문화 유입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사들의 갑옷도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대세가 되는 외래 문화에 따라 달라진 것이 신기했다. 갑주(갑옷과 투구)도 복식도 일본에 영향을 일방적으로 준 것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역으로 유행이 전해진 때가 있었다는 점도 신선한 정보처럼 느껴졌다. 다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가야 시대 갑옷에 대한 정보가 등장하지 않아서 다른 부분에서도 넓거나 깊게 정보를 전하기보다 간략하게 상식선에서 소개한 것이겠구나 싶어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삼국시대는 의복 전통을 참고해 저술하려 했어도 남아있는 자료나 증거가 거의 없다 보니 저자가 종종 어느어느 유적과 유물을 참고해 추측했다며 제시하는데 그게 상당히 진솔하게 여겨졌다.

 

삼국시대만이 아니라 발해든 고려든 당시 복식을 현대에 그 당시 그대로 구현해낼 수는 없지 않겠나. 자료만으로 구현하기에는 남아있을 유물이 거의 없을 시절들이니 말이다.

 

그림을 통한 힐링을 많이 기대했는데 고대라 색감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고대의 복식들을 대하며 상상하고 마음으로 그려보며 상당히 자유로운 느낌도 들었다. 이러다 일러스트 복식 책들에 덕후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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