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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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과 6펜스>로 호감을 갖게 된 서머싯 몸의 작품이라는 점과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보게 된 작품.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예습차원에서 보게 됐지만, 영화보다는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듯 싶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키티. 평범한 변호사인 아버지와 다소 극성스러운 어머니의 밑에서 자란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목표는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 하지만 사교계에 데뷔한 그녀 앞에는 엄마의 마음에 차는 조건의 남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만 먹어간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부터 그녀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동생이 괜찮은 조건의 남자와 혼담이 오가자 키티는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에 당시 그녀에게 청혼을 했던 세균학자 월터 페인과 덜컥 결혼을 하게 된다. 재빨리 결혼한 뒤 페인이 일하는 중국으로 떠나지만, 애초에 사랑이 없는 결혼을 했던 탓인지 키티의 삶은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찰스 타운센드와 불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불륜을 알게 된 월터는 키티를 반강제로 콜레라가 창궐한 오지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변해가는 두 사람...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굉장히 진부하다. 철없는 한 여자와 그런 그녀를 사랑한 한 남자. 하지만 여자는 불륜을 시작하고, 이를 알게 된 남자의 복수. TV를 켜도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베일>에는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물론, 기존에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만나온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해서 예상 외로 허를 찔리는 느낌은 들지 않고 전체적으로 무던하게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약간씩 변형된 인간의 모습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키티를 너무나 사랑했던 월터. 그는 불륜을 저지른 키티를 혐오한다기보다 그런 키티를 한 때 사랑했던 자신을 혐오하며 끝없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키티가 죽었으면하는 마음에서 콜레라가 창궐한 지역으로 키티를 데리고 갔지만, 오히려 그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자신의 모습과 가치를 찾게 되는 키티를 보게 된다. 그런 그녀를 보며 월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판단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어찌되었건, 너무나 철없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았던 키티는 수녀들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며 자기 자신도 가치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찰리와의 사랑도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다소 득도한 모습(?)에 이른다.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다룬 작품들을 이전에도 많았지만, <인생의 베일>은 그 전형적인 이야기를 개성있게 풀어낸 것 같다. 키티의 심리를 잘 드러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결국 베일에 가려진 월터의 마음은 100프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결국 월터가 남진 "죽은 건 개였어"라는 말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준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세부적인 사항이 조금씩 달라지긴 해서 새로운 느낌으로 보기는 했지만, 키티의 심리 묘사만큼은 책이 뛰어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영화 속의 키티에게는 좀처럼 몰입이 안되서 혼났다. 제법 두께감있는 책이지만 세부적으로 많이 나눠져있고,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아 키티에게 몰입하기 시작하면 빠르게 읽을 수 있을 듯. 자신의 속마음을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는 월터,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변화하는 키티, 끝까지 자기 중심적인 찰스. 각기 다른 인물이지만, 이들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에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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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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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나온 온다 리쿠의 책만해도 벌써 10권 남짓되니 이만하면 온다 리쿠가 일본 작가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듯 싶다. 일본 대중 문학 1세대 작가라 할 수 있을 법한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작가들의 뒤를 잇는 일본 작가를 언급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온다 리쿠다. 그만큼 우리의 정서와도 잘 맞고,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도 뛰어난 작가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이번 작품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온다 리쿠 종합 선물세트'라고 표현할 정도로 온다 리쿠의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작품집이긴 하지만, 단편이다보니 아무래도 너무 빈약하다.

