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별 것 아닌 곳에 지원서 한장 작성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지원서 항목중 '연구 경력' 란엔 최근 3년 이내 경력'만' 기재하란다. 즉 2007년 1월 1일 부터 현재까지의 발표 논문 목록을 쓰라는 얘기인데, 뭐 으례 그래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긴 하지만, '경력단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이 살다보면 한가지 경력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인데, 결혼한 여자의 육아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 3년 이내 경력만 경력인가요? 그 이전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경력은 볼 가치도 없으신가요?
다른 경력도 아니고 연구 경력이란, 틈틈히 시간날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밤샘도 각오하고 몇달, 혹은 1년 이상 한가지 연구에 매달려 겨우 괜찮은 곳에 논문 한편 내어 쌓이는 것이 그 연구 경력이라는 것인데, 나 처럼 사정상 2006년 이후로 연구실을 떠난 사람에게는 최근 3년 이내 실적만 적으라는 그 란은 고스란히 공란으로 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난 3년 동안 쉬지도 않았는데.
융통성있는 행정, 이 길이 막히면 돌아서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하나마나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다음은 사이언스 타임즈 2010년 11월 23일자에서 발췌한 내용-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회의에서 ‘세계 중심 국가를 향한 인재 육성 방안’에 대해 건의했다.

자문회의는 초중고교의 암기 위주의 교육 과정 내용을 20% 줄이고 대신 창의성을 키워주는 심화학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한 문, 이과의 장벽을 제거한 학문간의 융합적 사고를 키워주는 융합교육을 강화하고 글쓰기와 말하기 등의 언어교육을 개편하는 한편, 교원의 복수 과목의 자격 취득을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와 함께 자문회의는 대통령 장학금 제도와 여성 과학자의 파트타임 정규직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지난 2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분석한 결과 30대의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48%에 이른 다는 것을 근거로 20, 30대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석박사 학위 취득 후 5년간 일자리와 연구비를 제공하는 대통령 장학금 신설 방안을 건의한 것이다.

자문회의는 “대학과 연구소가 박사 후 과정(post doctorate) 인력에 자리를 제공하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5년간 지원한다면 1개의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능한 과학자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유망 과학자의 연구가 사장되지 않고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날 보고에서는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근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여성 비율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의 이공계 여성 박사 취업자 가운데 36.3%가 비정규직으로 여성과학자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문회의는 여성 과학자를 위해 대학과 연구소 등에 ‘파트타임 정규직’을 도입하여 여성 과학자가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우수한 인력은 전일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장학금 제도와 여성 과학자의 파트타임 정규직 제도는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혀 두 제도가 곧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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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1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군요! 그 칸은 할수없이 비워놓고 대신 '잠시 떠나보니 역시 연구가 천직인 것 같아서요' 그러셔요. ㅎㅎ

hnine 2011-01-19 12:07   좋아요 0 | URL
manci님, 새로운 도전이랄 것도 없는 자리랍니다. 연구직도 아니어요. 저런 지원서 없이 마구잡이로 끌어다 쓰더니, 이젠 저런 지원서 형식이 갑자기 필요하다네요 ^^
'연구? 나도 연구 싫소!' --> 저는 이러는 타입인데~ ㅋㅋ

깐따삐야 2011-01-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적힌 대로 우선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애 낳으라고 하던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hnine 2011-01-19 15:24   좋아요 0 | URL
일과 가정 양립이 자신없었던 저 같은 사람이 당분간이라며 잠시 일을 손에 놓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끝까지 두가지 다 손에서 못놓고 일을 하느라 워킹맘들과 그의 아이들은 고달픈 것이고...딜레마 맞지요?

섬사이 2011-01-1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여자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죠.
허, 그것 참.... -.-;;

hnine 2011-01-19 15:21   좋아요 0 | URL
처음 겪고 보는 일 아니면서 그냥 오늘 아침에 새삼 울적하여 끄적거렸습니다.
3년보다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은 다 어디로? 이러면서 다 다시 집어넣고 지원서는 빈칸으로 내려니 마음이 휑 하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1-01-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언니, 절대 추천이염!!!
그리고 몸에 쌓인 경험이란게 무시할 수 없는데, 3년 이내 라니요! 불끈!!!
사람은 무의식 중으로, 되새기는 경향이 있어서 모르는 사이에 발전한다고 하던데요.
뽑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군요!!!

