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의 색감처럼 <포스트잇>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 역시 노란색 표지이다. 노란색의 강렬함때문인지, 포스트잇이라는 성격이 변하는 종이에 대한 매력인지, 혹은 김영하에 대한 호감때문인지, 잠시 가벼운 책으로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게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은 각 챕터마다 저마다의 주제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첫번째 챕터인 icon에서는 자신이 카메라에 애정이 없음을 알게된 카메라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자전거를 구입하여 다니게 되면서 느낀 점, 헌병대 시절 경험한 군화 광내기의 추억, 도널드덕 인형을 가지고 다니며 사진찍기, 조선왕조주식회사를 차리자는 친구의 말, 이제는 추억 속의 산물인 삐삐 등 자신의 삶과 관계한 물건들을 통해 추억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 챕터인 memory chip에서는 자꾸 북에서 오라고 한다고 말하지를 않나, 반쯤 죽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느 택시드라이버를 만난 기억, 눈사람을 만들며 기억 속의 여자를 기다렸던 기억, 패티김의 <이별>만을 부르는 한 남자에 대한 기억 등을 통해 icon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관계를 통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번째 챕터인 headache에서는 그간의 추억과는 거리감이 있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중 특히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의 여자'라는 부분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책과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것이었는데 언급된 책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고, '동강 딜레마'에서는 동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댐의 건설을 막았지만 되려 그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관심이 갔다.  

  네번째 챕터인 post it에서는 그야말로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놓을 법한 짧은 글을 실어놓았는데, 예를 들어, '개'라는 부분에서는 "나는 개가 너무 좋다. 길 가다가도 개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개띠다."와 같은 너무 가볍지 않나싶을 정도로 짤막한 글과 길어야 2~3페이지 정도의 글들이 함께 실려 있었다.

  마지막 챕터인 etc에서는 바로 앞 챕터와는 완전 다르게 약간은 더 무게감있는 글로 다가온다. '도착倒錯, 도착倒着?'이라는 부분에서는 동음이의어인 이 두 단어에 대해 다른 점이나 맞닿는 점에 대해 다소 길게 이야기하고 있고, '칼, 그리고 역지사지'라고 해서 자신이 왜 문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총 5개의 챕터는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책이란 자고로 '무게감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라고 생각할만큼 사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무게감 있는 책만이 책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일반 사람들이야 오가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간단하게 보기에 적당한 책인 듯 싶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성격이나 느낌은 좀 다르지만 김영하의 산문에서도 약간은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키 에세이의 특징은 그 일상을 찝어내는데 있지 않은가?) <랄랄라 하우스>가 좀 더 그의 일상을 파고들었다면 이 책은 그보다는 좀 더 전의 산문을 모아놓은 것이라 그런지 일상을 파고드는 맛은 덜한 것 같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일상 속의 재치발랄함을 만날 수 있었지만...) 어느 쪽이나 부담없이 읽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더 알고 싶다는 사람이나, 왜 그가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 속의 몇 부분에서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일레스 2006-11-25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한 에세이([불행아]였나?)가 잊혀지질 않네. 특히 [말표구두약]이나 [성서] 같은 글을 읽고, 소위 '김영하식 글쓰기'의 기원은 그의 군생활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 [게임], [산울림] 같은 것들도 유심히 읽은 글들.

이매지 2006-11-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아버지 얘기가 [이별]이라고 '한 남자가 있었다'로 시작되서 패티김의 '이별'만 부르는 남자가 있다는 얘기였삼. 아버지를 '그'라고 설정함으로써 독자에게는 그가 아버지일 것이라는 여지를 잊게 한 것 같은 느낌. (마지막에 그 한 줄이 나름 반전 아니겠소?) 남자작가들의 경우에는 정말 군생활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자네 생활은 어떤가? ㅋㅋ

페일레스 2006-11-2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나야 뭐 편하게 잘 지냈지 -_-; 어디 가서 군생활 얘기하라면 할 얘기도 별로 없는...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소.

이매지 2006-11-2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군대를 갔다오면 좀 변하는 것 같더라고. 어쨌거나, 언제 김치오모리찌개 먹으러 가야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