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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
이은희 지음 / 해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이 저자의 책은 나오는 대로 다 구해서 읽는다. 지금까지 나온 책 중 안 읽은 것은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이 한권. 내가 미드를 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과 요원한 과학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느끼고 숨쉬듯이 가까이 있는 과학. 주로 인체, 질병, 유전 등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을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른 책 리뷰에서도 여러 번 감탄하며 언급한 적 있다.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즐겨 보는 인터넷 과학 신문 사이언스 타임즈를 운영하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또다른 인터넷 사이트 '사이언스올'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았다는데 인체 생리, 질병, 유전, 의약 관련 상식을 일반인으로서 필요한 만큼 잘도 요약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혹, 이쪽 계통을 전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음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빨리, 책장을 휙휙 넘기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세가지 주범은 무엇인가?
2. 말라리아가 아프리카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3. 환경호르몬은 진짜 '호르몬'인가?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4. 광우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은 뇌, 척수 속에 분포하는 단백질이다. 먹은 것은 위, 소장, 대장 등의 소화 기관을 거쳐갈텐데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은 사람이 이 병에 걸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5. CJD와 vCJD의 차이는 무엇일까?
6. 바이러스는 암을 '일으키는' 쪽인가, '치료하는' 쪽인가?
7. 인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신경 세포는 재생이 불가능한가?
8.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은 혈액내 포도당 레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액 내 포도당 레벨은 왜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가?
9. 아토피 피부염, 천식, 비염, 류머티즘의 공통점은? (실제로 내 아이가 아기였을 때 아토피때문에 한의원을 찾았을 때 의사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천식이 생기고, 비염도 생길 것이라고.)
10. 항체에 의한 면역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활성화된 세균이나 바이러스 전체가 다 필요한가?
11. 가끔 예방 접종때문에 병원에 가면 '생백신'. 혹은 '사백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백신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12. 소독과 멸균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보통 상처 소독에 쓰이는 '빨간약'은 포비돈-요오드 용액이다. 요오드가 어떻게 상처 소독에 관여하는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것이 궁금한 적이 있어 의약 계통에 종사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아무에게도 답을 듣지 못했다.)
13. 해열제로 가장 흔히 쓰이는 약 삼총사, 아스피린, 타이레놀, 부루펜은 모두 같은 종류의 약일까? 다르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사람들이 주의해야 하는가? (영국에 가서 타이레놀 얘기를 했더니 타이레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마지막 장의 '유전자 치료의 의미와 과정'에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유전자 치료라든지 줄기 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대해 긍정적인 쪽으로 몰아서 얘기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얘기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필요성, 그 분야의 치료법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럴 때 있을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예시를 든다. 내가 이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적절한 비유를 참으로 잘 찾아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호르몬과 호르몬 분비 기관, 작용 기관을 휴대폰의 문자, 문자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에 비유한 것, 이때 환경호르몬은 불법스팸문자에 비유한 것이라든지, 미토콘드리아를 에너지 충전소, ATP를 휴대폰 밧데리로 비유한 것 등, 이런 것들이 이 글을 쓰면서 그냥 저절로 생각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책에는 특히 각 장마다 화가들의 그림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케테 콜비츠의 <어린이병원 방문>,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집트의 재앙: 역병>, 반 고흐의 <아를시의 병원> 등을 이런 책에서 만나는 느낌이 색달랐다.
의학이 발전되어 가면 갈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과 예상 못하던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것이 특히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과학을 하는 사람의 묵묵한 철학이 아닐까.
소설보다, 아니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게, 그리고 뿌듯하게 읽은 과학책이었다. 저자의 다음책이 또 기다려진다고, 전혀 과장 없이 말할 수 있겠다.
* 1. 표지와 제목이 저보다 훨씬 더 좋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은 좀 아쉽다.
* 2. 154쪽, 184쪽, 210쪽의 오자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신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