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0
브램 스토커 지음, 이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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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어디서 났는지는 몰라도 집에 굴러다니던 낡은 책이 한 권 있었다. 호기심에 그 책을 펼쳐들고 읽었다가 이야기의 전개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그 책이 안겨줬던 공포는 지금도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작품을 십 수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게 됐으니 바로 이 책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이다. 

  영화나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모습을 바꾸듯 새롭게 관객(혹은 독자)과 만나왔기 때문에 <드라큘라>는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의 피를 먹으며 영원한 삶을 사는 드라큘라 백작, 그리고 그를 없애기 위해서 마늘, 성수, 십자가 등을 준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익히 봐온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히 아는 이야기임에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왠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짐을 느끼며 어린 시절 느낀 공포를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제는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이 정도의 공포로는 덤덤한 느낌이었지만.)

  예전에는 단순히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을 뿐이라면,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오히려 드라큘라 백작을 처단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멋도 모르고 드라큘라 백작의 서류처리를 해줬다가 죽을 뻔한 조너선, 온갖 자료를 뒤져 퇴치법을 알아내는 반 헬싱 교수, 친구 루시를 드라큘라 백작에게 잃고 복수를 위해 마음을 다지는 미나 등. 선과 악이라는 평면 구조 속에서 어찌보면 그리 특색이 없어보이는 인물들이었지만 악에 맞서 싸우는 강인함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다. (단순히 악에 맞서 싸운다기보다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민중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기 때문일지도.)

  전체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드라큘라> 제대로 읽기'라는 부록을 수록해서 영화 드라큘라에 관한 이야기, 흡혈귀와 관련한 이야기, 기독교와의 관련성 등을 수록해놔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청소년을 타겟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평이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여름을 맞이해 한 번쯤은 읽어봄직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예전과 같은 충격과 공포는 느낄 수 없었지만 잠시나마 시원함을 안겨줬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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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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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선택할 때 아무래도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어떤 작가의 작품이냐라는 점이다. 딱히 책 선택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믿을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면 실패할 염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사카 코타로도 나에게 그런 면에서는 '보증 수표'같은 존재. 게다가 또 하나의 보증 수표인 '일본 서점대상'까지 수상했다니 일단 어느 정도 재미는 보장. 생각보다 두꺼워서 '금방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이런 걱정도 잠시, 책을 잡자마자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나 또한 주인공 아오야기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숨막히는 며칠 간을 보냈다.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20년 뒤, 사건, 그리고 사건 석 달 뒤라는 총 5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초반에는 사건의 바깥을 보여준다. 그렇게 궁금증을 잔뜩 안겨주고서는 4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아오야기가 겪는 일들이 그려진다. 초반에는 너무 개별적인 사건들이 등장해서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본격적으로 아오야기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사건'에서부터는 아오야기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꽤 긴장감있게 진행되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작가도 밝혔다시피 이 책의 소재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과 꽤 비슷하다. 존 F 케네디의 암살범으로 알려진 오스왈드가 사실은 암살범이 아니다 류의 음모론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다. '음모'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는지, 케네디 암살 음모 뿐만 아니라 911테러와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으레 음모론은 터져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총리 암살 또한 하나의 음모로 사건 20년 뒤에도 총리 암살에 대한 이야기는 호사가들의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누가 죽였을까'지 '그 때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에서 아오야기가 겪는 일들을 꽤 조마조마하면서 볼 수 있었다. 

  사실 총리 암살범으로 아오야기가 몰린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원한 관계가 있다던지, 혹은 그저 오해일 뿐이라던지, 그런 류의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택배 배달을 하며 평범하게 지내던 중 우연히 아이돌 스타를 구해낸 아오야기. 반짝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이제는 악질적인 장난때문에 택배 회사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며 살아가고 있을 뿐. 하지만 어느 날 8년 만에 대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며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간 적이 없는 장소에 자신과 닮은 사내가 있는 CCTV가 찍혀있고, 자신이 알던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아오야기는 왜 쫓기는 것인지 이유도 알 수 없이 쫓기도 또 쫓긴다. 외통수에 걸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아오야기는 마무리로 달려가는데...

