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7
에벌린 워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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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절을 다시 살아볼수는 없다. 하지만 지나간 시절 속에 다시 들어가보는 듯한 경험은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경험을 3년 전 해본 적이 있다. 그건 바로 그 장소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때가 아닐까.

저자 에벌린 워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이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중인 중년 장교 찰스 라이더가 부대와 함께 우연히 자기가 열아홉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소인 브라이즈헤드 성을 방문하여 머물게 되면서 1인칭 시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전에 이곳에 있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전에 그곳에 있었다. 첫 방문은 이십 년도 더 전인 6월의 구름 한 점 없는 날, 메도스위트가 배수로에 크림색으로 흐드러지고 여름의 온갖 향기로 공기가 묵직할 때 서배스천과 함께였다. 그때는 유난히도 해가 쨍한 날이었으며, 나는 수차례, 다양한 심기로 그곳에 있었음에도 다시 찾은 지금 내 마음이 회상한 것은 그 첫 방문이었다. (39쪽)

서민층 출신 찰스는 집안의 기대를 안고 옥스포드에 입학한다. 선배, 동급생과 맺어지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상은 동료인 서배스천이었다. 서배스천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 찰스의 인생은 달라졌으니까. 서배스천이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코 완벽한 인간도 아니었고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서배스천의 모든 행동과 말과 거취는 찰스의 생각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계를 두고 치명적인 관계, 운명적 관계라 부를 것이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는 말이 의아할 정도로 이 소설은 영국 귀족 계급, 대중적이지 않은 옥스포드라는 특별한 기관에서의 집단과 개인으로서의 생활 방식 등을 그것도 아주 세세히 다루며 진행해나가고 있다. 또한 청춘들의 연애사, 성장통, 동성간 우정, 종교, 결혼 등 하나에 집중하지 않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할지 끝까지 결정을 못하며 읽기를 마쳤고 다 읽은 후 해설을 참고하여서야 이런 주제들이 모두 다루어졌구나 이해할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이유에서일까. 1981년 영국에서 ㅇ이 작품이 TV 시리즈물로 만들어졌을 때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출간된 해가 1945년이라는 연도에서 짐작되듯이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시기는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복판에 있던 시기이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배고픔에 시달릴때였으며 작가인 에벌린 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1920,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상위층 사람들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것일까.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보면 이것을 성냥팔이 소녀가 눈보라 속에서 성냥불을 켜서 잠시라도 추위와 배고픔을 잊는 것에 비유해놓고 있다. 이 소설이 그당시 눈보라속 성냥불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한 옥스포드에서의 생활, 아슬아슬할 정도의 청춘, 하지만 지켜야할 종교와 도덕, 자유가 도덕과 종교의 범위를 넘어갔다고 하는 판단이 이후 이들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어떤 영향으로 작용을 하는지. 참으로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가치관과 잣대의 충돌을 저자는 자기 인생에서 겪었고 그것을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이 소설 속에서 드물게 개정판까지 내며 정리해보려고 한 것 같다. 1981년에 TV영상물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후로도 다른 해석과 다른 방식의 시도의 여지가 많아보인다. 찰스가 브라이즈헤드를 재방문하게 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재독, 재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2019년 가을, 나는 수십년 만에 나의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을 보내던 곳을 혼자 다시 방문해본 적이 있다. 갈때만 해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기차에서 내려 그곳의 지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부터 나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는 듯 마는 듯 서둘러 둘러보고는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마 당당하게 둘러볼 수 없는 마음에 웃음대신 눈물을 흘렸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찾은 ○○○』모두 이런 곳, 이런 시기를 마음 속 한켠에 갖고 있지 않을까. 차마 아무때나 꺼내볼 수 없는 그런 브라이즈헤드가.

참으로 마음 복잡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언젠가 재방문 해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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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9-30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버스 한번만 타면 내 어란시절 옛동네를 갈수있는데 여태 못 가고 있습니다.ㅠ

hnine 2021-09-30 13:27   좋아요 1 | URL
개인적인 감상이 섞여들어가니까 일단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읽게 되더라고요 ㅠㅠ
작가가 이 작품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았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다 전달되지 않거나, 잘못 또는 일부만 받아들이거나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작가도 알았을까요? 내고나서 한참 후에 기어이 개정판을 내고 말았으니까요.

blanca 2021-09-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봐야겠네요. 이런 이야기 좋아해요. 책 소개 감사해요. 그런데 번역이 괜찮나요? 궁금합니다. 번역 얘기가 있어서요.

hnine 2021-09-30 13:38   좋아요 0 | URL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포인트를 잡지 못해서 읽는데 한참 걸렸어요. 번역이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번역하는 사람이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은 여러번 했답니다. 옥스퍼드의 학제, 기숙사 생활, 건물 양식, 그림 양식, 역사적 배경때문에 인용한 부분 기타 등등, 주석 붙은 곳이 너무나 많아요. 책 한권 속에 주석이 386번까지 달려있어요. 다 읽고 넘어갈 필요없다고 해도 그러자니 찜찜하고요. 그리고 영국 작가라서 그런지 직접적인 묘사보다 인물의 심리나 상황을 비유해서 표현하는데 아주 능숙한 사람이라서 제가 놓치고 그냥 읽어넘어간 부분도 많을거예요.

