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번역으로 만나는 거장 오르한 파묵의 기념비적 역작!
21세기가 주목하는 작가 오르한 파묵의 역작 『하얀 성』이 원전 번역으로 새롭게 독자들과 만난다. 파묵의 세번째 소설인 『하얀 성』(1985)은 뉴욕 타임스로부터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라는 격찬을 받으며, 오르한 파묵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오르한 파묵이 서구에 소개되자 전 세계 언론과 비평가들은 앞다투어 그를 보르헤스, 나보코프, 카프카 혹은 칼비노에 견주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환상성에 주목했고, 독자들은 독특하고 실험적인 그의 작품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원전 번역으로 출간된 『하얀 성』은 오르한 파묵이 펼치는 경이로운 상상력의 세계와 문학적 깊이를 한층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펼쳐지는 경이로운 이야기의 연금술
소설은 『하얀 성』의 실제 저자가 문서보관소에서 1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모종의 필사본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대어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게 된 경위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고는 곧장 이 진위가 확실치 않은 필사본 속으로 들어간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학자인 ‘나’는 나폴리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던 중 터키 해적에게 납치되어 이스탄불로 끌려간다. 거기서 ‘나’는 자신과 쌍둥이처럼 꼭 닮은 호자(선생)의 노예가 된다. 수년 동안 노예인 ‘나’는 선생인 ‘호자’에게 서구의 과학과 기술, 발달된 의학을 가르친다. 둘은 함께 생활하며 파샤(영주)의 아들 결혼식 전야제에서 불꽃놀이 축제를 주관하고 이스탄불에 불어닥친 역병을 물리침으로써 파디샤(황제)의 신임을 얻는다. 호자는 점성술사로 받들어지며 제국의 운명을 예언하는 특권과 그에 따른 위험을 동시에 누리게 된다. 그러나 호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어째서 나는 나이며, 너는 너인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호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에 의문을 품게 되고,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묻는다. 왜 나는 나이며, 너는 너인가를. 그들의 무시무시할 정도로 처절한 자아탐구는 기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장면의 조합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서로의 가장 내밀한 비밀들까지 공유하게 된 그들은 마침내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무렵 이들이 개발한 제국의 신무기는 오히려 제국의 패배를 불러오고, 죽음의 위협을 느낀 두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의 탈주를 감행한다. 그러나 ‘나’와 ‘호자’의 진정한 관계는 소설의 결말에 이를 때까지 베일에 가려진 채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나’이고 ‘호자’는 과연 ‘호자’인가? 아니 ‘내’가 ‘호자’라면 ‘호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영원한 질문, 영원한 미궁, 그리고 영원한 탈주에의 꿈
인간 존재, 그 환상의 성채에서 펼쳐지는 『하얀 성』은 다채롭고도 난해한 패턴의 터키 양탄자와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자신을 소설의 실제 작가라고 소개하는 인물과 필사본 속의 화자가 구분되지 않고, 필사본 속의 화자 ‘나’가 ‘호자’와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독자는 이 소설이 서양(이탈리아인)의 눈으로 본 동양(터키인)을 그리고 있는지 아니면 동양인이 재구성한 서양과 동양의 역할 바꾸기를 그리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허구와 실제, 자아와 타자, 동양과 서양 사이에 가로놓인 수많은 경계를 해체하면서, 그 해체 속에서 새로운 길을 생성시킨다. 그것은 곧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난감함 때문에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하얀 성』은 가장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미난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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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소설들이 가진 매력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집에서 검색했을 때는 도서관에 있었던 책이 꼭 내가 그 다음날 빌리러만 가면 누가 낼름 대출해간 덕분에 당췌 만날 수가 없었다. 내가 읽고 싶어했던 <내 이름은 빨강>보다 이 책이 우선하기때문에 이왕 읽는거 이 책부터 읽는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들의 리뷰나 페이퍼들을 살짝 훔쳐보니 영 리뷰쓰기 난해하다는 반응들이던데. 으음. 과연 어떤 책일까. 아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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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4-07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읽어보고픈 생각은 있는데 선뜻 손을 내밀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좀 독특한가 봐요. 누구나 좋아하기는 조금 힘든 면도 있는 것 같구... 읽으시면 리뷰 쓰세요. ^^