여하튼... ^^, 하고자 하시는 일,,, 잘 되시기 바랍니다~~~

hnine 2011-01-20 08:10   좋아요 0 | URL
경력단절 기간 없이, 한분야에서 계속 일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뭐, 다 살 방법이야 있겠지요. 단절된 경력을 요구하는 곳에는 못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을 찾아다녀요.
격려 고맙습니다. ^^

세실 2011-01-20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딜레마 맞아요....다행히 아이들은 잘 커주었네요.
3년이내 경력이 없어도 빈칸보다는 그동안의 경력을 적으면 어떨까요? ㅋ
제가 하는 스타일입니다.

hnine 2011-01-20 08:14   좋아요 0 | URL
어제 남편도 같은 말을 했어요. 3년 이내 경력 아니더라도 그냥 그 전의 경력으로 채워넣지 그랬냐고.^^
연구 경력란에는 적을 것이 없고 그래도 다른 난에는 좀 적을 것이 있어서 그나마 위로 삼았습니다.
그래도 전 지난 3년,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각해요. 에이, 그러면 되었지? 저 자신에게 그렇게 다독이고 있답니다. ^^

울보 2011-01-2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참 불공평하지요,
여자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두 잘하기를 원하고 가정에 충실하고자 잠시 쉬고 나면,,
돌아오는것은,,일을 하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으면 좀 마음이 그럴때가 많아요,,
그리고 종종 아이가 커가면서 집에만 안주하고 있는 저자신을 생각하면 좀 쓸쓸해지면서 난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3년 길면 긴시간 짧으면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은 일을 했는데 그렇지요,,

hnine 2011-01-20 17:45   좋아요 0 | URL
류가 커가면서 지금까지 보다는 울보님 시간이 많이 생길텐데 지금부터 울보님의 일을 잘 찾아보시고 준비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잘 하실 수 있는 일이 꼭 있을 거예요. 그럴거라 믿어요.

반딧불이 2011-01-2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파업'이라는 용어를 보면 여성의 생산능력을 직업으로 보는 것인데 이런것을 인정해주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죠. 용어선택을 잘하던지 정책수립을 잘하던지 해야하는데 어느쪽도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 없는것 같아요.

hnine 2011-01-20 17:49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왜 유독 이런 분야에서는 발전이 없을까요? 위에 인용한 기사대로라도 좀 바뀔지,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우리의 자식 세대쯤 가면 좀 나아질까요?
 

 
작 업 

 

양력 1월 14일
오늘은 내가 죽은 날
꽉 찬 보따리가 나를 짓눌러
죽기로 한날
눈물과 한탄
비겁과 미움
우물 쭈물 얼렁 뚱땅에
어느새 그 큰 보따리가
미어터지고 있었네
그 보따리를 미련없이
깨끗이 비우기로
다 쏟아버리기로
오늘은 내가 죽은 날 


비워진 보따리를
다시 채워갈
내일 나는 태어나는 날
행여 보따리에
티끌 하나 남아 있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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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참 좋네요.
그런데 사진은 h님 육필 원고인가요? 소설?
깎아지른 연필하며.
뭐라고 쓰신 건가요? 유서도 보이고, 외롬도 보이고, 음악도 보이고...
왠지 밝은 글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궁금해요.

hnine 2011-01-16 12:14   좋아요 0 | URL
아침에 심심해서 성미정 시인과 안현미 시인의 시를 행 구분 없이 쭉 베껴쓰고 있었어요. 말씀하신 단어들은 안현미 시인의 시 일부일거예요.
위에 끄적거린 것은 제가 썼고요...^^

프레이야 2011-01-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기분이 이상해져요, 나인님.
날마다 나를 죽이고 날마다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hnine 2011-01-16 12:15   좋아요 0 | URL
새로 태어나기 위한 죽음. 즉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죽을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요...버텨내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지요.

