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박목월.박동규 지음 / 대산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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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 수업에 충실했다면, 아니 기본적인 교양만 갖추고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시인인 박목월. 미당이나 김소월보다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는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자연과 향토적 색채를 풍기는 민요풍의 시를 지은 이다. 늘 이런 식으로 유명한 시인으로 인식했던 박목월. 그의 사생활은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에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아버지인 박목월의 이야기와 아들인 박동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먼저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써내려간 일기를 읽으며 부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뒤이어 아버지를 추억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이어져간다. 아무리 같은 핏줄이라고 하지만 관점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항상 터놓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교집합은 그렇게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인은 가난하다. 얼마 전 기사화된 적이 있듯이 신춘문예 등단작가 중 시인은 연 수입이 30만원도 안될 정도다. (물론, 박목월 시인과 신춘문예 등단작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시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형제들을 챙기며 그들을 사랑과 신앙으로 보살핀 어머니. 그리고 가난하지만 마음만을 똘똘 뭉친 형제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는 찾기 힘든 가족의 따스함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매일 아침밥을 함께 먹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식사를 시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족이야말로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이야기가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커스단이 왔을 때 이를 보고 싶다고 아들이 자꾸만 조르자, 돈이 없어서 안되겠다고 서커스 천막이라도 구경하고 오자꾸나라고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서는 모습이었다. 도착해보니 개구멍으로 아이들이 오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리로 들어가서 보고 오라며 들여보내곤 서커스가 끝날 때까지 자신은 밖에서 아들이 행여 걸려서 혼나지는 않을까 기다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복은 다 헤졌지만 아들에게는 양복을 장만해주고, 자신의 신발은 닳아서 발이 보일 정도지만 아들에겐 새 신발을 사주는 모습 등도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부모의 마음이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따뜻한 사랑으로 이뤄진 가족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가를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처음에 집어들 때는 다소 흥미위주의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책을 읽고나니 흥미와는 상관없이 감동만이 잔잔하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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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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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기 전에 꼭 밟아보고 싶은 땅이 이 세상엔 딱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체코의 프라하. 하나는 쿠바. 두 곳 다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제 두 곳 모두 어느 정도 문명의 때가 묻어가고 있으니 내가 그 곳을 밟을 때쯤이면 이미 찌들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말을 들은 한 사람은 "그럼 북한에 가지 그래?"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나의 목표(?) 가운데 한 곳인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끌렸고, 싸이월드에서 이창수님의 페이퍼를 구독해서 보는 지라 관심이 끌렸기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쿠바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여행 지침서로 사용되기엔 너무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저 쿠바를 여행하는 한 젊은이가 어떤 생각들을 했고, 이 여행을 통해 어떤 것들을 배워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 더 길과 가깝게, 사람과 가깝게 몸으로 부딪히며 쿠바를 느끼는 모습들이 녹아있다. 개인의 기록이기때문에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책.

  기본적으로 체게바라의 루트를 따라 이동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방송사의 촬영 관계로 이것이 틀어졌을 때 그 계획을 어떻게든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렇지만 그 와중에 계획을 완수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에서 '아아. 이 사람은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구나'하는 왠지 모를 부러움이 들었다. 대개는 자신이 놓친 것을 뒤늦게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젊음이라는 것은 무모함에 도전하는 열정과 모두가 힘들다고 고개를 내젓는 일에 도전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일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돈이 없어도 젊음의 패기로 기회를 획득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내가 진정으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담긴 쿠바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도 흥미로웠고, 쿠바에서 겪은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던 책.

  그의 자전거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LA에서 8000Km를 달려 뉴욕에 도착하려는 계획을 시작한 그. 이번엔 어떤 것들을 보고 느꼈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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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2-2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번 연휴에 이 책 읽었어요 ^^ 재밌던데요;

이매지 2006-12-2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앤디뽕님도! ^^ 연휴에 읽기 좋았던 것 같아요^^

2006-12-27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6-12-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분 / 이우일씨 책은 읽어봤고, 나쁜 여행은 아직 안 봤어요^^ 어제 네이트에 저 분 미국 일주 관련해서 기사가 뜬 거 보고 괜히 반가웠어요^^
 
