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여름 휴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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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마츠 기요시의 책들에서는 정말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해 늘 소설같지 않은, 그냥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하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3편의 단편이 담긴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 역시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라이언 선생님'에서는 사자갈기같은 헤어스타일을 쭉 고수하고 있어(이제는 대머리가 됐지만 가발도 사자갈기 스타일이다.) 라이언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사자머리를 하고 항상 학생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편이 되려 노력하는 라이언 선생님. 그러던 중 장기 결석을 하는 한 학생과 줄다리기를 하게 되고, 그의 아버지와 대면함으로써 그동안 쭉 간직해온 착한 선생님 증후군(?)에서 조금은 벗어나 좀 더 인간다운 선생님으로 바뀌어 가는데...

  두번째 이야기인 <허수아비의 여름 휴가>에서는 항상 반에서 말썽을 부리는 한 아이때문에 고민인 선생님이 등장한다. 자기 나름대로 아이를 포용하려고 하나, 주위로부터는 늘 핀잔을 듣는 주인공. 심지어는 아이들에게 '허수아비'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그래도 자신이 교육방식을 고집해 고집불통 학생과 그의 가족을 그만의 방식으로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또한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으로 댐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다시 떠올리게 되며,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기 시작하는데...

  세번째 이야기인 <미래>에서는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급생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제 자살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 주인공이 이를 무시한 뒤, 진짜로 동급생이 자살해버리자 주위의 비난을 듣고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게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표정을 되찾기 위해 착한 일을 시작하는 주인공. 그러던 중, 왕따를 당하던 동생의 동급생이 자살해버리고, 유서에서 동생의 이름이 등장한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 동생을 대하는 주인공은 어느새 조금씩 표정을 찾기 시작하는데...

  일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학교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학창 시절의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라 할 수 있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학생이 아닌, 그렇기에 그 속에 100프로 녹아들어갈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학생들의 편에 서려고 하지만 학생들과도 잘 섞일 수 없는 라이언 선생님, 문제 학생을 사랑으로 감싸려하지만 되려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눈총을 받는 고우타 선생님, 그리고 제대로 학창시절을 마감하지 못한 채, 그들로부터 쫓겨나버린 사사오카까지. 그들은 모두 제대로 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정착하기를 시도해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정착할 곳은 댐 때문에 이미 물에 잠겨버린 고향처럼 아련한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다른 삶을 지향하는 모습(사사오카처럼 봉사활동을 한다던지, 수몰된 마을에 찾아갈 결심을 한다던지, 가발을 벗어버리는 것처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닿지 못하는 것을 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따, 등교거부, 조기 퇴직 등 우리에게도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사회적인 현상들이 녹아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가 더 현실과 가깝게 느껴졌다. 과거의 상처를 묻고 그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왠지 힘이 나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있을 곳이 정말 여기일까라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곧 학생들을 만나게 될 예비 교사라면 더더욱 공감하면서 읽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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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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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문학은 사실상 처음 접하는 것이라(타고르의 시는 몇 편 접해봤지만 그거야 수박 겉핥기 식이었으니 제외)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간 인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인도는 뭔가 자신의 깨닫게 해주는 수양의 장소의 이미지가 컸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는 실제 생활과 맞닿아 있는 인도,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도 또한 그리 경건하고 엄숙한 느낌은 아니었구나, 인도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하게 됐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 이슬람식, 힌두식, 가톨릭식의 이름이 뒤섞인 독특한 이름만큼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정신없이 흘러 간다.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 도시 빈민인 그가 퀴즈쇼에 나가 10억 루피의 상금을 거머쥐게 된다. 그의 실력으로는 1등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제작사는 경찰에 부탁해 그를 구속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말을 들으려는 경찰. 조금만 있으면 무너지려고 하는 순간 한 여자가 나타나 그의 변호사라고 하며 그를 풀려나게 해준다. 그리고 변호사에게 '답을 그냥 알고 있었다'라고 하며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퀴즈쇼에서 문제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니 이야기의 앞뒤가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아 읽으면서 이게 어떤 시기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 잘 꾸며진 이야기와 만나는 것일텐데, 이 소설은 정말 잘 꾸며져 있어서 '이번에는 주인공잉 어떤 일을 겪는 것일까'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읽는 내내 지겹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상금이 조금씩 높아져갈수록 긴장감도 조금씩 높아져가는 기분이었다랄까? 