비로그인 2011-01-1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지금 막 뭔가를 적으며 휴일의 저녁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직접 쓰신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와 글자 모두 직접 쓰신 거군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을까요? 저는 지금 라디오 들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편안히 시간이 가는게 좋습니다. 아 조금 이따가는 잠시 밖이 얼마나 추울까 잠깐 산책을 좀 하려고요.

손글씨.. 다른 분의 손글씨 보니 왠지 더 정겨운 음악, 정겨운 저녁시간입니다. ㅎ

hnine 2011-01-17 07:25   좋아요 0 | URL
추운 날, 저녁 산책 잘 하셨는지요?
밖으로 나설 때 느껴지는 찬공기가 쨍~하고 머리를 탁 트이게 할 때가 있지요.
전 지금 막 남편과 아이 배웅을 하고 들어왔는데 추운 공기 속으로 나서는 가족들을 보며 혼자 다시 따뜻한 집안으로 돌아들어오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손글씨 저는 종종 써요. 글씨를 쓰는 동작 자체가 좋지 않나요? 바람결님도 웬지 그러실 것 같은데...^^
오늘도 좋은 출발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루체오페르 2011-01-17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정말 좋습니다~!
간디의 말도 생각나네요.

'나는 매일 잠이 들때 죽고, 다음 날 깨어날때 다시 태어난다'

hnine 2011-01-17 07:38   좋아요 0 | URL
간디 옹의 그런 말씀도 있었군요. 제가 저 글을 끄적거릴 때 바로 그 마음이었어요.
살다 보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살만한 순간이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 말이지요.
공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sslmo 2011-01-17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어렵지만, 멋져요.

사각사각, 연필로 글씨쓰는 소리가 제게도 들리는 것 같아요.
전 샤프를 주로 사용하는데 말예요.
글씨도 동글납작하니 정겨워요~^^

hnine 2011-01-17 07:36   좋아요 0 | URL
어려운 시 아니어요, 그냥 글에 있는 그대로인걸요.
연필로 뭔가를 쓸때, 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쓴다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때가 있어서, 늘 마음이 울렁울렁 파도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좋은 것 같아요.
제 글씨, 동글납작~ 주인 닮았답니다. ^^

하늘바람 2011-01-1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참 예쁘네요
전 글씨가 아주 엉망인데.
니 페이퍼를 읽으며 아침부터 반성합니다

hnine 2011-01-17 10:55   좋아요 0 | URL
급하게 하는 메모가 아니라서 좀 여유있게, 또박또박 썼어요.
하늘바람님 글씨 엉망 아니던데요?? ^^

세실 2011-01-1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나는 태어나는 날....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날. 그 맘으로 살아가면 좀 더 열심히 살아 가겠죠...... 비움. 저도 필요해요.

hnine 2011-01-17 10:57   좋아요 0 | URL
예, 바로 그런 마음이었어요. 비워내고 다시 채우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요.
오늘도 무척 추운 날이네요. 조금 후에 따뜻한 점심 드세요~

마녀고양이 2011-01-1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곡하게 쓰인 글씨와 정갈하게 깍인 연필이 참 좋아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아아, 요즘은 너무 추워서 만사가 심드렁한가봐요. ㅠ

hnine 2011-01-17 18:51   좋아요 0 | URL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이 돋는 것 역지 다시 태어남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은 이렇게 춥지만 곧 봄이 오겠지요?
내일 모레부터는 날이 좀 풀린다는데, 며칠만 잘 견뎌보기로해요.

