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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사랑을 한 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이별 후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람도 결국 자신도 모르게 다시 사랑에 빠진다.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사랑, 아플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는 사랑. 이 책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랑을 시작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4월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추위에 도시가 꽁꽁 얼어붙은 날 '아서 왕의 자리'라고 불리는 애든버러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강추위에 심장까지 꽁꽁 얼어붙은 채 태어난 아이, 잭. 너무 괴상한 의술을 행해 마녀라고까지 취급받는 매들린은 아이를 살리고자 아이의 심장에 뻐꾸기 시계를 단다. 미혼모였던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괴상한 모습 때문에 누구에게도 입양되지 못하고 매들린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마을에 내려가게 된 잭은 한 소녀 가수의 노래를 듣고 한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다시 언덕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잭은 매들린을 졸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교에 가지만, 그녀는 이미 떠난 뒤. 잭은 소녀를 찾아 안달루시아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난다. 과연 잭은 소녀를 다시 만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까?
어린 잭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안나처럼 때론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사람도 있었고, 매들린처럼 사랑 때문에 느끼는 즐거움이나 기쁨이 언젠가 모두 고통으로 변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여행 중에 만나 잭의 사랑의 주치의가 된 마술사 멜리에스처럼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사랑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각자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잭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핏 보기엔 너무 모순되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이 말한 것이 모두 사랑의 단면임을 알게 된다.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슬픔을 가져다주는 사랑. 이 책은 이제 갓 사랑을 알게 된 잭을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독자에게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준다.
사랑에 빠지면 이왕이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누구나 한두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좀 더 예쁘게(혹은 멋지게) 보이고자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만들어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심장을 가졌던 잭 또한 자신의 결점을 숨기고자 한다. 하지만 멜리에스는 잭에게 "넌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연약함을 감수하고 네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넌 그 심장시계 덕분에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네 남다른 점이 널 매력 넘치는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고!"라고 조언해준다. 하지만 미스 아카시아는 잭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만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단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남몰래 어두운 밤에만 만나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한 낮에 만나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부분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 아닐까?
표지만 일러스트만 봐서는 팀 버튼처럼 기괴한 분위기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등장인물의 면모만 봐서는 팀 버튼과 비슷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달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전반부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만나고 싶어하는 잭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는 마침내 그녀를 만나 사랑하며 겪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내용에 따라 서사의 방식도 바뀌어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다른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 태어나 심장은 얼었을지라도 그 안에 마음(사랑)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뜨거웠던 소년 잭의 이야기가 안타깝지만 따스하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랑. 사랑 앞에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 이에게, 사랑을 떠나보낸 이에게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해줄 책.
덧)현재 이 책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으로 2010년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유투브에서 맛보기(http://www.youtube.com/watch?v=W9QtJERu_2E)로 만나보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서 영화로 접해도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