물만두 2006-04-0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봤는데 또 나왔군요~

이매지 2006-04-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 리뷰 쓸께요 ^^
만두님 / 역시 만두님은 보셨군요^^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쿄고쿠 나츠히코에 어울릴법한 제목이다. '기담'이라니. 이 책은 2005년 가을경에 출간된 책이니 제법 빨리 번역되서 나온 셈이다. 사실 이 책보다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나오길 바랬는데 이번에도 물건너갔나보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나= 무라카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고, 재즈를 사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언젠가는하고 기대했던 비장의 일화도 등장한다고. 제목에서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작가는 '나는 오컬트적인 사실과 현상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일과 인생에서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사실을 겸허하게 기술하고 싶다라는 일상에 발을 디디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신뢰를 높이고 있다고. 대개의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농후하게 들어간 이야기들이라고 하는데. 부디 어둠의 저편에서의 실망감을 떨칠 수 있길 바란다.


 아마 최근들어 가장 조명을 받고 있는 고전작가는 연암이 아닐까싶다. 내가 근 몇 년간 연암이 등장하는 책을 읽은게 족히 5~6권은 되지 싶다. 일반적인 인문학 서적에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모습을 보이는 연암. 그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자꾸만 다가오는 걸까. 대개의 책들이 연암의 외형적인 모습. 즉,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책은 연암이 무엇을 괴로워했는지, 무엇을 기뻐했는지, 무엇을 슬퍼했는지, 무엇에 분노했는지 연암의 속에 들어가 그의 마음을 읽어본다. 나와 연암의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과정. 그 짜릿함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음직한 소설 중에 하나가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이다. 지금이야 뭐 영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어린 내게 있어서 그 이야기는 얼마나 꿈같았는지. 이런 저런 사건을 겪는 포그씨를 보면서 어린 내 가슴은 조마조마했었더랬다. 어린시절 날 그렇게 모험의 세계로 인도한 80일간의 세계일주 완역본이 출간됐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지만 양장본이라 그런지, 삽화가 들어있어서인지 가격은 녹록치않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어린 시절에 느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혹은 새롭게 이 작품을 느낄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한참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아주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의사가 등장하는 라는 드라마이다. 진단학과를 배경으로 한 의학 드라마이기때문에 매 에피소드마다 뭔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환자의 병을 진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뭐 물론, 주인공인 하우스 박사가 항상 옳은 길로 인도하지만) 그렇게 이유모를 병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뇌에 문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실어증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맛을 느끼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이유없이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체 뇌란 어떤 기관이길래,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던 찰나 뇌에 관한 두 권의 신간이 눈에 띄었다. 생리학적인 뇌의 어떤 기능보다는 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라 아무래도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신문에 연재되던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즐겨읽었다. 국문학을 전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현대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 현대시를 지도하는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현대시는 내게 기피대상 1호였다.) 하지만 누가 강요해서 공부해야만 하는 한국 현대시보다는 그냥 내 마음이 가는대로 느낄 수 있는 영미시가 더 끌렸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신문에서 소개된 칼럼 가운데 사랑에 관한 시만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예쁜 색채의 그림과 함께 사랑에 관한 시를 읽는 즐거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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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는 풍경
칼 라손 그림 / 이현주 엮음 / 출판사 뜰
 
 




릴라 히트나스
이것이 이 집의 이름입니다.
스웨덴에는 "집은 그 사람의 영혼"이라는 오래된 속담이 전해옵니다.
집이 거기서 산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배어 만들어진다는 뜻이겠지요.
이 책은 릴라 히트나스에서 산 스웨덴 화가 칼 라손과 그의 가족, 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왼쪽에 둘째 딸 브리타를 무동 태우고 있는 멋진 수염을 가진 이가 칼 라손입니다.
오른쪽에 막내 커스티의 손을 잡고 있는 동그란 눈의 여인이 카린입니다.
칼은 릴라 히트나스에서 산 30년 동안
무려 7번이나 집을 늘리고 수없이 집안 내부를 바꿨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일곱이나 태어났고, 화가는 집과 아이들과 아내를 그렸습니다.
 
 



 

첫째 딸 수잔느가 자신의 방을 꾸미고 있습니다.

수잔느는 한손에 붓을 들고, 자신이 그린 꽃과 화환무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카린이 만들어 준 긴 앞치마 모양의 푸른색 작업복은 멋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일 것 같습니다.

 





어느날 저녁, 둘째 폰투스는 식당에서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그래서 거실 구석에서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칼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폰투스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칼은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문 아래쪽에 그려진 한송이 꽃과 카린이 보이나요?
그 위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여자 하나가 칼 라손과 함께 살았다네.
그녀가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여기 살 것이네. 아주 건강하게."
  