차좋아 2011-01-17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 나무 향내 나는 연필 냄새가 그리어지는 사진입니다. 심이 부러지고 까맣게 손때 탄 제 연필을 깍아야겠어요. 그리고 깍은 연필로... 연필로... 뭐하지?

hnine 2011-01-17 18:55   좋아요 0 | URL
연필을 기계로 깎았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깎을 때 나는 냄새는 맡지 못했네요 ㅋㅋ
볼펜으로는 글씨를 별 생각없이 흘려쓰게 되는데 저렇게 깎은 연필로는 그렇게 안되더라고요. 연필을 잘 깎은 후에 아이에게 쥐어주고 아빠 얼굴 한번 그려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

잘잘라 2011-01-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한 주간 시작부터 울그락불그락 이씨신발 저씨신발 찾다가 님의 글을 읽으니 푸르르르(바람빠져나가는 소리^^;;).. 다행이네요. 화난 거, 속상한 거, 오늘로 끝내버려야지. 내을 다시 시~작. 덕분에 다시 힘내고 갑니다~~~

hnine 2011-01-18 08:15   좋아요 0 | URL
하하...이씨신발, 저씨신발~
오늘, 좋은 시작 하시길!
 

 

예전에 로드무비님 서재에서 보고 찜해두었다가 이제서야 구해 읽게 된 동시집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시인들 동시 모음집, 문학사상사 

번역가이면서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 대표로 있는 최윤정님이 우리 시인들의 동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도 있지만 이 책에서 처음 보는 시들도 꽤 여러 편 실려 있었다. 생존 작가도 있고 윤 동주, 천 상병, 김 수영 처럼 고인이 된 작가도 있고.
동심은 곧 시심, 즉 아이들의 마음은 곧 시의 마음이라는 엮은이의 생각에 동의한다. 이렇게 다 커서 그 마음을 다시 발견해가는 느낌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동시를 좋아한다는 아이가 별로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와서 동시집을 많이 찾아 읽어보고 알았단다.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재미없는 동시들이 많더라는 걸. 여기에 실린 동시들은 엮은이가 그래서 나름대로 아이들 마음이 들어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골라 본 것인데 몇몇 아이들에게 읽혀 보았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그 중의 어떤 아이는 "내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다니.
실린 시들도 좋았지만 책 앞의 서문과 뒤의 글도 좋다. 실린 시들 중 '주먹 두개 갑북갑북' 하는 윤 동주 시인의 <호주머니>라는 시는,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많이 읽어주던 시라서 오랜만에 다시 보니 새로왔다. 아이에게 지금 다시 읽어주며 생각나는지 물었더니 생각 난다고 하며 웃는다. 

 

'더작가'라는 모임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을 말한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들이 해직되는 모습을 보고 2008년 12월에 첫 모임을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이 모임의 취지는 무엇이겠는가?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 작가들이 모여서 작년 말 한권의 책을 내었다. 

<박 순미 미용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작품집, 한겨레아이들  

여덟명의 작가의 단편이 실려있다. 옛이야기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의 모습에 불만을 가진 호랑이가 어린이책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의 강 무지 글 '동물원에서 온 편지', 세계길거리 음악 축제 마당에서 쫓겨 나는 노점상 할머니를 그린 김 남중 작가의 '눈물은 싫어요', 주제가 좀 애매 모호하게 그려져 있어서 읽는 아이들이 작가의 의도를 잘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과 후 학습도 사교육의 일종이라며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반대한다는 내용의 김 하늘 작 '겁 없는 민주주의'는 좋은 취지로 진행되고 있는 방과 후 학습이 있다면 이 글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염려도 있을 것 같다. 김 해원 작가의 '연극이 끝나면'는 주제도 좋고 구성도 좋고 문체도 좋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문제를 그렸는데 내 아이에게도 꼭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 글이었다. 박 효미 작가의 '박 순미 미용실'은 아버지 없이 혼자서 미용실을 꾸려 나가며 딸을 키우는 엄마. 재개발로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릴 위기에 놓이자,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 재개발이라고 생각한 주인공 아이는 직접 나서서 동네 청소를 한다. 그러면 재개발로 쫓겨 나지 않게 될거라 믿고. 이 글도 좋았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 일제 시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흔치 않은 소재로 쓴 안 미란 작가의 '돌 계단 위의 꽃잎', 환경 보호 단체와 지역 주민 사이의 갈등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 최나미 작가의 '그 여름의 천국, 그 여름의 유배지'도 잘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염소와 함께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결말이 아이들로 하여금 좀 황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긴 하지만.
여기엔 만화도 한편 실려 있는데 최덕규 작가의 '쪽방 할아버지'가 그것이다.
좋은 의도로 기획되었고, 실려진 글들도 다 읽어볼 만 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되는데, 정작 아이들은 어떻게 읽을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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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1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순미 미용실 제목이 참 정감가네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공감이 갈 책.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저도 궁금해요.

