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 웨이 - 다른 세계로의 힐링 여행
Hugh Mynne 지음, 박한진.손인균 감수, 정소연.박기주 옮김 / 성숙한삶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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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까지는 페어리의 전설과 관련 일화들로 [페어리 웨이]의 맥락과 대강을 알 수 있게 배려한 장이라면 실제 수행은 5장부터이다.

 

백마법 계열의 수행들 백보좌 명상이나 [에노키안 매직](아직 에노키안은 맥락과 체계만 알고 있다) 등은 융의 적극적 심상화(적극적 명상)과 같은 계열이다. 페어리 웨이도 적극적 심상화와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헤르메스학 입문]10단계까지 수행하면 10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찌 들어서야 할지 다소 난감한 상황이 되는데 페어리 웨이의 적극적 명상 계열의 접근을 구체화한 대목들이 그런 난감한 상황의 돌파구가 된다.

 

본서는 [헤르메스학 입문]을 수행하는 분들께는 좋은 보강 수업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자체에 만족하겠다는 분들께도 실제 수행으로 이어진다면 분명 그만큼의 이익이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런 심상화 계열의 수행은 마법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경험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의 폐해가 있다면 그건 겪어본 분들만이 아실 것이다. 부정적 영향이 걱정되거나 심상화의 긍정적 작용과 부정적 영향이 궁금해진다면 [융의 적극적 명상]을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소하게 다행스러운 건 최면 테크닉이면서 동시에 적극적 심상화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윌리엄 페즐러 William Fezler 씨의 [이미지 창조 Creative Imagery]를 전 과정을 두 차례에 걸쳐 마친(전 과정-35과정-을 두 차례 마쳤다)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심상화했던 맥락들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여겨졌다. (이 책은 현재 국내 번역본은 사라졌고 원서로는 아직도 판매 중이긴 하다.) 당시 이미지 창조를 수행처럼 여기고 마친 게 이렇게 유용하게 작용할지는 예상 못 했다.

 

수행(그중 명상 수행), 마법, 최면이 어느 수준(단계)까지는 길이 같다는 감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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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쟁으로 읽는 지정학적 세계사 - 강대국들은 더 좋은 영토를 위해 어떻게 전쟁을 했는가?
다카하시 요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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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쟁이 지금의 지정학적 현상과 문제를 야기하게 된 역사적 흐름을 알고 싶고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담론을 들어 보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저자는 1980년 일본 대장성(2001년 중앙 성청 개편으로 사라진 기관으로 메이지 유신 때부터 존재했다는 일본의 행정 기관이다.)에 입성해 대장성 이재국 자금 기획실장과 이후 내각부 참사관, 내각 참사관을 역임했던 인물로 고이즈미 내각과 제1차 아베 내각에서 활약하고 2008년 퇴임하신 분이다. 그 외의 대학과 사기업 활동 이력은 본서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그의 정치 이력에 본서가 분량과는 달리 상당히 깊이 있는 담론을 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본서를 선택하게 되었다.

 

우선은 본서를 읽으며 다소간 실망한 부분부터 언급하자면 본서의 역사 기술은 상당히 건조하다는 것이다. 역사가나 역사 유투버가 전하는 내용은 아니다 보니 스토리텔링이 풍부하다거나 몰입도 높게 역사서술은 하지 않고 있다. 저자 자신이 역사에 대한 정보는 세밀히 알 필요가 없고 대략적인 핵심만 알면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기 보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역사서술 대목은 보고서 형식으로 간략하며 사건 나열 중심의 보고서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실망 포인트라면 역사 해석의 대목 분석과 그 해설이 너무도 상식적이라 실망스러웠다. 남다른 식견이라던가 탁월한 분석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이력을 가지신 분의 저작으로는 다소 빈약한 책이 아닌가 싶었다. 다만 이분이 제시하는 키워드들로 사유를 확장하는 데는 아주 유익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본서에는 기대는 배신당했으나 사유는 좌절당하지 않았다는 감상이 들기도 한다.

 

역사서술 대목은 2장 중국, 3장 러시아, 4장 유럽, 5장 미국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으며 간략히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담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외세에 의해 중국이 핍박 받았던 역사와 내전 이후의 중국의 타국과의 전쟁이나 전쟁 개입에 역사를 다루고 현재의 양안 간의 문제가 세계적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을 전망에 대해 간략이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무엇 보다 현재의 국경선이 성립된 이후 과거 러시아의 세력권이던 동유럽 지역들이 대거 EU에 가입하게 된 사실과 현재의 러-우 전쟁이 러시아에게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전개된다.