다락방 2021-09-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궁금하네요. 생각보다 쪽수가 많지만(6백쪽이 넘네요!0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어쩐지 저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nine 2021-09-30 13:46   좋아요 3 | URL
초반부는 주인공 찰스가 그의 동급생 서배스천에게서 동성간 매력을 느끼고 끌릴수밖에 없는 관계, 그것을 통한 정신적 성장 이런쪽으로 촛점을 맞추고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은 <위대한 몬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성의 양식> 이런 작품들을 연상했는데 중반 너머로 가서 주인공의 결혼, 헤어짐, 상대방에 대한 가책 등으로 고민하는 부분을 보면 마치 톨스토이의 작품에서처럼 도덕과 종교와 양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더 부각되는 것으로 보였어요.
혹시 읽으시게 된다면,
1. 한번 읽을 때 50쪽 이상은 읽을 수 있을때
2. 책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상황일 때
그럴때 읽으시는게 좋지 않을까 해요.
저는 워낙 슬렁슬렁, 어떤 때는 한번에 100쪽도 읽지만 어떤 때는 겨우 서너쪽 읽고 덮기도 하고 그런 식이라서요.

scott 2021-09-30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벌린 워의 한 여름 방학 같은 청춘이 느껴지는 이 작품 가장 좋아합니다 ^ㅅ^

hnine 2021-10-01 05:24   좋아요 0 | URL
제목에 끌려 선택했을 뿐 저는 처음 보고 듣는 작가였어요. 영국 작가인데 미국에서의 대중적인 인기 얻는데도 성공적이었다고 하네요. 한 여름 방학 같은 청춘 같은 느낌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뒷 부분에는 내가 뭘 놓치며 읽어왔던가 하는 의심을 슬슬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답니다. 재방문을 부르는 작품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실제로 다시 읽어보는 소설이 몇권 있어요. 읽을때마다 느낌이 같지 않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1-09-30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인님 마지막 단락 문장들이 종일 맴돌았어요.
오전에 나인님의 리뷰 읽고 이제사 댓글 다네요.
저도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위에 스콧님도 좋다고 하시니~^^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hnine 2021-10-01 05:33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도 그런 장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때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전혀 예상못한 반응이 왔거든요. 저의 지난 시절, 그때의 제가 저만치 영상을 보듯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이렇게 작가는 작품으로 써내겠지만 저는 그냥 느낌으로 붙잡고 있을 수 밖에요.
(아들이 늦게 들어와서 편안한 밤 못보내고 말았네요 ㅠㅠ)

scott 2021-10-0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
10월에 포스팅 많이 올려 주세요

주말 행복하게 ~

그레이스 2021-10-08 18:19   좋아요 1 | URL
저두요 축하드려요

hnine 2021-10-09 06:25   좋아요 1 | URL
Muchas Gracias.
Feliz fin de semana.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1-10-0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hnine 2021-10-09 06:25   좋아요 2 | URL
감사드려요. 별로 부지런히 쓰지 못한 달이었는데 부끄럽네요,

페크pek0501 2021-10-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리옵니다. 저는 이거 타 본 지가 한참 된 것 같아용. ㅋㅋ
꾸준한 독서와 꾸준한 리뷰 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고 봅니다. ^^

hnine 2021-10-11 15:32   좋아요 1 | URL
주시는 상이니 감사히 받지만 요즘 저도 책읽기 많이 못하고 있어요.
책읽는것 여전히 좋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어 보이는 일 있으면 언제든지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해요 ^^
할수만 있다면 직접경험이 찐 아니겠나 해서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가을을 잘 보내시기를 바랄께요.
 
고귀한 일상 - 일상에서 발견하는 생명과 존재의 아름다움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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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전작을 각별한 느낌으로 읽었었다.





<밥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에세이의 제목은 <고귀한 일상>.

밥 하는 시간과 같은 결의 이야기가 담기었겠구나, 제목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그녀는 마흔 후반에 하던 일을 접었고 오십 초반에 경주로 내려가 자기가 살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살고 있다. 그러기까지 방황의 얘기가 <밥 하는 시간>이라는 책 속에 있었다.

온통 찾다가 돌아오니 처음부터 이미 저절로 다 있는 것을 이제 안다. 그리하여 답할 수 있다.