hnine 2011-01-15 21:51   좋아요 0 | URL
초등고학년 이상 정도되면 이해할 듯 싶어요. '평화'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쓰여진 책이라서, 읽은 후 함께 얘기 거리가 많을 듯 합니다. '박 순미 미용실' 이라는 제목이 특이하지요? 여덟 편 글 중 특히 더 좋았던 하나였어요.

프레이야 2011-01-1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도 참 좋아하는 시집이에요.
최윤정님의 안목도 미덥구요.
박순미 미용실, 호감가는 동시집이네요.
제목도 참 수수하니 좋아요.^^

hnine 2011-01-15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검색하다가 프레이야님 리뷰를 읽은 것 같아요. 제가 이 시집을 뒤늦게 발견했지요. 최 윤정님은 어린이문학계에서 소신있으면서 안목있는 분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시더군요.
박 순미 미용실은 동시집은 아니고 여덟 명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인데 제목은 수수하고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지요.

프레이야 2011-01-15 22:5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새 이래요ㅠ
단편집이라고 친다는 게 손은 동시집으로..ㅎㅎ

hnine 2011-01-15 23:19   좋아요 0 | URL
그러신 줄 알고 있었어요 ^^

순오기 2011-01-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유은실 작가 강연 뒤풀이에서 '더 작가'모임 이야기를 들었어요.
젊은 작가들이 광주대 배봉기 교수를 고문으로 추대하려고 애썼던 이야기와 당면문제들~
유은실 작가는 방학중 무료급식 예산 삭감에 충격받아, 애들한테 밥도 못 먹이고 배를 곯리는 나라가 OECD 운운하는 것도 부끄럽고...이런 상황에 작가들이 글이나 쓴다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절망스럽다고 하더군요...ㅜㅜ

hnine 2011-01-15 21:58   좋아요 0 | URL
아, 유은실 작가 강연 뒤풀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군요. 어린이들에게 언제까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위의 책은 펴낸 취지도 좋고, 그런 모임이 모임으로만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어 더 좋은 것 같네요. 인세의 일부는 평화박물관 기금으로 사용한다는군요. 글로써도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겠지요.