  엔터테인먼트 대작이라고 해서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했는데, 분명 소재 자체는 그럴 지 몰라도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꽤 생각해볼만한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는지,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것인지, 대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구워삼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와 같은 거대 권력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대해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기존에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편이었고, 이사카 코타로의 기존 책들과도 다른 느낌이었지만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도망자>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후회하지 않을 책. 꽤 두껍지만 조금만 더 읽어야지 조금만 더 읽어야지하다가 끝까지 달려갈 지도 모르니 이왕이면 주말에 느긋하게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 책이었다.

덧) 어지간해서는 책을 다 읽고 다시 중간으로 돌아가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사건 20년 뒤 챕터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처음에 읽을 때는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모르고 읽어서 크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돌아가서 읽으니 의외로 재미가 쏠쏠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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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랜드
섀넌 헤일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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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오만과 편견>을 비롯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많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로맨스 소설의 고전이 됐다. 말할 것도 없이 숱하게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진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외국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소재로 한, 또는 제인 오스틴 작품에 대한 오마쥬라 할 수 있을 작품들이 몇 권이나 출간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건 극히 드물었다. 끽해야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제인 오스틴 북클럽> 정도가 소개됐을 뿐. '(칙릿 소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제인 오스틴이라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오스틴 랜드>와 만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콜린 퍼스에게, 당신은 정말 멋진 남자지만 전 이미 결혼했어요. 그러니 우린 그냥 친구로 지내야 할 것 같네요.'라는 헌정사(?)가 등장해 키득거리게 만들더니, 읽는 내내 제인 오스틴에 대한, 그리고 BBC판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다아시 역)에 대한 애정이 잔뜩 담겨있어 새삼스레 BBC판 오만과 편견이나 다시 볼까라는 마음에 DVD를 꺼내고 말았다. 

  서른 두 살의 그래픽 디자이너 제인(주인공의 이름부터 제인 오스틴과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니.)은 어린 시절 우연히 동생의 숙제때문에 BBC판 오만과 편견을 본 뒤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몇 번씩 읽고, DVD는 숱하게 본 제인 오스틴 매니아. (엄밀히 말하자면 다아시의 광팬?)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강해서인지 현실 속에서도 다아시와 같은 남자를 기다리고, 연애는 진지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지리 남자 복도 없는 그녀의 남자친구 1~12는 그야말로 형편없었으니, 마침내 그녀는 연애를 포기하고 혼자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하지만 대고모님에게 유산으로 3주짜리 영국행 휴가여행상품권을 받게 된 제인. <오만과 편견>을 둘러싼 자신의 병적인 집착(?)을 떨치라고 대고모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다아시와 안녕을 고하기 위해 그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팸플룩 코티지. 그 곳에서는 19세기의 옷을 입고, 19세기식으로 말하고, 19세기식으로 연애를 하는 것이었으니.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에 직접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 제인은 이 곳에서 다아시에 대한 매료에 진정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제인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항상 다아시에 대한 열망을 키워왔던 제인이니까 3주 간의 19세기 체험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는 일상 탈출이자 다아시 환상에 대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책을 읽다보니 연극이 아닌 진짜를 찾기 위해 정원사인 마크와 불장난을 벌이는 제인의 모습이나, 다아시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을 법한 노블리와 관련이 되는 제인의 모습을 보면서 제인이 이번에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다아시를 지우기 위해 온 여행이었지만, 제인에게 있어서는 그동안 자신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이 꽤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연애를 포기하고 혼자 살겠노라고 엄숙히 다짐한 30대 여성이 역시 연애는 아직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내용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오스틴이라는 고전적인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었고, 19세기를 그대로 재연한 오스틴 랜드가 있었기에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오스틴 랜드, 그리고 그 곳에서 찾게 된 진짜 사랑 이야기가 한 편의 달콤한 로맨틱 영화같이 느껴졌다. 