내 평생 잊지 못할 일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도종환 외 지음 / 한국일보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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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에 쓰인 것처럼 이 책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에 관해 엮인 책이다. 크게 6개의 장으로 나뉜 책은 첫 발을 떼놓다, 스승들을 만나다, 청춘 스스로 빛나다, 흔들려야 꽃이다, 나를 돌아보는 거울, 더불어 숲이라는 제목을 걸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의 한 순간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희망과 힘이 되어줬던 것처럼 독자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유명인들의 고생담을 읽으면서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이라고 여겼던 것이 결코 불행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이것을 핑계삼아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더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내게 물질적으로 무엇이 있고 없고라는 것을 떠나 나 스스로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고 마음 속에 굳건한 심지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도 물론 필요하지만 정신이 물질의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랄까? 

  이런 자극의 한 편에는 벼랑 끝으로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던 내게, 부모님, 스승, 그리고 때로는 낯모르는 사람의 한 마디가 나를 그 속에서 구해줬노라고 회상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비록 가난했을지는 몰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인간미가 넘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하는 왠지 모를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삶이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보다는 이들의 모습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의 영양분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보는건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기때문이다. 누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그 옛날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뻥튀기 장사를 했다고 생각했겠는가? 누가 참존의 창업자인 김광석이 배고픔에 술찌꺼기를 먹었다고 생각했겠는가? 누가 천하장사 이만기가 처녀출전할 때엔 힘도 못 써보고 무참히 내동댕이쳐졌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실패와 고통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오늘날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유명인사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이 좀 아쉬웠다랄까? 이런 이야기는 신문지상에 연재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절망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에겐 지푸라기로, 이 책 속에 나온 인물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회상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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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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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의 색감처럼 <포스트잇>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 역시 노란색 표지이다. 노란색의 강렬함때문인지, 포스트잇이라는 성격이 변하는 종이에 대한 매력인지, 혹은 김영하에 대한 호감때문인지, 잠시 가벼운 책으로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게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각 챕터마다 저마다의 주제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첫번째 챕터인 icon에서는 자신이 카메라에 애정이 없음을 알게된 카메라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자전거를 구입하여 다니게 되면서 느낀 점, 헌병대 시절 경험한 군화 광내기의 추억, 도널드덕 인형을 가지고 다니며 사진찍기, 조선왕조주식회사를 차리자는 친구의 말, 이제는 추억 속의 산물인 삐삐 등 자신의 삶과 관계한 물건들을 통해 추억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챕터인 memory chip에서는 자꾸 북에서 오라고 한다고 말하지를 않나, 반쯤 죽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느 택시드라이버를 만난 기억, 눈사람을 만들며 기억 속의 여자를 기다렸던 기억, 패티김의 <이별>만을 부르는 한 남자에 대한 기억 등을 통해 icon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관계를 통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번째 챕터인 headache에서는 그간의 추억과는 거리감이 있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중 특히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의 여자'라는 부분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책과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것이었는데 언급된 책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고, '동강 딜레마'에서는 동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댐의 건설을 막았지만 되려 그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관심이 갔다.  

  네번째 챕터인 post it에서는 그야말로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놓을 법한 짧은 글을 실어놓았는데, 예를 들어, '개'라는 부분에서는 "나는 개가 너무 좋다. 길 가다가도 개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개띠다."와 같은 너무 가볍지 않나싶을 정도로 짤막한 글과 길어야 2~3페이지 정도의 글들이 함께 실려 있었다.

  마지막 챕터인 etc에서는 바로 앞 챕터와는 완전 다르게 약간은 더 무게감있는 글로 다가온다. '도착倒錯, 도착倒着?'이라는 부분에서는 동음이의어인 이 두 단어에 대해 다른 점이나 맞닿는 점에 대해 다소 길게 이야기하고 있고, '칼, 그리고 역지사지'라고 해서 자신이 왜 문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총 5개의 챕터는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책이란 자고로 '무게감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라고 생각할만큼 사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무게감 있는 책만이 책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일반 사람들이야 오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간단하게 보기에 적당한 책인 듯 싶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성격이나 느낌은 좀 다르지만 김영하의 산문에서도 약간은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키 에세이의 특징은 그 일상을 찝어내는데 있지 않은가?) <랄랄라 하우스>가 좀 더 그의 일상을 파고들었다면 이 책은 그보다는 좀 더 전의 산문을 모아놓은 것이라 그런지 일상을 파고드는 맛은 덜한 것 같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일상 속의 재치발랄함을 만날 수 있었지만...) 어느 쪽이나 부담없이 읽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더 알고 싶다는 사람이나, 왜 그가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 속의 몇 부분에서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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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11-25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한 에세이([불행아]였나?)가 잊혀지질 않네. 특히 [말표구두약]이나 [성서] 같은 글을 읽고, 소위 '김영하식 글쓰기'의 기원은 그의 군생활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 [게임], [산울림] 같은 것들도 유심히 읽은 글들.