'그냥 살 뿐.' (28쪽)

하루 24시간을 피자 조각 나누듯이 네 조각, 아니 여섯 조각, 여덟 조각으로, 그 한 조각을 다시 두 조각으로 나누며 살아버티던 시게에서, 갑자기 하루 24시간이 한 덩어리로 주어지며 알아서 쓰라고 던져진 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생의 룰 이랄까 그런 것을 다 뒤집어 엎고 새로운 제2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살면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그렇게 갈구하던 나만의 자유 시간이 자유가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그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늘 하던 일 하고 싶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특별한 일이 따로 없다는 걸 온몸이 아는 거지.

하루하루 일상 그것이 특별함인 거지.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어제와 같은 이것이 그냥 시시한 반복, 아무것도 안일어남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특별함이고 고귀한 것임을 나이들며 알아간다. 특별한 일을 찾던 눈과 마음이 다시 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 고요에 대한 두려움, 혼자를 대면하지 못함.

《중세의 가을》에서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는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정신적 발전이 끝나 버린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공백을 못 견뎌 한다. (53쪽)

특별히 더 중요하고 집착해야할 것이 없다. 매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것이 다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 순간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뿐.

내 생각은 고귀한데 나의 일상은 천박하다. 이 사실을 깨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고귀한 생각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실제 삶 속에서 나는 봐주기 힘들 만큼 천박했다.

난 평생 그럴듯한 삶을 꿈꾸면서 그 근원이 되는 것들은 죄다 무시하고 살았다. (70쪽)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하라' 라는 소제목 아래 세쪽에 걸친 글은 읽고, 한번 더 읽었다.

내 생각이 어떤 대단한 생각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뿐. 다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다. 내 생각이 아주 유별난 생각은 아니구나, 혼자 이상한 곳으로 와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심이랄까.

아직도 배움이 많이 필요하고 아직도 덜어낼게 많은 삶이다. 채운게 뭐 있다고 덜어낼게 있냐는 생각은 적어도 하지 않을 겸손함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책은 금방 읽었는데 리뷰를 바로 올리지 못했다. 리뷰의 성격으로 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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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4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9-0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 이 글을 읽으니 어느 책에서 읽은 - 행복하게 해 줄 것들을 이미 갖고 있는데 다만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라는 - 글이
생각납니다.

hnine 2021-09-05 05:29   좋아요 1 | URL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이 말도 지금 막 생각나네요. 이것도 아마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같은 맥락이겠지요.
다 시시해졌다는 말은 어떤게 더 특별히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는데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해져요.

서니데이 2021-09-0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요즘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는 잘 몰랐거든요.
커다란 상장 같은 목표도 좋지만, 매일의 날들도 바꿀 수 없을 시간 같아요.
hnine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hnine 2021-09-05 23:4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오랜만에 바깥 외출을 하고 왔답니다. 가까운 수목원에 다녀왔어요.
신기한 식물들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날은 잔뜩 흐린 날이었지만 마음은 개인 날이었어요.
매일의 날들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미 새로 시작된 날 자체가 새로운 일이라는 걸.
 
소피의 선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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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Hobson's choice 라는 말이 있다. 'to have no choice at all' 을 뜻하는 것으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소피의 선택, 이 책의 여정을 다 끝내고 제목의 소피의 선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되었고 (소설의 거의 끝무렵에 밝혀진다), 혹시 이 소설때문에 이후로 소피의 선택이라는 말도 Hobson's choice처럼 어떤 특수상황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나 궁금해져서 google에서 찾아보았다. 

1979년 발표된 이 소설에서 유래하여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를 일컬는 경우에 사용된다고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봤자 결과는 다른 하나를 선택했을 때보다 나을게 없는 경우를 말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25살에 첫 장편소설 발표부터 문단의 호평을 받는다. 소피의 선택은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로서 1979년 그의 나이 55살때 발표하여 다음해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몇년 후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인 '스팅고'가 화자로 등장한다. 작가를 꿈꾸고 있는 스팅고는 대학을 졸업한 후 출판사에 취직하였다가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로 나서기위한 습작 생활에 들어간다. 뉴욕의 작은 공동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방 사람들중 소피 그리고 그녀의 애인인 네이선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소피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여자이고 네이선은 유태계 미국인이다. 난민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미국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소피를 네이선이 도와주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소피와 네이선은 둘 다 정신적으로 불안하여 언제 어떤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이며 특히 네이선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 상태이며. 이들 사이에 있는 스팅고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며 인간 관계 맺음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상태로서 소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괴로와하고 네이선에 대해서도 묘한 연민과 매력을 느껴서 더욱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네이선이 발작을 일으키고 소피에게 변태적인 행위나 가학행위를 한후 그녀를 떠날때마다 스팅고는 혼자 남은 소피가 무너지지 않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주며 그녀가 털어놓는 과거 얘기를 들어준다. 마치 참을성 있는 고해신부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작가로 일어서기까지의 방황과 불안, 그의 가족사와 관련된 미국 노예 제도에 대한 작가적 분석, 그리고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서 보인 잔혹성과 광기에 희생되는 인간의 파국의 양상이 두개의 큰 줄기를 이루며 진행된다.