남쪽으로 길게 난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수잔느와
테이블 위헤 짜다 만 뜨개질 거리
빛과 함께 하는 고요와 평화가 이 방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마당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브리타와 바느질을 하고 있는 정원에는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이 조용히 머물러 있습니다.
 

 




계절이 오고 갑니다.

봄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동안 여름이 찾아오고

아이들 소리로 와글대는 '와글와글섬'에서는 다이빙 실력을 견줍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오면 추수를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갑니다.

수확철이 끝나면 금새 찾아오는 겨울.

땔감을 준비하고 얼음을 저장하며

크리스마스 이브날엔 이웃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합니다.

 




 

1919년 1월, 칼 라손은 예순 여섯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우리는 그가 누렸던 시간과 행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작은 소녀.

그 소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집 정말 행복해 보이죠?"

 

 

 



 

Carl Larsson - Brita Vid Pianot


 

칼 라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초록색 덮개가 씌어진 피아노를 연주하는 빨간 리본의 소녀.
시선을 압도하는 초록색의 평화가 이 방안에 꼭꼭 눌러 담겨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왠지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고 있을 것만 같았죠.

그런데 좀처럼 이 화가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몇 개 안되는 그림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이 책의 출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125페이지에 담긴 그의 가족과 집에 관한 이야기.
버려진 집을 가족과 함께 꾸미고 만들어가는 그 안의 이야기가 참 따뜻했습니다.
어쩌면 모든 이가 바라는 꿈같은 생활은 이런 생활이 아닐까 하면서 읽었지요.
수채화의 맑은 느낌도 이 가족의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손을 대면 얼룩질 것만 같은 촉촉함이죠.

가정적인 삶, 평화로운 생활.
이것이 인생의 가장 소박한 소망이 아닐까요.
그 소망을 실천하는 릴라 히트나스에 사는 사람들
5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 1899년 칼 라손은 이 집의 풍경을 그린 24장의 그림책 <가정>을 펴냅니다.
그 그림 한 장 한 장은 이후 오늘날까지 스웨덴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를 담고 있는 완벽한 지침으로 자리잡았지요.
스웨덴의 유명한 인테리어 전문점 'IKEA'도 칼 라손의 풍경을 곳곳에서 채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세계적으로 널리 퍼트렸습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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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06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라손의 그림들을 올린 적이 있었었죠^^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도 등장해요^^

이매지 2006-04-0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책에도 칼 라손의 그림이 등장하는군요 ^^

치유 2006-04-0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추천하고 퍼가요...
 

아카시아 파마

이춘희 글 / 윤정주 그림 / 임재해 감수 / 언어세상

 

 

 




엄마는 장에 가고 영남이 혼자 집을 보고 있어요.

영남이는 손거울로 이리저리 햇살을 비추며 장난을 쳤어요.

곧 싫증이 난 영남이는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았어요.

 

 




눈은 좁쌀 눈,

코는 돼지 코,

입은 하마 입,

두 볼엔 주근깨가 다닥다닥.

 

 




마침, 열린 방문 너머로 엄마의 분통이 보였어요.

영남이는 경대 앞에서 뽀얀 분가루를 조심조심 얼굴에 톡톡 두드리고

입술엔 빨간 루즈를 발랐어요.

 

'엄마처럼 파마하면 예쁠까?'

 

영남이는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앞머리를 살살 말아 올렸어요.

치익, 치이익~

머리카락이 타며 누린내를 풍겼어요.

 

 




그때, 옆집 미희가 놀러 왔어요.

영남이의 뽀글거리는 앞머리를 본 미희가 '킥킥' 웃었어요.

 

"이리 와 봐. 내가 아카시아 파마해 줄게."

 

"아카시아 파마?"

 

 



 

"누나, 어디 가?"

 

삽사리와 놀고 있던 영수가 영남이를 따라붙었어요.

 

"따라오지 마."

 

"누나, 엄마 분 몰래 발랐지? 다 이를 거야."

 

영남이는 하는 수 없이 동생을 데려가기로 했어요.

 

 



 

 

 

 



 

미희가 영남이 머리카락을 아카시아 줄기로 말아 올리자

영남이는 머리를 자꾸만 만졌어요.

 

"손님, 가만 있어요. 자꾸 손대면 안 돼요."

