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소녀 나모 느림보 청소년 1
낸시 파머 지음, 김백리 옮김 / 느림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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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청소년 문학 쪽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일단 믿는 게 '뉴베리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아프리카 소녀 나모>의 작가 낸시 파머는 뉴베리 상을 세차례나 수상했을 정도로 기량있는 작가라는 점 때문에 선택하게 됐는데, 나름 재미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반복되는 구조에 살짝 지루해지는 감도 있어서 아쉬웠다. 

  엄마는 표범에게 물려 죽고, 아빠는 짐바브웨로 떠나 이모에게 얹혀 살고 있는 나모. 재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모는 이모와 사촌들의 갖가지 뒤치닥거리를 하며 11살 아이답지 않은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모가 사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고, 이에 무당을 찾아가 원인을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무당이 던진 잔인한 한 마디. 나모의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인 고레므토코의 영혼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니 나모가 고레므토코의 가족인 조로로와 결혼을 해야한다는 것. 이에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무당의 말대로 나모를 조로로와 결혼시키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고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인 나모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결혼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나모의 할머니는 나모에게 아빠를 찾아 짐바브웨로 떠나라고 조언을 해주고, 나모는 할머니의 계획대로 아빠를 찾아 혼자 짐바브웨로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한다. 

  아프리카가 배경인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은데, 은근히 우리의 정서와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무속신앙과 나모네 가족들이 찾아가는 무당의 모습이 비슷해 보였고, 나모의 토테인 표범에 관한 이야기나 물의 요정, 나모가 타고 가는 배의 주인이었던 구츠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의 풍습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17년간 생활했던 저자의 경험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나모가 살았던 마을과 짐바브웨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두께(454페이지)와 비슷비슷한 사건의 반복, 그리고 느릿느릿한 전개때문에 왠만한 아이들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까 싶었다. 끈기를 가지고 읽으면 분명 아프리카에 대해서나 용기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 책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좋아하겠지만 책읽기를 막 시작하는 어린 독자에겐 자칫 책읽기의 고역을 가르쳐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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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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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소설은 왠지 딱딱한 이미지라 꺼렸었는데 <허삼관 매혈기>나 <사람아 아, 사람아!>, <닭털 같은 나날> 등의 현대 중국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편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쑤퉁을 알게 되었고 여러 작품 중에 줄타기 광대가 되는 왕의 이야기를 그린 <나, 제왕의 생애>가 끌려 읽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제왕의 면모를 가졌던 장자인 단문을 제치고 막내 단백은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섭국의 제왕이 된다. 왜 단문이 아니고 자신이 왕위에 앉은 것인지 열등감에 시달리며, 단백은 자신을 대신에 섭정을 하는 황보부인과 맹부인이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자 자신은 결국 허울뿐인 왕임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을 하지 못하고, 성 안에 갇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누군가를 죽이라고 명령을 하는 것 뿐. 때문에 단백은 새를 보며 자유를 꿈꾸고, 내시 연랑과 함께 몰래 빠져나가 본 줄타기를 꿈꾼다. 궁 안에서 보이지 않는 줄을 위태롭게 걷고 있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섭왕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현실에서의 줄타기를 갈망한다. 단순히 최고 권력자에서 줄타기 재주꾼이 된 단백의 이야기를 그리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권력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이, 상황이 변하자 성품마저 변해버린 이, 돈 몇 푼에 자식을 파는 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이 책의 장르를 딱 하나만 정하라면 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나, 제왕의 생애>에는 온갖 장르가 들어 있다. 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을만한 모든 요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무협지가 됐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벌어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애정 소설이 됐다가 하는 식으로 소재에 따라 장르적 특성을 바꾸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완급을 조절해서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줄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풀어간다. 

