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23
펠 바르.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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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거의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생각나는 건 『렛미인』정도) 일단 배경적인 면에서 『웃는 경관』은 꽤 신선했다. 예전에는 경찰소설 하면 사건 자체보다는 경찰에 초점이 맞춰지는 점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일본의 경찰소설을 빠지게 되면서 정교하게 짜여진 사건도 좋지만, 캐릭터가 주는 매력 역시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책장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웃는 경관』을 꺼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웨덴의 경찰소설, 그것도 독특하게도 부부가 장을 바꿔가며 번갈아 쓴 소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스톡홀름의 외진 곳에 도살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혼란한 상태의 버스가 한 대 발견된다. 일곱 명의 시신과 한 사람의 생존자. 살인과 주임인 마르틴 베크는 그곳에서 부하 직원 중 한 사람인 오케 스텐스토름 형사를 발견한다. 범행 자체는 무작위로 일어난 듯하지만, 도주는 치밀하게 이뤄진 상황. 스톡홀름 경시청 형사들은 버스에 타고 있던 여덟 사람의 행적을 좇아 사건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과연 그날 밤, 이 버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요소가 눈에 띄었다. 먼저, 부부가 쓴 책이라 그런지 가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는 점이다. 사실 경찰소설의 경우 어쩐지 마초 같이 느껴지는 남자들의 인간미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웃는 경관』에는 가정적인 모습이 의외로 많이 등장한다.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잊기 쉬운데, 이런 부분을 잘 풀어가고 있었다. 혼자 남아 피폐해져가는 스텐스토름의 약혼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아내에게 돌보게 하는 모습이나 아내와의 장난스러운 애정행각 등을 읽으며 어쩐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이들 형사들의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역시 캐릭터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라는 시리즈 중 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책 속에서 베크 형사의 분량은 미미하다. 시리즈의 다른 권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웃는 경관』만 놓고 본다면 베크는 그저 여러 형사 중 한 명일 뿐 시리즈 주인공다운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베크가 아닌 다른 형사들의 면면은 꽤 매력적이다. 일단 버스에서 죽은 채 발견된 스텐스토름은 겉으로 보기에는 '베크 가족'의 꽃으로, 경찰관 모집 광고의 모델로도 손색이 없을 인물이었다. 조금씩 좋은 경관이 되어가던 중 불행히도 그는 미결사건을 해결하려던 중에 죽게 된다. 스텐스토름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는 거만하긴 하지만 탁월한 수사관인 콜베리, 거대한 몸집과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무서워 떨게 만들 수 있는 라손,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 메란델, 성실한 룽 등 동료 형사들의 면면도 마음에 들었다. 미궁에 빠지는 사건의 흐름, 하지만 그 와중에도 특유의 유머를 잊지 않는 그들은 마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익숙한 듯했지만, 호감이 갔다.  

  스웨덴 원서를 번역한 책이 아니고, 중역을 한 책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번역상의 유머러스한 부분이 등장한다. (닥스훈트가 다크스훈트로 둔갑하다니!) 하지만 이런 번역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웃는 경관』은 읽단 책을 펴는 순간 그 매력에 사로잡히게 한다. 위키에서 검색해보니, 저자인 마이 슈발과 펠 바르는 예정대로 10권의 마르틴 베크 형사 시리즈를 완성한 모양이다. (시리즈 마지막 권은 펠 바르의 죽음으로 마이 슈발이 혼자 완성했다고.)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아예 남녀의 이야기를 따로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엘러리 퀸처럼 공동 필명 하에 써내려간 것도 아닌, 한 챕터씩 교대하며 쓰는 방식은 의견 조율이나 문체 등의 제반 문제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10년이란 세월 동안 꾸준히 이 시리즈를 이어나간 부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읽으면서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영상화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미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소개된 모양이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이 괴짜 같으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형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도 소개되면 좋을 텐데 과연 만날 수 있을런지.

