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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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 대망의 3부는 2부의 연장선에서 진행된다. 2부가 조직과 맞서는 이야기에 가까웠다면 3부는 국가 권력과의 대결이다. 이야기는 혈전 끝에 살아난 리스베트와 살라첸코가 같은 병원에 이송되어 수술대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총알이 뇌에 박힌 리스베트와 얼굴과 다리를 도끼에 찍힌 살라첸코. 두 사람 모두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법'이라는 심판대에 오를 준비를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살라첸코의 뒷수습을 하기 바쁜 사포 내의 분파인 '섹션'과 섹션과 살라첸코의 비밀스러운 협약을 낱낱이 드러내 리스베트에게 씌워진 오명을 씻겨주고자 하는 미카엘 일파(일명 미친 원탁의 기사들)의 대결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사실 3부 상권까지만 해도 2부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쉬기를 반복한 끝에 밤 10시 반이 넘어서야 하권을 읽기 시작했다. 뭐 절반쯤 읽다가 자고 일어나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슬렁슬렁 읽다가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1시가 갓 지난 것을 발견했다. 2부도 나름대로 흥미로웠지만 3부는 음모론, 법정신, 스토커, 애정관계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가 갖춰져 있어 밀레니엄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부에서 온갖 언론플레이에 먹잇감이 된 리스베트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3부에서 법정에서(그녀가 그렇게도 협조를 완강히 거부했던 공권력 하에) 그동안 그녀를 음해해온 세력이 박살나는 장면을 보는 것은 큰 쾌감을 주었다. 비밀세력 섹션에 의해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또 한 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각자의 특기(미카엘의 정보수집력, 리스베트의 해킹능력)를 살려내 서로 직접 만나지 않고도 협력관계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 눈에 들어왔던 것은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의 변화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의 삶을 고수해왔던(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그것을 부숴나가면서 미약하게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떠나가는 차 꽁무니에 대고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나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은혜를 갚는 정도였지만 최소한 그녀가 자기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사회, 아니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앞선 작품에서도 배경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스웨덴의 정치, 사회적인 배경도 이야기에 살을 더했다. 물론,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의 이미지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세세한 상황이나 설정에 대해서는 공감이 다소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사포의 존재를 안기부와 연관시켜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를 위해서란 미명 아래 희생당한 것이 어디 스웨덴만의 이야기겠는가. 그렇게 국가에 의해 짓밟힌 삶을 살았던 한 왜소한 여자가 당당히 국가와 맞서 싸워 자신의 자유를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밀레니엄>에는 있었다.

  제임스 본드를 닮은 매력적인 기자 미카엘 블룸크비스트, 어쩐지 레옹의 마틸다가 떠오르는(물론 그보다 좀 파격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리스베트. 이 두 사람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기대됐는데 3부로 끝난 것이 너무나 아쉽다. 훗날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어 누군가 밀레니엄 트리뷰트를 이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리스베트의 쌍둥이 여동생 카밀라에 대한 이야기나 미카엘의 연애사의 향방, 마침내 자유롭게 된 리스베트의 삶, 앞으로 또 새롭게 <밀레니엄>이 보도할 '특종' 등 궁금한 것이 너무 많지만 일단은 <밀레니엄>과 이별할 시간이다. 며칠 동안 즐거움을 준 이들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덧) 1, 2부의 표지도 안습이었지만 압권은 3부의 표지인 듯. 어디 남 부끄러워서 들고 다니면서 읽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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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2-05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궁금해서 큰 사진으로 표지 확인하고 왔어요. 그야말로 북커버가 필요한 책이군요.^^;;;

이매지 2011-02-05 02:19   좋아요 0 | URL
집에서 읽었으니 망정이지. 사실 다 읽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도 좀 부끄러워서 다른 책으로 위에 덮어버렸어요. ㅎㅎㅎ

머큐리 2011-02-0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거 전철에서 그냥 생각없이 보고 다녔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데요..^^;

이매지 2011-02-05 15:27   좋아요 0 | URL
아무도 안 봐도 제가 신경 쓰여서 ㅎㅎㅎ
저는 사실 남들 무슨 책 읽나 관찰하는 타입이라 ㅎㅎㅎ

Kitty 2011-02-0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의외로 중요하지 말입니다 ㅋㅋㅋ 저는 그래서 북커버를 샀어요 (쿨럭;;)

이매지 2011-02-05 15: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북커버가 있지 말입니다 ㅋㅋㅋㅋ
키티님 얼마 전에 올려주신 표지도 안습이던데요 ㅠㅠ

BRINY 2011-02-06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표지에 신경 안썼는데 이런 그림이었요?