  주인공 단백은 궁 안에 갇혀 지극히 타성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내가 무슨 빌어먹을 개 방귀만도 못한 왕이란 말이냐? 나는 하늘 아래 가장 유약하고 무능하며, 또한 가장 가련한 제왕이로구나. 어릴 때는 유모와 환관, 궁녀 들이 하라는 대로 했고, 글을 깨우칠 무렵에는 승려 각공이 하라는 대로 했으며, 왕이 되어서는 황보부인과 맹부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이제 나라의 정세가 크게 변하여 민심이 흉흉하고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모두 다 늦었구나. 한 자루 칼이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저 여기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다.'(p.217)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그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섭왕이라는 굴레에 갇혀 그저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결국 단문에 의해 섭왕의 자리를 뺏기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 평민으로 살아가게 되며 그는 차츰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궁 안에서의 생활의 마지막 끈이었던 연랑과 헤어져 평범한 사람으로 겪는 이야기들은 안타깝고, 애처로웠지만 오히려 그렇게라도 그렇게 꿈꾸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한 때 섭왕의 지위에 있다가 평민이 되었다가 미친 놈 취급을 받다가 줄타기 왕이 된 단백. 줄을 타고, <논어>를 읽으며 지내는 그의 남은 나날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책을 놓으며 바랐다.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만 쑤퉁이 앞으로 어떤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호기심을 불어넣기에는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쑤퉁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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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덕분에 대충은 알게 됐군요.
새해에도 여전히 공부와 독서를 병해하는 건가요?
복만이랑 친하시길... ^^

이매지 2009-01-11 01:00   좋아요 0 | URL
독서는 끊어야할텐데 말이죠^^;
이 책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
순오기님도 한 번 읽어보세요 ㅎㅎ

순오기님도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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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노래를 기억할 정도로 어린 시절 퍽 좋아했던 만화 중에 하나였던 <빨간 머리 앤>. 하지만 정작 책으로는 앤을 만난 적이 없어서 '언제 시간나면 10권짜리로 나온 앤 시리즈를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미뤄왔었다. 그러던 차에 <빨간 머리 앤> 100주년을 기념해 여기저기서 <빨간 머리 앤>이 출판됐고, 그 중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약 15년쯤 전에 만화로 봤을 뿐이라 그런지 앤하면 다이애나와 개울가에서 손잡고 맹세하던 모습만 어렴풋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초록 지붕 집에서 살고 있는 마릴라와 매슈는 자신들을 도와 농장일을 할 남자아이를 한 명 입양하려 한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잘못 전해져 온 것은 앤.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어느새 앤의 매력에 빠져버린 마릴라와 매슈. 우여곡절 끝에 초록 지붕 집에서 앤의 생활을 시작되고 앤은 갖가지 사건들을 경험하며 성장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수다와 앤이 저지르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유쾌하게 그려져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다 하여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빨간 머리라는 저주받은 운명(?)때문인지 앤은 가족애를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앤은 가족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느끼게 되고,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하며 성장해간다. 초반에는 귀찮을 정도로 수다스럽고, 조금만 기쁜 일이 있으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좋아하고, 조금만 슬픈 일이 생기면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이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앤의 모습을 보며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라는 생각을 잠시 품기도 했는데 그런 점들이 앤을 앤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아닐까 싶었다. 나 또한 마릴라처럼 어느새 앤이 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으니까 말이다. 