민족과 국가의 선택과 결정이 개인의 운명에 어떻게 관여하고 어떤 모습의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악의 모습과 광기는 모두 우리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악마성에서 비롯됨을, 복잡한 인간 관계와 심리 상태, 변태적인 행위와 가학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소피에 대한 네이선의 비정상적이고 가학적인 애정 행위, 그런 네이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소피의 이해 불가한 심리, 그 사이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보이는 스팅고는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을 어렵게 했고 혼란스러웠다. 이 정도 수위의 묘사가 이 정도 분량이나 작가에게 꼭 필요했을까 마지막까지 결론을 못내리고 책장을 덮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독자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도 작품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짐작이다.

소피의 욕망도 나처럼 끝이 없었으나, 거기에는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원초적인 욕망이 컸을 것이고, 또한 성교를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그 고통에서 벗어나 망각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려는 격렬한 싸움이 지칠 줄 모르는 성욕으로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하다. (2권, 444쪽)

스팅고가 말하는 위의 대목을 겨우 찾아 작가의 변을 들은 셈 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말년에 꽤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렸고 그의 아버지 역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집안 내력이 있다. 


두권에 걸친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부분을 두툼한 책의 말미에서 발견했다. 스팅고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쓴 부분이다.

질문: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 (2권, 474쪽)

또하나의 질문으로 답할 수 밖에 없는 대답.

신의 존재를 묻기 앞서 인간인 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냐고 묻는 지적인가.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모래 아래서 나는 죽음을 꿈꾸었으나

새벽녘에 깨어나 보니

밝은 새벽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었다. 아침일 뿐이었다. 아름답고 빛나는 아침. (2권, 4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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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8-27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보여주고 묘사해도 충분히 이해할 텐데
유난히 그런 것에 집착하는 감독이나 작가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거 보면 좀 사디즘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 작품 영화나 책으로든 함 볼까 했는데 좀 괴로울 것 같아서 볼 수 있을까 싶어요.ㅠ

hnine 2021-08-28 05:37   좋아요 3 | URL
작가가 젊은 시절 쓴 작품도 아니고 실력을 인정받은 후 발표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겠기에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저는 마지막까지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을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있었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런 작품들을 어찌 제가 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
죄악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 죄악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인간.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천사이면서 또 악마이기도 한 이중적 존재, 다중적 존재인 것 같아요.

scott 2021-09-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이님
추석연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ʕ ̳• · • ̳ʔ
/ づ🌖 =͟͟͞͞🌖
해피 추석~

hnine 2021-09-22 05:50   좋아요 0 | URL
남편과 둘이서, 오붓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추석을 보냈어요.
scott님의 추석도 평화로왔기를...

coolcat329 2021-11-08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으면서 네이선의 상식을 벗어난 폭력과 행위, 스팅고의 그 집착에 조금 불편함을 느꼈어요.
다만 유대인으로서 피해자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네이선에게도 본인이 그토록 경멸하는 폭력성 잔인함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품고있는 이중성의 아이러니를 보여준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21-11-09 06:07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참 고민 많이 하며 읽었는데, 인용해놓은 부분을 읽으며 제 고민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답니다.
인간인 우리도 우리 자신을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런 우매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죽음을 꿈꾸면서도 다음 날 다시 찬란한 아침을 맞는 그 우매함때문에 극복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요. 아이러니지요.
읽는 동안 좀 질리기도 해서, 많은 분들이 영화를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볼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
 
밤의 군대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8
노먼 메일러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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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읽고 나니 도저히 그것으로 멈출 수 없었다. 

<밤의 군대들>은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가 나오고 나서 출간되었고 (1968년) 노먼 메일러의 또다른 대표작이면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이라는 두개의 상을 받게 한 작품이다. 역시,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하고 있었다. 

우선 모든 글의 성격을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실제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쓴 사람의 주관과 생각이 듬뿍 들어가있으니 픽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저자는 왜 이처럼 제3의 형식의 책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신문과 방송이 대중에게 사실을 보도하는 매체의 전부였던 시대에 그 '보도를 보도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논쟁의 불씨를 짐작하면서도, 논쟁적이지 않은 작품은 쓰지 않는다는 평소 노먼 메일러의 고집을 생각할때 가능한 시도이다.

작가의 이러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본문 중에서 찾아본다.

