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갖고 싶은 책이 한 두권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 살 돈이 부족할 때 대형 서점을 배회하며 이 책이 다 내꺼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공상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책도둑>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꽤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흔히 도둑이라면 남의 것을 빼앗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호감을 갖기 힘들지만, 왠지 책도둑이라고 하면, 그것도 어린 소녀라고 하면 조금은 찌푸려진 얼굴이 펴지지 않을까? 처음에는 미소를, 끝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만드는 책도둑 리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엄마와 함께 양부모에게 가고 있는 리젤과 동생. 하지만 동생은 기차에서 죽어버리고, 리젤 홀로 양부모의 집에서 살게 된다. 처음에는 낯선 곳이었지만,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빠, 그리고 걸죽한 욕설 뒤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리젤은 그 곳에서 개성있는 친구들과 인물들을 만나며 전쟁 중이지만 배고픔이란 불편 외에는 나름대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생의 무덤에서 처음 훔친 책에서부터 한 권씩 한 권씩 책을 훔쳐 읽으며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에 이르는 리젤. 그녀는 왜, 그리고 무슨 책을 훔친 것일까?
이 책 속에서 리젤은 단순히 책에 욕심이 생겨서 책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훔칠 수밖에 없었기에 책을 훔친다. 한 꺼번에 많이 훔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을 몇 십 번이나 읽은 뒤 다음 책을 훔치는 방식. 하지만 그것도 가게에서 슬쩍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책을, 혹은 서재 주인이 눈감아주는 사이에 훔친다. 그렇기 때문에 리젤의 책 도둑질은 그저 어린 소녀의 말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진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듯이 '말'이 고플 때 책을 읽음으로써 갈증을 해소하는 리젤. 리젤처럼 말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히틀러처럼 말을 악용해 말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이 책은 책의 힘, 말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안네의 일기>가 전쟁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책도둑>은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른 이의 우위에 서서 남을 파괴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오히려 남을 도움으로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참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눈을 감았더라면 어쩌면 그들도 다른 독일인 가정처럼 지낼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그리고 인간의 선함을 끝내 지키려고 했던 한스와 그런 아빠 밑에서, 집에 몰래 숨겨둔 막스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씩 키워가는 리젤의 모습이 인상깊었던 작품이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다시 한 번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전범국의 입장에서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불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껄끄러운 느낌없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고, 초반에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독자를 붙들어놓는 힘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이 책을 놓고 나니, 마커스 주삭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