2011-01-15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5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긋나게 흘러가는 현실과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생각, 그리고 그것에 대한 표현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작가가 아니어도 그러해야겠지만 최근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지식인들의 친일적인 행동을 살펴보면서 그런 현실인식과 표현이 왜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hnine 2011-01-15 22:0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어린이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다른 사람들이 읽을 것을 전제로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특히 명심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영어 제목은 Collection of essays 라고 되어 있다. 우리 나라 제목처럼 역시 튀지 않는 제목, 하루키의 짧은 신변잡기 모음집이다. 대부분의 글 한 꼭지가 기껏해야 두 페이지 정도이니 깊은 내용이 들어있다기 보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의 한 단면을 얘기하며 하루키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소설로 알 수 없는 이것 저것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이 처음 일본에서 출판된 것이 1980년대이니 하루키가 30대 중반일때. 지금과 어느 정도는 다른 점도 있고 여전히 같은 점도 있을 것이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다보니 이전에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을 때보다 하루키의 성격이 더 잘 엿보인다. 그는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괴짜'아니였을까? 그의 소설들을 볼때 괴짜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건 그저 짐작이었고 이 책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요 라고 하루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맥주와 두부를 좋아하는데 두부는 프랑스 가정에서 갓 구운 빵을 사다가 그날 다 먹는 것 처럼 (결코 미리 만들어 놓은 빵을 사다 먹지 않는단다) 그날 만든 것을 사다가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맛이라는 등, '두부에 대한 미학'이란 제목까지 붙여 글을 쓴 것이 있다. 이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 리셋 (reset)하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좋아서란다. 결혼식장을 일종의 공장으로 비유한 것도 하루키다운데 그가 취재한 어느 예비 부부의 결혼식 예약 과정이 어쩌면 우리 나라와 그렇게 비슷한지.
아무도 줄을 서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당황스러움때문에 사인회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소심함도 있고 (아직도 그럴까?), 대학 1학년 첫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매일 일기는 쓰지 않지만 일지는 쓴다는 것, 금연을 '취미'로 하고 있는 그의 요령, '나는 이런 신조로 글을 쓴다' 에서는 결코 자기 글에 대한 비평에 대해 다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교통 파업이 즐겁다'란 제목의 글에서는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그에게 갑자기 한 두시간 기차가 멈춰 서게 되어 그동안 천천히 책을 읽으며 맥주를 즐길 수 있었던 추억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획을 세워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하나하나 지워가며 일하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아니 대개는 그렇게 일 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이런 우연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을 꽤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책을 한권만 가지고 무인도에 간다면' 이란 질문을 우리도 곧잘 하곤 한다. 그때  뭐라고들 답을 하던가? 하루키는 자기가 지금까지 쓴 원고를 들고 가서 계속 수정을 하고 싶단다. 그게 허락이 안된다면 사전을 들고 가고 싶단다. 사전이 얼마나 재미있는 볼거리인가 설파하면서.
다른 사람 인터뷰를 직접 해보기도 하고 자신이 인터뷰를 많이 받아보기도 했는데 자기는 무슨 질문을 받아도 그리 쉽사리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 놓지 않는다면서 60퍼센트 정도가 솔직한 이야기, 40퍼센트는 자기 방어적인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세가지는 몇시에 일어나서 몇시에 자는가, 필기도구는 어떤 걸 쓰고 있는가, 부인과는 어디서 알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이라는데 이런 것들을 알아서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모두가 물어 보는 것을 보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모양이라고, 역시 마지막 줄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금방 사귀고 말을 잘 하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하루키라지만 그는 글로 풀어내는 수다만큼은 타고 난 사람이 분명하다. 작가가 되어야만 했을 사람. 읽다 보면 굳이 어느 나라 출신 작가라는 것이 의식 되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그의 글들.
하루키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한번 가볍게 읽어 볼만 하다. 우리 나라에서 이 책은 1997년에 처음 나왔는데 검색하다보니 그 표지가 정말 볼만하다. 위의 책은 그 후 2010년에 다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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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겠습니다.
저는 작년에 1q84 전권을 사고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뭐 워낙에 다른 책에 채여서 아직 완독을 못한다고 봐야하지만
점점 뒤로 미뤄지는 걸 보면 저에게 있어 하루키는 역시 다시 바짝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싶기도 하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전에 하루키 단편집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러지 않을까? 끌리네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신 거죠? 넘 추워요.
이제 좀 봄은 아니어도 추위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데 얼마 안 남았겠죠?ㅠㅠ

hnine 2011-01-15 22:04   좋아요 0 | URL
이 세상 일을 심각한 눈으로만 보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1Q84는 저도 아직 못 읽었는데 이런 가벼운 에세이로 시작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요. 저도 이 책 읽고 뒤늦게 1Q84를 한번 읽어볼까, 없던 관심이 생겼으니까요.
오늘 춥다는 말 듣고 얼마나 꽁꽁 싸매고 다녔는지, 지하철 기다리면서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니 마치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같았어요 ㅋㅋ 내일도 춥다던데 다른데 안가고 아이 데리고 영화나 보러 다녀올까 해요.

마녀고양이 2011-01-1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참 좋아해요.
하루키의 에세이를 워낙 좋아하죠. 그의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리고 그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답니다. 아하하.

좋은 주말되셔요,, ^^

hnine 2011-01-15 22:0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이책 읽으셨군요.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분들도 꽤 계시더라고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책, 하루키의 매력일까요? 저도 '달리기를 말할 때~' 그 책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1-01-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 리셋 (reset)하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어서라니 저도 참고로 해야겠군요.