  <빨간 머리 앤>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엉뚱소녀 앤의 일화만이 아니다. 공상을 하느라 갖가지 실수를 하는 앤은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들에 대해 반성할 줄 알고,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앤을 얌전한 아이로 키우려고 했던 마릴라의 소망은 불가능스러웠지만, 나이가 들면서 앤은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길버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성적을 두고 경쟁해 어느샌가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자신의 목표를 변경해 자신을 위해 희생한 마릴라를 위해 섬에 남고, 오랜 라이벌이었던 길버트와도 화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사뭇 궁금했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새삼 예전에 봤던 만화도 다시 보고 싶어지고, 이 이야기의 후속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쁜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괜히 소녀가 된 기분으로 설레며 읽었던 책. 다음 기회에 또 앤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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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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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기욤 뮈소라는 낯선 이름에 왠지 거부감을 느껴서 미루고 미뤘던 작품. 도서관에서 장장 1달을 기다려 받은 책이라 나는 빨리 읽고 반납해줘야지라고 생각하고 다소 불순한 의도(?)로 읽기 시작했는데 정작 책을 잡으니 도무지 중간에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온 줄리에트.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서 그녀는 그저 까페 종업원을 하며 하루하루에 쫓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다시 프랑스에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날, 브로드웨이에 룸메이트의 옷을 입고 공연을 보러 갔다가 샘을 만나게 되고, 운명과 같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뉴욕을 떠나야하는 줄리에트와 자신이 유부남이라고 말해버린(사실 1년 전 아내가 자살했다.) 샘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비행기에 올라탄 줄리에트는 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내린다. 하지만 그 비행기가 얼마 뒤 화재로 추락하고, 줄리에트는 졸지에 테러범으로 몰린다. 그리고 샘에게 찾아온 10년 전 죽은 경찰 그레이스는 줄리에트가 원래는 죽을 운명이었다며 그녀를 데리고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샘은 줄리에트를 구하기 위해 일생 일대의 모험을 시작하는데...

  책소개에도 쓰여있듯이 이 책은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이야기의 구성도 그렇지만, 캐릭터들의 특색도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처럼 보였다랄까. 알게 된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새로운 삶을 위해 기존의 환경에서 탈출한 이들이 서로 운명적으로 끌리는 장면이라던지, 사랑을 시작하며 상대방에 대한 설레임과 불안을 느끼는 장면 등이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 "구해줘!"라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되고, 술이나 마약에 탐닉하며 타인에게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장인물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 애정 소설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추리, 스릴러, 액션 등 온갖 장르가 섞여 있어서 다양한 독자에게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자칫하면 이도 저도 아닌 짬뽕같은 소설이 될 수도 있었지만 기욤 뮈소는 다양한 장르 속에서 균형을 잘 잡아 <구해줘>를 완성한 것 같다. 4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부담스러운 분량이지만 일단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품. 조만간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영화로 만나는 <구해줘>는 어떤 느낌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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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쥘리앙 부이수 지음, 이선주 옮김 / 버티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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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쥘리앙 부이수의 소설로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파리가 아니라 어디 도시에도 있을 법한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원제는 <비닐 봉지의 추락>이라는데 번역되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또 한 권의 책인 <펄프>로 제목을 바꿔서 출간됐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분위기는 하루키 풍의 일본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라 평소 일본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인 트리스탕 포끄는 <펄프>라는 한 권의 책을 출간한 풋내기 작가. 하지만 그리 잘 팔리는 책은 아니었기에 생활 보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창작 지원금의 대상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트리스탕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책 16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먹고 살 돈도 없는 판에 자신의 책을 16부나 구입해야 하는 건 힘들었던 트리스탕은 서점에서 다른 작가의 책을 훔쳐 헌책방에 팔고 자신의 책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야금야금 책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트리스탕의 일탈은 주운 열쇠로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 축내기,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의 현관 매트를 앞 건물에 팔기 등 점점 익살을 더해가는데...

  트리스탕은 '더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위기를 모면한다.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순간에서 트리스탕은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한 추락을 통해 생을 이어가고, 자기애도 키워간다. 원제인 비닐봉지의 추락처럼 트리스탕은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땅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약간의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다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는 아쉽게 끝났지만 저자가 이 책의 후편도 만든다고 하니 트리스탕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일탈을 생활화하게 됐는지 다음 기회에 엿볼 수 있을 듯. 

  혹독한 폭염으로 15,000명의 노약자가 사망했던 2003년 파리의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폭염으로 인한 죽음은 등장하지 않고,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투신자살의 내용은 아니니 그저 유쾌하게 트리스탕의 일탈기를 즐겨봄은 어떨까 싶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익살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꼬집음이나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프랑스 소설이지만 분위기는 하루키 풍의 일본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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