이매지 2006-11-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아버지 얘기가 [이별]이라고 '한 남자가 있었다'로 시작되서 패티김의 '이별'만 부르는 남자가 있다는 얘기였삼. 아버지를 '그'라고 설정함으로써 독자에게는 그가 아버지일 것이라는 여지를 잊게 한 것 같은 느낌. (마지막에 그 한 줄이 나름 반전 아니겠소?) 남자작가들의 경우에는 정말 군생활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자네 생활은 어떤가? ㅋㅋ

페일레스 2006-11-2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나야 뭐 편하게 잘 지냈지 -_-; 어디 가서 군생활 얘기하라면 할 얘기도 별로 없는...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소.

이매지 2006-11-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군대를 갔다오면 좀 변하는 것 같더라고. 어쨌거나, 언제 김치오모리찌개 먹으러 가야지 ㅋㅋ
 
울지 마, 자밀라 - 돈가스집 삽살개 치우 이야기
이해선 글.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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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살개의 환한 모습이 그려진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김훈의 <개>처럼 이 책은 삽살개 치우가 돈가스집에서 살면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치우와 주인님의 우정을 나눈 이야기일 것이라고 섣불리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 속에는 소외된 사람, 생명들이 많이 등장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밀라는 우즈베키스탄의 여성이다. 남편과 떨어져 한국에 홀로 와 돈가스집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치우다. 일은 잘하지만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자밀라가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심지어 그녀가 상전노릇을 하는 것을 못참겠다고 일을 관두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하나의 시민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던 자밀라는 낯선 땅 한국에서 이렇게 무시당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일을 한다. 그리고 그녀를 이어 한국으로 들어온 자밀라의 남편은 화학약품 중독때문에 몸이 망가지지만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다. 남편의 몫까지 더 열심히 돈을 벌던 자밀라는 결국 비자기간을 넘기고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한편, 돈가스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머리아파형'이라 불리는 영우라는 인물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주문을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 때문에 영우를 관두게 하지만 영우는 치우를 만나기 위해 매일매일 돈가스집에 와서 일을 돕는다. 그리고 뒤늦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는 영우의 사연. 주인은 계속 영우를 써주게 되고 영우는 어느날 버려지게 될 강아지를 안고 가서 그 뒤로 가게에 오지 않는다. 이 외에 치우를 통해 마음을 열게 된 사람들은 더 많다. 자폐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상재, 아빠가 죽고 엄마는 집을 떠나버린 순지와의 이야기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다.

  이 책 속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다른 축에는 상처받은 동물들도 있다. 큰소리로 짖어댄다고 페트병으로 머리를 쥐어박히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변형을 해서 싸움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개 농장의 투견견들의 모습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열등한 것이 있으면 상대를 누르고 이기려는 태도는 어떻게 보면 비열하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대하면서 비열한 태도를 취한다. 강자 앞에서는 약하지만 약자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아무런 편견없는 치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때문에 별 거부감없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람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면 자칫하면 '동정'의 시각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삽살개 치우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 정도의 시각을 유지해서 독자에게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줄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무거운 것은 아니다. 삽살개 치우의 순박한 웃음과 그를 둘러썬 소박하고 소소한 웃음이 이 책에는 녹아있다. 더불어 치우의 사진들도 많이 실려 있어서 한층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진짜 명품 삽살개는 아니지만 명품보다 더 명품같은 마음을 가진 치우같은 개를 만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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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1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이 책 읽으셨군요 반갑습니다. 어둔 이야기도 나오지만 정말 무겁진 않은 책이었어요. 님 말씀대로 치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겠지요

이매지 2006-11-1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분께서 보내주셔서 읽게 됐는데 괜찮더라구요^^ 괜찮은 책인데 생각보다 성적이 부진한 것 같아서 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