이매지 2011-02-06 20:33   좋아요 0 | URL
저만 그림을 자세히 본 것인가요 ㅠㅠ

순오기 2011-02-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좀 거시기 하군요.ㅜㅜ
이매지님 설에 세뱃돈 좀 받으셨나요?^^

이매지 2011-02-06 21:10   좋아요 0 | URL
부모님께 돈 놓고 세배했어요 ㅎㅎㅎ
시골에 안 내려가서 달리 세뱃돈 받을 분이 안 계셨던 ㅎㅎ
사실 뭐 이제 세뱃돈 받기 민망한 나이죠 ㅠㅠ
 
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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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단 3편의 작품만이 남아 있는 상태. 더이상 후속작을 기대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선뜻 2부를 시작한 것은 <밀레니엄> 시리즈를 한 호흡에 읽어내고 싶어서였다.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연휴가 아니면 이 책을 찔끔찔끔 감질나게 읽다가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밀레니엄>의 2부와 3부를 연휴를 맞이해 도서관에서 빌려와 방에 콕 쳐박혀 읽기 시작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리스베트에게 큰 모욕을 당한 리스베트의 후견인인 비우르만 변호사는 리스베트에게 복수를 위해 금발 거구의 한 남자와 접촉한다. 한편, 리스베트는 과거의 모든 일은 잊고 그레나다에서 페르마의 정리를 골똘히 즐기며 여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나날. 하지만 리스베트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하나씩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밀레니엄>에 다그 스벤손이라는 기자가 여성 인신매매에 대한 글을 갖고 찾아온다. 자신의 여자친구 미아 베리만과 공동 작업을 하는 중으로 그녀가 박사학위를 준비하며 쓴 논문의 대중 보급판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밀레니엄>에 대박 기사를 터트리기 몇 주 전, 다그와 미아가 누군가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현장에 리스베트의 지문이 남은 총이 발견되면서 또 한 번 <밀레니엄>과 리스베트는 큰 사건의 물살에 휩쓸린다. 

  앞선 이야기가 개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두번째 이야기인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는 스케일이 좀더 커진다. 일단 겉으로는 3건의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대한 이야기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그녀의 인생을 바꾼 '모든 악'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거식증 환자가 의심될 정도로 깡마른 몸매, 몸 곳곳에 있는 문신 등 남에게 호감을 사기 어려운 외모의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가 왜 공권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하나씩 밝혀진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도 그랬지만, 리스베트는 방외자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리스베트에 대해서는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이야기되는 쪽을 택하는 듯하다.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도 본질적으로는 리스베트에 대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그녀의 과거를 밝히는 것은 타자의 입을 통해서다.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리스베트의 능력과 됨됨이를 신뢰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보호하려 하고, 언론이 그녀를 아무리 원색적으로 비난해도 그녀의 무죄를 입증해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사실상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리스베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미카엘의 방향을 지시해주는 존재로 등장할 뿐, 그녀는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무도 믿지 않는 리스베트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지는 3부의 이야기는 2부의 연장선이다. 1부는 개인, 2부는 조직과의 대립이었다면, 3부는 더 나아가 국가 권력과의 대결이다. 2부까지 순조롭게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처럼 3부에서도 스티그 라르손가 만들어낸 '밀레니엄'의 세계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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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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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 시리즈에 대한 찬사는 익히 들어왔지만, 어쩐지 선뜻 손이 가지 표지 때문에 미뤄오다가 이번에 새 옷을 입고 나왔기에 다시 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 한 번 읽어봐!' 하고 겁나게 물량공세를 하고 있는 책이라(주말에 서점에 나가보니 온통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광고 홍수였다) 슬쩍 반항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출판사에서 이렇게 밀고 있는 책인데 하는 마음과 이 책을 추천해준 많은 분들의 찬사에 힘입어 뒤늦게 밀레니엄 홀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원래 10부작으로 예정된 작품이지만, 현재 출간된 것은 총 3부인 <밀레니엄> 시리즈. 후속편을 기대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게도, <밀레니엄> 3부작을 탈고한 뒤 저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데뷔작이자 유고작인 <밀레니엄> 3부작. 하지만 그런 사연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독자를 유혹한다.