 

유럽의 경우는 가장 유익했던 대목은 역사적인 유럽 내 특히 동유럽에서의 분열과 통합을 주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며 러시아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서방측의 포위망에 러시아가 갇히는 양상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알수 있는 기회였다. 또 식민지 시대 이후 중동 지역에서 유럽이 중동의 국가들의 독립과 자존을 보장해 주겠다는 일종의 기만을 통해 중동 각국에서의 내적 분열과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사이의 분열의 씨앗을 심어주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익한 장이었다. 왜 그토록 급진 이슬람 세력들이 유럽과 미국을 적대시하는지 충분히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과연 유럽과 미국 같은 민주주의 진영이 전쟁과는 거리가 먼 국가들인지 아니면 분쟁과 전쟁 비화의 씨앗을 품고 퍼트리는 원인인 것인지 의아해지기도 했다. 

 

미국의 장은 저자가 제시한 현대는 공존공영을 중시하게 되어 국민적 합의 없는 전쟁이 불가능하며 민주평화론이라는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전쟁이 없다는 관점이 다소 비틀리며 읽히는 장이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공존공영이란 저자가 말한 얕보거나 얕보이거나의 논리에 벗어나 있는 대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식민지를 추구하지 않으며 서유럽에서 힘의 균형을 추구하던 시기가 장기화 되자 선왕의 유지와는 다르게 차기 왕은 비스마르크를 멀리했으며 독일 국민 다수가 식민지를 만들라고 요구한 것을 보아도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공존공영의 실상은 이 시대가 식민지를 통한 이익추구가 아니라 그만큼의 이익을 무역을 통해 쌓아낼 수 있는 세계화를 이룩했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없다는 민주평화론도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없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할 뿐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을 유도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현재의 러-우 전쟁과 그와 양상이 비슷했던 아프카니스탄(-아 전)전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배후에서 이라크를 지원했기에 일어난 전쟁이고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주도했다. 베트남 전쟁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본색이랄까 미국의 양가성을 드러낸 전쟁이지 않은가? 민주평화론은 아전인수적인 관점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일었다.


미국과 유럽이 직접적인 전쟁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들이 평화를 추구한 것이 아니란 것은 눈이 있고 뇌가 있다면 알 수 있을 사안이다. 러시아를 포위하는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러시아가 강제적인 폐쇄형국에서 벗어나려 전쟁이라는 반강제적인 선택에 놓일 수밖에 없도록 한 것도 미국과 유럽이니까 말이다. 미국과 유럽은 동유럽, 중동, 러시아 등에서의 분쟁과 분열과 내란과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증폭해온 국가들이다. 다분히 사회악이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국의 안정과 부의 구축에는 적극적이라 일반 회사원과 최고위직 임원의 연봉 차를 364배가 넘도록 유도해온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연봉차가 364배라는 건 대개의 기업에서 일반 회사원 평균 임금으로 CEO가 한 해 동안 버는 금액을 모으려고 한다면 1원 한푼 안쓰고 모아도 364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과연 유럽과 미국과 그들의 우방인 세계 대다수 나라들이 추구해온 모든 것들이 긍정적인 세계를 위한 것인가 싶은 의문도 든다.

 

그리고 미국이 고립주의를 제창하는 먼로 독트린에 입각해 타국을 침략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마어마한 어폐가 있는 관점이 아닌가 싶다. 2013년까지 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얼마나 국제무대에서 타국의 내정에 개입하고 타국의 내란도 일으키기를 불사해왔는지 미국의 역사가나 지성들도 지적하고 있는데 말이다. 세계화가 여러 국가들에 수혜가 되었다면 세계화라는 등쌀에 미국에게 유린당한 몇몇 나라들도 분명 존재하고 그로 인한 참상도 결코 적지 않다. 미국이 개입하고 유도한 전쟁과 분란으로 죽어간 각국 국민들에게 미국은 불량국가만이 아니라 악마의 국가로 인식될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현재의 러-우 전쟁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개입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이미 협상을 거쳐 종결되었을 것이다. 국제 경제의 위기도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는데 대한 불안도 미국과 유럽의 개입으로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고립주의니 공존공영이니 민주 평화론이니 잘 구운 공갈빵이 아닌가 싶다.

