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로드무비님 서재에서 보고 찜해두었다가 이제서야 구해 읽게 된 동시집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시인들 동시 모음집, 문학사상사 

번역가이면서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 대표로 있는 최윤정님이 우리 시인들의 동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도 있지만 이 책에서 처음 보는 시들도 꽤 여러 편 실려 있었다. 생존 작가도 있고 윤 동주, 천 상병, 김 수영 처럼 고인이 된 작가도 있고.
동심은 곧 시심, 즉 아이들의 마음은 곧 시의 마음이라는 엮은이의 생각에 동의한다. 이렇게 다 커서 그 마음을 다시 발견해가는 느낌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동시를 좋아한다는 아이가 별로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와서 동시집을 많이 찾아 읽어보고 알았단다.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재미없는 동시들이 많더라는 걸. 여기에 실린 동시들은 엮은이가 그래서 나름대로 아이들 마음이 들어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골라 본 것인데 몇몇 아이들에게 읽혀 보았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그 중의 어떤 아이는 "내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다니.
실린 시들도 좋았지만 책 앞의 서문과 뒤의 글도 좋다. 실린 시들 중 '주먹 두개 갑북갑북' 하는 윤 동주 시인의 <호주머니>라는 시는,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많이 읽어주던 시라서 오랜만에 다시 보니 새로왔다. 아이에게 지금 다시 읽어주며 생각나는지 물었더니 생각 난다고 하며 웃는다. 

 

'더작가'라는 모임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을 말한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들이 해직되는 모습을 보고 2008년 12월에 첫 모임을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이 모임의 취지는 무엇이겠는가?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 작가들이 모여서 작년 말 한권의 책을 내었다. 

<박 순미 미용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작품집, 한겨레아이들  

여덟명의 작가의 단편이 실려있다. 옛이야기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의 모습에 불만을 가진 호랑이가 어린이책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의 강 무지 글 '동물원에서 온 편지', 세계길거리 음악 축제 마당에서 쫓겨 나는 노점상 할머니를 그린 김 남중 작가의 '눈물은 싫어요', 주제가 좀 애매 모호하게 그려져 있어서 읽는 아이들이 작가의 의도를 잘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과 후 학습도 사교육의 일종이라며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반대한다는 내용의 김 하늘 작 '겁 없는 민주주의'는 좋은 취지로 진행되고 있는 방과 후 학습이 있다면 이 글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염려도 있을 것 같다. 김 해원 작가의 '연극이 끝나면'는 주제도 좋고 구성도 좋고 문체도 좋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문제를 그렸는데 내 아이에게도 꼭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 글이었다. 박 효미 작가의 '박 순미 미용실'은 아버지 없이 혼자서 미용실을 꾸려 나가며 딸을 키우는 엄마. 재개발로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릴 위기에 놓이자, 더러운 곳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 재개발이라고 생각한 주인공 아이는 직접 나서서 동네 청소를 한다. 그러면 재개발로 쫓겨 나지 않게 될거라 믿고. 이 글도 좋았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 일제 시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흔치 않은 소재로 쓴 안 미란 작가의 '돌 계단 위의 꽃잎', 환경 보호 단체와 지역 주민 사이의 갈등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 최나미 작가의 '그 여름의 천국, 그 여름의 유배지'도 잘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염소와 함께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결말이 아이들로 하여금 좀 황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긴 하지만.
여기엔 만화도 한편 실려 있는데 최덕규 작가의 '쪽방 할아버지'가 그것이다.
좋은 의도로 기획되었고, 실려진 글들도 다 읽어볼 만 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되는데, 정작 아이들은 어떻게 읽을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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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1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순미 미용실 제목이 참 정감가네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공감이 갈 책.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저도 궁금해요.

hnine 2011-01-15 21:51   좋아요 0 | URL
초등고학년 이상 정도되면 이해할 듯 싶어요. '평화'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쓰여진 책이라서, 읽은 후 함께 얘기 거리가 많을 듯 합니다. '박 순미 미용실' 이라는 제목이 특이하지요? 여덟 편 글 중 특히 더 좋았던 하나였어요.

프레이야 2011-01-1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도 참 좋아하는 시집이에요.
최윤정님의 안목도 미덥구요.
박순미 미용실, 호감가는 동시집이네요.
제목도 참 수수하니 좋아요.^^

hnine 2011-01-15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검색하다가 프레이야님 리뷰를 읽은 것 같아요. 제가 이 시집을 뒤늦게 발견했지요. 최 윤정님은 어린이문학계에서 소신있으면서 안목있는 분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시더군요.
박 순미 미용실은 동시집은 아니고 여덟 명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인데 제목은 수수하고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지요.

프레이야 2011-01-15 22:5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새 이래요ㅠ
단편집이라고 친다는 게 손은 동시집으로..ㅎㅎ

hnine 2011-01-15 23:19   좋아요 0 | URL
그러신 줄 알고 있었어요 ^^

순오기 2011-01-1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유은실 작가 강연 뒤풀이에서 '더 작가'모임 이야기를 들었어요.
젊은 작가들이 광주대 배봉기 교수를 고문으로 추대하려고 애썼던 이야기와 당면문제들~
유은실 작가는 방학중 무료급식 예산 삭감에 충격받아, 애들한테 밥도 못 먹이고 배를 곯리는 나라가 OECD 운운하는 것도 부끄럽고...이런 상황에 작가들이 글이나 쓴다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절망스럽다고 하더군요...ㅜㅜ

hnine 2011-01-15 21:58   좋아요 0 | URL
아, 유은실 작가 강연 뒤풀이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군요. 어린이들에게 언제까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위의 책은 펴낸 취지도 좋고, 그런 모임이 모임으로만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어 더 좋은 것 같네요. 인세의 일부는 평화박물관 기금으로 사용한다는군요. 글로써도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겠지요.

2011-01-15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5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긋나게 흘러가는 현실과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생각, 그리고 그것에 대한 표현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작가가 아니어도 그러해야겠지만 최근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지식인들의 친일적인 행동을 살펴보면서 그런 현실인식과 표현이 왜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hnine 2011-01-15 22:0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어린이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 다른 사람들이 읽을 것을 전제로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특히 명심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