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 - 랑겔한스섬의 오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백암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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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하루키의 수필집에는 꽤 특이한 제목들이 붙어있다. 1권에서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였고, 2권에서는 세라복을 입은 연필이었는데, 3권은 랑겔한스섬의 오후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랑겔한스섬은 지명으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읽다보니 랑겔한스섬은 췌장에 있는 내분비세포로 전체에 섬 모양으로 산재된 신체의 일부라는 걸 알고는 어버버한 느낌이었다랄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장편소설도 좋아하지만, 수필들도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 내 주위에는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맨날 한탄하는 건 왜 새로운 수필집은 나오지 않는냐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새는 기껏 그의 책이 출간되면 소설 아니면 대담집같은 류이기때문. 묵직한 그런 이야기들보다는 가볍고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공상어린 이야기들이 에세이가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그 중 하루키의 에세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더 끌린다랄까.

  따끈따끈한 햇빛을 받아 마음이 느긋하게 풀어져버릴 것 같이 기분 좋은 봄날 오후. 강변의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봄내음을 맡는 하루키. 개구리의 시신경과 저 신비스런 랑겔한스섬에서도 봄내음이 풀기고, 눈을 감으니 부드러운 모래톱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강물 소리가 들린다. 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질 듯 무르익은 사월의 오후. 학교 잔디밭에서 봄내음을 맡으며 한가롭게 누워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며 괜히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행복함을 느끼며 하루키의 싱싱한 에세이가 하루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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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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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이윤기는 번역가, 혹은 그리스 로마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소설을 창작하기도 했고, 대담집에 참여를 하기도 하면서 그의 생각을 흘리곤 했다. 그 중에서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 그의 일상이야기를 아무 거름망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사실 이 책은 분량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고, 내용도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렇게 부담스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일상에서 우러난 이야기들은 어떤 '교훈'을 제시해주고 있고 그의 삶의 깊이를 느끼게끔 해주고 있다. 그의 번역서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는 언어를 잘 다루는 편이다. 어떤 말을 쓸 때 상황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언어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런 글은 깔끔하지만 어떤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글을 가지고 어떤 잔재주를 부린다는 느낌이 없어 되려 시원시원하고 정갈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랄까.

  이런 문장적인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으며, 미국에서의 삶의 모습, 세대간의 모습 등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편견, 아집, 고정관념 등을 그는 우회적으로 허물어주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독자에게 맡기며 강요하지 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는 그저 '...가 아닐까요?'라고 독자에게 제안하는 정도로 그치는 편이다.) 우리가 지나치며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한 교훈. 이 세상을 커다란 학교라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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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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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접하는 세계는 익숙한 세계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 나뉠 수 있다. 내게있어서 택시는 익숙한 세계이고, 파리는 익숙하지 않은 세계이다. 익숙한 세계와 익숙하지 않은 세계의 만남. 이 책은 그런 양쪽의 호기심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었다. (물론, 저자인 홍세화에 대한 관심도 있긴 했지만.)

  앞서 내가 택시를 익숙한 세계로 표현한 것은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생계수단이 택시이기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아빠가 정착한 일은 택시였고, 벌써 택시를 시작한지도 5년이 넘었다. 이 책의 저자인 홍세화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의 택시기사들은 지금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이야 아빠도 개인택시를 하기때문에 그나마 조금의 여유가 생겼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할 때는 정말 먹고 살기 빠듯했다. 게다가 일주일은 야간에, 일주일은 주간에 일하는 방식때문에 신체리듬자체가 깨져버렸다. 프랑스의 택시운전사들도 회사택시를 할 때에는 노예처럼 다뤄진다고 그는 얘기하고 있는데, 실상 한국의 택시 운전사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 것 같다. 