  자신의 삶도 비참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가진 주인공. 그런 그의 선행들은 결국 업보가 되어 위기의 순간에 그에게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어도 곧 그 행복이 깨지고 다시 절망으로 떨어지는 그의 인생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지라도) 행운과 불운은 그저 한 끗 차이니까 말이다. 풍자와 유머가 가득하고, 인도의 색깔이 살짝만 묻어있기에 별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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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클럽
텐도 아라타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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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그것이 남에게 얼마나 사소하게 보일 지 몰라도 우리는 항상 상처를 받고, 때로는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며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가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괴롭히는 상처 또한 갖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치유되는 이야기이다. 

  고교 2학년 생인 와라. 부모님이 이혼한 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아가며 이 세상에 사랑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지, 어디에 능력이 있는 지 깨닫지 못하고, 그러기에 불안한 평범한 여고생.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병원 옥상에서 디노라는 괴짜와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장소(병원 옥상)에 상처가 있어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피를 멎게 하기 위해 붕대 좀 감자고 하고 대뜸 벤치에 붕대를 감아버린다. 무슨 황당한 짓인가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단지 붕대 하나 뿐이었는데 벤치가 치료받은 것처럼 느낀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의 고민을 듣게 된 와라는 그 장소에 가서 붕대를 감자고 친구에게 건의하고, 그렇게 둘은 자신의 상처를, 남의 상처를 위해 클럽을 만들어 마을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 다니기 시작한다. 

  붕대를 감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정말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처음에는 책 속에 등장하는 템포나 다른 어른들처럼 지저분하게 천을 왜 매다느냐, 애들도 아니고 무슨 짓이냐라고 생각했지만 그 장소에 붕대를 감기 위해 자신이 상처를 받았음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 상처와 마주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나도 상처받은 장소에 가서 붕대를 매달고 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붕대 클럽'의 발상에 동감하게 됐다. 

  요새는 인터넷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상처를 엿보곤 한다. 그럴 때면 때때로 '나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위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 속에서는 그런 류의 위로에 반대한다. 자라온 환경, 성격이 다 다른데 같은 사건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그 크기는 당연히 다르다고, 그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상처를 털어놓는 것은 나도 그런 상처가 있다고 동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그 사실을 알아주는 걸 바란다는 걸 이야기한다. 그냥 빈 말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해. 그렇기 때문에 붕대 클럽의 멤버들은 그 상처를 자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하찮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들을 위해 붕대를 감으며 조금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하주는 것. 그런 과정은 비단 상처를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붕대를 감는 붕대 클럽의 멤버들에게 도움이 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붕대 클럽 멤버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접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좀 더 넓은 관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니까. 

  단순히 붕대 클럽이 활동했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훗날 이 야이기를 다시 묶는 형식으로 편집되어 중간 중간에 어른으로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상처를 받은 장소에 붕대를 감아버린다면 온 세상은 붕대로 뒤덥힐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붕대를 감아보는 것도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명의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원작부터 읽어봤는데 책만큼 영화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 남자친구와 헤어진 장소(그네)에 붕대를 감아 치유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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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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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다른 배경 지식없이 그저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듣고는 마침 읽을 책도 없는데 한 번 읽어볼까하고 이 책을 집어든 것이 벌써 2007년의 일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낯선 중국 인명 때문에 더듬더듬 읽어갔고,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비교적 심드렁하게 읽어갔는데 인명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갈등도 드러나기 시작한 중반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읽어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꽤나 고생스러워서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던 책인데 다행히 완독할 수 있었던 책. 하지만 완독의 기쁨보다는 중국의 현대사가 남긴 상처와 그 속에 담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문화대혁명'이 아닐까 싶다. 그 때문인지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도 많이 등장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 또한 문화대혁명을 겪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마르크스와 휴머니즘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휴머니즘은 수정주의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인물들, 그리고 한 편에는 마르크스와 레닌도 휴머니즘을 고려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인물들. 이들의 첨예한 갈등이 이 소설의 하나의 중심축이다. 이런 중심축을 둘러싸고 자신의 진짜 의견을 숨긴 채 당의 의견에, 권력에 복종하는 이들과 이들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딱딱한 내용만 담겨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20년 간 서로를 사랑해왔지만 엇갈린 운명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었던 허징후와 쑨위에가 등장하기에 이야기는 소설로서의 재미를 갖게 된다.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허징후와 당의 서기로 일하는 쑨위에는 이념적으로는 같은 노선을 취할 수 없는 사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지 않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념이 같음을 확인하고, 조금씩 서로의 애정을 확인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독자에게 마르크스와 휴머니즘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중국현대사를 잘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그 자체의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들의 철학적인 대화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렵게 읽히는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많은 것을 남겨주지 않을까 싶다. 어렵게 읽었기에 완독했을 때 뿌듯하기도 했던 작품.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념을 고수할 수 있는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이 책을 보면서 나 자신답게 사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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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저는 별 다섯개에요 ^^ 남자 이름은 기억 안나고 제가 읽은 옛날 버전에서 여자는 손유에였는데 ㅋㅋ 쑨위에보다 이 발음이 더 예쁘지 않나요? ㅎㅎ