신문이란 사람의 행동을 왜곡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기자들은 사람이 말한 낱말과 문장을 부수고 비틀고 추리고 짜서 결국에는 훌륭한 작가를 얼빠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필연적인 결론이 나온다. 말을 길게 늘어놓을수록 더 바보가 된다고. 만일 헨리 제임스가 요즘 인터뷰를 했다면 통신수업에서 토론학을 배운 히피처럼 보도됐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보도 내용은 항상 이상하게 간추려지고 생략되어서 오해가 빚어지고 바보스러워진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오해의 장벽은 신문을 통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두터워진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슬픔이 훌륭한 작가의 가슴마다 비집어 든다. 작가의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를 오도하는 언론기관의 잘못으로 작가는 무지한 독자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고통받는다. 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게 신문에 보도되는데 행위의 동기가 비틀리고 말이 잘못 전달되곤 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면 작가는 아예 체념하고 다른 일거리로 방향을 바꾸는데, 예를 들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투쟁하든가 새 책을 쓰든가 영화를 만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기껏해야 가망 없는 평판을 감내하든가 나쁜 경우엔 산 채로 자신을 매장시키는 기사에 고통을 받는다. (108, 109쪽)


1967년 10월 21일, 미국의 국방성 펜타곤 앞에서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가 있었다. 이중엔 진보적 학계 인사를 비롯하여 시인, 비평가, 히피족, 대학생, 등 여러 계층,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속해있었다. 이 일이 있기 약 한달전 노먼 메일러는 하버드 동문이자 오래된 친구인 미첼 굿맨과 전화 통화를 한다. 미첼 굿맨은 노먼 메일리에게 시위 계획을 알려주며 참가할 것은 권유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하다가 참여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차 생각이 바뀐 그는 목요일에는 사전 모임에서 연설, 금요일에는 법무부에서 시위, 토요일에 펜타곤 앞에 모여 시위라는 3일 동안의 일정에 당시 잘 나가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기로 하고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써보기로 한다. 그래서 모임 연단에서 연설을 하기도 하고, 시위대에 참여하여 거의 자발적으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하루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감옥에서 지내보기도 하고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 그것이 이 행사 참여 목적에서 아예 제외된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그는 어서 이 일정을 끝내고 뉴욕에서 있을 파티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서슴없이 쓰고 있고 베트남 참전 반대 군중을 가장행렬에 비유하는 비판적 의견도 감추지 않는다.

난잡하고 방자하고 부주의하게 LSD를 남용하고 그 폭식의 상패로서 자신들의 등에 모든 시대의 역사를 걸친 악한들이 지금 신만이 아는 역사의 진수를 모조리 짊어진 채 전진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인가.) 다른 악한들을 치겠다고 지금 걸어가고 있다. 신파시즘의 성과학기술적 다양성을 위해서 독선과 탐욕과 (때론 자신들도 모르는) 음흉한 정욕 속에서 현재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이 나라의 모든 기업을 대표하는 악한과 전쟁을 하겠단다. (148쪽)


그럼 저자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중립적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의견을 아예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로써 밝히고 있다 (이글은 따로 1967년에 단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메일러는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도 알고 비방하는 입장도 알지만 결국 둘 다에 질려 버렸다. 전쟁을 옹호하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가정 위에 세워졌고 끝없이 되풀이됐다. 한편 철수하자는 주장은 한 번도 그 중요성을 밝혀 본 적이 없다. 메일러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있었던 어러 사건들의 절정으로 생각했다. 정치가, 기업가, 장군, 신문 편집자, 입법가 등 미국의 가장 강력한 중년층과 나이든 와스프(WASP) 들은 의견을 한데 모아 지적인 결속을 다짐했다. 중세 기사와 맞먹는 신앙심으로 공산주의가 기독교 문화에 대한 필살의 적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전후 세계에서 공산주의와 대적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말살되리라고 생각했기에, 겸손한 타협도 있었으나 공공연히 전쟁을 벌이며 냉전 시대를 열었다. 

(278쪽)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노먼 메일러는 자신을 보수적 좌파라고 일컬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요약해서 올려본다.

메일러는 보수적 좌파로서 그 나름대로 관점이 있다. 

모든 전쟁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미국입장에서 볼 때 나쁘다. 나쁜 전쟁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싸울 때,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싸움은 나쁜 전쟁이다. 폭탄으로 수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은 나쁘다. 인구를 재배치하는 전쟁은 나쁘다. 전선도 없고 뚜렷한 절정도 없는 전쟁은 나쁘다. 과열된 우월감과 과열된 논쟁 속에서 나라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전쟁은 나쁘다. 그런 전쟁은 다른 인종들을 사냥하겠다는 내밀한 정욕에 부채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지속할 의미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전쟁은 분명히 나쁘다. 그 뿌리가 너무 복잡하고 타협적이어서 그 자체를 전쟁으로서 개선할 전망이 없는 싸움은 나쁘다. 좋은 전쟁은, 더 노력하면 혼란, 악, 몹쓸 것들을 효과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구체적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모든 보수적 시각에서 전쟁의 의미를 살펴보니 (전쟁을 옹호할 권리는 보수주의에 유보하고) 베트남전쟁은 나빠도 보통 나쁜 전쟁이 아니다. (284쪽)