  이 책 외에도 <Me and Mr. Darcy>, <Confessions of a Jane Austen Addic>등의 제인 오스틴 관련 소설들이 존재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책들도 만나보고 싶다. 그 전에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이나 좀 제대로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기껏 출간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오만과 편견>에만 너무 치중되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책을 다 읽었으니 다시 주섬주섬 BBC판 오만과 편견이나 보며 느낌이나 곱씹어 볼까나. 콜린 퍼스 만세! 다아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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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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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원서로 먼저 읽어보려고 했던 책인데 우연찮게 중고샵에서 이 책을 구입해버리는 바람에 번역서를 먼저 접하게 됐다. 다소 촌스러운 표지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정작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겨가며 주인공 크리스포터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TV나 영화 등에서 비교적 자폐아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이 책 또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는 가족들의 이야기처럼 자폐아를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책 속에서는 화자가 자폐아로 등장하기 때문에 좀 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또한 소설이기 때문에 100프로 그들의 내면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하여도)

  어느 날 밤 크리스토퍼는 앞집 멍멍이 웰링턴이 쇠스랑에 찔려 죽은 것을 발견한다. 평소 웰링턴을 좋아했던 그는 강아지를 안아주지만 어처구니없이 개주인으로부터 범인으로 지적당한다. 여차저차하다가 경찰서에서 간신히 풀려난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에만 갖혀있던 크리스토퍼는 세상과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하고, 웰링턴을 죽인 범인 뿐 아니라 죽은 엄마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데...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우주비행사가 꿈인 웰링턴. 꽤 똑똑한 아이지만 여느 자폐아들이 그렇듯 그 또한 자신만의 세계에 담을 쌓고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을 경계한다. 타인과 교류를 할 때 그들의 감정을 파악하는데 서툰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상적인 사람들보다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인정하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이 더 호감이 갔다. 변화를 싫어하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모습 등은 크리스토퍼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요컨대 정도의 차이일 뿐 자폐증이 있는 크리스토퍼가 딱히 '특별한 대우가 필요한 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순히 개를 죽인 범인을 찾는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크리스토퍼의 성장담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벽을 살짝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고개를 내밀어보는 크리스토퍼의 모험. 시작은 미미했을 지 몰라도 분명 크리스토퍼는 이전의 그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자폐는 아니지만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각 장을 소수로 구분해놓은 점이나 수학을 통해 접근하는 점, 독특한 그림이 실려있는 점 등이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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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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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갖고 싶은 책이 한 두권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 살 돈이 부족할 때 대형 서점을 배회하며 이 책이 다 내꺼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공상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책도둑>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꽤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흔히 도둑이라면 남의 것을 빼앗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호감을 갖기 힘들지만, 왠지 책도둑이라고 하면, 그것도 어린 소녀라고 하면 조금은 찌푸려진 얼굴이 펴지지 않을까? 처음에는 미소를, 끝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만드는 책도둑 리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엄마와 함께 양부모에게 가고 있는 리젤과 동생. 하지만 동생은 기차에서 죽어버리고, 리젤 홀로 양부모의 집에서 살게 된다. 처음에는 낯선 곳이었지만,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빠, 그리고 걸죽한 욕설 뒤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리젤은 그 곳에서 개성있는 친구들과 인물들을 만나며 전쟁 중이지만 배고픔이란 불편 외에는 나름대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생의 무덤에서 처음 훔친 책에서부터 한 권씩 한 권씩 책을 훔쳐 읽으며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에 이르는 리젤. 그녀는 왜, 그리고 무슨 책을 훔친 것일까? 

  이 책 속에서 리젤은 단순히 책에 욕심이 생겨서 책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훔칠 수밖에 없었기에 책을 훔친다. 한 꺼번에 많이 훔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을 몇 십 번이나 읽은 뒤 다음 책을 훔치는 방식. 하지만 그것도 가게에서 슬쩍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책을, 혹은 서재 주인이 눈감아주는 사이에 훔친다. 그렇기 때문에 리젤의 책 도둑질은 그저 어린 소녀의 말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진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듯이 '말'이 고플 때 책을 읽음으로써 갈증을 해소하는 리젤. 리젤처럼 말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히틀러처럼 말을 악용해 말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이 책은 책의 힘, 말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안네의 일기>가 전쟁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책도둑>은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른 이의 우위에 서서 남을 파괴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오히려 남을 도움으로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참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눈을 감았더라면 어쩌면 그들도 다른 독일인 가정처럼 지낼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그리고 인간의 선함을 끝내 지키려고 했던 한스와 그런 아빠 밑에서, 집에 몰래 숨겨둔 막스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씩 키워가는 리젤의 모습이 인상깊었던 작품이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다시 한 번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전범국의 입장에서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불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껄끄러운 느낌없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고, 초반에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독자를 붙들어놓는 힘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이 책을 놓고 나니, 마커스 주삭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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