  <밤의 피크닉>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을 법한 <피크닉 준비>는 <밤의 피크닉>을 읽기 전에 읽었더라면 어떤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읽고난 뒤에 새삼 읽으니 특별한 게 없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다른 작품과의 연관이 없는 <작은 갈색 병>이 적당히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며 온다 리쿠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국경의 남쪽>도 일상에 드리워진 어둠 혹은 악의를 느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작은 갈색병>, <국경의 남쪽> 정도의 단편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의 단편들은 대체로 다른 시리즈의 예고편, 혹은 장편을 쓰기 전에 짤막하게 쓴 것들이라 그런지 뭔가 2% 부족한 느낌만 들어 괜히 입만 버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단편이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특유의 장점를 살렸더라면 오히려 온다 리쿠식의 단편집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글은 장편처럼 쓰고 있고 형식은 단편이니 이도 저도 아니라 아쉬움만 남았다. 이야기 속에 복선을 깔아놓거나, 순환식 구성을 사용하는 것, 이런 것들은 역시 장편에 더 어울리는 느낌. 단편답게 강하게 치고 빠지는 힘이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온다 리쿠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하지만 평소 온다 리쿠를 좋아했던 나는 이 책으로 온다 리쿠에게 살짝 질려버린 듯. 당분간 온다 리쿠의 소설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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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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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마츠 기요시의 책은 나오키상을 수상했던 <비타민 F>를 접한 적이 있는데 F로 시작되는 단어들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따뜻한 힘이 느껴졌었다.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발행하는 페이퍼에도 비타민 F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 후로도 그의 책들은 몇 권이나 출간됐지만 계속 기회가 닿지 않아 미뤄왔는데 이번에 우연히 <졸업>을 만나게 되서 반가움이 더했다. 표지는 다소 밋밋한 느낌이라 머뭇거렸지만 일단 책장을 넘겨가니 그 속에 담긴 따뜻함과 주인공들의 경계선 속에서 나의 경계선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졸업'이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정규 교과과정을 마쳤다는 의미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단계의 졸업을 흔히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서의 졸업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인생은 어떤 경험을 하기 전과 그 경험 이후로 삶이 바뀐다고 한다. 어떤 학교에 갔는지, 그리고 그 곳에서 누구를 만나게 됐는지,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지, 누구와 결혼하는지 등 우리 인생에는 다양한 갈림길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그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이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다른 길을 선택해야됐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의 졸업은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경계점(혹은 갈림길)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마침내 남겨진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의미의 '졸업'인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내 인생의 최대 사건은 가까운 이의 죽음이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죽은 뒤 10년도 넘게 지나 자신을 찾아온 친구의 딸. 무작정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이에 친구와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동안 마음 속에 묻어왔던 그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내는 이야기('졸업')에서는 가족이 아닌 친구의 죽음이었다면 나머지 3편의 이야기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어린 시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던 여동생과 그런 여동생의 면도 수용했던 엄마의 일들을 돌아보며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이야기('행진곡')나 평생을 교사로 살았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본받지 않겠다며 교사를 시작한 아들의 이야기('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병으로 떠난 주인공이 병상에서 엄마가 쓴 일기를 보며 평생 엄마를 잊지 못하고, 새어머니와 다투며 커가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에세이로 쓰면서 마침내 새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이 그려진 이야기('추신')까지 슬픔의 정도나 충격의 정도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들 모두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고, 가족의 죽음으로 삶의 진폭이 바뀐 것을 느낀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친밀하지만 때로는 어쩜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차갑다. 이 책은 가족 간에 벌어지는 그런 미묘한 부분을 잘 잡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갔다.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인 '추신'의 경우에는 마지막 장을 읽으며 조용히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인 중년을 살아가는 주인공들. 어쩌면 그들이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가는 중년이었기 때문에 인생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졸업을 두고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제는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야할 시간이 아닐까하고 책을 놓으며 조용히 생각해봤다. 나와 같이 과거에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주인공들과 같은 연령대인 30, 40대가 읽으면 좋을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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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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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될 때만 해도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자꾸 이 책에 대해 우호적인 리뷰들을 보면서 관심이 동했다. 굳이 따지자면 공포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쭉 긴장이 이어지는 구성이 아니라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라 오히려 느긋하게 공포(?)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어둠. 그 어둠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이었다. 