이어서 두번째 이유로 메일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고 세월이 흐른 뒤 아시아 대부분이 공산화된다고 가정할 때, 이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285쪽) 2차 세계대전 이후 와스프 해군 대장, 장군, 정치가, 입법가, 편집자, 기업가들이 다음번 전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이에 벌어질 거라고 수군거렸는데 이들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며 좋은 기독교인과 나쁜 기독교인이 있듯이 좋은 공산주의자가 있고 나쁜 공산주의자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아시아가 공산화될까봐 떨지 말고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에게 맡기라는 생각이다.

빨리 손을 떼라. 공산주의가 확장될수록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슨은 더욱더 커질 것이고 공산주의의 팽창 그 자체가 스스로 견제한다.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유일한 힘은 바로 공산주의 그 자체다. (287쪽)

어쨌든 그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한다는 항의를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지낸 길지 않은 시간등,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코 사실만 전달하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고 도리어 소설을 쓰겠다며 글을 쓴다.

훌륭한 소설이란 눈에 비치는 광경을 구체화하여 독자가 다른 광경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못을 들여다보려 할 때는 현미경 노릇, 숲을 탐색하려 할 때는 탑 위 망원경 노릇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확연해진다. 펜타곤 시위를 둘러싼 대중매체는 역사가의 노력에 장막을 드리우는 부정확성의 숲을 만들어놓았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 나아가 사실을 전망할 도구들까지 제공하려고 한다. (334쪽)

어쩌면 이 대목이 이 책의 의미를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의 1부를 썼고 제목을 '소설로서의 역사'라고 붙였으며, 2부는 '역사로서의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각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모아놓았다. 소설로서의 역사란 소설인가 역사인가. 역사로서의 소설을 우리는 역사라고 볼 것인가 소설이라고 볼것인가.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제목 '은유의 탄생'이라는 글로 마무리한 것은 그 자체가 얼마나 상징적인지.

미국, 새로운 인간은 신이 사랑뿐 아니라 권력도 만든다는 믿음으로 이 땅에 태어났지. 

한때는 비길 데 없이 찬란하게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짓무른 피부를 지닌 미국이라는 여인, 사생아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를 배어 벽도 보이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시들어 가고 있다. 이제 그 두려운 진통의 첫 신호가 왔고 계속될 것이다. 얼마나 계속될지 의사도 모른다. 다만 가짜 진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 진짜다. 이제 아기를 낳을 것이다. 어떤 아기일까? 지금까지 세계가 알아 온 가장 두려운 전체주의?

신이 갇혀 몸부림친다. (427쪽)

지금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오싹해진다. 전체주의란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파고들어있는 것일까.

어쩌면 노먼 메일러는 이 책을 씀으로써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팩트를 통해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얘기하고 싶었으며, 보이는 것에 갇혀진 진실, 무엇을 믿고 살아야할지 혼란과 갈등이 커져가는 인간들, 0과 1사이의 경계, 옳고 그름, 득과 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져가는진 현대 사회를 향해 정신 차리고 살라고 일침을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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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에이치 나인님 리뷰 자주 보고 싶습니다 ^.^

hnine 2021-09-11 05: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자도 막 나오고 ㅠㅠ
읽은 책은 다 리뷰 올리려고 하는데 요즘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읽는 책들이 주로 두툼한 세계문학전집이기도 하고, 핑계라면 그렇네요.

하양물감 2021-09-10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러서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hnine 2021-09-11 05:50   좋아요 1 | URL
하양물감님 올리시는 리뷰 지금도 즐겨 읽고 있어요.
한솔이도 종종 궁금하고요. 똘똘하게 잘 자랐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양물감 2021-09-11 08:59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이제 청소년이라 예쁜 모습은 사라졌어요. ㅋ

서니데이 2021-09-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1 05: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마음에 오래 남을거라고 생각했던 책의 리뷰라서 더 기쁘네요.