  덧) 마르틴 베크 형사 시리즈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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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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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고 가만 생각해보니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소설이 제법 많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캐드펠 시리즈, <장미의 이름>, 최근에 읽은 <대지의 기둥> 정도가 있으니 배경 자체만으로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배경보다는 중세시대 법의학자가 여주인공이라는 말에 끌려 읽게 된 책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여기 의학으로 유명한 살레르노 출신의 여의사 닥터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가 있다. 중세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연쇄 아동 살인사건 조사를 위해 이곳에 도착한 아델리아. 살레르노에서였다면 직접 나서서 부검도 하고 사인을 규명했겠지만, 중세 잉글랜드에서 여의사는 마녀라 불렸기에 아라비아인 만수르와 유대인 시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실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눈꺼풀이 도려진 채로 처참하게 발견된 아이들. 그리고 시체 주위에 남겨진 다윗의 별과 비슷해 보이는 물건이 남아 있었기에 유대인이 범인으로 몰린다. 하지만 헨리 2세는 자신의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대인을 쫓아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 또한 사건의 조사를 위해 사람을 파견한다. 반 유대 감정 속에서 쫓고 쫓기는 조사.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십자군, 마녀사냥, 반유대, 남녀차별, 왕과 대주교의 다툼 등 중세는 실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 속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은 분명 '자극적'이다. 하지만 배경만 중세다 뿐이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속 이야기는 여성 법의관이 주인공인 <스카페타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돼지가 부패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체의 부패 정도를 공부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시체농장>이 떠올랐고, 좀체 속을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매력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나 일과 사랑 중에 고민하는 모습도 스카페타를 떠오르게 했다. 

  또한, 중세만의, 아델리아만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전문적인 요소가 너무 부족했다. <장미의 이름>과 CSI의 결합이라는 문구에 대한 만족은 둘째치더라도, 적어도 아델리아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있었더라면 그 점에라도 만족했을 텐데, 독특한 외모에 별 고생 없이 자라 세상 물정에 약간 어두운 왈가닥, 하지만 의학에 있어서는 최고인 캐릭터는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마지막에 그 인정에 호소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라기보다는 되려 고집적으로 보였다.) 주인공인 아델리아보다는 되려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질사나 시몬, 로울리 경에 호감이 갈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몰입이 약했다. 후속작인 <죽음의 미로>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으로만 보기에 이 책은 의외로 높은 평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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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fu 2011-02-09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즐겁게 읽긴 했는데 아델리아 캐릭터가 너무 도드라지더군요. 나쁜 의미로요. CSI부검실에서 일하는 현대여성이 옷만 바꿔입고 그대로 중세로 타임워프 한 느낌이랄까. 아델리아라는 캐릭터가 개성적인 걸 넘어서서 지나치게 현대적이에요. 아델리아의 생각이나 행동, 사상은 그냥 현대여성이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할 법한 것들이 절대 아니죠.

아델리아의 생각이 주인공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개성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작가는 최소한 캐릭터에게 그런 고민의 흔적이라도 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는 내내 주인공이 능력자라는 느낌보다는 히스테리 부리기 일보 직전처럼만 보이더군요




이매지 2011-02-09 09:22   좋아요 0 | URL
roofu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이야기 자체는 즐겁게 읽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델리아라는 캐릭터의 다음 이야기에는 큰 호기심이 생기지 않네요.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캐릭터가 현대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래서 저도 스카페타가 떠올랐던 건가봐요 ㅎㅎ
 
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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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점에서 이 두꺼운 책을 마주했을 때, 이미 만화로 읽었던 이야기를 새삼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작을 기다려오다가 만화로 먼저 출간된 <신들의 봉우리>를 읽은 것이 벌써 작년 여름의 일. 만화로 읽으며 이것이야말로 짐승남의 세계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산을 오르는 것일 뿐인, 그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남자의 이야기일 뿐인 이 이야기를 다시 든 것은 어쩌면 그 열정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한 남자가 있다. 세상과 타협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산을 오르는 남자. 자신의 모든 것을 산에 투신하는 남자.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남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목표를 세우지만 어쩌면 그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남자. 그런 그가 바로 이 책의 중심에 놓이는 하부 조지다.