  첫번째 이야기인 <SEVEN ROOMS>에는 어느 날 이유없이 콘트리트 방에 갖힌 남매가 등장한다. 아무것도 없는 방 한 쪽에는 더러운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었고, 작은 몸을 가진 동생은 도랑에 들어간다. 그리고 옆에도, 그 옆에도 자신들과 같이 갇힌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그들이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될 때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자의 죽음의 기한이 정해진 갇힌 사람들. 점점 그들의 마지막도 다가오는데... 다소 시큰둥하게 집었던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단편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체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들의 죽음의 시간도 다가오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 남매의 이야기가 차츰차츰 좁아지는 방 속에 갇힌 것처럼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 이 이야기 이후의 다른 단편들은 딱히 호러공포라고 하기엔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수록작들을 살펴보면, <So-far>의 경우에는 반전(혹은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던 이야기였고, <ZOO>는 매일 아침, 자신의 집에 배달되어오는 애인의 사진(구더기가 시체를 점점 파먹어 그 모습을 잃어가는)을 가지고 애인의 행방을 쫓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초반에는 다소 시체의 사진이 배달되어온다는 설정이 오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후에는 오히려 인간의 분열된 자아에 집중했던 이야기였다. 이 외에 <혈액을 찾아라>나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의 경우에는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양지의 시>은 서정적인 느낌이 풍기는 작품이라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카자리와 요코>나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은 학대 당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카자리와 요코>의 결말에서는 통쾌함과 씁쓸함이 들었고,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은 잔혹 동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잔혹한 일들을 직접 문체로 써내려가기보다는 그 상황이 주는 공포, 혹은 인간 내면에 잠자고 있는 어둠을 드러내는 공포소설을 좋아한다. 아예 대놓고 무서운 소설은 왠지 긴장을 하고 보게되서 그런지 별다르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짝 허를 찔리듯이 조금씩 공포감에 젖어드는 것이 진짜 공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ZOO>의 단편들은 너무 비정상적인 인물들의 비정상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슬쩍 슬쩍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깔고, 그 속에서 부분적으로 공포감을 안겨주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읽기 전에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실망한 부분도 컸던 것 같다. 기존에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을 많이 접한 분들이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그런 내용에 비해 문체나 구성은 나쁘지 않아서 끝까지 긴장감을 안고 볼 수 있었지만 천재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한테 이런 글을 써보라고 하면 못 쓴다만)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은 알고보면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일들은 나같은 보통 사람에게 처음엔 다소 충격을 안겨줄 수 있었지만 뒤로갈수록 그런 잔인한 일들도 무덤덤해져서 오히려 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에 놀랐던 책이었다. 기대보다는 덜했지만,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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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0-07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읽는 재미는 있지요- 그리고 영상을 보듯 쓸 줄 아는 재주도 ^^

이매지 2007-10-07 01:46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이미지 바꾸셨군요 :)
근데 이 글들 영상으로 표현하면 또 맛이 떨어질 것 같았어요.
너무 잔혹한(?) 이야기들이라서.
 
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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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가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읽거나 언급하는 책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이 책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해놓고 서지정보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그 책을 꼭 읽게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렇게 미루고 까먹은 책들은 얼마나 많은지. 문득 그간 만들어놓은 리스트를 들춰보다가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속에 나온 리스트를 다시 보게 됐고, 그 속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도서관에 갔다가 운명적(?)으로 이 책을 만나 왠지 모를 기대감을 안고 읽어갔다. 

  이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정보라면 주인공이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사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 연애를 할 때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왠지 쉬워보일까봐(?) 애써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주기를 바라는 많은 여성들처럼 이 책의 주인공인 코라 휩시도 주말 저녁에 전화한다는 남자(다니엘 호프만)의 말만 생각하고 주말 저녁 내내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해볼까하고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하며 6시간 47분을 보낸다. 그동안 코라 휩시의 머리 속에는 다니엘 호프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생각이 오고가는데... 과연 코라 휩시는 다니엘과의 통화에 성공할까?

  예쁘고 귀엽다는 의미의 이름과는 달리 머리카락은 제멋대로라 수습이 안되고, 은근 통통한 몸매라 데이트 내내 배에 힘을 주고, 속옷으로 몸매를 보정해 애써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는 33세의 코라 휩시. 그녀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전화를 기다려봤고, 또 자신의 몸매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있을테니까. (간혹 안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독일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브리짓 존스->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보다 캐릭터는 살짝 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영화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어가며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한 번쯤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함을 느꼈던 분들이나, <브리짓->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지금 전화를 기다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벼운 느낌의 책이고 결국엔 뻔한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시간은 아깝지 않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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