이매지 2008-01-10 00:36   좋아요 0 | URL
별하나 뺀 건 초반에 너무 고생을 해서 -_ㅜ
진짜 거짓말 안하고 한 3주는 잡고 있었어요 -_-
안그래도 다른 분들 리뷰 보니까
제가 본 이름과는 다른 이름들을 언급하더라구요 ㅎ
개정판으로 바뀌면서 인명을 바꾼 것 같아요.
손유에는 더 부드러운 느낌인 듯. ㅎ
하지만 쑨위에가 더 강한 이미지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ㅎ

바람돌이 2008-01-10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인데 너무 오래돼서 이젠 기억도 잘 안나네요. 하여튼 20대 후반 이후 읽은 책은 세월이 좀만 지나면 끝입니다. ㅎㅎ
전 맑스주의의 출발이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안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다보니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편견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매지 2008-01-10 00:52   좋아요 0 | URL
사실 뭐 20대 초반에 읽은 책들도 좀만 지나면 끝인 것도 ㅎㅎ
가끔 이 책을 읽었나 안 읽었나 기억이 안나서 중간까지 읽을 때도;;;
저도 처음에는 왜 맑스주의와 휴머니즘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좀 혼란스러웠어요.
결국에는 인간이 아니라 계급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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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연극이나 희곡에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귀에 익은 작품들이 몇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게 바로 이 작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일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이 작품을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번역되서 나오는 게 없어 못 읽어봤는데 이제서야 출간되어 읽기 시작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한 때는 꽤 부유했던 남부 출신의 블랑시가 모든 것을 잃고 동생인 스텔라를 찾으며 시작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 블랑쉬. 하지만 극락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 곳에서 블랑쉬는 스텔라와 그의 남편인 스탠리를 만난다. 스탠리와 블랑시는 빈번히 부딪히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블랑시의 진짜 과거를 알게 된 스탠리는 그녀의 과거를 폭로해 블랑시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간다. 

  다소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는 스탠리도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이 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역시 주인공 블랑시다. 돈과 직업, 그리고 명예까지 모두 잃은 블랑시, 하지만 그녀에게는 묘하게 현실 능력이 부재한다. 예전과 같은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낮게 평가한다. 어쩌면 그녀가 과거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동생을 찾아왔을 때에도 그녀의 그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발목을 잡았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자신에게 좋을 대로 현실을 해석해버리고,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피하는 블랑시의 태도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학력위조처럼 자신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해 결국 그 거짓말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처럼 블랑시의 행동은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덫에 발목이 잡혀버린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에 대한, 혹은 작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비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상징물 뿐만 아니라 '종이갓'이나 '포커게임'과 같은 세세한 요소들에 감춰진 의미들이 인상적이었다. 선입견이 생겨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작품이라 연극 혹은 영화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 지 궁금하다. 왠지 청순한 이미지의 비비안 리가 그려내는 블랑시는 어떤 느낌일 지도 기대된다. 희곡은 몇 편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무게와는 관계없이 이 작품만큼은 여느 희곡보다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라 더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었다. 기회가 닿으면 테네시 윌리암스의 다른 희곡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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