 

"따가워요. 살살 해주세요. 근데 파마값은 얼마예요?"

 

"살구 익으면 한 바가지만 주세요."

 

영수도 덩달아 삽사리 털을 아카시아 줄기로 말았어요.

깨앵, 깨갱, 깽!

 

"가만 있어. 사자처럼 멋있게 만들어 줄게."

 

 




파마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영남이 마음은 온통 머리에 가 있었어요.

 

"딱 한 개만 미리 풀어 보면 안 돼요?"

 

"뽀글뽀글 예쁜 머리 만들어야죠. 조금만 더 기다려요."

 

영남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손은 자꾸만 머리로 갔어요.

 

 



 
 
 
 



후둑, 후두둑!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안 돼, 비 맞으면 안 돼!"
 
미희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얼른 영남이 손을 잡아끌며
토란밭으로 뛰어갔어요.
 
 
 



아이들은 커다란 토란 잎사귀로 비를 피했어요.
 
"앙~ 어떡해. 내 파마!"
 
"울지 마, 비 그치면 아카시아 파마 다시 해 줄게."
 
"몰라, 몰라."
 
영남이는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어느덧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말간 얼굴을 드러냈어요.
 
"누나, 저기 무지개 떴다!"
 
영수가 무지개 걸린 하늘을 가리켰어요.
 
"야호~ 아카시아 파마하러 가자."
 
미희의 말에 영남이가 울음을 그치고 벌떡 일어났어요.
 
아이들은 하얀 아카시아 숲을 향해 달려갔어요.
 
 
 
 
 
 
 
 떡, 꼴 따먹기, 싸개싸개 오줌싸개, 고무신 기차, 야광귀신, 쌈닭, 숯 달고 고추 달고,
논고랑 기어가기, 눈 다래끼 팔아요....
그리고 아카시아 파마.
모두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투리 문화들이에요.
이책들은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옛 아이들과 오늘의 아이들을 하나로
이어 주고 있어요.
아카시아 파마는 80년대에 영남이만했을 저에게도 생소한 놀이인데
쉽게 파마하고 염색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정말 동떨어진 이야기일 거예요.
이런 면에서 이 시리즈들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면서 옛날과 오늘날을 비춰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종이질도 고급스럽고 정겨운 그림과 파마값으로 살구 한 바가지만 달라는 소박한 마음들이
너무 예뻐서 그림책 구경하다가 얼른 집어들었어요.
 
실 영남이의 뽀글거리는 머리가 썩 예쁘지는 않아요.
어쩌면 촌스럽다고 핀잔을 받을 만한 머리지만
영남이는 사자처럼 부풀러진 머리 때문에 좁쌀 눈과 돼지 코, 하마입이 보이지 않고
평소와는 다른 곱슬거리는 머리가 신기하기만 한가 봐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닮고 싶은 마음
영남이의 마음이 더 예쁘죠? ^^
 
 
런데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어른의 모양새를 닮고 싶었을까요?
여자 아이라면 한 번쯤은  꼭 해봤을 엄마 화장품 바르기.
머리카락을 종종이 땋아 놓았다가 풀어서 곱슬머리 만들기...
요즘은 문방구에만 가도 천 원짜리 립글로스, 매니큐어 등이 많던데
자신을 꾸밀 수 있는 거리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예뻐야 인정받는다는 게 아이들에게도 점점 당연시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해요.
아이는 아이다운 게 가장 예쁘지 않나요?
적어도 제 눈엔 이국적으로 생긴 아이보다 동양적으로 생기고
머리에 브릿지를 넣고 꼬랑지 머리를 내린 아이보다
순수해보이는 모습들이 좋던데...
 
12월이면 제게도 아이가 생긴답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모습을 갖출지 태어나기 전부터도 궁금해요.
영남이처럼 호기심 많은 여자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얼른 태어나서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읽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 그림책 뒷쪽에는 아카시아 파마를 직접 해볼 수 있는 사진 설명이 있어요.
아카시아 나무 줄기만 있으면 쉽게 따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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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4-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아옥~ 그림이 너무 예뻐요!
나도 책 내면 윤정주화백님께 부탁해야쥐~~(책이 나오기나 할까.....ㅡ.ㅡ;;;)

치유 2006-04-0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해요..그림이 진짜 너무 이뻐요..이것까지도 퍼가요..읽는 것은 저쪽 가서 읽고..ㅋㅋ

치유 2006-04-0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정감있어서 얼른 퍼가기 부터 했어요..엄마 화장품 반품하려고 하셨던걸 표시나게 엄청많이 써버려서 아주 혼났던 기억..우리들의 어린 모습입니다....12월에 아이 엄마라..축하해요..건강하고 이쁜 아이와 만나시길..빌어요..