  이야기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네팔에 간 후카마치라는 한 사진가가 한 상점에서 오래된 카메라 하나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최초로 성공했을 지도 모를 조지 멜러리의 카메라. 그 카메라의 필름만 있으면 에베레스트 등정을 둘러싼 하나의 미스터리가 풀릴지도 모를 터. 이에 후카마치는 카메라의 원주인을 찾기 시작하고, 그것이 오래 전 일본 산악계에서 사라진 하부 조지의 것임을 알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와 하부 조지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후카마치. 다시 하부 조지를 찾아 떠난 네팔에서 그는 하부 조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등반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너무나 터무니 없는 계획. 산악 역사상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일. 인간의 한계에,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며 도전하려는 하부. 그의 계획에 후카마치도 사진사로 따라 나서게 된다. 

  만화로 이미 읽었으니 이 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글로 만난 <신들의 봉우리>에는 분명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농밀한 심리 묘사가 담겨 있었다. 특히 짧은 문장들이 행이 바뀌며 서술되는 부분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절로 몰입되는 듯했다. 만화는 익숙지 않은 산악 전문 용어를 그림을 통해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면 원작은 등산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면 선뜻 머리에 떠올리기 힘든 묘사는 있었지만,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같이 등산에 문외한인 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만화와 원작 소설. 이 두 개를 병행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작가의 말답게 정말 치열하게 쓰여진 작품이었다. 제법 두꺼운 이 책을 읽으며 단 한 순간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조금 거리는 돌아서 가지만 안전한 코스로 향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는 있어도 최단거리로 올라갈 수 있는 코스를 본능적으로 택하는 하부의 모습처럼 유메마쿠라 바쿠는 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내용으로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 같았다. 적절한 곳에서 차근차근 정상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듯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솜씨. 작가에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결코 많은 분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부가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짐을 꾸리는 과정처럼, 휴지심을 뽑은 휴지, 표지를 뜯어낸 노트, 길이를 잘라낸 연필처럼 그것이 몇 그램이라고 해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인 것임을 느꼈다.

  맬러리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하부는 "내가 여기 있으니까" 산을 오른다고 한다. 자신의 길을, 자신의 꿈을, 자신의 열정을 묵묵히 산을 오름으로써 보이는 하부. 쉽게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아니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는 열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허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고난이라고 해도 말이다. 짐승 냄새 훅 끼치는 하부 조지. 추운 겨울, <신들의 봉우리>를 읽노라니, 하얀 설산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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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1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꼭 보고 싶어요.
맨날 새책 살까, 중고책 살까, 하면서 기웃기웃 :}
산을 오르는 것.
물질적으론 좋아하지 않는 일인데, 정신적으로는 너무 멋진 일이죠.
하얀 설산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라, 짐승남이 하얀 설산을 오르면,
그의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고 싶어요, 큭큭.

이매지 2011-01-15 14:27   좋아요 0 | URL
이제 두께는 제법 되는데 정말 읽으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책.
저는 만화로 먼저 봤었는데,
만화도, 원작 소설도 정말 둘 다 최고!
짐승남 하부 조지, 아이리시스님도 만나보세요! ㅎㅎ
 
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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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 대한 애정도 많이 떨어졌고, 이런 노골적인 표지도 그리 끌리지 않아서 묵히고 있다가 스트레스 해소 겸해서 읽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두고 "다시는 이렇게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는데, 읽으면서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약간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잉 아이>의 시작은 한 여성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부터 너무나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는 상황. 하지만 본론에 들어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텐더 신스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자신만의 가게를 갖는 꿈을 품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신스케는 어느 날 퇴근길에 누군가의 습격을 받는다. 습격 이후 정신을 잃은 그는 가까스로 깨어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부분적인 기억상실을 경험한다. 그를 습격한 범인을 찾기 위해 원한을 품은 사람을 찾던 중 그가 몇 년 전 일으킨 교통사고의 피해자 가족이 용의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신스케의 기억에는 교통사고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그를 습격한 피해자의 가족 또한 자살한 채 발견돼 사건은 끝나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신스케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는 묘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기 시작한다.

