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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영어 제목은 Collection of essays 라고 되어 있다. 우리 나라 제목처럼 역시 튀지 않는 제목, 하루키의 짧은 신변잡기 모음집이다. 대부분의 글 한 꼭지가 기껏해야 두 페이지 정도이니 깊은 내용이 들어있다기 보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의 한 단면을 얘기하며 하루키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소설로 알 수 없는 이것 저것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이 처음 일본에서 출판된 것이 1980년대이니 하루키가 30대 중반일때. 지금과 어느 정도는 다른 점도 있고 여전히 같은 점도 있을 것이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다보니 이전에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을 때보다 하루키의 성격이 더 잘 엿보인다. 그는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괴짜'아니였을까? 그의 소설들을 볼때 괴짜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건 그저 짐작이었고 이 책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요 라고 하루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맥주와 두부를 좋아하는데 두부는 프랑스 가정에서 갓 구운 빵을 사다가 그날 다 먹는 것 처럼 (결코 미리 만들어 놓은 빵을 사다 먹지 않는단다) 그날 만든 것을 사다가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맛이라는 등, '두부에 대한 미학'이란 제목까지 붙여 글을 쓴 것이 있다. 이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 리셋 (reset)하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좋아서란다. 결혼식장을 일종의 공장으로 비유한 것도 하루키다운데 그가 취재한 어느 예비 부부의 결혼식 예약 과정이 어쩌면 우리 나라와 그렇게 비슷한지.
아무도 줄을 서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당황스러움때문에 사인회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소심함도 있고 (아직도 그럴까?), 대학 1학년 첫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매일 일기는 쓰지 않지만 일지는 쓴다는 것, 금연을 '취미'로 하고 있는 그의 요령, '나는 이런 신조로 글을 쓴다' 에서는 결코 자기 글에 대한 비평에 대해 다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교통 파업이 즐겁다'란 제목의 글에서는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그에게 갑자기 한 두시간 기차가 멈춰 서게 되어 그동안 천천히 책을 읽으며 맥주를 즐길 수 있었던 추억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획을 세워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하나하나 지워가며 일하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아니 대개는 그렇게 일 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이런 우연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을 꽤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책을 한권만 가지고 무인도에 간다면' 이란 질문을 우리도 곧잘 하곤 한다. 그때 뭐라고들 답을 하던가? 하루키는 자기가 지금까지 쓴 원고를 들고 가서 계속 수정을 하고 싶단다. 그게 허락이 안된다면 사전을 들고 가고 싶단다. 사전이 얼마나 재미있는 볼거리인가 설파하면서.
다른 사람 인터뷰를 직접 해보기도 하고 자신이 인터뷰를 많이 받아보기도 했는데 자기는 무슨 질문을 받아도 그리 쉽사리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 놓지 않는다면서 60퍼센트 정도가 솔직한 이야기, 40퍼센트는 자기 방어적인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세가지는 몇시에 일어나서 몇시에 자는가, 필기도구는 어떤 걸 쓰고 있는가, 부인과는 어디서 알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이라는데 이런 것들을 알아서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모두가 물어 보는 것을 보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모양이라고, 역시 마지막 줄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금방 사귀고 말을 잘 하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하루키라지만 그는 글로 풀어내는 수다만큼은 타고 난 사람이 분명하다. 작가가 되어야만 했을 사람. 읽다 보면 굳이 어느 나라 출신 작가라는 것이 의식 되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그의 글들.
하루키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한번 가볍게 읽어 볼만 하다. 우리 나라에서 이 책은 1997년에 처음 나왔는데 검색하다보니 그 표지가 정말 볼만하다. 위의 책은 그 후 2010년에 다시 나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