 

전쟁이 민주주의 국가들의 영역 내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중 간의 충돌과 세계대전의 점화선에 언제 불이 붙는다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시대란 것도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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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과의 전쟁 - 미래산업을 바꿀 친환경기술 100
박영숙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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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후재난설, 기후위기설을 믿지 않는다. 기후재난은 기후위기설을 더 민감히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설정된 단어이고 기후위기는 지구온난화라는 설이 대중에게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 같으니 위기감을 고조하기 위해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는 1972년 로마클럽의 경제학자와 기업인들이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에서부터 지적되던 사안을 통해 주목한달까 조성한달까 조작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재난, 기후위기, 지구온난화는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은 경제성장을 막으니 이부터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경제학자와 기업인들의 프로파간다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선전문구로 기획된 것이다.

 

이미 이 사안은 그러니까 기후재난, 기후위기 등에 대한 개념은 사회에 일반화되어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까지 매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위기라는 프로파간다가 얼마나 큰 영향력과 중독성이 깊은지는 유럽의 일부 급진 환경단체들의 과도한 시위와 난동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지 않는 대중들까지도 그들의 주장에는 동조할 정도로 기후위기설은 유효하게 대중의 심리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듯 99%나 되는 과학자들이 다 기후위기설을 신봉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유럽에서는 지난 100년간 3~5도의 기온이 상승했다는 기후위기설 과학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오히려 지난 100년간 -1.6도 지구온도가 하락했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주류언론에 등장하자마자 기사가 차단당하고 있기도 한 실정이다. 기후위기설을 정치 문화적으로 악용하기 위해 코로나19 시기에 백신에 부정적인 정보들을 차단했듯이 기후위기설에 반대되는 정보는 차단당하는 실정이다. 미국에는 이미 1984라는 소설에서나 등장하던 진실부라는 정부 부처까지 등장한 게 대중이 처한 현실이다. 정부가 진실이라고 제시하는 것 외의 정보는 접근이 원천 차단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 강제와 강압이 치밀하지는 못해 정부가 차단하는 정보를 입수할 경로 전체가 막힌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일수록 정부가 접근을 막는 정보와 접촉할 수단을 잃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장탁천문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하늘을 보려는 대중의 눈을 정부가 찔러버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후위기설을 통한 대중 통제의 사례는 관련 정보들을 이전 리뷰와 포스팅을 통해 충분히 전했다. 기후위기설을 통해 기득권층이 얻는 것은 비단 대중 통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본서를 읽는 분들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서에서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과학계와 기업들의 노력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처럼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거라 전망하고 있다. 그에 대해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하는 저작이 본서라고 할 수 있겠다. 기존의 지속되어오던 기간체제 전반이 무화되고 새로운 기간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설비와 생산과 소비에 있어 새로운 비용과 소비를 설계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새로운 부의 부흥을 불러오는 과정이 될 거라는 말이다.

 

저자는 IPCC의 보고들을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만 제시하고 있으나 기후위기설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저작들은 IPCC의 연구와 보고가 어떠한 교정과 조작을 거치는지 대중에게 알려준다. 기후위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수정과 교정을 거친 정보들을 마주한 과학자들 일부는 각국 정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그를 떠나기도 하고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반대하는 열렬한 반대자들이 되고 있다. 그들은 기후위기라는 것이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거대한 혁신의 순간(그레이트 리셋)을 위해 마련된 웅장하고 치밀한 하나의 사기극이란 것을 대중에게 토로하고 있다.

 