비로그인 2006-04-0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림도 좋고 내용도 좋고.. 저도 퍼갈게요~ㅎ 12월을 기대할게요~ㅎ

이매지 2006-04-0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 그럼 저도 한권을^^
배꽃님 / 앗앗. 저 아래 써있는 내용도 퍼온데 있었던건데^^;; 전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랍니다 ^^
누렁이님 / 12월을 기대한다니요 ! 어허! ㅋ

비로그인 2006-04-0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지금 보니 정말 퍼오신 거네요~;;;;ㅋ
저는 이매지님이 결혼하셨었구나..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기뻐하며 댓글을 달았다는... =_+;;;;
ㅋㅋㅋ 민망혀라....ㅎ

이매지 2006-04-0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렁이님과 저는 두어살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지 싶습니다 ㅋ
제가 03학번이예요 ㅋ

비로그인 2006-04-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는 04학번입니다...ㅎㅎ;; 성함이 이매지 님 이신가요?
매지언니라고 부를까요..?ㅎ
(아..;; 갑자기 달라붙는.. =_+;; 매지언니라.. 아직은 약간 어색한 호칭이군요.ㅎ)

이매지 2006-04-0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이매지가 아니오나 별명이 매지라 친구들도 매지라고 불러요 ^^;
앞으로 매지언니라고 부르셔요 ^^

비로그인 2006-04-0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넹 매지언니~ㅎㅎ
씨익. ^________________^
 

모네의 정원에서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 / 레나 안데르손 그림 / 김석희 옮김 / 미래사

 

 

 



 
 
 
나는 꽃을 무척 사랑한답니다.
그건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시는 블룸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정원사이셨지만 지금은 은퇴하셨어요.
나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모네에 관한 책을 보는 게 즐거워요.
모네 역시 꽃을 사랑해서 많은 꽃그림을 그렸어요.
책에는 아름다운 모네의 정원 사진도 실려 있어요.
 
"모네의 정원에는 어떻게 갈 수 있죠?"
"우선 파리에 가야 돼."
"파리는 너무 멀잖아요."
"그래, 하지만 갈 수 없는 건 아니야."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파리에 갈 준비를 모두 끝내고 8월에 떠났어요.
수련이 8월에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에스메랄다 호텔'에 묵었어요.
호텔은 작고 낡았지만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 강 근처에 있었어요.
에스메랄다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곱추>에 나오는
집시 여인의 이름을 딴 거예요. 

 



 

 

파리에 온 첫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마르모탕 미술관'에 갔어요.
이 미술관에는 모네의 그림이 많아요.
책에 실린 그림을 보는 것과 '진짜'를 보는 것은 전혀 달랐어요.
우리는 하얀 수련 두 송이가 그려진 그림 앞에 서 있었어요.
나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그랬더니 수련은 물감 얼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내가 다시 뒤로 물러서자, 수련은 연못에 있는 진짜 수련으로 바뀌었어요.
참으로 신기한 마술이었답니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잠시 작은 배가 그려진 그림 앞에 앉아 있었어요.

 "저 배가 아직도 거기에 있을까요?"

"내일 보러 가자꾸나."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생라자르 역에서 열차를 타고 센 강을 따라 달렸어요.
강변을 지나고, 크고 작은 배들과 선착장, 집들,
강둑에 축 늘어진 수양버들과 높이 솟은 포플러 나무들을 지나갔어요.
우리는 베르농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내렸습니다.
역에는 자전거를 빌려 주는 곳이 있어서
'클로드 모네 기념관'이 있는 지베르니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었어요.

  




 

마침내 우리는 도착했어요!
정원에는 크고 많은 꽃들이 즐비했어요.
할아버지와 나는 경치를 구경해야 할지, 아니면 사진을 찍어야 할지
결정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졸졸 따라왔어요.
나는 모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뒷계단에 나와 앉았어요.
나는 집에 보낼 그림 엽서에다 이렇게 썼어요.

 

"우리는 이곳에 앉아서 모네 가족을 흉내내고 있답니다.
정원은 너무너무 멋있어요.
이제 우리는 수련 연못을 보러 갈 거예요."