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2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리뷰와 페이퍼 2관왕! ^^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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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같이한다. 아직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 간접 경험만 해온 세대인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큼 전생을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된 저자 노먼 메일러는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게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적 인물중 한 사람이다. 1923년 미국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항공기술학을 전공하고 우등 졸업을 했으나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 습작을 해오던 그는 졸업후 바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필리핀 군도에서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실주의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발표한다. 발표하자마자 좋은 평을 받고 알려지기 시작하여 이후 잡지 출간을 비롯,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뉴저널리즘 소설이라고 하는 <밤의 군대들>로 196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주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설을 발표해오던 중 사형수의 실제 삶을 담은 소설 <처형인의 노래>로 1979년에는 두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나자와 사자>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는 이 소설이 2016년 새로운 제목과 번역으로 다시 선보이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일 년 전 스물 두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미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노먼 메일러는 1,2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을 완성하였고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강습상륙정이 내려지고 선발 병력이 파도를 타고 아노포페이 해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었다. 탑승한 병사 전체가, 호송선에 있는 사람 모두가, 몇 시간 안에 자기들 가운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쪽)


전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바꿔놓았던가. 전쟁은 물론 군대 경험도 해본 적 없이 간접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 소설만큼 읽으면서 내가 마치 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줄곧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대단한 전투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님에도 용병제로 군인을 모집하는 미국에서 각자 군인에 자원하여 들어온 사람들의 각자 다른 배경, 생각, 인간성, 그리고 전장의 상황 묘사를 무서울 정도로 그려놓았다. 

지리적 배경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가상의 작은 섬 아노포페이. 여기에 미국이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부대를 이끌고 있는 커밍스 소장은 초기의 소소한 전과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고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리하여 보토이 만 상륙 작전을 구상하게 되고, 이를 위해 소규모 정찰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그리고 커밍스 소장은 평소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있던 '헌' 소위를 희생이 짐작되는 그 임무에 투입시키고 무리한 정찰 임무를 지시한다. 무리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군대라는 체계. 무리수라는 것 외에도 거기에 얽힌 국가의, 그리고 개인의 이해 관계, 무섭고 엄연한 전쟁의 본질과 원리까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전투에서 병사들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다. 그럴듯하고 수용할 만한 명제다. (2권, 237쪽)

기계에 가까와야하고,

전투란 지배적인 습성을 지닌 채 들판을 빠르게 내달리고 햇볕 아래에선 난방기처럼 땀을 흘리며 빗속에서는 쇳조각터럼 굳어 버리는 수천의 인간-기계들을 조직하는 장이다. (2권, 237쪽)

인간이 기계로 효율화되는 장은 '전투'이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과가 몇 개 있는가, 말이 몇 필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기계 한 대가 인간 여러 명의 몫을 해낸다. 영도자들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나라에서는 기계를 숭상한다. (2권, 237쪽)

인간적인 티를 함부로 내서는 안된다.

그는 지금 로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했다간 로스가 때만 되면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동정을 구할 게 분명했다. 로스는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면 아무에게나 달라붙을 위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둘순 없었다. 결국 로스도 얼마 안 가 총에 맞을 사람 아닌가. (2권, 249쪽)

자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마지막으로 잠시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것을 기대하고 울며 고마음을 전해오는 '로스'를 보며 마음을 무장하고 있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던 '레드'의 심리를 나타낸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쟁의 실체이고 미국 사회, 미국 병사들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밑바닥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계급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지배하고,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반사적인 복종에 무감각해져가는 체제를 구축하는 극한 상황, 죽음의 현장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여기서 커밍스 소장은 생각한다. 파시즘은 이런 인간의 실제적 본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차라리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파시스트적인 힘이 병사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한계를 넘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고. 그럴때 군사 체계는 최대화 되고 병사들은 인간에서 기계가 되어간다.

적극적인 대처로 맞서기 보다 환멸과 무기력으로 빠져들었던 '헌'을 일컬어 해설에서는 현대 지성인의 표본으로 보았고 (2권, 503쪽) 작가는 그를 '생명의 그릇임에도 결국 어떠한 생명도 잉태하지 못하는 썩은 자궁, 혼탁한 자궁' 이라고 했다. 사상적 재료가 행동으로 꽃 피우지 못하는 지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 전투의 결과 누구도 승자와 패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상황 타개를 위한 작전을 수행하였을 뿐, 손해도  이득도 보지 않았고, 다음 작전에서 좀 더 성과를 내리라 헌티스 소상의 다짐으로 맺고 또한 시작을 의미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내가 마치 전쟁터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가장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던 대목은 윌슨이라는 병사가 죽어가는 대목이었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 죽음마저 쉽지 않을 만큼 지리하게 모든 고통이란 고통을 다 경험시키며, 죽음 뒤에도 끝나지 않고 다른 동료들에게 짐이 되는 극도의 비참함. 이 모든 지옥 경험과 개인의 삶과 죽음의 결과는 단 하나,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냐 아니냐 하는 결론으로만 의미를 남긴다.