환경주의가 낳은 신기술들과 산업들을 보자 해도 이것이 기업이 대중을 위해 기여하는 새로운 시대의 기류인 것처럼 대중이 인식하도록 하고 있으나 초극부층들에게는 거대한 부의 부흥을 불러올 창대한 투자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부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릴 시대를 위한 투자인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사회를 위해 환경을 위해 인간을 위해 기존의 것들을 철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마련하고 있다는데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그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기술들에 쓰일 자원들을 얻는다는 목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콩고의 코발트 채취장에서는 민중이 19세기 유럽 공장에서처럼 매를 맞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고 아동노동에 놓인 아이들이 여기서 일하기 싫어요. 너무 아파요.” 라고 호소하며 맨발로 중금속을 밟으며 중독되어 가며 코발트 푸대를 이어 나르고 있다. 인간과 지구를 위한다며 개발되는 신기술들에 필요한 자원을 채취하는 현장들 어디서도 현대식 장비와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설비나 장비를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지구를 위한다는 게 인간을 착취하고 중독시키고 폐인을 만들고 과로에 시달리다 죽어가게 만들 가치가 될 수 있는가도 묻고 싶다. 지구를 위하는 길이 인간을 위한 길이라면 아무리 창조적 파괴라 하더라도 완만히 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대중이 대비할 수도 수용하기도 벅찬 변화를 그레이트 리셋이란 의도 아래 하루아침에 가져오려는 것은 일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유익할지 몰라도 대중을 위한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주의와 기후위기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그들이 가져오려는 것이 대중을 위한 것인지 일부 계층의 부를 위한 것인지 낱낱의 사람들이 바로 보고 정보를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의 인식과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과 그 결과 중 무엇 하나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게 진짜 문제인지를 인지하는 과정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될 것이다. 주류 매체가 말하는 게 진짜 사실인 것인지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진실부가 제시하는 것만이 사실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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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발견 - 믿는 것이 현실이 되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한나 옮김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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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짧은 소개글만 읽고도 끌린 책이다.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를 논하고 신경가소성에 대한 언급이 있기에 신념과 그 실현 원리를 다룬 책이리라 짐작하고 책에 끌렸다. 인간이 믿는 대로 실현되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대로 뇌도 변화한다는 것을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라는 조 디스펜자 씨의 저작을 통해서 인식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신사상 또는 새생각으로 불리는 [씨크릿]류의 가르침과는 다르리라는 것은, 저자가 그런 가르침들을 유사 과학이라고 단정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 책을 대하는 마음은 그런 사상들에 대한 관심과 유사한 흥미를 유지하며 읽게 되는 경우가, 나 외에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기대한 대로 이뤄진다, 바라는 대로 실현된다는 주제이자 결론이 그런 오해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 본서는 착시효과, 플라세보 효과, 노세보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충족적 예언등 상식적인 심리 정보들이나 신사상적 이론으로 발전 가능한 원리들을 담론하고 있는 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신사상과의 차별점이라면 이 책은 초월적인 주의나 사상을 논하는 게 아닌 상식적이고 심리학적인 논리와 관점으로 해당 주제를 천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이나 합리주의 이상으로 논지를 전개해서 억측이나 논리적 비약을 불러오는 저작은 아니다. 저자는 앞서 말한 심리학적 상식들을 포괄하는 개념을 기대 효과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모든 현상이 사람의 기대를 통해 그 기대가 충족되는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라 보고 있다.

 

들어가며에서와 그 이후 장들 중 앞선 몇 장에서 언급되는 사례 몇몇에서는 이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1970년대 후반 미국의 라오스 이민자들의 원인불명 야면 돌연사증후군(SUNDS)이나 본 포인팅 또는 부두 죽음(voodoo death) 같은 경우는 심인성 질환이나 집단 이상심리가 원인인 것도 맞겠으나 그 이상으로 관점을 확장해 볼 수도 있는 문제다. 장 차원의 우주, 양자스프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소수든 다수든 집단의 일관된 상념이 특정한 영향력을 불러오는 장 차원의 힘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이런 초월심리학적 해석은 아직까지는 주류 학계에서 유사 과학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객관적이며 학술적인 견지를 유지하려는 본서에서는 어쩌면 몰라서 배제한 서술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단히스테리나 집단 이상심리로서 분류한 무도광(14세기에서 17세기 동안 있었던 사람들의 장기적인 집단 춤을 불러온 사례들)의 경우 본서에서는 맥각 중독이라는 설도 있다고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맥각균은 LSD라는 마약의 원재료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맥각균을 정제해 LSD가 제조되었다. 요즘의 좀비마약이라는 어느 신종 마약의 경우 중독자가 관절을 꺽고 고개를 점층적으로 꺽는 등 신체적 이상 동작을 보이기도 한다. 중세시대의 유럽인들이 맥각균에 의해 이상 동작들을 보인 것이 무도광의 사례로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과거의 사례이기에 검증 불가능하니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렇다면 맥각 중독이 원인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저자는 심리적인 이유라는데 더 무게를 두고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하나는 2016년 쿠바 아바나에서 CIA요원들이 보인 이상 증세들을 저자는 이후 뚜렷이 음파 무기에 의한 공격 등으로 해석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심리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단정 짓는 것도 억측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건 닉 베기치라는 과학자 분의 [Controlling the Human Mind: The Technologies of Political Control or Tools for Peak Performanc]의 역서 [누가 인간을 조종하는가]라는 저작이 과거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 책에는 전자기파로 인체의 기능과 심리를 제어하던 기술이 1970년대부터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 있었음을 과학적 원리와 함께 실제 연구 역사와 실례를 전하고 있는 저작이다. (닉 베기치 씨부터가 하원의원과 정치운동가인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연방정부에서 해당 분야의 과학 연구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적은 없지만 이미 미국의 대중 인체와 심리통제 기술이 정점에 이르러 있음을 지적하고 널리 알리며 경계하는 과학자들의 저작과 정보가 적지 않다. 아바나 사태도 미국이 이미 보유한 기술을 상대국이 사용했기에 그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론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 정보당국이 더는 수사하지 않고 무마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사실관계가 공표되기 전까지는 확언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경우의 수라고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심리가 원인이라는 주장만이 진실이고 다른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과학적인 사고나 주장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외의 예들은 대체로 공감하기 쉽고 수긍하기 어렵지 않은 주장들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와서는 상식이다시피한 관점이 되어버린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플라세보와 노세보 효과를 언급하며 저자는 인간의 성향을 예측기계와 같다고 까지 단언하기도 한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구현해내기에 자신의 예측을 실현하는 기계와도 다를 바 없다고 확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대중적 상식이 되어버린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의 원리는 이 저작 전체의 사례에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착시 효과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맛 보는 것도 인간이 단정 지은 것을 반영하는 이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기대를 하게 되면 그저 얼룩무늬에서도 기대하던 패턴을 읽게 되며 백색소음을 듣기 전 힌트만 주면 특정 음악을 배경음으로 들은 착각을 하기도 하며 미미한 색소나 향만 첨가해도 같은 맥주를 월등히 뛰어난 특급 맥주로 착각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기대를 충족하는 원리가 플라세보나 노세보 효과를 낳고 그건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효과들을 일어나게 한다.

