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별다르게 관심이 가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재미있다고 추천하는 글을 봐서 읽게 된 작품. 애초에 추천만 믿고 읽기 시작한 거라서 서간체라는 거 빼고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읽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에미는 잡지 정기구독을 해지하기 위해 메일을 보낸다. 한 번, 두 번을 보내도 대답은 없고 잡지는 계속 오는 상황. 이에 에미는 버럭하며 세번째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이메일 주소를 잘 못 써서 보냈다는 것. 이렇게 끝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몇 달 뒤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드립니다."라는 단체 메일때문에 다시 이어지게 되고 둘은 계속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류의 내용은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나왔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이나 <접속>과 비슷한 포맷이지만,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의 실제 생활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책에서는 철저히 두 사람의 글에서 그들의 생활을 읽어야했기 때문에 더 두 사람의 관계에 몰입하면서 읽어갈 수 있었다. 짧게는 몇 십초에서부터 길게는 며칠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메일을 주고 받는 주기의 변화 또한 두 사람이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완벽한 가정을 가진 에미와 실연의 고통을 에미를 통해 서서히 극복해가는 레오. 주어진 환경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이메일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생활을 서서히 파고들어가는 모습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낯선 사람을 알게 되고, 그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나 또한 남자친구를 온라인 동호회에서 알게 되어 메일을 주고 받다가 발전하게 된 경우라 이야기 속의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가 남의 얘기같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우리의 메일은 거의 펜팔 수준이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그저 화면에 찍힌 글만으로 사람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 환상을 키워가는 일이다. 이 책 속에서 에미와 레오는 몇 번이나 만날 뻔 하지만 정말 그들이 직접 만났더라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진짜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면 과연 그들은 예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쉽게 끝나버린 결말 앞에서 뒷 이야기를 맘껏 상상했는데, 조만간 후속편이 등장한다고 하니 과연 작가는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갔을까 궁금해진다. (사실 이왕이면 후속편없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바깥 세상에 대한 자그만한 소통의 창을 레오를 통해 열었던 에미.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다해도 에미가 레오에게 느낀 감정은 분명 정신적인 불륜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도 포기할 마음은 없지만, 한 편으로는 레오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에미. 처음에는 그녀의 발랄함이 마음에 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녀의 이기적인 모습이 왠지 얄미워졌다. 하지만 정신적 불륜이라 하여도 불륜을 천박하지 않게 전개한 작가의 솜씨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라인을 통해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하는 것이 더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보다 더 오해를 사기 쉬운 글을 통해서만 서로를 파악해 가는 두 남녀. 그들이 풀어가는 이야기는 한 번쯤 인터넷을 통해 이성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을 사귀어본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사지 않을까 싶다. 서간체 소설은 사실 한 번 맥이 풀리면 읽기가 싫어지는데 이 책은 정말 잡는 순간 후다닥 읽어갈 정도로 재미있었다. 평소 책읽기를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 책을 다 읽고나니 왠지 오랫만에 메일이나 한 번 보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정신없이 읽었던 책. 영화로 만들어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영화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