구판 표지가 볼만하다고 하시길래 궁금해서 찾아봤지요. 푸하핫~

hnine 2011-01-16 12:16   좋아요 0 | URL
구판은 이미 절판되었는데 혹시 구판 중고책 가격도 보셨어요? 후덜덜...

루체오페르 2011-01-17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추천 감사드려요^^

hnine 2011-01-17 07:37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하루키 좋아하세요? 그 아저씨 수다 한번 재미있게 들어보고 싶으시면 저 책 딱 입니다~ ^^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
이은희 지음 / 해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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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의 책은 나오는 대로 다 구해서 읽는다. 지금까지 나온 책 중 안 읽은 것은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이 한권. 내가 미드를 본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과 요원한 과학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느끼고 숨쉬듯이 가까이 있는 과학. 주로 인체, 질병, 유전 등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을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른 책 리뷰에서도 여러 번 감탄하며 언급한 적 있다.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즐겨 보는 인터넷 과학 신문 사이언스 타임즈를 운영하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또다른 인터넷 사이트 '사이언스올'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았다는데 인체 생리, 질병, 유전, 의약 관련 상식을 일반인으로서 필요한 만큼 잘도 요약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혹, 이쪽 계통을 전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음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빨리, 책장을 휙휙 넘기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 사람에게 을 일으키는 세가지 주범은 무엇인가?
2. 말라리아가 아프리카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3. 환경호르몬은 진짜 '호르몬'인가?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4. 광우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은 뇌, 척수 속에 분포하는 단백질이다. 먹은 것은 위, 소장, 대장 등의 소화 기관을 거쳐갈텐데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은 사람이 이 병에 걸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5. CJD와 vCJD의 차이는 무엇일까?
6. 바이러스는 암을 '일으키는' 쪽인가, '치료하는' 쪽인가?
7. 인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신경 세포는 재생이 불가능한가?
8.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은 혈액내 포도당 레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액 내 포도당 레벨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가?
9. 아토피 피부염, 천식, 비염, 류머티즘의 공통점은? (실제로 내 아이가 아기였을 때 아토피때문에 한의원을 찾았을 때 의사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천식이 생기고, 비염도 생길 것이라고.)
10. 항체에 의한 면역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활성화된 세균이나 바이러스 전체가 다 필요한가?
11. 가끔 예방 접종때문에 병원에 가면 '생백신'. 혹은 '사백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백신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12. 소독멸균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보통 상처 소독에 쓰이는 '빨간약'은 포비돈-요오드 용액이다. 요오드가 어떻게 상처 소독에 관여하는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것이 궁금한 적이 있어 의약 계통에 종사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아무에게도 답을 듣지 못했다.)
13. 해열제로 가장 흔히 쓰이는 약 삼총사, 아스피린, 타이레놀, 부루펜은 모두 같은 종류의 약일까? 다르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사람들이 주의해야 하는가? (영국에 가서 타이레놀 얘기를 했더니 타이레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마지막 장의 '유전자 치료의 의미와 과정'에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유전자 치료라든지 줄기 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대해 긍정적인 쪽으로 몰아서 얘기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얘기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인 필요성, 그 분야의 치료법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럴 때 있을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예시를 든다. 내가 이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적절한 비유를 참으로 잘 찾아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호르몬과 호르몬 분비 기관, 작용 기관을 휴대폰의 문자, 문자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에 비유한 것, 이때 환경호르몬은 불법스팸문자에 비유한 것이라든지, 미토콘드리아를 에너지 충전소, ATP를 휴대폰 밧데리로 비유한 것 등, 이런 것들이 이 글을 쓰면서 그냥 저절로 생각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책에는 특히 각 장마다 화가들의 그림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케테 콜비츠의 <어린이병원 방문>,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집트의 재앙: 역병>, 반 고흐의 <아를시의 병원> 등을 이런 책에서 만나는 느낌이 색달랐다.
의학이 발전되어 가면 갈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과 예상 못하던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것이 특히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과학을 하는 사람의 묵묵한 철학이 아닐까.
소설보다, 아니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게, 그리고 뿌듯하게 읽은 과학책이었다. 저자의 다음책이 또 기다려진다고, 전혀 과장 없이 말할 수 있겠다. 