  얼마 전 <웃는 경관>으로 낯선 스웨덴 문학을 접한 바 있는데, <웃는 경관>에 비해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지역적인 색채가 덜 두드러진다. 물론 소설의 기반에는 스웨덴의 문화, 정치,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배경이 미국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단 전 세계적인 코드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스웨덴적인 요소를 찾으라면 영하 10도도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의 맹추위랄까?) <웃는 경관>은 분위기 자체는 조금 우중충한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사들의 캐릭터가 생기를 더했다면, 조각난 이야기가 하나의 것으로 모이는 것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분명 어두운 이야기인데도 그렇게 어두운 분위기로 풀어가지 않고 가벼운 터치로 그려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재계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재계의 거물 헨리크 방예르, 그는 매년 생일이면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압화(유리 액자에 꽃이 담긴 것)를 받는다. 수십 년 전, 갑작스럽게 실종된 종손녀 하리에트가 늘 헨리크에게 줬던 바로 그 생일선물. 평생을 증손녀의 행방에 대해 파헤쳤던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한 남자에게 마지막 배팅을 건다. 그가 바로 시사월간지 <밀레니엄>의 발행인이자 기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부패 재벌인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폭로 기사를 썼다가 고소를 당해 실형을 받게 된 그에게 헨리크는 만약 하리에트 사건의 진실을 밝혀준다면, 그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과 함께 베네르스트룀이 빠져나가지 못할 증거를 주겠다고 제시한다.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미카엘은 헨리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십수 년 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사실 1권의 중반까지는 꽤 지루한 전개가 이어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낯선 이름도 초반에 어려움을 겪는데 한몫을 한다. 하지만 일단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책장은 술술 넘어가기 시작한다. 미궁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가며 허점을 파고 들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나, 여기에 얽힌 인종주의와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부유하긴 하나 저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는 독자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죽어간 여자들에 대한 분노, 한 사람에 대한 편견에 대한 비판,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진실이라는 것의 정체 등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두 주인공 미카엘 블룸크비스크와 리스베트 살란데르다. 여자들의 호감을 쉽게 얻으며, 많은 여자와 사귀지만 깔끔한 마무리 때문에 잠자리로 인한 원한은 사지 않는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 미카엘과 작은 키에 깡마른 몸매, 몸 여기저기에 있는 문신 때문에 선뜻 남에게 호감을 사기 어려운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이지만 해킹 실력과 조사 능력만큼은 빼어난 리스베트. 나이도, 성격도, 직업도 너무나 다른 두 사람. 하리에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인연이 닿지 않았을지 모를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밀레니엄> 시리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들과 잠시 이별을 고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표지 때문에 망설였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어 2부를 읽기 시작했다. 연휴 동안 이불 속에 콕 쳐박혀서 <밀레니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곧 헤어질 것을 알고 있을 때 만남이 더 소중하듯, <밀레니엄> 시리즈도 끝내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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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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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 여사의 에도 이야기는 늘 특별하다. 사실 에도 시대물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미 여사가 그려나가는 시대물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 독자에게 에도라는 낯선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등의 궁금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에도라는 시대적 배경은 낯설었을지 몰라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미미 여사의 에도 이야기는 복잡한 트릭이 없어도, 자극적이라거나 엄청난 배경이 있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따뜻한 이야기로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이번 이야기 <하루살이> 또한 그랬다.