 

10장 구조의 본서에서 1~4장까지는 저자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논리와 원리를 소개하고 자리잡게 하는 장이라면, 5~10장은 일상에서 이러한 기대 효과가 미치는 영향력을 전개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량을 높이기 위해 플라세보 효과를 이용하고 실제 적용되어 성취를 이루었던 사례를 전하기도 하며 다이어트나 건강식의 효과와 역효과(노세보 효과)를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 변화가 실제 스트레스의 작용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생리적 차원에서 설명해주기도 하며 남녀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수학과 물리학 등에서의 학업성취도가 자기 가치 확인이라는 특정 과제에서의 해결력만으로 자신의 전체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로 자기 전체 능력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현격하던 남녀학업성취도가 근소하게 바뀐 경우를 예로 들고 있기도 하다.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교사의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것만으로 열등생으로 분류되던 학생들의 성적이 뚜렷이 상승하는 경우들도 소개되고 있다. 인정받는 아이, 자기긍정할 근거를 마련해 준 아이들은 스스로 성취를 이뤄나가게 된다. 자신에게 스스로 기대할 바탕을 갖게 해주어야 아이들도 성취를 이루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신의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동기능과 시력, 청력 등의 인체 기능, 호르몬 분비량과 기능을 유지하느냐 잃느냐 하는 차이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경우가 다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하느냐에 따라 실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며 주장이다. 모두 수긍이 가고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플라세보 효과나 노세보 효과의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수긍하게 되다 보니 이런 논점을 제약회사가 부작용의 사례에 적용하려 들면 어떡하나, 제약회사들에게 후원을 받는 심리학자들이 이런 심리학적 결과들을 제약회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악용하면 어떡할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약품이 무언지 모르고 복용하더라고 우리 몸에 작용하기도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는 게 의약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다른 대상의 풍요를 불러올 수는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 노세보 효과가 아니더라도 의약품은 기능을 하며, 우리가 멸종하면 안 되는데 라고만 생각한다고 해서 특정 동물군의 멸종이 멈춰지지는 않는다.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경우의 수가 삶에서는 더욱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관점이 또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리프레이밍이 보다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분명하기에, 이 책은 확실히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임에 명백하다.

 

신사상과도 같은 심리효과를 기대하며 선택한 책이었지만 상식에 한 층을 더 쌓는 경험이 되었다. 유익하고 유용한 독서 경험을 가져다준 책이다.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은 차례를 지내는 집이라면 모를 수 없는 말인데 언제나 사람은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두었음을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대 효과는 아기부터 노령의 어르신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광범위한 효과이다. 이런 효과의 부정적 영향력을 받지 않으려면 긍정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연령을 떠나 누구라도 학생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아야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관념만으로는 쉽게 늙고 빠르게 의식도 생명력도 고갈될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죽음까지도 이르게 닥칠 수 있는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나는 제자이다내지는 나는 학생이다라는 태도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유지해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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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기억력을 훔쳐라 - 한국 최초 국제 기억력 마스터가 전수하는 "기억력"와 "두뇌 개발"의 모든 것!
정계원 지음 / 베프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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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적인 면은 [기적의 암기법]으로, 대회 출전 과정에 대한 정보와 체험담 경험은 본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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