* 1. 표지와 제목이 저보다 훨씬 더 좋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은 좀 아쉽다.  
* 2. 154쪽, 184쪽, 210쪽의 오자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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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1-01-1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려요.^^* 잘 지내시지요?
아이들이 방학중이니 서재놀이도 거의 불가능해요.
이젠 너무 늦어서 새해인사도 못하겠어요.ㅎㅎ
저도 하리하라~~~ 몇 권 보았는데, 이 책도 보고싶어지네요.

hnine 2011-01-13 17:58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아이들이 우선이지요. 서재놀이는 그 다음~ ^^
아이들과 무슨 책 읽으셨는지, 어떤 맛있는 것을 해주셨는지, 어딜 놀러가셨었는지, 사진 많이 찍어놓으셨다가 나중에 시간 날때 차근차근 풀어놓아주세요. 기다릴 수 있어요. ^^
제가 워낙 하리하라 왕팬이라서요. ^^ 같은 하늘님도 이 책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sslmo 2011-01-1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라하라 시리즈 사봐야겠어요.
님이 이렇게 칭찬을 하시니...왠지 꼭 봐줘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어서 말예요~^^

hnine 2011-01-13 18:00   좋아요 0 | URL
이 사람보다 더 이름이 많이 알려진 과학 관련 책 저술가는 많지만 저는 이 사람 만큼 제대로 잘 알면서 동시에 쉽게 쓰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어요. 제가 워낙 골고루 여러 사람의 책들을 못 읽어본 탓도 있겠지만요. 양철나무꾼님은 누구 좋아하시나요?

반딧불이 2011-01-1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바로 올려주셨네요. 저 많은 질문에 한가지도 제대로 답을 못하겠어요.꼭 읽어봐야겠는걸요. 정보 고맙습니다.

hnine 2011-01-14 10:19   좋아요 0 | URL
저 질문에 자신 없기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
아는 것을 부풀려 쓰려고한 흔적이 없고,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려 과장한 흔적이 없어서 좋아요.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더 쉽게 설명하는 것, 그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보여서 저는 좋더군요.

비로그인 2011-01-1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새 좀 자주 보이는 표지의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군요.
이시간쯤 되면 약간 머리가 멍해서 다양한 리뷰글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때가 많은데,,

이렇게 요약, 물음으로 정리해주시니 재미도 있고 쉽게 다가오네요. ㅎ
올리신 리뷰를 읽다 생각난건데요. 성인이 되고, 자기의 일에 몰두하며 살게 되면 특정 분야에 대해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사지 않더라도 올리신 글에 대한 답은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hnine님~

hnine 2011-01-14 10:2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하도 빨리 잊어버려서요 ㅠㅠ) 최소한 지금은 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 제일 궁금하신지요? 찾기 귀찮으면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어요~ ^^

꿈꾸는섬 2011-01-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리뷰 읽으니 하라하라 시리즈 저도 기억해두어야겠어요.^^ 예전에 생물학까페, 한권 읽어봤는데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hnine 2011-01-14 10:23   좋아요 0 | URL
생물학 까페도 재미있었지요. 그동안 저자가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그래서 이후의 책들엔 그런 얘기도 간간이 나오더군요. 아무튼 저 책도 재미있어요. 표지도 좀 더 멋지게 만들고 제목도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건 아마 내용이 그만큼 마음에 들기 때문이겠지요.

감은빛 2011-01-1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눈에 띄었던 책인데,
여기서 만나네요.
필독서로 분류해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11-01-14 10: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나온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서점에서도 신간 코너에 있을 것 같네요.
자신있게 추천해드릴 수 있습니다 ^^

turnleft 2011-01-14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을 것 같아요. 찜!

hnine 2011-01-14 10:24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