  <하루살이>는 연작소설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모두 깨알 같은 재미가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표제작인 <하루살이>를 위한 떡밥처럼 뿌려진다. 첫번째 작품인 <밥>에서는 마음의 병으로 드러누운 짱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어지는 <미움의 벌레>에서는 사키치와 오케이 부부의 신혼 초 알콩달콩한 생활과 거기에 갑작스럽게 드리워진 의심과 미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아이 잡아먹는 귀신>에서는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오로쿠가 마고하치라는 뱀 같은 남자에게 휘둘리던 중 아오이 마님의 도움으로 행복을 되찾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눈먼 사랑>에서는 오토쿠의 조림 가게 근처에 새로 등장한 오미네네 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군가 죽어나가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큰 계략이 있는 것도 아닌 소소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저 슬몃 미소 지으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슬쩍 그들의 어깨를 살짝 두들겨주고 끝날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진행되는 <하루살이>는 다르다. 앞의 네 편의 이야기가 기본 몸풀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하루살이>는 이 기본 동작을 응용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루살이>에는 이전에 <얼간이>를 읽으며 만난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얼간이라 불리는 헤이시로부터 시작해서 <얼간이> 때는 관리인으로 등장했지만 여기서는 본업인 정원사로 등장하는 사키치,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인기 만점의 조림 가게를 운영중인 오토쿠, 빼어난 외모에 영특함을 갖췄지만 아이다운 모습 또한 갖춰 미워할 수 없는 유미노스케, 한번 들은 이야기는 빠짐없이 기억하는 짱구, 그리고 <얼간이> 때 사건의 중심에 놓인 미나토 상회의 일원 등 <하루살이>는 <얼간이>의 연장선상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얼간이> 때는 첫 만남이라 다소 낯선 느낌이 있었다면, <하루살이>에서 다시 만난 등장인물들은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마냥 반가웠다. 특히 이번 권에서는 여전히 미모를 뽐내는 유미노스케와 아이와 어른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시작한 짱구, 이 두 꼬마의 매력 때문에 내내 엄마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욕심과 애증은 인간의 심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우리를 현혹시키고, 우리의 마음에 그늘을 만들어 우리를 무엇엔가 씐 것처럼 만든다. 결국 '아이 잡아먹는 귀신'도 '지나가는 마'도 우리 안의 어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품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루살이>를 읽고 나서 나쓰메 소세키의 <풀 베개> 첫 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살이>에서 느낀 게 바로 이것이었다. 때로는 비논리적이고, 때로는 비인간적인 삶처럼 보여도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역시 우리네 이웃에 있지 않을까. 정을 잃어가는 사회 속에서 미미 여사의 에도물에 정이 가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바쁜 나날 속에서 <하루살이>를 읽으며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미미 여사의 이어지는 에도 이야기. 또 한 번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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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리버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임헌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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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검은 선>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역시 스릴러는 영미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었을 뿐. <검은 선>을 읽은 뒤 나는 그랑제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이 많지 않아 아껴 읽어야지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몇 년 만에(리뷰를 찾아보니 <검은 선>을 읽은 게 2008년이었다. 쿨럭) 그랑제를 다시 만나게 됐다. <돌의 집회>를 먼저 읽을까 하다가 일단 가벼운 분량의 <크림슨 리버>부터. 초반부터 강렬한 사건으로 다시 만난 그랑제. 그렇게 다시 한 번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베테랑 형사로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니에망. 훌리건 진압중 사고로 영국인을 반쯤 죽여놓은 뒤 잠시 도피차 작은 마을의 살인사건에 투입된다. 잠시 피신하는 셈으로 떠난 그곳에서 니에망은 마치 태아와 같은 자세로 안구를 적출한 시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첫번째 사건의 단서를 좇아간 해발 3천 미터의 얼음구덩이 속에서 손목이 잘린 두번째 시체를 발견한다. 니에망은 두 사건의 작은 단서를 따라 알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한편, 상부의 명령에 좌천되어 범죄라고 찾기 힘든 한적한 시골 마을로 발령을 받아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형사 카림은 초등학교 무단침입 사건과 무덤 침입 사건을 잇달아 접하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챈다. 초등학교 사건과 무덤 사건 모두 베일에 감춰진 쥐드라는 아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두 사건이 만나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게 된다. 

  책 속에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우린 거울 궁전 안에 있는 걸세, 주아노. 반사물들이 미로 속에 들어와 있단 말이야! 그러니 잘 보게. 모든 걸 주시하게. 그 거울들 중 어딘가, 보이지 않는 사각(死角) 속에 살인자가 숨어 있을 테니까"라고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모든 요소를 점검해나갔을 때 만나는 사건의 진상. 그것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간, 바로 그 사각 안에 존재한다. 유전학, 지질학, 범죄학, 법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가 등장하지만 사실 그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사건 자체의 잔혹함과 그에 얽힌 미스터리가 아닐까 싶다. 독특한 두 주인공은 기본이고, 여기에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사건, 그리고 광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사건의 진상은 보는 내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도, 사건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크림슨 리버>는 이미 영화화된 적이 있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던 듯. 원작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결말 부분이 내가 바랐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허무하게 끝나버린 느낌도 있었지만, 그랑제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작품이었다. 아직까지는 <검은 선>에 더 마음이 가지만, 만약 <검은 선>보다 <크림슨 리버>를 먼저 읽었더라도 그랑제의 매력에 빠졌을 듯. 이번엔 정말 가까운 시일에 <돌의 집회>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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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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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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