  



 

 

"할아버지, 저것 좀 보세요! 저기 일본식 다리가 있어요!"
마침내 다리 위에 섰을 때, 나는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답니다.

 "연못 저편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다리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째서지?"

"이 다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상'을 얻기 위해서예요. 모네처럼요."

 하지만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쯤, 내 인상은 모두 사라졌어요.
하지만 모네는 인상을 붙잡는 '훈련'을 쌓았어요.
모네는 날마다 다리를 주의깊게 관찰해서 그렸는데
똑같은 그림은 한 장도 없었어요.

 




 

나는 여러 각도에서 연못 사진을 찍었어요.
내가 수련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면,
블룸 할아버지는 내가 연못에 빠질까 봐 가슴을 졸였지요.

 




 우리는 모네의 정원으로 흘러드는 뤼 강 어귀에서 도시락을 풀었어요.
오는 길에 사온 염소치즈와 고기파이, 사이다도 좋았고
특히 바게트 빵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이 있었어요.
점심을 먹은 다음, 나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어요.

파리를 떠나는 날, 블룸 할아버지가 여섯 시에 나를 깨웠어요.

 "지금 당장 일어나면, 멋진 걸 한 가지 더 볼 수 있을 게다."

"정말요? 그게 뭔데요?"

"센 강의 해돋이 장면."

"저는 졸리니까 할아버지 혼자 가세요."

 

하지만 나는 결국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갔어요.
우리는 첫 햇살을 보며 모네가 그린 해돋이 그림을 떠올렸어요.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여행이 끝났어도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나는 게시판에 파리 여행에서 가져온 그림 엽서, 입장권과 차표,
비둘기 깃털 한 개와 모네의 정원에서 만난 모네의 의붓 증손 사진을 핀으로 꽂아 놓았어요.
이제는 내가 파리와 모네의 정원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에펠탑은 어땠니?"하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에펠탑은 볼 시간이 없었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봐야 했거든."

  

 

 

모네의 그림 좋아하세요?
저에게 모네는 그림을 보는 눈과 마음을 열어 준 화가랍니다.
모네의 그림을 통해 다른 그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제게는 그림 선생님이나 다름없죠.
이 책은 모네의 정원과 관련된 책들을 찾다가 알게 되었어요.
주인공 리네아가 일본식 다리 위에서 기뻐하는 모습의 표지에 단번에 마음이 사로잡혔어요.
언젠가 저 자리에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꾸는 것도 좋았어요.
그 언젠가가 온다면 저도 리네아처럼 유명한 에펠탑보다는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아를에 있는 고흐의 방에,
슈와젤에 있는 미셸 투르니에의 집을 보러 갈 거예요.

 이 책의 주인공 리네아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소녀를 모델로 했어요.
검은색 머리의 동양적인 얼굴만 봐서는 한국에서 파리로 떠나는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블룸 할아버지가 이름도 얼굴도 한국 사람같지 않아서 헷갈리셨을 거예요.
리네아는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레나 안데르손의 실제 딸이라는데
입양한 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 걸 보면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단순히 모네의 정원을 다녀오는 여행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모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어요.
페이퍼에 소개하는 글은 정말 극히 일부분의 글들이에요.
그러니 글을 읽을 줄 아는 나이대의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또 모네와 관련된 사진들도 많이 실려 있기 때문에 '작은 모네 안내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랍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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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05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뻐요. 갖고 싶어하는 책이군요

치유 2006-04-05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요..제 책방에좀 옮길께요..너무 맘에 들어요..

치유 2006-04-05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주고 싶네요..아이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니 도움이 될듯 싶군요..그냥 내가 보고 싶기도 하구요..침대에 앉아서 여행끝에 정리하는 추억이 너무 이쁨니다..

이매지 2006-04-0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어릴 때 저런 책들을 못보고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마냥 좋아요^^
배꽃님 / 앗 처음 뵙겠습니다 ^^ 아이와 함께 그림을 즐겨보아요^^

stella.K 2006-04-0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

해적오리 2006-04-0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예뻐요. 퍼갑니다.

프레이야 2006-04-05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네의 정원에서>를 만난 건 벌써 6년 전이네요.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렇게 그림과 함께 엮어놓으니 더 예쁘네요. 가져갈게요. 감사~~

비자림 2006-04-0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은 연못을 들여다보는 느낌. 그림 예뻐서 살짝 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