  중반 이후까지는 나름 신스케가 기억을 상실한 부분, 즉 그가 낸 교통사고에 대해 조사해가는 과정이 루리코라는 묘령의 여성과 얽혀 흥미로웠다. 하지만 루리코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는 중반까지 이어졌던 흥미는 반감되고 막판엔 이건 뭐 싸구려 호러 소설인가 싶어질 정도로 아쉬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재미나 가독성은 좋지만, <다잉 아이>에는 어떤 메시지도, 어떤 지적 즐거움도 없다. 

  이야기 자체는 어쩐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연상케하는 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소 식상한 기억상실이라는 소재와 스포츠 신문 연재 소설도 아니고 맥락 없이 들어간 성적 유혹은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냥 그런 소설로 남기게 했다. 아예 이런 소재로 아예 추리소설이나 아예 호러소설로 방향을 잡았으면 어땠을까. 최소한 여기선 추리소설의 재미를 약간, 저기선 호러소설의 오싹함을 약간 하는 식의 어정쩡함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말부를 제외하고 다소간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 점 때문에 별 셋을 줬지만,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이 아니라 독서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별 둘도 아까웠을 듯. 굉장히 상업적이고, 굉장히 자극적인, 하지만 극장을 나오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금세 까먹을 것 같은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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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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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수사의 발전이 추리소설을 망쳤다, 라고 할 정도로 요즘 추리소설은 논리보다는 증거를 통해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독자가 개입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인지 어지간해서는 크게 매력이 없다. 고전 추리소설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치밀하게 구성된 트릭. 범인의 의외성. 그리고 어디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고 독자를 도발하는 작가. 이런 요소에 매료되지 않을 추리소설 애호가가 어디 있을까. 실로 오랫만에 그런 기개를 이 책에서 느꼈다.

  음악 또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일곱 명의 예술대생. 방학 동안 기량도 닦고 더위도 피할 겸 고즈넉한 산속에 위치한 리라장을 찾는다. 예술가의 기질이 있어서일까. 저마다 개성이 강해 티격태격하기 일쑤지만, 예술이라는 공통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견제하며 느긋한 날을 보내려 한다. 하지만 이중 한 커플이 갑작스럽게 약혼을 발표하고, 인근에서 일어난 숯쟁이의 죽음으로 리라장을 방문한다. 시체 옆에 놓여진 스페이드 카드 한 장. 리라장에서 사라진 스페이드 카드는 이후 벌어지는 살해 현장마다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등장한다. 하나씩 둘씩 죽어가는 사람들. 학생들 중 한 명이 범인임은 혹실하지만 알리바이상으로 볼 때 범인의 정체는 묘연하기만 하고, 그 수법과 동기 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과연 범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수법으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죽인 것인가.

  아유카와 데쓰야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본격 추리소설의 신'으로 추앙받는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낯선 작가라는 설레임과 긴장을 휘어잡는 실력에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1958년 작품으로 약 50년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고, 촌스럽다는 느낌 또한 전혀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작가가 독자에게 힌트를 주듯, 또는 복선을 깔듯 직접 개입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부분도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동시대를 사로잡은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와의 비교가 아닐까 싶다. 두 탐정 모두 사람이 셀 수 없이 죽어나간 뒤에 범인의 정체를 밝혀낸다는 점은 공통점이지만(사실 <리라장 사건>의 명탐정 호시카케 류조는 이미 사건이 미궁에 빠질 무렵 등장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 외모는 사뭇 다르다. 능청스러움과 덥수룩함 뒤에 감춰진 예리함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매력이라면, 호시카케 류조는 외형부터 스마트함을 풍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탐정. 최근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삼수탑>을 읽어서인지 두 탐정이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피식거렸다. 

  물론 약간 두루뭉실하게 눙치고 가는 듯한 부분도 있었고, 우연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왜 아유카와 데쓰야가 '본격 추리소설의 신'인지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아유카와 데쓰야라는 이름. 기억해두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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