커밍스 소장의 생각, '역사는 우익의 수중에 있고, 역사는 이번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다음 세기까지도 우익의 것이 될 것'이라며 미래의 유일한 도덕률은 힘의 도덕률이고 군대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는 예언은 작가가 전하는 이 소설이 보내는 경고라고 역자는 해설에서 덧붙이며 그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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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7-27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로 알게 된 작가와 작품 리뷰 고맙습니다 나인님. 담아 갑니다. 무더위가 절정이네요. 지치지 않고 지내세요 ^^

hnine 2021-07-27 12:17   좋아요 3 | URL
너무 반가운 프레이야님.
더위와 코로나를 어떻게 이기며 지내시는지요.
저는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지내는 아주 소극적 방법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오늘은 백신도 맞고 왔어요.
이 작가 작품 프레이야님도 한번 꼭 접해보시기를 추천해드려요. 이 소설 하나로 성이 안차서 저는 바로 작가의 다른 대표작 <밤의 군대들> 읽기 시작했어요.

새파랑 2021-07-27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결과만 남기 때문에 너무 잔인한거 같아요ㅜㅜ 저는 이 작가랑 작품 처음 알았는데 읽어보고 싶어요 😊

hnine 2021-07-27 12:20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작품으로 이 작가 처음 알게 되었고 제가 몰랐기 때문인지 미국에서의 지명도에 비해 국내에선 그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답니다. 아마 아들이 군대 가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요.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배우는 죽음과 비교도 안되게 전쟁을 통해 느껴지는 죽음은 다른 것 같아요.

stella.K 2021-07-27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예수의 일기>란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를 알았죠.
예수님이 1인칭으로 나오는 소설인데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신앙이 좋은가 보다 했는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을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후 좀처럼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일케 h님이 소개를 하시니 읽고 싶기도한데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 더운 날 이 책을 우찌 읽으셨을까? 새삼 존경스럽네요.
암튼 언제 읽을지는 모르나 기억은 하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hnine 2021-07-28 05:23   좋아요 2 | URL
오, stella님은 오래 전부터 이 작가를 알고 계셨군요.
말씀하신 <예수의 일기> 검색해보니 흥미있어보이는데 왜 절판되었는지 아쉽네요.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닌 책들을 요즘 몇차례 읽다보니 이력이 붙었나봅니다. 그래도 1,2권으로 되어 있는 정도는 읽어보겠는데 1,2,3,4 이렇게 네권으로 되어 있는 책들은 쉽게 손이 가지 않고 있습니다.
노만 메일러는 안티페미니스트라는 말도 있던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도 있군요. 지금 읽고 있는 그의 다른 책 <밤의 군대들>에도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에 본인 자신이 참석하여 겪은 일을 가지고 썼기 때문에 책 속에 메일러라는 이름이 나와요. 독특한 시도를 많이 했다는 것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해보고 통찰해보려는 시도라고 봐도 될까요.
아무튼 현재 제 관심 범위에 있는 작가랍니다.
너무 덥지요? stella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다롱이도 회복되었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21-07-28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정자들에게 군인은 인간성과 같은 감정이 없어야 쉽게 살륙을 할수가 있어야 전쟁에 승리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늘 두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하나는 인간인 군인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죠.인간적인 감정을 없앤 이른바 슈퍼솔져 영화는 과거에도 참 많이 나왔지요.나머지 하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전쟁애서 활약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터미네이터입니다.현재는 전자보다는 이른바 인간이 타지않는 무인기나 무인함이 나와서 전쟁에 이용되는 것이 대세인것 같은데 언젠가는 정말로 군인도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네요.

hnine 2021-07-29 05:36   좋아요 1 | URL
제가 터미네이터 영화를 처음 본것이 대학 입학도 하기 전인데, 그땐 말씀하신 그런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고 생각했지요. 군인이 기계로 대체되는 세상이 새로울 것 같지만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 많은 것들이 기계로 대치되고 있다 생각하니 두렵기만 합니다. 모르는채 스며들고 습관화 되어가고 있는게 제일 무섭잖아요.
한 인간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세계인데, 그런 여러 인간들이 모인 군대라는 조직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 너무 실감나게 그려진 소설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1-08-0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네요. 나인 님의 리뷰를 보니 제가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시기를...

hnine 2021-08-06 14:56   좋아요 1 | URL
너무 덥지요? 그런데 내일이 입추래요. 주말 지나고나면 더위가 한풀 꺾인다네요.
요즘은 신간 제쳐두고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만 줄창 읽고 있어요. 오늘 페크님 글 오랜만에 반갑게 읽었습니다.

coolcat329 2021-11-0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품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군요. 첫문장부터 전쟁의 아픔이 새어나오네요.
전쟁은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거 같아요.. 죽음과 고통 눈물만 있죠.
이 작가 인간성이 나빠 싫어해야지 했는데 ㅎ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1-11-09 06:10   좋아요 1 | URL
작품에 비해 작가 인간성에 대한 평이 안좋은 걸 저도 나중에 알고 놀랐어요. 작품평이 아니라 작가 인간성 평이 안좋은 것이니 그래도 계속 읽어보자고 했는데, 역시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해드릴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세요~ ^^