   한국과 프랑스의 택시문화가 다른 것은 택시의 소유개념도 포함된 듯 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개인택시를 할 경우 차와 함께 번호판을 사야한다.그 번호판이라는게 그야말로 한 밑천이라서 2년 전 아빠가 개인택시를 갓 시작할 때만 해도 내 기억으로는 6500만원정도했었던 것 같다.거기에 차값은 1200만원정도였었다.그 외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돈까지 8천만원이 넘는 돈이 한 번에 나갔다.(물론, 어떤 일이던지 시작할 때 밑천이 드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 택시를 할 수 있는 자격(사업용 자동차를 3년 이상 운전, 3년 이상 무사고)이 된 사람들이 회사택시를 하면서 아둥바둥사는 것은도 이렇듯 큰 부담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몫에 많은 돈이 나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회사 택시 대신에 임차 택시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자신들의 처지를 '현대판 노예'라고 칭할만큼 이 사람도 힘들긴 매한가지지만, 프랑스에는 날짜시간표 규정이 있기때문에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생태에 덜 어긋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처럼 매일 교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를 지불하면 일주일간 자신의 차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물론, 한국에서 회사에 돈을 내는 것처럼 프랑스에선 임대료를 벌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해야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어쨌거나 택시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선 한국과 프랑스에 공통점과 차이점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과 택시에 타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택시라는 익숙한 세계를 통해 프랑스의 문화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면, 또 한 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란 사회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프랑스에 망명을 해서 살았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는 어떤 사회인지, 사람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에 반해 우리의 사회는 어떤지에 대해서 비교해서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남민전 사건에 연류되어 돌아오지 못하며 한국에서의 그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분명 우리에게 있어서 그런 시대(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말하면 빨갱이소리를 듣던)가 있었고, 그런 폐쇄적인 모습은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다. (한 예로 한총련을 생각해보자. 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아무리 국가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개인에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폐쇄되어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쫓기는 신세의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닫힌 사회이고, 억압된 사회라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홍세화는 프랑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특히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에 대한 이야기나 토론문화같은 것은 꽤 인상깊었다.

  익숙한 세계와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각각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때문에 쉽고 빠르게 읽어갈 수 있었다. 때때로 답답함을 느꼈고, 때때로는 슬픔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나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 공존해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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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3-0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예전에 읽은 책인데 기억이 새롭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이매지 2006-03-0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__)

이쁜하루 2006-03-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읽고 홍세화님에 대해 관심갖게 됐는데..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구요!
리뷰 퍼갈께요~

이매지 2006-03-0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허접한 리뷰를. 아아. 저도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읽어봐야겠어요.
쎄느강도 읽어보려구요^^;
 
to cats
snowcat(권윤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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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엄마는 고양이를 무척 싫어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 "고양이는 요망스러워."라는 생각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다른 동물도 좋아하는게 없지만, 유독 고양이만은 끔찍스럽게 싫어해서, 나는 고양이를 키울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얼마 전, 친구가 새끼 고양이(옆에 사진에 있는 녀석)를 키우기 시작해서 그 녀석의 사진을 올리곤 하는데, 볼때마다 난 몸을 부르르떨면서, "아, 너무 귀엽잖아 !"라는 탄성을 내뱉는다. 내게 있어서 고양이는 하나의 로망이고, 하나의 이상이다. (만약, 내가 직접 고양이를 키운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지도 모르겠지만.)

 

   나옹에 대한 사진과 글들은 이미 이전에 스노우캣 홈페이지에서 보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귀여운 축에 들었다면, 나옹은 좀 근엄한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책 속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나옹은 강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마치 개선장군같은)

  이 책에 실린 나옹의 클로즈업 사진에서는 나옹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점차 계산화되는 시대에 고양이는 한낱 미물이 아니라,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아닐까. to cats, to friends. 내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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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2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 무서운데^^

이매지 2005-12-25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 고양이들은 귀엽잖아요 ~^-^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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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김훈이라는 사람은 에세이도 이렇게 만들어 내는구나. 라는 약간의 감탄을 자아낸 적이 있다(물론, 책을 읽을 때는 제법 어렵게 꾸역꾸역 읽어갔었다.). 흔히 유명 작가의 에세이를 생각하면, 난 늘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에세이(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를 떠올렸다. 하지만, 김훈은 소설도 그렇지만 에세이조차도 초지일관적이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그리고 날카로운 의식. 그런 것들이 이 작은 책에는 녹아 있었다.

  내가 읽은 것은 구판이다. 서지정보를 보니 신판에서는 아마 판형이 좀 바뀐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구판에서는 표지에 김훈의 얼굴을 떡 하니 싫어놓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책의 사이즈는 너무 작고, 그 속에 쓰여진 글씨는 너무 폭이 넓다. (말 그대로 글씨와 글씨 사이의 폭이 넓다.) 물론, 이런 판형이면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는 편하겠지만, 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수작으로 삐딱하게 보이니.

  책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접어두고, 에세이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김훈 나름의 날카로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사유의 폭이 넓고, 깊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가 꼭 이런 글을 써야했는가라는 생각이 들게끔하는 어이없는 에세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에세이들을 그는 한 손에는 연필을 한 손에는 지우개를 들고 치열하게 써갔을 것이다. 아날로그 적 삶을 살아가면서 밥을 벌어먹고 있는 그. 그의 모습을 100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자전거 여행>보다는 어렵지 않게 읽었고, 한 인간의 사고의 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나와는 뭔가 맞지 않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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