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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흐트와 아들
빌렘 얀 오텐 지음, 유동익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오스카 와일드의 재림'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된 책인데 확실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한 폭의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달라서 비슷한 소재였지만 유미주의 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와는 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 최고 권위의 리브리스 문학상 수상작품답게 이 책은 독자에게 많은 예술가의 열정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탄생과 부활이라는 종교적인 메시지까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줬다.
가로 2미터, 세로 120센티미터라는 크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된 캔버스. 평범한 그림을 그리기엔 너무 큰 크기의 캔버스라 오랜 시간 주인을 만나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살 것 같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자신을 구매해간다. 초상화가였던 그(펠릭스 빈센트)는 캔버스를 샀지만 오랜 시간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거부인 발레리 스페흐트가 자신의 죽은 아들인 싱어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동안 자신이 원하던 저택을 구입할 돈을 모으고 있었던 빈센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있는 사람만 그린다는 자신의 원칙까지 깨고 싱어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지는 싱어의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 그 위에 하나의 생명을 그려내는 빈센트. 그를 캔버스는 '창조자'라 부른다. 창조자는 빈 캔버스 위에 한 사람의 모습을 오롯이 그려내 생명을 부여한다. 사람의 육체는 언젠가 사그라지지만, 그림 위에 그려진 인물은 또 다른 생명을 얻어 영원히 살아간다. 화가를 창조자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캔버스 위에 싱어라는 아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싱어가 테인이 되고, 아들인 스타인이 되는 순환적인 과정을 통해 한 폭의 그림은 생명을 부여받는다. 결국 캔버스 위에 그려진 싱어는 불타버리지만, 싱어는 반으로 잘라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그리고 빈센트의 아들인 스타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내가 죽을 위기를 넘기며 출산을 하듯 빈센트 또한 자신의 혼을 쏟아부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의 연인을, 다른 사람의 아들을 그리지만 빈센트는 자신의 애정을 담아 자신의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 결국 그는 타인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면하게 된다.
종교적인 색채도 엿보이고(창조자라는 명칭부터가) 철학적인 내용이 많은 책이라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도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다. 캔버스가 화자라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전달하기 때문에 사건의 단편적인 내용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라 독자 역시 제한된 내용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상징물을 통해 작품을 분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직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시간이 지나고 한 번쯤 다시 읽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작품.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